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밤 잠을 설쳤다. 흩어진 추억들을 머리가 하얘지도록 긁어모아,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가리느라 자꾸만 아래로 처지는 눈꺼풀에 침을 바르며 인내심이 밑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버텼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는가 하였는데 어느새 희뿌옇게 창문이 밝아온다. 아차 하고 어젯밤 수녀님과의 약속이 머리를 때린다. 서둘렀다. 아침밥을 우유 한 잔으로 때우고, 세수하고 머리 빗고 USB를 챙기고, 수녀님께 드릴 자료들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하였다.
출근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열차 안이 몹시 붐볐다. 한가득 짐을 든 상태이긴 하나 자리가 없으니 서 있을 수밖에. 약 5분쯤 지났을 때 앞 좌석에 앉아있던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를 바라보더니 일어섰다. 목례와 함께. 아마 방학 중이라 외출차 나왔나 보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그 학생의 엄마인듯한 젊은 여성이 학생의 옷깃을 잡았다. 학생이 엄마를 쳐다보니 눈살을 찌푸리며 그냥 앉아있으라고 한다. 학생은 나를 한번 바라보고 또 엄마를 바라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그 학생의 의아해하는 눈빛을 읽었기에 쓴 웃음이 나왔다. 그 학생이 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엄마는 자기 아들이 앞으로 어떤 인성을 갖고 세상을 헤쳐나갈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미를 두지 않고, 우선 내가 편하고 봐야 한다는 극히 이기적이고 부 도덕적인 교육을 현장에서 시키고 있었다. 생각건대, 학생은 사회교육과 가정교육의 틈새에서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수녀님 댁에서 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는 전혀 상반된 광경이 일어났다. 역시 퇴근 시간이라 혼잡했다. 비어있는 좌석이 없길래 의례 그러려니 하고 손잡이에 의지한 채 어쩔 수 없이 좌석에 앉은 사람앞에 바싹 붙어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열차가 흔들리면서 몸이 휘청하여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렸다.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던 학생이 떨어진 가방을 주어 들고 나를 바라보며 주춤 그린다. 같이 앉아있던 중년의 여성이 학생에게 자리를 할머니에게 내어주라 이른다. 학생의 엄마였다. 학생은 머리를 극적이며 나의 손을 잡고 좌석에 안친다.
학생과 엄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좌석에 앉았다. 내가 내려야 할 곳에서 다시 한번 더 ‘두 분 모자 덕분에 편히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집으로 오며 생각에 잠겼다. 아이에게 도덕성을 심어주면서 올곧게 키우는 젊은 엄마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자신보다 연약해 보이거나 불편해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로석 옆에 힘겹게 서있는 노인을 밀치고, 열차에서 내리려고 움찔거리는 사람 앞으로 재빨리 다가가 채 일어서기도 전에 엉덩이부터 밀어 넣는 무지막지한 아지매 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뻘 되는 노인들이 서 있어도 핸드폰만 두드리며 고개를 숙이고 앉아 모른 척하는 젊은이들. 그뿐이랴, 보는 사람이 민망하여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될 때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자유국가이다. 그러나 그 자유라는 것도 지나치면 꼴불견이다.
젊은 남녀 한 쌍이 허리를 바짝 끌어안고,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고 옷섶을 만지작만지작하며,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입술과 입술의 간격이 서서히 좁혀진다. 아! 이 무슨 사랑놀이인가. 혹 배우 지망생 들인가.? 그 들을 바라보는 나이 든 승객들의 눈길은 곱지가 않다. 반면 젊은 학생들은 키드득거린다.
이런 것을, 문화의 차이? 아님, 세대의 차이?
00역입니다. 그소리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한다. 문이 열리자 서둘러 무대에서 퇴장한다.
한번은 말할 수 없이 민망한 꼴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신여성 세 사람이 앞에 앉았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70대로 보이는 남자분이 혀를 껄껄 차면서 눈을 감아버린다. 한 여성은 가슴이 온통 패인 검정 원피스를 입었는데 앞가슴을 얼마나 많이 팠던지 젖가슴의 ½이 옷 위로 나와 있었다. 검정 옷에 하얀 피부라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내가 못마땅한 눈으로 빤히 보고 있음을 눈치챈 여성이 옷을 위로 끌어올려 보지만 더는 가려지질 않았다. 옷을 어떻게 입던 개인의 자유겠으나, 비키니 수영복 같은 옷을 입고 북적이는 지하철을 왜 이용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옆에 앉은 여성은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꼬고 있으니, 속옷이 다 보였다. 소품으로 허벅지를 좀 가리든지, 다리를 내리던지. 아무튼, 요즘 신여성들의 행동은 이해가 불가하다. 신여성이라 하여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지나 아무리 세태가 바뀌고 서양화되어가는 세상이라도 지나친 건 지나친 것이다.
누군가가 말한다. 안 보면 되지 않겠냐고, 젊은 남자들의 눈길은 자연히 그쪽으로 쏠린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니 나무랄 수 없다. 특히 여름철에는 참으로 황당하여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일이 많다. 한데, 옆눈으로 흘깃거리는 것이 재미있어 많이 노출된 옷을 입고 다닌다는 여성도 있다고 한다.
‘사실일까?’ 그들이 선구자 인가, 내가 고지식한 건가?
지하철 좌석도 열차처럼 한 방향으로 앉게 배치가 되었으면, 일부러라도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나만의 생각>
첫댓글 요즘세상돌아가는꼴이 한심하기짝이없군요. 눈살찌푸려지는일이 너무많아.아예감아버리는게 오래사는비결입니다.
그런가요? 저도 눈을 감을 가 생각 합니다 만....... 지나치기도 합니다.
자주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