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이 돈이지, 목적이 돈이 아니다.
1남3녀의 막내로 욕심이 많았고, 언니오빠들과 달리 애교도 많고 공부도 시킨데로 잘 따라하여 부모님께 사랑도 많이 받았다.
불만이라면 작은언니와 많이 싸워서 맞기도 많이 맞고 당하기도 많이 당하고 늘 부모님께 고자질하면서 언니를 피하고 다녔던것같다. 우리가족은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선물,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물놀이, 봄가을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모내기 밥, 자전거 타기, 가을수확철은 엄마찾아 길거리 게장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야생에서 즐거운시간을 가지고 유년시절을 보낸것같다.
아빠가 하루오시고 하루 안오시는 날이면 우리는 자유 그 자체였다
엄마도 아빠가 안오시는 날은 그리 행복해보일수없다. 마을친구들과 꼬막잡이, 바지락잡이, 여러가지 동네에서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사셨다. 우린 아빠가 쉬는 날은 아빠눈치보느라 이리피하고 저리피하고, 엄마또한 까칠한 아빠 비위맞추시는라 반찬준비에 여념이 없으셨다. 우리아빠는 30년 직생으로 고달퍼보이셨다. 그외 우리들은 꼼지락꼼지락 자유를 만끽햇다.
넉넉하진 않지만 평범한 공무원생활은 우리가족에게 불편함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돈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 10만원 주면 10만원의 범위에서 한달을 살았고, 5만원주면 5만원의 범위에서 살아갔다.
지금도 그게 습관이 되어 돈의 중요함을 잘 모른다. 더하여 직생을 직접해보니 매월 들어오는 돈의 소중함을 잘 느끼질 못한다.
한달 생활비외엔 별로 쓸데가 없다. 옷사는거, 아이들용돈주는거, 나 사회생활하는거 그거외엔 지출되는 돈이 없었다.
크게 벌려보았던 일이 인셀덤 7백만원 구입, 직생이 너무 힘들어서 사업을 하고싶었다. 그래서 한번 투자해보고 사업을 시작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우리가족외엔 없었다. 그것도 강매하여 큰언니네와 작은언니네에게 팔앗다. 그 이후엔 팔수잇는 사람이 없었다. 역시 나는 직생외엔 할것이 없구나를 생각했다.
나는 지금하는일에 왼만큼 적응은 되었다. 매일 나갈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고, 매일 들어오는 수입이 있다는것에 감사하고 나를 지지하고 응원헤주는 주변인이 있다는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왜 나는 돈을 벌어야 할까? 나는 왜 가진것보다 더 가지려고 노력하고 더 욕심을 부리는 걸까? 이만하면 되었어라는것을 왜 잘 모를까. 언제까지 올라가고 싶고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어서 이렇게 바둥바둥 노력하면서 살아가는걸까? 가끔씩 하늘나라로 간 조카와 친구동생을 보면서 인생이 헛되다는것을 많이 느낀다. 그걸 생각할때마다 주변에 감동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조금씩 누리고 베푸는 사람이 되려고 생각하지만 행동이 잘 되지않는다. 역시 나보다 잘나거나, 나보다 더 잘나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나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이러다가 정말 중요한걸 놓치고 살아가는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인생은 유한한데 왜 남이 나의가는길에 자꾸만 보이는지 몰겠다. 따라쟁이가 되어선 안되는데, 나의 길이 있는데.
우리 둘째를 보고있으면 나를 참 많이 닮았다, 학교생활도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걸어간다
보고있으면 나를 보고있는것같아 애틋하다. 나처럼 살아갈까봐 걱정도 된다. 잘 자라주엇음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