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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행(四川行) 36
“흐흐흐....희명 공주라 했나?.... 이거야 원, 완전히 굴러 들어온 떡이라는 말이 딱 맞는군,,,으하하하하....”
부르다칸은 허리가 부러져라 웃어댔다. 정보를 듣자마자 달려온 그들이었다.
처음엔 긴가 민가 했었다. 대명 황제의 공주가 납치가 되어 서장에서 사천땅으로 들어왔다는.....게다가 명군도 없이 무림인들만 있다고 했다.
웃기는 일이었다. 허나 사실이었다.
전면전과 기습은 다르다. 그것도 상당히 다르다. 전면전으로 간다면 무림들과의 일전은 피하는 것이 좋다. 최소한 열배 이상의 병력으로 천천히 상대해야 한다. 허나 이것은 전면전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오직 희명공주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같이 온 이천의 기마궁수대면 충
분했다. 빠르고 용맹한 그들이기에.....
그의 말처럼 지금 전장에는 대 혼란이 일고 있었다. 이천의 궁수중 오백
의 숫자만이 기마를 달리며 망루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고 나머지 천오백
여의 궁수들은 계속 소뇌궁을 쏴대고 있었다.
적들은 공격은커녕 수비만하기에 급급해 보였다.
“우하하하하하..”
부르다칸의 웃음소리가 널리 퍼져 갔다.
“이런....헉...”
“땅...”
당패성은 겨우 화살 하나를 막았다. 소뇌궁은 대단했다. 더구나 비까지 오니 그 방향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저쪽에서도 맞기를 바라며 날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저들의 목적은 잘 알고 있었다.
전장은 이미 대 혼란이었다. 언제 서로 검을 맞대었냐 싶게 서로 화살을 쳐내기에 급급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거의 삼분지 일의 숫자가 줄어든 것 같았다. 문득 당패성의 눈에 수많은 기마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전장을 우회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오이랏트의 오백여 병력이었다.
“이..익......”
당패성은 이를 악물었다. 공주는 당문이 구해야 했다. 그도 당세극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어서 가서 구해야 했다. 허나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화살이 자신의 몸에 박힐 것만 같았다.
그의 두발이 땅에 박혀 있는 듯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
결국 그는 포기했다. 목숨이 더 중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었다. 그의 눈가에 하늘 그득 내리는 화살이 눈에 들어왔다. 단검을 들어 휘저으면서도 두 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였다.
“아.....신이시여........”
희명공주의 입에서 체념이 깃든 음성이 흘러 나왔다. 오이랏트의 병사들이 보인 것이었다. 몇 년 전이었나? 문득 그녀의 시비가 한 말이 생각났다.
“공주님, 그거 아세요? 정말 힘든 외적은 오이랏트라네요...다들 말
을 타고 다니면서 빠르고 강력한 전술을 구사한데요.... 명군도 그들과 싸우면 함부로 승부를 점칠 수 없다고 하던데요?....”
그 말이 그녀의 뇌리에서 떠올라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
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를 찾는 듯 했다.
“.........”
없었다. 왠지 모를 감정을 가지고 지켜본 사내....... 쏟아지는 빗줄기에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주위에 없는 듯 비슷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했다.
어느새 오이랏트의 병사들이 망루를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각자 손에 작은 단도를 쥐고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안광이 형형한 그들을 내려다본 공주는 몸을 떨었다.
“제발........ 누구든... 도와주세요......... 부처님..제발...”
쉼 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였다.
그녀가 무정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당연했다. 무정은 망루의 바로 아래에 도착해 있었다. 그의 눈에 기어오르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무정은 눈빛을 굳혔다. 그가 가장 용서 못할 자들을 꼽는다면 두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그의 동료들에게 감히 손을 댄 자들이고, 또 하나는...........오이랏트였다. 그의 몸에서 주최할 수 없는 살기가 뻗어 나가고 있었다. 오르고 있는 병사들이 흠칫하며 멈출 정도로 강한 살기였다.
“저 뒤에.....저 뒤에 웬 놈이 있다. 어서 궁을 쏴라!”
오이랏트의 병사 중 누군가가 외쳤다. 그에 따라 그에게 소뇌궁이 집중되었다.
무정은 눈빛을 굳혔다. 날아오고는 있었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그는 초우를 들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망루를 한 바퀴 빙돌아 화살을 피하면서 앞쪽의 병사들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스파파파파파팡!”
“우아아악.”
“아악”
“끄아아악....”
순식간에 혈무가 피어올랐다. 무정이 닥치는 대로 베면서 전진하고 있었다. 손을 잘린 자, 목을 잘린 자, 혹은 다리나 심지어 허리가 잘려져 나뒹구는 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성이 들렸다.
“저......저자는.......혀....혀.....혈귀....혈귀닷!....”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오이랏트의 병사들이 술렁였다. 그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공포의 표정이 서리기 시작했다.
혈귀...... 얼마나 많은 부족민들이 그의 손에 죽었는지 모른다. 감숙에서 밀린 이유가 바로 저 한 사람 때문이었다. 혈귀라는 이름을 가진 자, 엄청난 근육에 왼손에 철갑주를 통째로 달고 양손에 철갑 수투를 끼고, 칠 척에 이르는 참마도를 애병으로 사용하는 자..... 결정적으로 저 긴 머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검상..........
분명했다. 혈귀였다. 그들의 신형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고 있었다.
“아!.....”
희명공주의 입이 벌려졌다. 그녀의 눈에 한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남자였다. 그 검은 구름을 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쳐들어 온자였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와 주었던 것이었다.
“까아악!”
그녀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오이랏트의 병사들이 어느새 그녀의 발을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공주는 힘껏 발길질을 했다.
“퍽....
찌이이익”
“이...이게...어어어어....우아아악!”
한손으로 공주의 발목을 잡고 있던 오이랏트의 병사는 공주의 발길질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자 눈을 치떴다. 그는 단검을 빼들며 손을 뒤로 젖히다가 어이없게도 공주의 바지자락과 치맛자락이 한꺼번에 길게 찢어지면서 중심을 잃었다. 그의 몸이 십장 아래로 추락했다.
“퍼어억”
무정의 뒤에서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이랏트의 병사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를 일별하고는 위로 고개를 들었다. 십여 명의 병사들이 망루를 올라가고 있었다. 이미 공주 곁에 도달한 듯 했다. 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무 높았다. 단숨에 올라가고 싶은데 힘들었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 그의 눈에 줄줄이 일장간격 즈음으로 올라가고 있는 병사들의 위치가 들어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의 몸에서 사장에 달하는 묵기가 다시 피어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무정이 다시 묵기를 더욱 높여 갈무리 한 것이었다. 바로 아예강을 건널 때 명경이 등평도수라고 불렀던 그 신법을 펼칠 생각이었다.
무정은 눈을 떴다. 어지럽지 않았다. 뜨겁지도 않았다. 몸 이곳저곳에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몸을 숙였다. 다시 몸을 피면서 그의 오른발이 가슴께로 들어 올려 졌다.
“파아아앙”
지면에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거의 팔, 구장 높이로 흙탕물이 튀어 올랐다.
똑똑히 보였다. 그의 눈이 어지럽지 않았다. 첫 번째 병사의 머리가 눈에 정확히 들어왔다. 그의 오른발이 그 병사의 머리를 밟았다.
“꽈아앙”
“크아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병사는 머리가 으깨어져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사가 매달려 있던 망루의 단단한 한자두께의 버팀목도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다. 무정의 왼발이 가슴 어림께로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차 올라갈 생각이었던 무정이었다.
“콰콰콰콰콰콰쾅”
삽시간에 엄청난 폭음이 연속으로 들리면서 어느새 모든 병사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무정은 망루 맨 위의 지붕에 살포시 내려섰다.
“우직...”
힘 조절을 한 것이 성공했는지 박살나지는 않았다.
희명공주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망루가 흔들리고 있었다. 곧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젠 진짜 죽는 것 같았다. 문득 천장에서 ‘우직’하는 소리가 났다. 천장도 무너지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무정은 오른발을 살짝 굴렀다.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원추형으로 둘러쳐진 지붕의 가운데 부분에 발이 빠졌다. 그는 오른 발목을 세웠다. 뽀족한 지붕의 가운데 부분이 발에 걸렸다. 그의 무릎이 숙여지면서 허리도 숙여졌다. 무정의 눈이 굳어졌다. 전체 크기는 반장정도...... 무게는 무겁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해본적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그려지고 있었지만 될지 의문이었다. 잘못하면 공주가 죽을 수도 있었다. 허나 해봐야 될 문제였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원추형의 지붕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였다. 예상대로 된다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도갑에 초우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도갑째로 등에서 풀어 양손에 받쳐 들었다. 묵직한 느낌이 그의 손에 전해 졌다.
“차앗.....”
기합소리와 함께 무정의 손이 머리를 넘어 등 뒷쪽으로 젖혀졌다. 허리를 펴고 이어 무릎도 펴면서 그는 온 힘을 가슴 위쪽으로 끌어 올렸다. 그의 몸이 활처럼 구부러지며 공중으로 도약했다.
“꽈지지직!”
목재가 통째로 뜯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정은 공중제비를 돌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붕이 없어져 있었다. 원추형의 지붕은 무정의 발에 걸려 하늘로 들려지고 있었다. 예상대로 나무못을 박지 않은 것이었다.
지붕은 그 무게로 얹혀지기만 한 것이었다. 그가 땅을 보고 일직선이 되었을 즈음, 그는 지붕에 건 오른 발목을 폈다. 발목이 어디선가 빠지는 느낌과 함께 뜯겨나간 지붕이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제비를 돌며 사뿐히 내려섰다.
“쿵....”
“우지지지직..”
확실히 많이 해보질 않아서 오차가 생겼다. 망루전체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얼굴을 감싸 쥐고 엉덩이를 바닥이 붙인 채 떨고 있는 여인이보였다. 희명공주 일 것이었다.
“ ! ”
문득 무정의 눈에 그녀의 다리가 보였다. 길게 찢어진 그녀의 치맛자락 안으로 하얀 하의가 보였다. 무정은 쓴웃음을 지며 등 뒤로 돌아가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그리고는 그녀의 신형을 잡아 올렸다.
“꺄아아아악...”
엄청난 비명소리였다. 문득 그의 발아래에서 흔들림이 느껴졌다. 시간이 없었다. 그의 발이 망루를 박찼다.
“꽈과과과광....”
엄청난 소리와 함께 망루가 폭삭 무너졌다. 가뜩이나 흔들거리는데다 무정의 발이 마지막에 준 힘이 보태져 거의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면서 넘어지고 있었다.
공중으로 솟구친 무정은 공주를 잡은 오른손을 가슴께로 돌렸다. 공주의 신형이 빙글 돌며 무정과 정면으로 향했다. 그는 왼손으로 공주의 머리를 감아 가슴 윗 쪽으로 당겼다. 무공을 익힌 자신조차 처음엔 어지러운 속도였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의 왼손이 그녀의 머리를, 그의 오른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감아쥐고 있었다. 허리를 잡았다가는 나중에 착지할 때 충격에 부러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정은 눈을 빛내며 내려 설 곳을 찾았다. 적당한 곳이 눈에 보이질 않았다.
공주는 자신의 목을 누르는 힘 있는 손길에 기겁했다.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어쩔 수 없이 적병의 손에 맡겨졌다고 생각했다. 문득 그녀는 두 귀에서 엄청난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조금 떴다.
“........ ! ”
엄청나게 넓은 가슴이었다. 눈 안 가득히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평생을 보냈는지 흉터도 엄청 많았다. 게다가......맨살이었다.
몸 안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몰려왔다. 역한 피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젠 죽는 길 밖에는 없었다. 분명히 야만족일 것이었다.
그녀의 뇌리에서 처연하게 웃고 있는 부황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무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 손은 축 늘어뜨리고 체념한듯했다. 가슴에 그녀의 눈과 닿은 듯한 부분이 따뜻하게 젖어 오는 것으로 보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입이 열렸다.
“정신차리고 내 목을 꼭 잡으시오! 이러다간 우리 둘 다 죽소!”
벽력같은 무정의 외침이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들었다. 무정의 왼손이 약간 힘이 빠졌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긴머리를 뒤로 휘날리며 굳은 얼굴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야만족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얼굴은 부드러워 보일 정도였다. 문득 그녀는 자신을 잡고 있는 손에 철갑을 두른 것을 느꼈다.
“아...당신은.....”
공주는 말을 하다말고 두 팔을 벌려 무정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 사람이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쳐들어온 사내, 그였다. 그의 피 냄새와 땀 냄새가 더 이상 역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흉터는 영광의 상처일 것이었다. 그의 맨살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삽시간에 변하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행여나 떨어질 세라 있는 힘을 다해 목을 끌어안았다.
무정은 난감했다. 엄청난 힘이었다.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겨우 숨 쉴 만한 그였다. 그의 눈에 아미의 사람들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십여 장만 더 가면 맨땅이었다. 그 부근에 커다란 웅
덩이가 하나 보였다. 한 일장정도 됨직한 크기였는데 아무래도 그곳이 좋을 것 같았다. 다른 곳보다도 땅이 무를 것이었다. 그는 눈빛을 빛내며 기식을 조절했다.
“응?”
소신니 간명은 눈빛을 굳혔다. 무언가 엄청난 기세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잡힌 검이 그녀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졌다.
“아니...사저 무슨 일...”
“꽈아아아앙!”
“꺄아아악”
“꺅”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던 그녀의 일행은 엄청난 소리에 비명을 질러댔다.
지축이 흔들리는 진동과 함께 삼장 앞의 웅덩이의 물이 십여 장이 넘게 튀
어 오르고 있었다.
“....아니.....무시주!..”
간명의 입에서 놀람이 깃든 음성이 들렸다. 웅덩이에는 한 사람이 여인을 안고 서 있었다. 그의 무릎께까지 땅속에 박혀 있었는데 그 얼굴은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무정이었다.
무정은 한숨을 쉬었다. 겨우 착지에 성공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무슨 일인지 갑자기 내력이 엉망이 될 뻔한 그였다. 땅에 착지 하자 곧 괜찮아 졌는데 다행이었다.
헌데 너무 무른 땅을 찾은 것 같았다. 무릎까지 박히다니.... 그래서 인지 충격은 없었다. 그는 발을 빼며 소신니 앞으로 걸어갔다.
“아미타불.....”
간명은 대충 저 여인의 신분을 짐작하고 있었다. 연녹색 비단에 손에 서로 연결된 쇠사슬을 두르고 있는 것을 보니 억류되어 있던 희명공주일 것이었다. 신니는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돌아섰다. 무정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공주의 허연 다리가 보였다. 그 찢어진 옷자락 끝에 하얀 속내의 마저 비쳐지고 있었다. 그는 눈썹을 꿈틀대며 손을 놓았다.
" !....."
무정은 어이가 없었다. 공주는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두발을 버둥대며 더욱 무정을 세게 끌어안았다. 아직도 공중인줄 아는 그녀였다.
“공주, 정신 차리시오. 여긴 하늘이 아니오.....”
나직한 소리가 공주의 귀에 울렸다. 윙윙거리는 귓속의 공명음사이로 들려오는 작은 소리였다. 문득 그녀의 발이 땅에 닿았다. 단단한 대지가 발바닥 쪽에 느껴지자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떴다.
땅위였다. 그 망루에서 살아난 것이었다. 그녀는 얼른 무정의 몸에서 떨어졌다. 뒤로 물러나면서 그녀의 눈에 무정의 모습이 한꺼번에 그득 들어 왔다.
" ! "
육척이 넘는 키에 온몸이 근육이었다. 군살이란 하나도 없었다. 머리는 자신보다도 더 긴 것 같았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쪽 얼굴에 검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미타불....공주마마...이것이라도 일단 걸치시지요...”
“..?...!!!”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한 비구니가 승복을 내미는 것을 보았다. 문득 치마 아래에 시원한 감각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인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승복을 낚아채듯 잡아 걸쳤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봤을 것이었다. 문득 그는 여기에 남자들이 없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한사람만 빼고......
“아..정말...!”
고개를 돌리며 감사를 표현하려던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없었다. 그 사내는 없었다.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허허...무시주의 무공이 저리도 높다니....신룡(新龍)이 아니라 거룡(巨龍)이 나타났구나.....아미타불....”
나직한 소신니의 말에 공주의 고개가 돌아갔다. 신룡이니 거룡이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시주라 했다. 그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스님, 저 사내의 이름을 아시나요?”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소신니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띄웠다. 과연 황제가 이뻐할 만 한 용모에 음성을 갖고 있었다.
“헛헛....이젠 아마 사천 땅에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사내의 이름은 무정이라고 합니다...공주마마”
나직한 그녀의 말에 희명은 눈을 빛냈다. 무정...무정.....무정이라고 했다. 행여나 잊을세라 계속 되뇌이는 그녀였다.
여신은 희명공주라는 여자에게 눈길을 떼지 않았다. 왠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성품이 여리고 착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헌데도 그녀는 뭔가 착잡한 기분을 느꼈다. 미려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 미려군에게 전해 달라던 무정의 붉은 머리띠가 만져졌다. 이 끈을 잡고 무정의 머리를 묶어줄 사람은 ....... 미려군
뿐이었다. 다른 누구도 그녀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아미타불......”
조용히 불호만 외는 그녀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