한 마리 사슴 되어
제17회 작품상
김영의
책장 위의 사슴이 나를 내려다본다. 망중한, 멍하니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나의 눈과 마주친다. 몇 해 전, 고교동창모임으로 일본에 갔을 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동네에서 다닌 절친 아츠코가 선물한 나라奈良의 사슴목각이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면 문득 문득 떠오르는 오래 전에 겪었던 신비롭고 신선한 충격적 광경이 다시금 가슴을 뛰게 한다.
갑자기 눈앞이 번쩍했다. 차가 끼익- 소리를 내고 급브레이크로 멈춰 서는 순간, 헤드라이트가 환하게 앞을 밝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아들이 뒷좌석 우리에게 소리쳤다.
“엄마 저것 좀 보세요!”
“어머! 사슴 아니야, 새끼사슴? 아니, 여기서 사슴과 마주치다니! 이 새벽 산길에서.”
살아있는 사슴이었다. 그건 텔레비전이나 동물원에서 봐오던 사슴과는 다른 몸짓과 분위기로 넓은 자동찻길 한 가운데에 버티고 서 있다. 토실한 몸매에 깔끔하게 보이는, 새끼치곤 제법 큰 사슴 한 마리가 맑고 큰 눈망울로 차 안의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질 않는가. 마치 신선이 내려와 서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기적 같기도 행운의 전조 같기도 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슴까지 만나게 된 것은 분명 우리 아들 졸업을 축하 하는 메시지인거야,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내 모습을 아들은 비시시 웃음으로 동의하는 듯했다.
바로 전날, 아들은 7년간의 어려운 유학생활을 마쳤다. 그 학위수여식에 참가 차 미국에 온 부모를 위해 이튿날 아들내외가 계획한 관광 길이었다. 보스턴에서 꽤 떨어진 이름난 어느 국립공원을 향해 새벽길을 달려가던 중이었다. 그 길에서 길조라고 하는 사슴을 만난 것이 우연일까.
‘아들의 장래를 축복 해주려는 것이 틀림없어’ 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공부하면서 한 번은 심장수술을, 또 다시 폐 수술까지 받으면서 이겨낸 박사과정이다. 노력만으로 이뤄낼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하니, 얼마나 운이 좋고 복 받은 사람이라 할까. 어떤 큰 상을 받은 것보다도 흐뭇하고 감사함에 가슴 벅차 오르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국립공원 방갈로에 머물며 넓은 호숫가 서편으로 넘어가는 붉은 너울은 한 폭의 풍경화였다. 그 환상적 경관을 즐기며 함께 배를 탔던 어린 손자가 올해로 서른 살이 넘었으니 30여 년이 지난 셈이다. 그동안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혼자 동그마니 남아서 집을 지킨다. 넓은 거실 책장 위에 놓인 사슴 한 마리가 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지켜보면서 날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보면 때론 공연히 우수에 잠기고 그리움을 쫓듯 지나온 한 평생의 애환이 그림자처럼 서서히 밀려와 어느새 나는 자갈길을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한 마리 사슴이 된다.
시인 노천명은 사슴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긴 목, 우아한 몸매에 늘씬하게 뻗은 두 다리, 크고 맑아 구슬 같은 눈망울은 인간에게 순결함, 정겨움, 아름다움, 평화로움, 심지어 귀족 같은 고고함마저 느끼게 하지 않는가. 뿐이랴. 뿔은 녹용으로, 가죽은 지갑, 가방, 허리띠 등 일상용품으로, 몸은 식용으로, 마지막 길에서 조차 모든 것을 인간에게 유용하게 바치는 충성스러운 그들. 애틋하고 숭고하여 경건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래선지 수명이 20~30년 밖에 못산다는 사슴을 우리 민화 속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꼽았으며 또 복을 갖다 주는 동물로 전해오니 아름답고 멋진 짐승이 아니겠냐! 평범한 노년을 맞아 평온하게 안주하는 나에게는 부럽고 넘치는 상대인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사슴이 되고 싶은 걸까.
2018년 가을, 아츠코는 불청객 태풍 ‘제비’가 휩쓸고 간 며칠 뒤 이어 몰아친 엄청난 태풍 ‘콩레이’의 사이에 일본 ‘아스카 크루즈‘ 여행을 주선해서 나를 당황케 했다. 굳이 크루즈여행을 택한 것은 관절염으로 보행이 어려운 나를 배려한 때문이었다. 아츠코는 그런 친구이다. 기념품으로 건네준 목각사슴에도 그녀의 속 깊은 우정이 담겨있었다. 제대로 철들지 못했던 23세의 소녀가장이 집도 의지도 없이 맨손으로 많은 동생들과 살아내야 했던 가혹한 나의 옛날도 그녀는 알고 있다.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어머님의 타계에도 가슴 시원이 한 번 울어보지 못한 못난이 나인 것을. 이제 모든 것은 지나갔다. 단지, 혼자 고요히 미래의 시간을 받아드리며 모두를 감싸고 축복하는 존재이고 싶다. 마치 책장 위의 사슴처럼.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며 소리 없이 텅 빈 집안을 지켜주는 수비수. 나의 유일한 말없는 말동무, 서로 눈빛만으로 가슴 뭉클해지며 위로와 격려로 힘이 되는 멋지고 귀한 벗, 사슴아! 몸짓으로 기품과 순수를 보이며, 삶의 끝에는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는 갸륵한 너. 나 또한 한 마리 사슴 되어 다가 올 세상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