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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여우야~(자작소설)1
어두운 조명 아래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몇몇 여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거친 말투에 빈정거림만 들어야 했다
벌써 12시가 넘어서인지 바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는 빈잔을 들어 올리며 바텐더에게 술을 부탁 했다.
전작이 있었는지 눈은 풀리고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 마셔...많이 취한 것 같은데...”
“괘...괜..찮습니다...”
반텐더는 망설이다 잔을 채워주고 그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이럴 사람이 아닌데....생각하며 전에 보았을때 보다 많이 야윈 얼굴이 오렌지빛 조명 아래 반사되어 더 슬퍼 보였다.
항상 단정하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풀어헤쳐진 넥타이와 앞섭 단추가 그의 마음만큼이나 어수선해 보였다.
그는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헤집어며 괴로워한다. 그의 기분이라도 아는지 ‘Dru hill 의'We‘re Not making love no more'가 카페를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한 남자가 그를 향해 다가 오고 있다.
“현준아~”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쓸며 옆자리에 앉는 친구를 힐끔 쳐다 보더니 다시 오렌지 빛에 반사 되어 빛나는 술잔을 노려 보았다.
“이제 그만 하자...그만 아파하자...그녀는 가버렸어...넌 그녀의 이름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 잖아..“
“나... 바보 같아...어떻게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수 있지? 그렇게 사랑 했는데.... 왜 떠났는지도 몰라...붙잡을 수도 없었어..그때 조금만 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야 했는데... 나...왜이리 바보 같지?“
현준이 나직히 읊조리는 말끝에 기어코 눈물이 보이자 상민은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난감해 져 버렸다.
아니 당황스럽다고 해야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천하의 강현준이 여자 하나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냉정한 남자인가?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녀석이.. 그녀에게 화가 났다.
한 남자의 인생을 짖이개고 사라지다니..그것도 출장간 사이. 혹시나 사고가 났나 싶어 신고도 해보고. 사람들을 사서 그녀가 갈만한 곳은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광고도 내어 보았지만...이상한 전화만 왔다.
벌써 한달가량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찾기 위해 모든 생활을 포기했다.
회사야..상민이 알아서 해주 겠지만..일주일째 회사도 나오지 않는다.
사원들의 의구심과 소문만 무성하게 남았다.
계속 이런 생활이라면 그는 폐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마치 인생을 놓아 버린 듯했다.
“두달이다...겨우 두달이었어 현준아~ 잊자...모두 잊자...꿈이었다고 생각해...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그게 널 살릴수 있는 방법이야.”
“어떻게 잊어...아직도 내 볼을 만지는 것 같은데...지금도 집에가면 그녀가 날 반겨 줄것만 같은데....이렇게 생생한데...어디에 있는건지...죽지만 마라..죽..지마....”
상민은 현준의 중얼거림에 가슴이 아려왔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집나간 어머니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인가?
여성 기피증이 얼마나 심한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런 녀석이 어느날 내게 여자를 한명 소개 해주었다.
상민은 10년 가까이 현준을 보아왔지만 친구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한 일자로 다문 입으로 독설이나 내 뱉고 화만 낼줄 알았는데 가끔 친구들과 농담을 하기는 하지만...그의 표정은 언제나 포커페이스였다.
그런 친구가 환하게 웃었다.
눈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온 몸으로 사랑에 빠진 티를 있는 데로 내던 친구는 상민에게 형수 될 사람이라며 자랑했다.
너무나 반짝이는 눈을 가진 여자
모든 것이 작고 가냘파 보이는 여자
천상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포근한 미소를 잘 짓는 그녀가 이런 잔인한 짓을 할줄이야.
정말 뭔가 사정이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름도 거짓이었고, 생년월일도 거짓이었다.
이건 계획적이란 생각 밖엔 안든다.
무엇 때문에.....무엇 때문에 그녀는 한 남자를 망가뜨려야 했는지.
풀썩-
현준이 테이블 위로 무너졌다
상민은 바텐더와 함께 차로 그를 옮겼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망가질 참인지...넌 잊어...내가 찾는다...반드시 찾아서 니 앞에 무릎 꿇게 해 줄게..넌 잊어.’
상민은 이를 갈았다.
최 은 란
그녀를 반드시 찾아 주리라 다짐했다.
#1 그녀, 그를 만나다.
[사랑은 너무나 달콤하다....그리고....씁쓸한 맛을 동반한다....마치...초코렛처럼]******현준의 메모
현준은 몇칠째 계속 되는 업무로 지쳐있었다.
“휴~ 이러다. 신상품 나오는 것 보기도 전에 내가 쓰러지겠군.”
상민이 커피를 들고 현준의 방으로 들어서며 투덜거렸다.
“이제 내일만 지나면 한숨 돌릴 수 있잖아.
이번일 마무리 지으면 산이나 같이 가자구“
“그래, 산에 가본지 까마득하다.”
몇칠째 집에도 못 가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그들의 마음은 벌써 산 정상에 올라 와있는 기분이었다.
“너 먼저 집에 들어가라. 난 이거 마저 보고 갈게.”
“그럴까? 와~ 얼마만에 가보는 집인지. 우리 어머니 무지 기뻐하시겠다. 먼저 간다. 너두 빨리 하고 가.”
“그래.”
현준은 상민이 사라진 문을 잠시 보다가 다시 서류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시나 되었을까?
가방에 서류를 챙기며 시계를 보니 9시24분.
휴~
현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갔는지 주차장은 조용했다.
그가 운전석 쪽으로 움직이자 그 옆에 웬 여자 웅크리고 있었다.
지저분한 긴 머리가 바닥까지 늘어져 있고 10월이 되었는데...반팔차림의 여자 였다.
“비켜 주시겠습니까?”
현준의 목소리에 흠짓 놀라며 여자가 일어섰다.
조그마한 꼬마 애 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일어서자 성인 여자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반팔 소매의 긴 원피스위로 그녀의 가슴이 봉긋 솟아 있었기에... 머리가 심하게 헝클어져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었다.
‘노숙잔가?’
경비가 보면 쫓아 낼 것이다.
그녀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바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비켜 주시겠습니까?”
그제서야 그녀는 비적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저...”
현준이 왜그랬는지 모른다.
그냥 조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검은 가죽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받을 생각도 않고 다시 바닥만 쳐다보며 걸었다.
“이봐요...받아가요.”
현준이 큰소리로 말하자, 그녀가 휙 돌아섰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이 그를 노려 보는듯했다.
그리곤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다리를 절면서.
현준은 신경질 적으로 차문을 열고 세게 닫아 버렸다.
죽던 말던 내가 무슨 상관이야.
꼴에 자존심은 있다 이거지?
차를 타고 출구 쪽으로 가며 백밀러로 그녀를 보았다.
바들거리며 몇걸음 걷던 그녀가 없어져 버렸다.
현준은 놀라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쓰러져 있었다.
“젠장! 이봐요..이봐요..정신차려요.”
그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몸은 가냘팠다.
마치 그가 치한이라도 된 느낌을 가질만큼..그녀가 부서질 것 같다.
그는 종잇장 같은 그녀의 무게를 느끼며 안고 차로 옮겼다.
“영양실조.그리고, 발목을 삐었더군. 발목은금방 낳을겁니다. 영양 실조는 퇴원후에도 지속
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근데 환자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젊은 의사는 현준에게 그렇게 묻고는 한 손으로 펜을 돌렸다.
“모르는 여자입니다만...주차장에 쓰러져 있어서 데려 왔습니다.”
“아...그렇습니까? 그럼 환자의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야 겠군요.”
병원비를 걱정하고 있군.
현준은 약간 불쾌감을 느꼈다.
“병원비는 제가 지불하지요...환자가 깨어나면 연락 주십시오.”
현준의 말에 눈에 띄게 젊은 의사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
별로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줄기 아래서 현준은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는 그녀의 모습을 털어내려 했다.
너무나 가냘픈 몸이 자꾸 신경 쓰인다.
퇴원하면 음식을 잔뜩 먹여 통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삐쭉이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던 작고 도톰한 입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낼 병원비만 내주면 다시 볼일도 없는데...”
사방으로 물을 튀며 세차게 머릴 흔들었다.
‘쉬어야 한다.
낼 신제품 발표회도 가져야하고 광고 해줄 곳도 알아봐야한다.
상민과 어떻게 만든 회사인가.
회사일 만으로도 머릿속이 터져 나갈 것 같은데...그런 여자 따위를 위해 내줄 머리는
존재해서는 안된다.
내가 누군가.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는 인간. 강현준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리 신경 쓰이지?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시작했다.
밤새 그녀가 꿈에 나타 난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아침 향기가 그리 상큼 하지않은 것은 확실했지만.
머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언제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스쳐가지만 그의 머릿속은 쑥대밭이었다.
삐리링~삐리링~
휴대폰을 가지고 왔던가?
그는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 넣으며 정신없이 챙겨운 것이 지갑이 아니라
휴대폰이라는 것에 기가 찼다.
“네 강현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여긴 K병원입니다. 어제 여자 환자분 보호자 되시죠? 조금 전에 깨어났는데
아무말을 안합니다. 지금 와 주실수 있습니까?”
“그러죠.”
7시20분.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
현준은 상민에게 전화해 조금 늦겠다는 말만 하고 끝어 버렸다.
조금만 더 길게 얘기 했다가는 녀석이 뭐라고 말할지 알기 때문이다.
회사 갈 준비를 마치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은 비어 있었다.
카운터의 간호사가 그를 알아보고 얘기 했다.
“환자는 지금 의사 선생님과 상담 중이입니다.”
그는 병실로 들어가 기다렸다.
음료수라도 사올걸 그랬나?
그가 매점으로 가려고 일어서자, 절룩거리며 그녀가 들어 왔다.
뒤에 의사가 뒤따라 오고 있었다.
파리한 모습이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그녀.
환자복을 입어서인지 더 환자 같다.
“이제 퇴원 해도 됩니까?”
“그게...환자가 말을 안합니다. 환자의 협조가 없어요. 정신장애인지도 모르니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현준의 눈이 그녀를 본다.
그녀는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퇴원 시켜주세요.”
그는 그녀에게 “저...여기...제 형님이 계신 곳인데...정신과 담당입니다.”
그가 현준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별로 받고 싶지 않다.
“아닙니다....제가 잘 아는 의사가 있어요...그럼.”
옷을 건네주기 위해 한켠에 있는 옷장문을 열었다.
꽃무늬 프린트가 있는 반팔 원피스가 보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몇분 후 그녀가 병실을 나오자 현준은 그녀를 차에 태웠다.
“집이 어디야?”
그는 짜증이 났다.
별써 회의 시간에 2분이나 늦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회사 창립이래 그가 회사를 늦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구나, 오늘 중요한 회의까지 있는데...이런 알지도 못하는 여자 때문에 시간을 뺏기다니...
그녀는 말없이 차창밖만 쳐다본다.
“집이 어디냐구? 집 몰라?”
젠장 더럽게 말려든 느낌이다.
그가 화를 내고 있는데도 그녀는 대꾸가 없었다.
심지어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그럼 정신 병원에나 가봐! 병원 앞에 세워주지.”
그의 협박에 그제서야 그녀가 그를 쳐다본다.
“귀머거리는 아니군....그럼 이제 말을 해볼까?”
“집....없어요....”
그녀의 모습 만큼이나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다.
“뭐라구? 집이 없어? 그럼 이제까지 어디서 잔거야?”
“여기 저기....전엔 식당에서 먹고 잤는데....주인 아저씨가...흑~”
저렇게 조그마한 아이를 어떻게 했다구?
미친새끼.....변태....그는 그 주인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도망친거야?”
“아뇨, 주인 아주머니께서 마침 그때 나타나서 날 내 보내셨어요.”
젠장....일이 이상하게 꼬이는군...결국 노숙자였다는 거잖아.
이제 어쩌지?
“어디 갈만한데 없어? 가족이라든가...친척은....”
하긴 그런게 있으면 노숙자로 살겠어?
묻는 내가 바보다.
현준은 일단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반문 해 보았지만 답을 알수 없었다.
그냥 길거리에 그녀를 보내버렸어야 했는데.
그는 회사에서 계속 그 생각만 했다.
광고주와의 만남을 내일로 연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원피스가 생각나자, 백화점에 들러 여자 옷 몇벌을 샀다.
속옷도 사려다가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관 두었다.
열쇠를 밀어 넣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소매를 몇 번이나 접은 하얀 셔츠에 그의 잠옷 바지를 입은 그녀가 서있었다.
“죄송해요....옷이 없어서....”
금방 샤워를 했는지, 그녀에게서 그의 비누냄새가 난다. 머리를 길게 풀어 놓아서 더 어려 보였다.
“내가 의기소침해 있어봤자...아저씨가 날 쫓아내기 밖에 더하겠어요. 아침엔 미안 했어요.”
가름하고 하얀 얼굴이 귀엽게 찡그린다.
한결 밝아진 얼굴이다.
가느다란 목선을 지나 풀어진 단추 사이로 쇠골이 보인다.
그는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직 어린데....몇 살이나 된 거지?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눈치가 빠른 편인가보다.
“최 은란이 예요...올해24살 이구요. 가족은 없어요...고아원에서 자랐거든요.”
그녀는 짐짓 밝게 얘기했다.
그는 그녀가 내미는 손을 엉겁결에 잡으며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정말 24살이야?”
“정확히는 몰라요...원장 어머니께서 정해준 생일이라...”
그는 문득 자신이 문 앞에서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들어섰다.
집에 들어서자 군침 도는 냄새가 났다.
“어서 씻으세요. 저녁 다됐어요.”
그녀는 그를 무서워하지도, 어색해 하지도 않았다.
마치, 이제까지 여기 살았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당신은 내가 무섭지 않나?”
“전혀....날 구해줬는데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무서워하진 않아요. 그때 구해주지 않았으면 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그게 더 무서워요...아저씬 내가 안무서워요?”
하하... 이 여자 봐라?
되려 자기가 안 무섭냐구?
현준은 웃음이 났다.
당찬 여자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옷 몇벌 샀어...저...다른 것 필요하면 말하구.”
그는 속옷이 필요할거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필요하면 얘기하겠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그녀가 단정하게 개어진 티와 바지를 침실 침대위에 놓아 둔 것이 보인다.
이제까지 누군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몰랐다.
주방으로 나오자 그녀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찌개를 식탁위에 올린다.
김치찌개.
어? 집에 김치가 없는데...
커다란 냉장고에는 생수와 캔맥주...상민이 녀석이 넣어둔 아몬드가 다였다.
그런데...이 많은 반찬은 어떻게....
그녀는 역시 눈치가 빠르든지..독심술사인지도 모르겠다.
“시장 봤어요...세상에...어떻게 냉장고가 깨끗한지..펭귄이 분양 받아도 되겠더군.”
뭐? 펭귄이 어떻다구?
그녀의 희안한 표현에 헛웃음이 나온다.
“아무리 남자 혼자 살아도 그렇치 생수에 맥주 두개뿐인 냉장고라니...”
“돈도 없을 텐데...”
“있었어요. 조금. 주인 아주머니께서 월급이라며 주신게 조금...남았었어요.”
그는 김치째개를 맛보았다.
“음식 솜씨가 좋군.”
“식당에 있을때 주방에 있었거든요. 저...그래서 말인데요...절 가정부로 고용해 주시면 안될까요?”
“싫어. 이틀에 한번씩 오시는 분 있어.”
“그렇군요. 저 때문에 그분을 해고 할순 없죠...”
그녀가 눈에 띄게 실망한다.
“음식말고 할 줄 아는거 있어?”
“전에...조그만 회사에서 잡무를 좀 봤는데요.”
“알았어..내가 알아보지.”
그녀의 표정이 또 변한다.
“고맙습니다...아저씨.”
“아저씨라고 부르지마. 너보다 5살 많은 것으로 아저씨 소리 듣긴 싫다.”
“그...럼...”
현준은 자신의 이름 조차 밝히지 않은걸 알았다.
“강 현준.”
“네 현준씨”
“상민아~ 전에 경주씨, 보조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상민은 출근하자마자 뜬금없이 얘기하는 현준을 바라보았다.
“응...그랫지.”
“아직 안 구했지?”
“왜? 누구 추천하게? 누군데?”
어제부터 이상해 졌다.
좀처럼 늦지 않는 녀석이 회의 시간이 시작 되고 한참 후에나 나타나질 않나, 광고주와의 미팅도 미루고. 오늘은 강철 인간에게서 인간 냄새까지 풍기는 것이.....이상해.
“엉? 어...아는 사람.”
“그래? 아직 못 구했다고 하더라구....경주씨 요즘 계속 투덜거리 잖아.”
“오후 2시에 경주씨 더러 시간 비워 두라고 해. 니가 소개하는 걸로 해서.”
“어....어 알았어.”
홍보 담당자인 한 경주는 요즘 잦은 야근으로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다.
팜프렛까지 자기가 돌려야 하냐구.
보수가 약간 작아 요즘엔 보조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대학생들도 박봉에 일거리가 많은 보조일을 꺼리기 때문이었다.
상민이 나가자, 현준은 집으로 전화를 했다.
자기 전화 외에는 받지 말라고 해서인지 자동 응답기 소리가 나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은란아.”
그러자 전화를 받는다.
“현준씨에요?”
“나 말고 전화 올사람 있니?”
“히히...그러네요.히히...”
“여자 웃음 소리가 그게 뭐냐?‘"
퇴박 놓는 목소리에 웃음이 묻었다.
“히...근데 무슨일이에요?”
“어제 내가 사준 옷 있지? 그거 입고 2시에 우리 회사로 와라...경비에겐 내가 말해 둘테니까 면접 볼거라고만 해.”
“네? 면접요? 와~ 아저씨...아니지...현준씨 빽 좋다.....벌써 일자리 구한거예요?”
“그 옷 입고...머리 단정히 하고와.”
“넵~현준씨”
정성스럽게 띻아 올린 머리는 한올 흐트러짐이 없었다.
긴머리를 어떻게 해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다.
그러나 현준의 부탁이 아닌가.- 굳이 부탁이라고 부르지 못할 말이지만.
화장품이 없어 화장을 하지 못했지만 하얀 피부 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시장에서 급히 산 분홍빛 립그로즈를 바르고 급히 회사 입구로 향했다.
경비가 그녀를 불렀다.
“한성에 면접 보러 왔는데요.”
“아~ 그분이시군요. 2시에 오신다더니 4분이나 지났네요... 사장님은 시간 엄수 안하는 사람
제일 싫어해요....빨리 올라가보세요.”
헉~ 4분이나 지났다구? 제발 여기 사장이 화가 나지 않았어야 할텐데...현준씨 체면만 구기는건 아닌지 몰라...어떻해
그녀는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붙잡아 간신히 탔다.
“휴~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깔끔한 세미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그녀를 보며 웃었다.
화장 안한 여자를 보는 것이 처음이란 눈치다.
그녀가 6층을 누르려고 하자 그가 먼저 6층을 눌렀다.
“몇층 가세요?” 듣기 좋은 목소리다.
“6층요.”
“6층이면 우리 사무실인데...무슨 일로....”
“면접 보러요.”
“아~ 현준이가 말하던 보조!”
“현준씨 아세요?”
“그럼요. 친굽니다. 같은 회사 다니죠. 박상민이라고 합니다. 현준이랑은 대학때부터 친구입니다.”
“최 은란 이예요.”
“현준이랑은 어떤 사이인지...”
“그냥 좀 알아요.”
그녀는 대화가 약간 거북한 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상민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속으로는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띵~
엘리베이터가 서자, 상민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녀는 현준이 말한 사무실 쪽으로 갔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는 손잡이를 돌렸다.
“8분이나 늦었군.”
“죄송합니다.”
“앉아.”
현준의 옆에는 무척이나 단정하고 새침스러워 보이는 여자가 한명 더 있었다.
그녀는 현준의 옆에 바짝 붙어 마치 이 ‘남자는 내꺼야.’ 라는 인상을 풍겼다.
은란은 약간 속이 울렁거렸다.
“최은란씨? 전에 보조 일을 해보셨다구요?”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 2년 정도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 보조일을 했습니다.”
은란은 도전적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일하려면 6개월의 연수기간이 있습니다. 6개월 후에는 월급이 약간 조정 될거구요.
월급이 생각보다 적을 겁니다. 야근도 해야 할 경우도 있는데...상관 없나요?“
“네. 괞찮습니다.”
“몸이 약해 보이는데...다른 아픈 곳은 없나요?”
은란은 순간 현준을 보았다.
그는 서류만 뒤지고 있었다.
“아니오. 없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지요. 출근시간은 8시 30분 까지입니다. 시간 엄수 해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현준을 바라보다가 은란은 그녀의 마지막 말에 놀라 인사를 했다.
대체 그는 왜 거기에 있었던거야.
아무것도 물어 보지 않을 거면서.
“아! 그리고, 사장님과 인사 하시죠....자주 뵐 일은 없지만.”
사장님?
“강 현준이요. 수고 해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