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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야기
요즈음에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마치 죄인인 듯하다.
집에서도 안 끊는다고 성화이고 나가서도 피울 곳이 점점 줄어들고, 술 마시면서도 피울 수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루에 한 갑씩 피우며 아예 끊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집에서 뭐라 하면 “우리 할매 열일곱 시집오실 때 가마에 담뱃대 함께 하여 80년 피우시고 병원한번 가지 않고 구십여섯 사셨고 우리 어매 스물여섯에 홀로되어 시아버지가 몰래 담배를 두고 가셔서 그때부터 팔십여덟 돌아가실 때 까지 피우셨는데” 하고 강변을 해 보지만 피울 때 마다 구박이고 외손자 외손녀가 오기라도 하면 수채 담배를 숨겨버리고 못피우게 하니 더러워서라도 안 피우련마는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는 나도 모르게 손이 가니,
아! 애 달타 이 사람이.
옛날 글을 보니 애연가 중에는 정조대왕이 첫번째로 생각된다.
얼마나 즐겨하였으면 과거 시험문제를 담배를 주제로 출제하였을까.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생명의 위협으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독서로 밤을 세웠고 장성하여 죽을때 까지도 항상 불안과 초조로 일생을 마친 국왕으로 학문으로는 대학자요 경륜으로는 출중한 경세가였다. 따라서 정조에게는 잠 못 이루는 긴긴 밤에 담배가 가장 가까운 벗이 아니였을까?
다음으로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계곡(谿谷) 장유(張維)가 아닐까 생각한다.
두사람의 글과 담배에 관한 기록을 밑에 부친다
장달수
정조대왕이 출제한 과거시험 문제
남령초(南靈草)
신구선(新舊選)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 ○ 병진년(1796)
왕은 말하노라.
여러 가지 식물 중에 사용함에 이롭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만 한 것이 없다. 이 풀은 《본초(本草)》에도 실려 있지 않고 《이아(爾雅)》에도 보이지 않으며, 후세에 나와서 약상자 속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일찍이 논의하여 보니, 맛은 제호(醍醐)를 깔보고 향기는 난지(蘭芷)를 얕보며, 술에 비교하면 관중(管仲)의 실언한다는 잘못은 없고 선왕의 합환(合歡)한다는 취지가 있으며, 차에 비하면 왕몽(王濛)이 억지로 마시게 하는 괴로움은 없고 선가(仙家)에서 즉시 쾌유하는 효과가 있다. 현산(玄山)의 수수[粱]와 부주(不周)의 벼[稻]는 종자는 훌륭하나 이것이 아니면 답답한 마음을 틔우지 못하고, 곤륜(崑崙)의 네가래[蘋]와 구구(具區)의 무우[菁]는 음식으로는 진기하나 이것이 아니면 울적한 기분을 소통시키지 못한다. 동파(東坡) 시에 나오는 삼팽(三彭)의 악도 이것을 기다려 구제(驅除)하는데 비자(榧子)의 약효가 오히려 이것에 비해 미약하고, 의문(醫門)에서 말하는 한담(寒痰)이 응결된 것도 이것으로 융화시키는데 백매(白梅)의 약효도 이보다 못하다. 민생에 이용되는 것으로 덕이 이에 필적할 만하고 공이 이에 짝할 만한 것이 더 있겠느냐.
지금 사람의 지혜는 매번 옛것에 편당이 되어 가짜 옥이나 위조된 보물을 상(商) 나라나 주(周) 나라의 것이라고 하면 겹겹으로 싸서 보배로 여기지 않는 적이 없으면서 유독 이 풀만은 아예 비천하게 보고 매우 하잘것없는 것으로 여기며 더러는 수치로 여기고 가까이하지 않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이 풀이 부정한 풀이란 말이냐? 예가 아닌 물건이란 말이냐? 하후씨(夏后氏)가 일찍이 배척한 것이냐? 향당편(鄕黨篇)의 먹지 않는 음식의 범주에 드는 것이냐? 목면(木綿)은 늦게야 서역(西域)에서 나왔으나 누구나가 모두 그것으로 몸을 감싸며, 수박[西瓜]은 근년에 회흘(回紇)에서 들어왔으나 사람이나 귀신이나 모두 그 즙액을 마신다. 물품이란 진실로 사용에 편리하고 생활에 윤택한지를 따질 뿐이니, 굳이 옛날과 지금,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거론할 필요가 있겠느냐.
나는 어릴 적부터 다른 기호품은 없었으나 오직 책 읽는 것을 좋아하였으니, 연구하고 탐닉하느라 마음과 몸에 피로가 쌓인 지 수십 년에 책 속에서 생긴 병이 마침내 가슴속에 항시 막혀 있어서 혹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즉위를 한 이래로는 책을 읽던 버릇이 일체 정무(政務)로까지 옮겨져서 그 증세가 더욱 심해졌으므로 복용한 빈랑나무 열매와 쥐눈이콩만도 근이나 포대로 계산하여야 할 정도였고,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보았지마는 오직 이 남령초에서만 힘을 얻게 되었다. 화기(火氣)로 한담(寒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장을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안온하게 잘 수 있었다. 정치의 득과 실을 깊이 생각할 때에 뒤엉켜서 요란한 마음을 맑은 거울로 비추어 요령을 잡게 하는 것도 그 힘이며, 갑이냐 을이냐를 교정하여 퇴고(推敲)할 때에 생각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번뇌를 공평하게 저울질하게 하는 것도 그 힘이다. 일찍이 범희문(范希文)의 ‘공적을 논하면 뜰 앞의 명협(蓂莢)에 부끄러울 것 없다[論功不愧階前蓂]’는 시구를 암송하면서 어쩌면 이 남령초를 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또 두자미(杜子美)의 ‘차를 서초(瑞草) 중의 으뜸으로 칭한다[茶稱瑞草魁]’는 시구를 암송하면서 두자미에게 이 남령초(南靈草)를 보게 하였다면 어찌 쉽사리 차를 으뜸으로 여겼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더구나 일원(一元)의 기운이 점점 요박(澆薄)하게 되어 가면서 정영(精英)한 혈기의 순환이 항상 음식물의 조탁(粗濁)함을 이기지 못한 지 오래되었으니, 신분의 귀천과 체질의 강약과 풍토 따위가 일체 담(痰)을 앓게 하는 것도 역시 필연적인 형세이다. 그렇다면 적셔 주고 마르게 하는 공적은 이 풀이 아니라면 어느 것이 으뜸이겠느냐.
대저 천지자연의 마음은 지극히 인자하고 만물의 영장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천지자연은 사람에게 이익을 도모하고 해로움을 제거하는 것을 마치 미치지 못할 듯이 한다. 이 풀이 이러한 시기에 나온 것으로도 충분히 천지자연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군주가 하늘의 도리를 도와서 이루는 정치에 있어서 또한 어찌 몸소 솔선하여 멀고 가까운 곳에 미치게 함으로써 천박하고 고루한 시속의 견해를 변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월령(月令)에 싣고 의방(醫方)에 기록하도록 명하며 우리 강토의 사람들에게 권장하여 그 혜택을 함께하고 그 효과를 넓힘으로써 조금이라도 천지자연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보답하려고 한다. 지금 자대부(子大夫)들에게 친히 책문으로 묻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대부들이 속된 견해에 매이지 말라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자대부들로 인하여 이 풀의 유래에 대하여 들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중국 사람은 남령초라고 부르고, 동방 사람은 남초(南草)라고 부르며, 민인(閩人)은 연엽(煙葉)이라고 부른다. 또한 박물가(博物家)들은 연다(煙茶)라고 하기도 하고 연초(煙草)라고 하기도 하는데, 어느 것으로 정확한 명칭을 삼아야 하겠느냐? 당초에는 이 풀의 성질이 술을 깨게 하고 기분을 안정시킨다고 하여 죽통(竹筒)에 넣고 불을 붙여 연기를 흡입하여 보았는데, 매우 신기한 효험이 있었으나 독이 있을까 염려되어 감히 가벼이 시험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후에 그 효능을 알아낸 자들은 대부분 말하기를 간장을 억제하고 비위(脾胃)를 도우며 마비 증세를 없애고 습담을 제거하니, 사람에게 유익함은 있어도 실제로 독은 없다고 하였다. 점차 세상에 성행하게 되고 심지어는 말 한 필과 남초 일근(一斤)을 바꾸기도 하며, 지금에 와서는 곳곳에 재배하고 사람마다 효험을 보고 있는데, 금지하자는 것이 무슨 말인가. 쓰임에 유용하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말하자면 차나 술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본초(本草)》 중에는 색상이나 취미(臭味)가 오늘날의 이름과 맞지 않는 것이 많이 있는데, 이 풀도 실지로 본초에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니, 이 말은 어떠한가? 그리고 어떤 이는 “당 나라 태종(太宗) 때 흥경지(興慶池) 남쪽의 술을 깨게 하는 풀이라는 것이 이 종류가 아니겠느냐. 중원(中原)에는 예로부터 있어 왔는데 단지 박식한 이를 만나지 못하였을 뿐이다.”라고 하는데, 이 설은 또한 어떠하냐? 자대부들은 들은 것을 다하여 여러 방면으로 인용하고 곡진하게 증명하여 보아라. 내 친히 열람하리라.
[주1]관중(管仲)의 …… 잘못 : 제(齊) 나라의 관중이 환공(桓公)으로부터 술잔을 받고 그 절반을 버리면서 ‘술을 마시면 실언을 하게 되고 나아가서 몸을 버리게 된다’고 말한 고사가 있다. 《管子》
[주2]왕몽(王濛)이 …… 괴로움 : 진(晉) 나라의 사도 왕몽이 차(茶)를 좋아하여 찾아오는 사람마다 차를 마시게 하니, 사람들이 괴롭게 여겨 그를 방문하게 되면 ‘오늘은 수액(水厄)을 당하는 날이다’라고 했다. 《洛陽伽藍記》
[주3]현산(玄山)의 …… 벼 : 현산과 부주(不周)는 좋은 곡식이 생산된다는 전설상의 산 이름이다.
[주4]곤륜(崑崙)의 …… 무우 : 곤륜과 구구(具區)는 좋은 채소가 생산되는 지명으로 보인다.
[주5]동파(東坡) …… 악 : 소동파의 시에 나오는 ‘구양삼팽구(驅攘三彭仇)’니 ‘고사삼팽구(槁死三彭仇)’니 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삼팽이란 도가에서 말하는 이른바 삼시신(三尸神)으로, 늘 사람의 몸속에 있으면서 죄악을 살피고 있다가 경신일(庚申日)이 되면 상제(上帝)에게 아뢴다고 한다. 《宣室志》
[주6]향당편(鄕黨篇)의 …… 범주 :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자는 상한 음식이나 빛깔이 나쁜 음식, 냄새가 나는 음식, 요리가 잘못되었거나 제철이 아닌 음식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주7]흥경지(興慶池) …… 풀 : 흥경지 가에 있었다고 하는 풀이름으로, 술 취한 사람이 향기를 맡으면 술기운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開元天寶遺事 醒醉草》
담배[南靈草] 계곡 장유(張維) 의 시
가느다란 줄기 하나 성긴 꽃 무성한 잎 / 疎花穠葉擢纖莖
신농씨(神農氏) 본초경을 뒤져도 안 나오네 / 不入神農本草經
그 누가 이 담배를 동방에 전했을까 / 誰遣孤根來日域
남만(南蠻)의 선박 따라 푸른 바다 건넜으리 / 却隨蠻舶過滄溟
오지와는 다르지만 종자가 원래 따로 있나 / 五芝雖異元無種
구절처럼 기특하게 향기 물씬 풍기누나 / 九節何奇漫自馨
약효 제대로 낼려면 불기에 바싹 말려야지 / 功用會須煩火候
한 번만 써 보면 신약(神藥)인 줄 당장 알리 / 藥欄眞覺有神靈
[남초의 효능을 칭송함[稱頌南草之效能]]
옛날에 남방 사람들이 빈랑(檳嫏)을 중히 여기며 말하기를,
“술에 취하면 깨게 하고 술이 깨면 취하게 하며, 배고프면 배부르게 하고 배부르면 배고프게 한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빈랑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극찬한 말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 남초(南草)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배고플 땐 배부르게 하고 배부를 땐 배고프게 하며, 추울 땐 따뜻하게 하고 더울 땐 서늘하게 한다.”
라고 하는 등 남초를 극찬하는 말이 빈랑의 경우와 아주 흡사하니, 이 또한 한 번 웃을 만한 일이다.
[남초가 장차 중국의 차처럼 세상에 쓰일 것이다[南草之用於世殆將如中國之茶]]
내 생각에는, 앞으로 남초(南草)가 흡사 중국의 차[茶]처럼 세상에 널리 쓰여질 것이라고 여겨진다.
차는 위진(魏晉) 시대에 처음 세상에 드러나 당송(唐宋) 시대에 성행(盛行)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마침내 천하의 생민(生民)들이 날마다 쓰는 필수품이 되어 마치 물이나 곡식처럼 되었으므로, 국가에서 전매(專賣)하여 이익을 거둬들이기에 이르렀다.
지금 남초로 말하면, 세상에 유행된 지 겨우 수십 년밖에 안 되는데도 벌써 이처럼 성행을 하고 있으니, 백 년쯤 지난 뒤에는 그 이익을 두고 차와 각축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남초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世之攻南草者]] 계곡 장유(張維)
세상에서 남초(南草)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은, 남초가 만이(蠻夷)에서 나왔고 《본초(本草)》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구실을 삼고 있으나, 이것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주장이 아니라고 하겠다.
《본초》는 송(宋) 나라 휘종(徽宗) 때 편찬되었는데, 신농(神農)이 직접 맛본 것이래야 겨우 십 분의 일이나 될까 말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가 뒤에 나온 것들로서, 당송(唐宋) 이후에 남만(南蠻)에서 선박을 통해 들어 온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령 파고지(破故紙) 같은 것은 약재 중에서도 긴요한 품목에 속하는데, 이것도 남만의 배로 들어온 것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파고지라는 이름 역시 그 속에 아무 뜻도 없는 것이 담박괴(淡泊塊)의 경우와 아주 똑같다.
대저 남초가 사람에게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으나, 만약 그런 효능이 있다고 한다면 어디에서 왔는지를 굳이 따져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겠다.
[남령초 흡연(南靈草吸煙)] 장유(張維)
남령초(南靈草 담배)를 흡연(吸煙)하는 법은 본래 일본(日本)에서 나왔다.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담박괴(淡泊塊)라고 하면서, 이 풀의 원산지가 남양(南洋)의 제국(諸國)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년 전에 처음으로 이 물건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위로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 가마꾼과 초동 목수(樵童牧豎)에 이르기까지 피우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이다.
이 풀은 《본초(本草)》 등 여러 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성질이나 효능(效能)을 알 수는 없으나, 다만 맛을 보니 매우면서도 약간 독기(毒氣)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을 복용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저 태워서 연기를 들이마시곤 하는데, 많이 들이마시다 보면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나 오래도록 피운 사람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리하여 지금 세상에서 피우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백 사람이나 천 사람 중에 겨우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
지난번에 절강성(浙江省) 자계(慈溪) 출신인 중국 사람 주좌(朱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중국에서는 남초(南草)를 연주(煙酒)라고도 하고 연다(煙茶)라고도 한다. 백 년 전에 벌써 민중(閩中)에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세상에 두루 퍼져 있으며, 적비(赤鼻)를 치료하는 데 가장 효력을 발휘한다.”
하였다. 이에 내가 묻기를,
“이 물건은 성질이 건조하고 열이 있어서 필시 폐(肺)를 상하게 할 것인데, 어떻게 코의 병을 치료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니, 주좌가 대답하기를,
“응체(凝滯)된 기운을 흩뜨려서 풀어 주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그 말도 일리(一理)가 있다고 여겨진다.
[주1]담박괴(淡泊塊) : tobacco의 음역(音譯)으로, 혹 담파고(淡巴菰), 담파고(淡婆姑)라고도 한다.
[주2]본초(本草) : 유명한 약서(藥書) 이름이다. 예로부터 본초라는 이름을 붙인 약서(藥書)들이 많이 나왔는데, 명(明) 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이를 52권으로 종합 정리하여, 1892종의 약물(藥物)과 1만 1천여 수(首)의 약방(藥方)을 수록한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저술하였다.
[주3]적비(赤鼻) : 주독(酒毒)이 올라 코가 빨갛게 부어 오르며 혹처럼 울퉁불퉁해지는 것으로, 주사비(酒渣鼻) 혹은 주조비(酒糟鼻)라고도 한다.
남령초가(南靈草歌) 택당(澤堂) 이식(李植)
남령초는 본래 이름이 담박귀(淡珀鬼)였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 이름으로 바뀌었다.
남령초는 바다 동쪽 섬에서 나왔나니 / 南靈草出自海東洲
왜인의 전설로는 정녀의 혼백이 변했다고 / 倭人傳是貞女魄
고침이 병든 것을 의원(醫員)도 손 못 대자 / 藁砧病時醫不得
대신 죽어 천금의 약초가 되겠다며 / 以殉願化千金藥
초경의 나무가 되려고 하지 않고 / 不作焦卿木
우희의 푸나무에 몸을 의탁했다나 / 且托虞姬草
잎은 가을 숭채 같고 맛은 황벽(黃檗) 속껍질 / 葉如秋菘味似檗
구릉에 줄지어 난 그 색깔도 진귀한데 / 羅生冢上色可寶
이를 맛본 열 명 중에 팔구 명은 어찔어찔 / 食者十人八九眩
명의(名醫)가 한 번 보곤 약제(藥劑)로 활용하였나니 / 良醫一見加劑調
막걸리에 담갔다가 아랫목에서 띄운 다음 / 沃以醇醪蒸以奧
뜨겁게 뜸으로 쓰지 않고 연기를 쏘이게 하였다오 / 不以湯熨以熏燒
놋쇠로 대롱 만들고는 코끼리 코처럼 빨아들여 / 黃銅作管象鼻吸
속으로 실연기 들어가면 도가니처럼 후끈후끈 / 煙縷入內如烘窯
체증(滯症)도 뚫어 주고 살살 아픈 배도 거뜬 / 驅除痞塞消濕墊
순식간에 뱃속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나요 / 能使斯須腸胃帖
남쪽 지방 사람들은 차 대신 이를 애용하여 / 南人用之代茶茗
차 한 되로 담배 잎 하나 맞바꾼다 하는데 / 率以一升估一葉
이를 피우면 원기(元氣)가 자기도 모르게 시들시들 / 不知元精暗凋敝
어른은 바짝 말라 가고 아이는 죽는 걸 모름이라 / 壯者以悴稚者斃
일찍이 들으니 왜인의 정치도 이와 같아 / 嘗聞倭人政化亦如此
자애로운 은혜 대신 오직 맵고 혹독할 뿐 / 專秉酷烈少慈惠
한때의 기분 푸는 것을 능사로 여기면서 / 一時快意爲長雄
가병이라 전투의 공을 끝내 잊지 못한 결과 / 佳兵不忘戰鬪功
쌓인 시체 흐르는 피 대대로 언제나 그러하여 / 伏屍流血世常然
백성들만 죽을 고생 반쯤은 사충이 되었다네 / 民生盻盻半沙蟲
기이함 좇는 사람 마음 고쳐지기 쉽지 않아 / 人情好異久難革
말세의 풍속 넘실대니 정말 안타까울 따름 / 末俗滔滔良可惜
한 해를 넘기면서 멀리 타향에 있는 동안 / 我來經歲作遠客
담배 피워 자초한 재앙 가는 곳마다 보았나니 / 處處逢人做火厄
선사도 이르지 않았던가 미달불감상이라고 / 先師未達不敢嘗
스스로 경계하는 이 시 역시 괴벽해서가 아니로세 / 作詩自箴非乖僻
[주1]고침(藁砧) : 고악부(古樂府)에서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은어(隱語)로 쓴 말이다.
[주2]초경(焦卿) : 후한(後漢)의 초중경(焦仲卿)을 가리킨다. 처 유씨(劉氏)와 금슬이 매우 좋게 지내다가, 시어미의 학대에 못 이겨 처가 집을 나가 물에 빠져 죽자, 그 역시 뜰 앞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는데, 이에 대한 장편의 고시(古詩)가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위초중경처작(爲焦仲卿妻作)’이라는 제목으로 전해 온다.
[주3]우희(虞姬) : 항우(項羽)의 애첩 우 미인(虞美人)을 가리킨다. 항우가 유방(劉邦)에게 패하여 오강(烏江)에서 죽을 때, 우 미인은 전날 밤 자결하였는데, 그 무덤 위에 풀꽃이 피어났다 하여 그 꽃 이름을 우미인초(虞美人草)라고 불렀다 한다. 이를 소재로 지은 송(宋) 나라 증공(曾鞏)의 ‘우미인초(虞美人草)’라는 시가 유명하다.
[주4]가병(佳兵) : 군대를 일으켜 싸우기를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노자(老子)》 31장(章)의 “잘 만든 무기는 불길한 연모이다.[夫佳兵者 不祥之器]”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5]사충(沙蟲) : 전란(戰亂)의 희생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 목왕(周穆王)이 남정(南征)할 때 군사들의 몸이 모두 바뀌어 장교는 원숭이와 학이 되고 사병은 벌레와 모래[沙蟲]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抱朴子 釋滯》
[주6]미달불감상(未達不敢嘗) : 공자(孔子)에게 계강자(季康子)가 약을 보내왔을 때, 공자가 절하고 받으면서 “나는 이 약의 성분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감히 맛보지는 못하겠습니다.[丘未達 不敢嘗]”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실려 있다.
담배[南草] 옥담유고
남국에 풀이 하나 있는데 / 南國有一草
염제도 예전에 맛본 적이 없지 / 炎帝嘗無前
비록 신선의 불사약은 아니지만 / 雖非不死藥
먹으면 풍연을 다스릴 수 있어라 / 服之治風涎
늘 손에 담뱃대를 들고서 / 長時手鵝管
쉼 없이 빨고 연기를 토하네 / 呑吐無休□
골초라고 사람들이 웃지만 / 傍人笑成癖
나는 스스로 시속을 따른다 / 我自能循俗
시속을 따름이 나쁘지 않나니 / 循俗亦不惡
외톨이 행동은 아무 이익이 없지 / 獨行無所益
[주1]염제(炎帝) : 중국 고대의 삼황(三皇) 중 한 사람인 신농씨(神農氏)를 가리킨다. 신농씨가 농사를 가르치고 백초(百草)를 맛보아 약초를 가려냈다고 한다.
[2]풍연(風涎) : 심한 편두통이나 두통에 열을 동반하는 병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조조(曹操)가 이 병을 앓아 화타(華陀)가 “날카로운 도끼로 두골(頭骨)을 쪼개고 뇌수를 꺼내어 풍연(風涎)을 씻어버리면 깨끗이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조조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로 알고 대로하여 화타를 죽였다고 한다.
남초(南草) 성호 이익(李瀷)
우리나라에 담배가 많이 유행된 것은 광해군(光海君) 말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세상에서 전하기로는,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담파국(湛巴國)이란 나라에서 들어온 것인 까닭에 속칭 담배[湛巴]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가 태호 선생(太湖先生)에게, “지금 이 담배란 것이 사람에게 유익한 물건입니까?”고 묻는다. 태호 선생(성호 본인)은, “담배란 가래침이 목구멍에 붙어 뱉아도 나오지 않을 때 유익하고 구역질이 나면서 침이 뒤끓을 때 유익하며,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되고 동작이 나쁠 때 유익하고 가슴이 조이면서 신물이 올라올 때 유익하며, 한겨울에 추위를 막는 데 유익한 것이다.”고 대답했다. 어떤 이는 또, “그러면 담배는 사람에게 유익하기만 하고 해는 없다는 말입니까?”고 묻는다. 태호 선생은, 〈몸에 이롭고 해로움을 따진다면〉 해가 더 심할 것이다. 안으로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 듣고 보는 것까지 해쳐서 머리가 희게 되고 얼굴이 늙게 되며, 이가 일찍 빠지게 되고 살도 따라서 여위게 되니, 사람을 빨리 늙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 담배는 유익한 것보다 해가 더 심하다고 하는 것은 냄새가 나빠서, 재계(齋戒)하여 신명(神明)을 사귈 수 없는 것이 첫째이고, 재물을 없애는 것이 둘째이며, 세상에 일이 많은 것이 진실로 걱정인데, 지금은 상하노소를 막론하고 해가 지고 날이 저물도록 담배 구하기에 급급하여 한시도 쉬지 않으니 이것이 셋째이다. 만약 이런 마음과 힘을 옮겨서 학문을 닦는다면 반드시 대현(大賢)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글에 힘쓴다면 문장도 될 수 있을 것이며, 살림을 돌본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역(周易)》에, ‘상륙(上六)은 오르는 이치에 어두우니, 곧고 바른 데에 한결같이 쉬지 않는 것만이 이롭다.’ 했다.”고 답하였다.
연초(烟草) 한치윤의 해동역사 물산지(物産志) 초류(草類)
○ 강희(康煕) 연간에 고려 사람들이 담배 1만 갑(匣)을 바쳤는데, 상이 이를 거절하면서 “짐은 담배를 피지 않는다.” 하였다. 《서당여집(西堂餘集)》 ○ 우통(尤侗)의 《간재권고(艮齋倦藁)》의 ‘담배 피는 것을 읊다[詠喫煙]’라는 시에, “단지 추위를 몰아 변경 문 밖으로 내보내기에 좋을 뿐인데, 어찌하여 좋은 집 방 안에서 아침저녁으로 물고 있나. 임금이 고려에서 바친 만 갑의 담배를 보고서는, 대궐 안으로 들여 지존 가까이에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네.[只好驅寒出塞門 如何華屋供晨昏 君看萬匣高麗種 未許深宮近至尊]” 하였다. ○ 살펴보건대, 연초(烟草)의 속명은 ‘담배’이다.
살펴보건대, 연초(烟草)는 《이아(爾雅)》와 《본초(本草)》를 상고해 보아도 모두 실려 있지 않으며, 오직 《경악전서(景岳全書)》에서만 비로소 그 성질과 맛에 대해 말하였다. 혹 어연초(菸烟草) -《정운(正韻)》에, “어(菸)의 음은 연(烟)이며, 뜻은 같다.” 하였고, 《광운(廣韻)》에는, “어는 냄새가 나는 풀[臭草]이다.” 하였다.- 라고도 한다. 대개 연초가 중국에서 널리 퍼진 것은 만력(萬曆 1573~1619) 연간부터였으며, 민중(閩中) 지방으로부터 종자가 전래되었다. 왕포(王逋)가 말하기를, -《인암쇄어(蚓庵瑣語)》에 나온다.- “연엽(烟葉)이 민중 지방으로부터 전해졌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한질(寒疾)에 걸렸을 적에 연초가 아니면 치료하지 못한다. 관외(關外)의 사람들이 오면, 비단과 말을 가지고 연초 1근(觔)과 바꾼다. 숭정(崇禎) 계미년(1643, 인조21)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렸는데,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변방에 있는 군사들이 한질에 걸렸을 경우 치료할 수가 없으므로 마침내 금령을 풀었다.” 하였고, 요려(姚旅)는 말하기를, -《노서(露書)》에 나온다.- “여송국(呂宋國)에 풀이 있는데, 이름을 담파고(淡巴菰)라고 하며, 일명 금사훈(金絲薰)이라고 한다. 연기를 대롱[管]을 통하여 목구멍 안으로 들이마시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취하게 한다. 역시 장기(瘴氣)를 물리치며, 갈아서 즙을 내어 머리의 이[蝨]를 죽인다.” 하였고, 왕사진(王士禛)은 말하기를, -《향조필기(香祖筆記)》에 나온다.- “연초는 근래에 장주(漳州) 사람들이 해주(海州)로부터 가지고 왔는데, 보전(莆田)에서도 심어서 여송(呂宋)보다도 더 많게 되었다. 지금은 곳곳에 있으며, 민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였고, 《성경통지(盛京通志)》에는 이르기를, “연초는 겨울철에 추위를 막을 수가 있어서 토착민들이 더욱더 많이 피운다. 무순(撫順) 지방에서 나는 것이 더욱 좋다.” 하였다. -왕숭간(王崇簡)의 전기(箋記)에, “모려(慕盧) 한담(韓菼)이 담배 태우기를 몹시 좋아해서, 한원(翰苑)을 맡고 있을 때에 문인(門人)들에게 명하여 담파고가(淡巴菰歌)를 짓게 하였다.”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담배가 성행한 것에 대해서는, 이성령(李星齡)은 말하기를, -《일월록(日月錄)》에 나온다.- “광해조(光海朝) 임술년(1622, 광해군14)부터 시작되었다.” 하였고, 이수광(李睟光)은 말하기를,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온다.- “또한 남령초(南靈草)라고도 하며, 근세에 들어와서 비로소 왜국(倭國)에서 들어왔는데, 습한 기운을 제거할 수가 있고, 또 술을 깨게 한다. 그러나 가볍게 시험해 보아서는 안 된다.” 하였다. -《왜한도회(倭漢圖會)》에 이르기를, “연초는 근래에 남만(南蠻)으로부터 들어왔는데, 귀천(貴賤)이나 노장(老壯)을 막론하고 모두 다 즐긴다. 중국과 조선 및 아란타(阿蘭陀) 사람들도 모두 다 그러하다. 무릇 담배를 빨아들이는 기구를 연통(煙筒)이라고 이름하는데, 대나무 관(管)을 사용한다. 머리 부분을 안두(雁頭)라 하고 꼬리 부분을 흡구(吸口)라 하는데, 모두 진유(眞鍮)를 써서 만들며, 철(鐵)이나 혹 자기(磁器)를 쓰기도 한다. 담아서 태우는 것을 ‘불을 들인다[火入]’고 한다. 또 하나의 작은 그릇으로 피우고 남은 재를 버리는데, 이를 ‘회취(灰吹)’라고 하며, 향합(香盒) 모양의 물건을 사용하여 연초를 담는다.” 하였다.- 지금은 공경(公卿)이나 사대부(士大夫)로부터 아래로 부녀자나 어린아이, 종들까지도 모두 담배 피우기를 즐긴다. 농가에서는 밭이랑을 잇달아서 모두 다 담배를 심는데, 곡식을 심는 것보다도 이익이 배는 많다. 그러므로 좋은 밭에는 모두 담배를 심는다. 그 가운데서도 평안도와 황해도 두 도에서 나는 것을 서초(西草)라고 하는데, 맛이 더욱 향기롭고 맑아서 값이 몇 배는 비싸다.
담파고(淡婆姑) 이유원의 임하필기
남쪽 오랑캐의 나라에 담파고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담질(痰疾)을 앓다가 남령초(南靈草 담배)를 먹고 병이 낫자 이에 그 여자의 이름을 따서 이 풀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광해군(光海君) 임술년(1622, 광해군14)에 왜국(倭國)으로부터 들어왔는데, 장유(張維)가 이를 흡입하기를 가장 즐겨하였으므로 그의 장인 김상용(金尙容)이 임금에게 건의하여 이 요망한 풀을 금하도록 청하였다. 그 뒤에 심인(瀋人)들이 이를 재배하여 은밀히 팔았다고 한다. 일설에는 원(元)나라 때에 답화선(踏花仙)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그 여자의 무덤 위에 난 풀이 사람을 즐겁게 하였으므로 더러 이것을 답화귀(踏花鬼)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