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불의 심판
안규수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창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밀려온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이 열기는 여전하니 언제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말 덥다. 잠깐만 바깥에 나가도 온몸에 땀이 흐를 정도로 습하고 더운 날들이다. 오후 4시면 나가던 도심 웰빙 도로 산책하러 나갈 수가 없다.
오늘의 이 현상은 기후과학자들이 경고했듯이 지구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지구는 여러 징후를 보여주었다. 인간이 모른 척 외면했을 뿐이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위에 ‘적응된’ 이탈리아 사람들 역시 몇 주 동안 40도가 넘는 여름은 처음이라고 한다. 25도만 넘어도 온 국민이 환호하던 과거 독일의 여름. 이제 매년 35도 넘는 여름을 경험하지만, 여전히 에어컨 설치는 거부하고 있다. 더위에 지친 시뻘건 얼굴로 “에어컨은 더운 나라에서만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는 독일 사람들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과거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하지만 날씨만큼은 정말 그런 듯하다. 과학적 기후 측정 이후 작년 여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고, 올여름은 이미 작년 여름보다 더 덥다. 아마 내년 여름은 올여름보다 더 더울 것이기에, 우리는 어쩌면 남은 우리 생애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을 지금, 이 순간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아니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함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과학은 언제나 인류의 최선일 뿐이다. 그 어느 직관, 믿음, 이념, 그리고 인터넷 ‘짤’보다도 그나마 정확한 예측과 설명을 가능하게 하기에 우리는 과학과 기술을 사용해 다리를 짓고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다. 공학 교과서적 전문 지식이 아닌 일반인 인터넷 블로그와 유튜브 동영상을 기반으로 만든 비행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태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궁금해진다. 지난 수년 동안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예측한 과학자들의 경고에 보여준 사회의 반응은 왜 대부분 외면, 무시, 부정 그리고 음모론이었을까?
기후변화가 더 이상 예측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 2023년. 과학과 사실보다 이념과 소문을 더 신뢰하는 인류에게 진정한 미래가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여름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도 앞으로 7년 정도 지속되고 그 이후는 아무도 예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산불이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하와이 마우이섬의 산불로 항구도시 라하이나가 소실되었으며 사망자와 실종자는 1,000명이 넘는다. 스페인 카나리아 군도의 유명한 휴양지인 테네리페섬 산불은 다행히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으나 주민 2만 6,000명 이상이 대피했고, 오로라 관측지로 유명한 캐나다 옐로나이프 역시 95%가 불길 속에 사라졌다고 한다.
산불은 옛날부터 화마火魔라고 불렀을 만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재앙이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대규모 산불들로 인한 대기오염이다. 지난 2021년 유럽과 북미 지역에 일어난 산불로 인한 탄소 배출량이 3억 4,000만 톤이 넘는다고 추산하는데, 우리나라 전체가 6개월 동안 내뿜는 탄소 배출량과 맞먹는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연쇄적인 산불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점이 우리를 암울하게 만든다.
“난 지옥행 고속도로를 타고 있어/ 정지 표시도 없고 속도제한도 없어/ 아무도 이 속도를 늦출 수 없을 거야/ 바퀴처럼 돌리고 돌릴 거야/ 아무도 날 건들지 못할 거야/ 악마여, 난 이미 지불했어/ 난 약속된 땅으로 가는 중이야(I’m on the highway to hell/ No stop signs, speed limit/ Nobody’s gonna slow me down/ Like a wheel, gonna spin it/ Nobody’s gonna mess me around/ Hey Satan, paid my dues/ I’m on my way to the promised land).”
산불만큼이나 뜨겁고 파괴적인 사운드로 7080 시대 헤비메탈의 선봉장으로 떠올랐던 호주의 록밴드 AC/DC는 헤비메탈의 불모지나 진배없던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어둠의 팬들을 보유했었다. 특히 ‘반바지의 악동 록스타’로 불린 밴드의 프런트맨 앵거스 영은 2003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영화 ‘스쿨오브락’ 주인공 잭 블랙의 모티브 캐릭터가 되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성공은 드라마 리메이크와 뮤지컬 제작으로도 이어진 바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도 오로지 직진이라는, 단순하고 반항적인 로커의 위선적인 울림이 지구의 위기를 말하고 있어서 놀랍다.
성경에서 언급되는 가장 큰 심판 두 가지가 있다면 구약에 등장하는 노아의 홍수 즉, '물의 심판'과 신약에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 즉, '불의 심판'이다. 이 두 심판의 공통점은 전 인류에게 행해지는 대 심판이라는 점이다.
노아의 홍수 때 일어났던 '물의 심판'의 핵심은 '나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이 땅에서 코로 기식하는 것들은 다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땅에 속한 옛사람의 호흡이 멈추는 것…, 즉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이다.
최후의 심판 때 다가올 '불의 심판'의 핵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다. 성경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졌지만 타지도 않고 불에 그을린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풀무 속에서 네 사람이 있었는데 나머지 한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물의 심판, 불의 심판이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심판이 닥쳐올 때마다 복음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뿌리내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과 성장의 발판이 된다.
과연 불의 심판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오늘 불타고 있는 지구의 냉혹한 현실을 성경적으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선생님 유익하고 향기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더운 여름도 이제 곧 지나가겠지요
감사합니다.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