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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한국장로교회의 거목 박형룡(6): 보수적 장로교의 분열
장코뱅 추천 2 조회 324 22.06.09 10:08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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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6.09 10:17

    첫댓글 칼 매킨타이어 (위키 백과)

    칼 커티스 매킨타이어 주니어(Carl Curtis McIntire, 1906년 5월 17일 - 2002년 3월 19일)는 칼 매킨타이어(Carl McIntire)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성경장로교회의 창립자이면서 목회자였다. 국제 기독교 교회 연맹(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과 미국 기독교 교회 회의의(American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의장을 오랫동안 했다. 자신을 근본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기독교 방송 설교자였다. 프린스턴 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성경장로교회를 세우고 1937년 훼이스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위키백과)

  • 작성자 22.06.09 10:21

    김의환 (위키 백과)

    김의환(金義煥, John Euiwhan Kim, 혹은 John Edward Kim, 1933년 11월 19일 - 2010년 5월 10일)은 호는 은석(恩石)이며 대한민국의 신학자이자 목사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B.D.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Th.M. 그리고 템플 대학교에서 Ph.D. 학위를 받았다. 미국 LA에서 목회를 한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칼빈대학교와 총신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했다. (위키 백과)

  • 작성자 22.06.09 10:26

    칼 헨리 (위키 백과)

    칼 헨리는 1913년 뉴욕 시 맨해튼에서 독일 이민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친은 로마 가톨릭 신자이고, 부친은 루터교회 신자였다. 성공회(Episcopal Church)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192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1932년에는 《스미스타운 스타》편집장이 되었다. 밀드레드 크리스티 부인과의 만남으로 회심했다. 1933년 휘튼 대학교에서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하였고, 1938년 시카고의 북침례교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침례교 목사가 되었다. 1947년 복음주의 신학교인 풀러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49년 Ph.D 학위를 받았다. 1956년부터 1969년까지 크리스처니티 투데이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기독교인의 사회참여의 근거를 성서의 예언자 전통과 복음주의 신학에서 찾은《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1947년 작.2009년 IVP에서 박세혁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함.), << Aspects of Christian Social Ethics >> 등이 있다. (위키 백과)

  • 작성자 22.06.09 11:42

    "WCC 가입 찬성 측과 반대 측의 갈등으로 통합과 합동은 분열했다. 이 때 박형룡 박사는 일찍부터 WCC 운동의 실체를 알고 이에 대한 비판을 가해, 교단 목회자들이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왔다"

    [출처]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2849#share

  • 22.06.09 11:49

    본문을 잘 보았어요. 통합과 합동의 분열은1959년이고 1979년은 합동 내부에서 또 분열한 것으로 보면 되지요?

  • 작성자 22.06.09 11:55

    네, 잘 보셨습니다. 1950년대의 굵직한 분열은 본문에 도표를 삽입해 넣었습니다.

  • 22.06.09 13:57

    같은 교단, 교회, 신학교,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신학사상이나 지식, 성경해석, 인식이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큰 분란이 일어나지 않는데, 나와 조금 다르다고 그것을 문제 삼으면 이혼이나 분열 밖에 없습니다. 보수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전수한 공로는 인정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분열을 조장하는 당사자가 된 것은 흠이 되겠죠. 신복음주의라고 해봤자 그다지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이단이라고 규정한 것은 너무 편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서 보면, 역사가 흐른 뒤에 보면 더 이해되고 명확해지는 일로서 분열이 능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일이 부지기수인 것 같습니다.
    역사성 있는 좋은 글 잘 봤어요.

  • 작성자 22.06.09 14:16

    박형룡 목사의 생각은 자유주의가 창궐을 하기 전에 미리 쐐기를 박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더 강경하게 나아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어쨋든 과 못지 않게 그의 공로도 잘 조명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22.06.09 15:56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에 대해서 이 시리즈를 통해 학습을 잘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 작성자 22.06.09 19:05

    공감 감사해요.

    박형룡을 보면 한국교회사와 장로교회사를 함께 알 수 있습니다.

  • 22.06.09 20:57

    (1)~(6)을 보니 한국교회의 역사가 대강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독서감상문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 22.06.10 23:49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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