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도리
누구에게나 추억은 아름답다. 더구나 의미 깊은 사연으로 맺어진 인관관계는 쉽게 지울 수가 없기 때문에 평생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는 어떤 형태이든지 각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사연이 깃들기 마련이다. 그것이 순연이든 악연이든 서로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진솔한 인생의 맛을 느끼게 된다.
어제 부고를 접하고 서둘러 바로 문상을 하러 갔다. 35년 전에 처음으로 과장님으로 모신 옛 상사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오가는 길에 수많은 사연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멘토」로서 평생의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 너무 아쉽고 그리웠다.
그러니까 전방에서 대대장을 마치고 처음으로 정책부서의 실무자로 보직을 받은 곳이 「육군본부 정책기획실」이었다. 전임자가 진급을 하면서 그의 추천을 받아 보직을 받게 된 것이다. 연락을 받고 사무실에 들렀다가 처음으로 과장님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별다른 언질 없이 잘 근무하라는 정도의 말 뿐이었다. 첫 인상이 매우 근엄하고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신고를 마치고 간단한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바로 과제를 부여받았다. 「작전계획 5027」을 숙독하고 한 페이지의 요약문으로 보고를 하라는 지시였다. 소문을 들으니 과장님은 여간 깐깐한 분이 아니라고 하였다. 머리도 비상하고 문서 작성 능력이 탁월하여 상급자의 인정을 받고 있는 분이라고 하였다. 당시 갑종 출신으로서 「정책실」의 중요 과장으로 보직을 받은 것 자체가 상당히 의례적이라고 하였다. 사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어지간한 육사 출신과 업무 수행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분이었다. 더구나 월남전에도 참전한 실전 경험이 풍부하였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 민감한 정책 문제를 놓고 다른 부서의 과장들과 토의를 하면서도 좌중을 주도해가는 뚝심과 실력이 탁월한 분 이었다.
연말에 장군 진급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자타가 인정을 했는데 막상 명단에서 빠지고 말았다. 정작 상급자는 군단장과 사단장으로 진급되면서 고생한 과장을 위로한다고 해외출장을 가도록 하였다. 당시의 해외여행은 특전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이에 졸지에 내가 동행 지시를 받아 단 기간에 출장 조치를 하느라 생고생을 하였다. 당시에는 주재국 무관의 동의서를 받는 절차가 필요했는데 모두 연말이 다가옴에 따라 마땅히 해당국의 관련 인사와의 면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해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여하튼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해외출장을 떠났다. 프랑스와 독일과 영국 등을 돌아보면서 무관을 통해 여러 군 관련인사를 만나고 시설을 둘러보았다. 공식 일정은 무관을 통하고, 개인적인 일정은 당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의 안내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지인들과 연결이 되었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파리」의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친구는 관광과 식당을 안내 하였다. 「본」에서는 대사관에 근무하던 동기생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더구나 그의 아파트에 초대를 받아 새로 담근 김치로 식사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런던」에서는 유학 중이던 선배의 밀착 안내를 3일간 받았다.
별다른 실수 없이 일정이 진행되니 과장님이 크게 만족을 하셨다. 더구나 그 와중에도 계획에도 없던 「이탈리아」를 찾아 「로마」와 「폼페이」의 유적을 3일 간 구경을 하였다. 「콜로세움」에서 전문 사기단에 속아 휴대한 007 가방을 잃어버리고 얼이 빠진 상태에서 연이어 소매치기의 급습을 받고 위기를 모면한 추억도 생생하다. 말끔한 귀국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서로 간에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
새 해가 되면서 인접 과장으로 보직을 바꾼 과장님이 나와 계속 근무를 희망하여 국방부에서 주관하는 군사전략위원회의 TF에서 일을 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과의 업무와 병행하면서 다양한 업무를 배우게 되었다. 결국 과장님이 장군으로 진급을 하고 나도 육사의 대대장으로 전직을 하면서 그 이후에는 가끔 안부 인사를 나누며 지냈다. 최근에 한 번 인사를 드려야지 하면서 실행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영전에 때늦은 인사를 올리게 된 것이다. 사모님을 뵙고 생전에 유럽 여행을 하던 그 시절을 반추하신 사연을 들으면서 절로 안타까운 고개를 숙였다. 최근에 노환과 치매 증세로 고생하셨다고 하였다. 아들이 의사로 지낸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시절에 나에게 많은 은전을 베풀어주신 분들이 하나 둘 타계를 하셨다. 전방에서 대대장을 하던 시절에 만난 사단장님과 임관 이후 여러 차례 모셨던 평생의 은인들도 모두 떠나셨다. 그 때마다 조문을 하면서도 진즉 살아생전에 제대로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사람다운 역할을 제대로 못한 반성의 회한이 컸는데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던 사랑과 따뜻한 정을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식이나 동생의 일처럼 발 벗고서 도움을 주시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남은 분이나마 자주 사람다운 도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소위 정책부서에서 근무하면서 과장님의 많은 지도를 받았다. 우선 관련 사실에 대한 확실한 내용의 확인이다. 막연한 추측이나 개인적인 의견 개진으로 보고서가 작성되면 곤란하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진실과 명확한 사실이어야 한다. 더구나 관련 사실을 증명하는 부수적인 통계 자료나 수치의 제시도 오류가 있어서는 보고서의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두 번째는 새롭고 창의적인 정책개발의 내용이 적시에 제시되어야 한다. 진부한 내용의 반복이나 이미 활용 후 폐기된 내용이 무늬만 바뀌어 제시되면 안 된다. 자칫 과거의 자료를 교묘하게 세탁하여 활용하는 것은 상급자를 우롱하는 짓이다. 차라리 자신이 없으면 솔직하게 말하고 제언을 받아 수정을 하는 길이 첩경이다.
세 번째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타자를 지원하는 여 군무원이거나 여군이 읽어서 무슨 말인가를 이해하면 합격이라고 강조하셨다. 사실 열심히 작성은 해 놓고 그 표현에 대한 설명의 부족으로 난감했던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하였다.
네 번째는 사람은 잘 교육하여 활용하라는 내용으로 모르면 잘 가르쳐 주어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 상급자의 임무라고 하였다. 따라서 아무개 밑에서 근무했다고 하면 어느 누구에게서라도 인정을 받는 부하 직원으로 양성하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출신을 구별하지 않고 능력에 따른 기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이 분은 한문 실력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사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정당당한 성품으로 외모와 주변 정리도 무척 깔끔한 분이었다. 논리가 질서정연하여 토론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도 대단하였다. 일단 신뢰하면 전권을 부여하면서도 스스로 책임을 지는 관용의 자세는 모범이 되었다.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성과도 좋았다. 특히, 부하 직원에 대해 따뜻하고 친절하신 사모님의 역할도 중요함을 인식하였다. 본인은 훌륭하면서도 부인의 불필요한 내조로 곤혹을 치루는 일도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런 내용은 시종일관하게 교훈으로 자리 잡았다. 가능한 이런 태도를 견지하고자 노력했고, 특히 아랫사람에 대한 신뢰와 격려는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좌우됨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허약한 인간이 운명론에 치우치는 이유인 듯하다.
나아가 평소 생활 습관에도 적용하다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정도에서 벗어난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제는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털털하게 사는 것이 좋은 덕목이라고 조언을 듣는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몸에 익숙하다보니 진실을 벗어난 주장은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통섭(通涉)의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통섭이란 먹물이 한지에서 ‘스미고, 번지는’ 것처럼 사물에 널리 통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언젠가는 서로를 적시고 서로에게 물들며 조화를 이뤄내는 진정한 화합의 시대가 오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별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월은 가도 훈훈한 사람냄새는 남는다. 따라서 남은 기간이나마 좋은 인연으로 지냈던 다양한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비록 자주 만날 수는 없을지라도 안부 전화라도 나누며 조그만 소식을 나누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믿는다. 당장이라도 주변을 살펴 소식을 드리는 것이 그나마 마음을 달래주는 길인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곧 바로 실천하는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3. 2. 8. 작성/ 2. 13.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