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 조선 토종개들의 수난과 왜곡
'좋은 진도'의 문종환님의 글(2014. 4. 11일)
모리 교수와 일제당국이 일정 기준을 제시해 놓고 자신들 임의대로 순잡으로 몰아 가기 전의 진도섬에는
모두가 하나 같이 원래 있던 그대로 그냥 그대로 순전한 우리 토종개(진도개)들 뿐이었다.
조선을 드나들던 중국 상인들의 입을 통해서도 진도를 비롯한 남해 도서지방의 넉사냥 토종개들이 멀리
대륙 본토까지 입소문이 났을 정도였지만 오히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고유성의 훼손과 본질적인 형태 변화
과정을 격어야 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자기들 입맛대로 순잡 기준을 정한 일제당국에 의해 가장 한국적인 토종 개체 형태는 오히려 도태 대상이 되어야
했고 해방 이후까지도 이를 그대로 답습한 보호 당국의 정책은 자존감이나 줏대도 없는 후안무치한 졸속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경계하고 넘어 가야 할 것은 진도섬도 조선반도의 부속 도서이고 육지와는 아주 가까운 섬지방이라
문물과 인적 교류 등 비교적 육지와의 교류나 왕래가 빈번한 지근 거리의 도서 지역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지와는 완전히 격리되고 동 떨어진 머나 먼 이국 땅이라도 되는 냥
육지와는 이질적으로 전혀 다른 개체 형태가 존재하듯 한다는 것은 원초적 어불성설이다.
진도섬의 개 !
다시 말해, 진도개는 조선반도 토종개들 중 일부이었으며, 특정한 개가 진도섬에만 있어 왔던 것이 아니라,
고립된 지리적 여건과 왜세 침입 역사와 정치적 환경 등을 거치며 우수 품종들로 발전 특화된 조선 토종개들이
조선땅 진도섬에 토착되어 왔던 것이다.
진도개의 원형과 뿌리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대륙과 연계된 조선반도 전체 토종개들의 분포 현황과 특히 영호남
지방과 남해 도서지방 등의 고유 토종개들의 형태와 형질 편차에 대해 고찰하는 노력부터 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선땅에 없던 개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형성되어 왔던 것도 아니고 조선민이 살던 조선땅 진도섬을 이국화
시키거나 별천지로 생각해서도 안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이동이 있으면 개들의 이동도 함께 있어 왔다는 것은 공통된 인류 역사의
순리였던 바 육지와 왕래하고 교류하는 사이 진도섬에도 자연스럽게 육지 토종개들의 유입이 있어 왔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육지 토종개와 진도섬에 서식하던 개체 형태를 원천적으로 분리시켜 이원화하는 데서부터
진도개의 원형과 뿌리에 대한 이해는 왜곡되고 전설 같은 설화가 난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주개나, 해남개, 거제개, 진도섬 지역의 재래 토착견 등..
여러 고증 자료 등을 통한 남해안 지방과 남해 도서 지역을 아우르는 토종개들의 흐름을 연구해 보면
일제치하 이전 진도섬 지방의 고유 토착견들의 모습과 거의 일맥상통한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영호남 지방과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사냥에 능하고 우리 정서에 맞춤형이었던 재래 토종개들의 형태와
표현 등에 관해 서술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지만 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자료 확보 등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은 측면이 있어 차후를 기약해 보기로 한다.
조선반도 전체를 비롯한 영호남 지방의 육지 토종개들이 일제에 의한 토종개 몰살정책으로 수난기를 맞을 때
그나마 잔존해 왔던 산골 오지 지방이나 남해 도서 지방의 유사 개체들도 보릿고개와 6.25 전쟁등을 거치며
점차 쇠퇴와 멸종의 과정을 거쳐 온 반면에 지리적 영향으로 근래까지 그 혈맥을 이어 온 제주섬 지방의
토착견들과는 또 다른 형태로 조선시대 왜구들의 잦은 침입으로 최장 일백년 동안 정치적 공도(空島)시기를
거치는 등 외부적 요인과 역사적 환경 등의 이유로 자연스런 혈통 고착화와 독창적인 고유 형태로 자리 잡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 요인이든 역사적 요인이든 진도개는 분명 조선의 토종개들이며 고립된 지리적 여건과 역사적 환경 등에
의한 토착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을 뿐 분명하고 당연한 우리 고유 토종개들임에도 육지의 토종 개체 형태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 형태로 차별화해 온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제치하 이전 진도섬의 개들은 지금처럼 색조도 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하고 친 자연적인 색조였을 뿐만 아니라
귀가 서지 않은 반벅구 형태도 60%를 넘었으며 서민들의 환경과 문화에도 거부감 없는 자연 동화적이고 친화적인
자연스런 형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증언들이 있어 왔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에 대한 솔직한 증언이었고 우리와 함께 살아 온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애환과 숨결을 간직하며 엄연히 존재하고 있어 왔던 고유 형태의 우리 토종개들임에도
귀 서고 꼬리 말리면 순수 진도개이고 그렇지 않으면 잡개로 몰아 뒤안 길로 사라지게 했던 편협된 논조는
과거, 조선을 식민 지배한 일본의 계획 정책에 놀아나고 휘둘렸던 치욕의 잔재일 뿐이다.
진도 원산지 출신인데도 더러는 귀가 잘 서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로 순수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다리미로 다린 듯 작고 빳빳하여 뾰족하게 쫑곳 선 형상들이나 젖 뗀 직후 3개월이 되기도 전에 성견의
귀처럼 구김살 하나 없이 반듯하게 바짝 선 귀는 우리개와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형상으로 도리어 순수성을 의심해
봐야 할 형질이다.
옛날 재래 토종개들이 똥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진 것도 우리 생활 풍습과 직결되었던 것으로 새댁이 아기를 낳으면
강아지 한마리도 함께 키우며 아기 변 처리를 위해 워~리 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와서는 말끔히 먹어 치우던
생활 풍습에서 비롯된 만큼 그것이 이른바 우리땅에서 숨쉬며 살아 왔던 정겨운 똥개문화였던 것이며 우리땅 우리섬
우리민족이 살아 왔던 진도섬도 다를 바 없었음은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런 생활 풍경이 진도섬이라고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조선의 얼과 혼은 깡그리 말살하려 했던 바
민족의 얼과 혼이 깃든 것은 무엇이든지 그 뿌리와 근원을 차단하려 했으며 "일본과 조선의 뿌리는 하나다" 라는
내선일체 정책 아래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내선일체(內鮮一體)...!!
조선의 정신을 말살시키고 일본제국을 위한 태평양 전쟁에 식민지 국가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 몰고
조선을 송두리째 착취하기 위해 주장했던 일본제국의 허울 좋은 조선 통치 정책이다.
대륙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닌 일본과 어우러져 조선의 문화와 역사가 이루어 져 왔다는
그래서 일본과 조선의 뿌리는 하나다 라는 조선 정신의 말살 정책인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어 전선은 급격히 커져만 가고 급기야 조선은 수탈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으며 극심한 반발을
무마하고 조선인들의 독립 의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일본과 조선의 조상은 같다)과
내선일체론을 내세워 정책적으로 백성들을 호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진도개마저 일본개를 닮은 형태만 표준으로 삼아 내선일체 정신을 더욱 공고히 하려 했던 바
조선반도의 토종 개체 형태는 그들이 의도한 정책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당연히 우선적으로 도태 대상이
되어야 했다.
군용 모피 수급과 광견병 근절 차원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조선반도 전체에 걸친 무자비한 타살이
자행되었던 바 야겡가리(野犬狩)를 동원한 도살작전으로 고유 토종견에 대한 몰살정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요행히 일본개들의 형태와 유사 형질이 많은 진도섬의 토착견들은 오히려 그들의 정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지만 내선일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그들의 계산된 의도였을 뿐 한민족에 대한
문화유산 보존 차원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모리 교수가 학자적 관점에서 조사 보고하였다 손 치더라도 학자적 관점과 다른 일제당국의 입장에서는
내선일체 정책을 보다 공고히 하는 것이 우선 급선무였기에 명목상, 보호 보존 정책 방향이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단서이다.
모리 교수가 일제당국에 보고하기 前과 後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정책 방향이 설정된 싯점으로 급기야 조선 총독부
그들 방식대로의 이분법적 잣대가 적용되어 진도 섬에 분포한 토착견들에 대한 접근 시각과 처리 방법 자체가 달라 졌음을
통찰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개 형태를 표준으로 삼아 그에 맞는 유사 형태는 남겨 두었지만 그를 제외한 대다수의 고유 형태는
그들이 정한 법에 따라 도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와 병행하여 일본개와 강제 교배 표식이라도 있는 개들에게는 도살 면제권을 주어 야겡가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사실은 그들의 본질적인 의도가 무엇에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구나 진도 현지의 일본 주재소에는 일본개들이 버젓이 활보하고 다녔다는 증언들이 있어 왔고 효과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일본개들의 유입 또한 당연하게 이루어졌을 터 공공연하게 일본개의 피가 뒤섞여 왔을 개연성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일 수 밖에 없다.
애견문화에 관한 한, 우리 보다 수십년이나 앞서 있어 이미 개량화의 과정을 거친 일본개들의 외형에 비해
일상으로 접하던 똥개 문화에 식상했을 수도 있는 진도 주민들의 눈에는 반듯하고 화려한 일본개의 외형이 근사하게
보였을 수도 있고 괜한 호기심과 똥개 신분 상승의 심리적 요소까지 더하여 자의든 타의든, 일본 개들과의 혈섞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을 개연성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그 치욕의 역사와 잔재는 아직도 남아 해방을 맞이한지 일세기를 채워 가는데도 그 시대 그들에 의해 표준화되고
의도했던 바대로 일본개와 유사 형태를 위주로 보호 보존되어 온 형국이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묻어 있고 우리 민족과 함께 동고동락 해 왔던 보존 가치 높은 고유 형태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화에 희생양이 되어 도리어 도태 대상 일순위가 되어 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남세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흐름을 저항없이 받아들이고 그렇게 저렇게 흘러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당시 일제당국으로서는 매우 성공한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지금까지도 일제가 정해 놓은 표준형태 그대로 답습 해 온 부분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고
의식없는 주무당국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정책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그 정책에 놀아나는 것은 일제의 식민 종결로 종지부를 찍었어야 함에도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일제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우리 것임에도 고유 원형을 찾아 가겠다는 보호 보존 정책이라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일본이 정해 놓은 과거 표준을 답습한 것도 모자라 사회적 지위가 우선한 자들에 의한 탁상공론으로
1967년에 제정되어진 [진도개 보호 육성법]이란 것은 화려한 상품화와 세계화의 명분 아래 정작, 보호 보전해야 할
고유 형질의 것은 도리어 도태 대상이 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고유 형질에 대한 말살 정책이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가슴 두드리며 개탄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 흐름에 편승하여 상업적 성향을 띈 육지 전람회 문화도 한 몫 거들어 본질적인 순수성이나 고유 형태로의 권장은
고사하고 보여지는 심미적 관상요소에 지나친 무게를 두어 편향적 역할을 수행해 온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향후 세대들에게는 여과없이 세뇌되고 각인되어 철옹성같은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으니
완장 차고 마당을 누볐던 책임자 또한 머리라도 쥐어 뜯으며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안타깝지만 이 모든 것들도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역사로 남겨두어야 할 뿐 기득권 층의 저항에 부딪히더라도
잘못된 과거는 바로잡아 나가야 할 것이며 고유 뿌리에 바탕을 둔 형태로 원래 제자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진도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나라 대표 토종개이자 천연 기념물로 지정 보호되는 만큼
천연 기념물이기에 발전의 가장 큰 명제도 원래 있던 원형의 가치를 복원하는 일에 맞추어 져야 하고
발전을 외치더라도, 옛것에 기초한 가운데 구조적 발전도 있어야 한다는 절대 원칙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발전의 명분 아래 묻힐 수 있는 시류에 따른 변형은 고유성을 훼손하게 하고 보존 가치에도 위배되므로 심히 경계되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알게 모르게 만연해 왔던 일제의 잔재는 반드시 걷어내고 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일본과 우리는 민족성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정서가 서로 다르다.
일제치하 동안 그들의 만행이 이럴진데 일제의 잔재를 모르고는 우리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우리 개에 대한
발전도 있을 수 없다.
조선 토종개 뿌리의 근간을 흔들고 훼손시킨 일제의 만행을 안다면 그들이 훼손하고 왜곡시킨 치욕의 잔재는
반드시 걷어 내고 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지한 가운데 일제의 잔재를 붙들고 보존과 발전을 외쳐왔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던 지난 시절이야 의식 부재를 탓할 수 없어 그렇게 저렇게 수용하고 넘어왔다
손 치더라도 문화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른 현싯점에 까지도 일제의 잔재와 영향은 여전히 막강하게 군림하고 있으니
이제 더 이상, 민족 고유의 숨결을 역행하고 거스르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