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신 Kim Jeong Shin
金鍾信 _ 1970년 5월 17일 전라남도 함평 출생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레슬링 은메달
경력
1989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금메달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금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1996년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
학력
함평중학교 졸업
함평농업고등학교 졸업
용인대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김종신은 88년 서울올림픽대회가 끝나고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그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늘 남북대결의 중심에 있었다.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그의 결승전은 남북 간의 대결이었고 1992년 바르셀로나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이겼고 한번은 졌다.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는 북한의 리학선을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북한의 김일에게 패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의 우승은 1966년 장창선의 세계재패 이후 23년 만에 한국 자유형 레슬링의 영광을 재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세계 레슬링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북경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1991년 불가리아 세계대회에서는 3위에 입상했다. 그는 점수를 많이 딸 수 있는 큰 기술을 활용하기 보다는 실점을 잘하지 않는 경제적인 레슬링을 하였다. 특히 국내에는 그에게 도전할 만할 경쟁자도 없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분간 그의 독주체제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그는 카탈루냐 체육대학 체육관에서 벌어진 레슬링 자유형 48kg급의 조 수위 결정전에서 미국의 티모티바니를 만났다. 그는 57초 만에 태클로 1점을 선취하며 주도한 뒤 1분 6초에 다시 옆 굴리기로 2점을 추가하며 3대 0으로 앞서나갔다. 2분경에 패시브로 인해 상대의 옆 굴리기에 성공한 그는 결국 5대 2로 미국의 바니를 가볍게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그는 결승전에서 북한의 김일과 만나 또 다시 남북대결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북한 선수와의 결승전 경기에서 상대의 초반태클에 실점하며 결국 판정패하였다. 여기서 상대선수인 북한의 김일은 92년 바르셀로나와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며 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경기에서 그는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의 맺혀있는 올림픽대회의 금메달은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심권호가 그 맥을 이어갔다. 은퇴 후 그는 체육관을 운영하였으며 2012년에는 국가대표 여자대표 팀을 맡아 후진을 양성하였다. 가장 민감한 시기에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를 호령했던 김종신, 그가 있었기에 심권호가 있을 수 있었고 그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레슬링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자유형 대표선수였고 그의 투지는 남북스포츠교류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였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레슬러로 레슬링을 통해 한국을 알린 최고의 국가대표이다.
현재 국군체육부대 상무레슬링감독을 하고 있으며4개메이져대회 올림픽대회.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모두 메달을 획득였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회득못한 한을 레슬링선수로써 꿈인 그랜드슬렘을 못다한 한을 현재 국군체육부대 감독으로써 군인정신과 상무정신을 더모아‘레슬링선수 후배들에게 한을 대신 가르치고있다..
참고자료
연합뉴스, 1992년 8월 6일.
한겨레, 1992년 8월 8일.
사진출처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