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9. 03.
2012 런던 올림픽 때 축구 3·4위전에서 한국이 일본과 붙었다. 비등할 거란 예상을 깨고 우리가 2대0으로 이겼다. 일본 쪽이 뼈 있는 말을 했다. "군 면제 받으려고 뛰는 한국팀은 당해낼 수 없다." 미국 TV도 툭하면 '병역' 얘기를 꺼냈다. 몸싸움이 벌어지면 "한국팀이 악착같이 덤빈다"고 하고, 경기 뒤엔 "군대 안 가게 된 걸 축하한다"고 비꼬았다. 얼굴 화끈거린다는 교민이 많았다.
▶ 이번 아시안게임도 상황이 비슷했다. 영국 BBC가 한국 축구팀 소식을 낱낱이 보도했는데, "토트넘 손흥민은 군 면제를 위해 참가하고 있다" "손이 결승전 승리로 군 문제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프랑스 팀에서 뛰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서 병역 면제를 받은 박주영 이름까지 이런 기사에 오르내렸다. 영국 소셜미디어엔 소속팀 감독과 팬들 축하가 쏟아졌다. 그런데 '경기 내용'이 아니라 '손흥민 군 면제'가 관심사다. 영 개운치가 않다.
▶ 운동선수 병역 특례는 45년 전 도입됐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금메달을 딴 양정모부터 900명 가까이 대상이 됐다. 1990년 이후로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군 면제 기준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는 '4강'도 해당됐다. 문화예술계도 국내외 유명 콩쿠르 우승자, 무형문화재 전수자 같은 '예술요원'이 대상이다. 국제 바둑대회를 휩쓴 이창호 9단도 그 범주에 들어갔다.
▶ 국력이 미미하던 시절 '국위 선양'이나 '문화 창달' 차원에서 생긴 제도지만 갈수록 논란이 커졌다. 스포츠 그 자체보다, 군 면제 혜택이 더 도드라지면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리와 비슷한 병역 특례 제도를 가진 이란과 축구 16강전이 벌어지자 '병역 면제 더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과거 야구대표팀을 병역미필 선수로 짰다가 '병역 면제 원정대'라고 빈축을 샀고, 어떤 축구 선수는 '4분 뛰고 면제'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우리 선수끼리 개인 종목 금메달을 겨루다 이미 면제 받은 선수가 이기는 바람에 멋쩍어하는 장면도 나왔다.
▶ 땀과 노력으로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체육·예술인들에게 병역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찬성론도 있다. 불공정 시비가 잦은 만큼 이제 접어야 한다는 반대론도 있다. 체육·예술인들의 재능과 기량을 끊어내지 않으면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건 신성한 국방의무가 거추장스러운 일처럼 취급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명진 논설위원 mjlee@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