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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회심
웨슬리의 회심의 핵심은 그것이 성령님에 의해서 라는 것이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요16:8)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 분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철저하게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욥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인이 아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인들끼리 살 때에는 누가 죄인인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진리, 의(義)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더럽고
추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오셔서 조명하여 주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죄인인지 알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이 조명하여 주셔서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단지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회개하고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도록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죄로부터 자유케 하여 생명과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죄악의 뿌리로부터 자유케 하며
다시는 정죄함이 없는 자녀로서의 신분을 누리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갈급함이다.
갈급함 목마름은 생명에의 갈구이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인형이 목마를 수 없다.
그럴듯한 가짜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웨슬리의 옥스퍼드의 일들,
미국에서의 일들
그에게 목마름의 진수를 알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닐까?
목마름을 알게 하신다.
그리고 구하게 하신다.
회심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난 이후
그 안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의 목마름은 이미 미국을 다녀온 후
아니 그의 삶의 여정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목마름이 되었다.
사건 속에서
그의 실패 속에서
그에게 들려진 아픔을 그는 딛고 일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 순간에 머물렀다면 그는 대단한 실패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통해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다.
주인을 향한 목마름이 있는가?
내가 일생을 목숨을 걸어도 좋을 그것이 무엇인가?
그는 단순간의 평화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마름은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을 만나는 사건이 바로 올더 스케잇의 회심이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주십니다.
그분은 누가 진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지 가려 주시며
그리스도가 가르치시고 하신 일들을 증거 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것도 아니고 그 분에 대한 것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분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시간적으로도 2,0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공간적으로도 이스라엘과 한국은 먼 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2000년 전에 이스라엘의 한 고을에서 활동한 예수님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이 분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명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진리의 영이 임하시면 가짜와 진짜는 구분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의 아비라고 하는데 그러한 거짓된 사단과
참 하나님을 분별하는 일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단계는 이렇습니다.
성령님은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역동적인 역할을
감당하시고 계십니다.
일일이 다 나열 할 수 없을 정도로 성령님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영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사역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구원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구속하시고
성령님이 보존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from) 나오고
예수님으로 말미암고(through)
성령 안(in)에서 확증됩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성령 안에서 구원이 확증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무시하고 “훼방”할 때에는 이러한 구원의
마지막 확증의 단계가 무시됨으로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2장)
여기에서의 성령 훼방은 성령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구원의 모든 마지막 확증의 단계가 무시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함”을 받은 확증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령님의 사역으로 인하여 우리는 “믿게 됩니다.”
우리는 한 번도 보지 않고 만나지 않았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증거하신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성경에서 확증하는 모든 진리가 진리임을 믿게 됩니다.
이런 믿음의 사건은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는 사역인 것입니다.
예) 웨슬리 설교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농부나 탄광 노동자들에게 한 설교였다.
왜 어려운가?
그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기 때문 아닐까?
웨슬리 설교는 이론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에 어렵다.
열려있는 태도
모라비안 교도들 즉 독일인들의 모임에 간다.
자신을 비판하고 그에게 충고한 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의 열린 마음은 은사에 대해서도
강단 권을 박탈당했을 때 던졌던 찰스 피니의 충고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를 내몬 그의 이야기는 웨슬리에게 순교 이상의 힘든
결정이다. 경쟁자의 시기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수용한다.
예)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
왜 우리를 불의하다고 하시나요?
그러면 왜 이방 민족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하시나요?
하나님은 모든 전체를 주관하신다.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열광주의적 모라비안 교도
무례한 듯 한 미국에서의 질문
찰스 피니의 충고
웨슬리의 규칙적인 생활
그에게서 나타난 탁월함은 독서이다.
“한 책의 사람이 되고자 만권의 책을 읽었다.”
글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글을 읽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읽을 수 있을까?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학습을 통해 즉 훈련을 통해 되어지는 것이다.
예) 비전, 성품, 실력이다.
그의 회심에서 나타나는 아주 중요한 것은 그가 공부하는
특별히 책을 읽는 열정이 있었다.
패더레인 사건 이후 그에게 많은 시련이 왔어도 그가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많은 공부를 통해 신학적인 기초가
되어 있었고 그것을 정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 은사 받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
분별이 없이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한다.
예) 두란노 서원
읽다.(read)
판독하다. 감추어진 것을 파내다.
성령의 사역-①
성경본문:요15:26,27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When the Counselor comes, whom I will send to you from the Father, the Spirit of truth who goes out from the Father, he will testify about me. And you also must testify, for you have been with me from the beginning.
♣ 먼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하여 기록하여 보십시오.
개인에게 역사 하시는 성령의 사역
①
②
③
④
⑤
가정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사역
①
②
③
④
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사역
①
②
③
④
⑤
위에서 여러분이 열거하지 않는 많은 부분이 성령님께서 감당하시고 계십니다. 그 분이 하시는 일은 광범위하며 다양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님을 증거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한 사역과 함께 성령 하나님의 중요한 사역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령님의 오심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며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주십니다. 그분은 누가 진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지 가려 주시며 그리스도가 가르치시고 하신 일들을 증거 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것도 아니고 그 분에 대한 것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분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시간적으로도 2,0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공간적으로도 이스라엘과 한국은 먼 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2000년 전에 이스라엘의 한 고을에서 활동한 예수님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이 분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명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진리의 영이 임하시면 가짜와 진짜는 구분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의 아비라고 하는데 그러한 거짓된 사단과 참 하나님을 분별하는 일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아래 성경말씀을 찾아서 기록하십시오(롬8:15,16)
2. 성령님의 오심은 우리를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은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역동적인 역할을 감당하시고 계십니다. 일일이 다 나열 할 수 없을 정도로 성령님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영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사역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구원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구속하시고 성령님이 보존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from) 나오고 예수님으로 말미암고(through) 성령 안(in)에서 확증됩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성령 안에서 구원이 확증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무시하고 “훼방”할 때에는 이러한 구원의 마지막 확증의 단계가 무시됨으로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2장) 여기에서의 성령 훼방은 성령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구원의 모든 마지막 확증의 단계가 무시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함”을 받은 확증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령님의 사역으로 인하여 우리는 “믿게 됩니다.” 우리는 한번도 보지 않고 만나지 않았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증거하신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성경에서 확증하는 모든 진리가 진리임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건은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는 사역인 것입니다.
3. 성령님이 오심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요14:16). 그래서 고아와 같이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십니다.
구약에서도 성막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바로 성령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불기둥, 구름기둥이 인도하여 준 것처럼 땅 끝까지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오시는 목적가운데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4. 성령님이 오심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요16:8)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 분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철저하게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욥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인이 아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인들끼리 살 때에는 누가 죄인인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진리, 의(義)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더럽고 추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오셔서 조명하여 주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죄인인지 알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이 조명하여 주셔서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단지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회개하고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도록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죄로부터 자유케 하여 생명과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죄악의 뿌리로부터 자유케 하며 다시는 정죄함이 없는 자녀로서의 신분을 누리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5. 성령님이 오심은 우리가 능력을 받고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이 강림하신 후에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았던 제자들이 이제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3,000명이 회개를 하였고 앉은뱅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일어나 걷고 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성령님이 임하셔서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설교를 듣고 5,000명이 회개한 사건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자 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에서 생명을 공급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놀라운 능력을 덧입고 나가서 기적과 이적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성령님과 친근한 관계,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시고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가장 큰 의미로 부딪쳐 오는 것은 어떤 부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