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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9일
출 19~34장까지는 모세가 시내산을 오르내리는 공간 이동속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모세를 산 위로 불러 올리신다. 그 말씀을 받아서,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는 것은 시내산 아래이다. 이것이 6번 반복된다.
오늘은 여섯 번을 나누어 가지고, 각 등산시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아보자(오늘은 네번째까지)
(출 19:3, 개정)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출 19:4, 개정)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이 하신 처음 말씀이 과거 이야기이다.
(출 19:5-6, 개정)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5~6절이 핵심이다.
우선 5절을 보자. 논리적 충돌이 보이는가?
하나님은 세계가 나 나에게 속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언약을 지키면 내 소유가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내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개념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앞 문장과 연결시켜,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지 않으시고, 세계가 모두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어떤 개념을 세 번 말씀하실 때, 뒤의 것은 앞의 것을 확장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교회론에 적용한 신약의 구절을 찾아보자.
(벧전 2:9, 개정)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9절에서 중요한 것은 후반부이다.
교회는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가 된 것은 :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선포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은, 하나님의 섭리를 나누고 전하는 것이다.
즉 선민에게 복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나누어 주심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출 19:5~6을 다시 생각해 보자.
세상이 타락하였지만, 하나님은 모든 백성을 소유하신 창조주이신다. 그런데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제사장 나라)를 통해 이와 같은 복음을 세상에 전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것을 구원과 축복의 독점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을 배척하는 일을 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시면서, 먼저 이 사실을 알려 주신 것이다.
(출 19:7-8, 개정) “[7]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이스라엘은 항상 대답을 잘 한다...
모세는 시내산으로 올라가 백성들의 반응을 전하며 1차 등하산이 끝난다.
하나님은 왜 언약을 한 번에 체결하지 않으시고, 단계적으로 하실까? 이렇게 점진적으로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하시는 것이다.
두 번째 등정을 살펴보자.
19:8절 하반부에서 시작
(출 19:9-11, 개정)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11]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하나님이 모세를 두 번째 부르셔서, 하신 말씀은, 오늘부터 3일 뒤에 시내산에 올 터이니, 백성을 준비시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그날 강림하지 않으시고, 셋째 날 강림하실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만날 때, 셋째 날 신학이 있다.
(창 22:4, 개정)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제 3일을 공간적 이동이라는 의미에만 한정하지 말고, 3일의 특징을 생각해 보자.
제 삼일이라는 기간 동안,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한 구원의 약속과, 이삭의 죽음에 대한 모순을 해결한다.
(호 6:1-2, 개정)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이곳에서는 날이 신학적 의미가 있다. 셋째 날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임하시는 날이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경험, 시내산 경험, 예수님의 부활, 제 삼일은 생명의 날, 임재의 날이다.
하나님은 3일에 임재하심으로 준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 19:10, 개정)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성결과 정결은 같은 개념이다.
(출 19:11, 개정)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하나님과 피조물의 경계가 있어야 한다.
성결과 경계
이것은 현재의 우리들의 삶에서도 유지해야 한다.
셋째 날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셨으니, 하나님의 임재(현현)하시는 현상이 16~18절에 기록되어 있다.
우레, 번개, 구름, 나팔소리
(출 19:20, 개정)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이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모세는 이것을 뒤로 빼서 따로 기록했다.
19:25 내려온다.
20:1~17은 십계명
20:18~20 우레, 번개, 나팔소리
20:21 올라간다.
이러한 구조에서, 20장 사건을 따로 기록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십계명을 산 아래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20:1~17은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을 때, 산 위에서 하신 말씀이다.
출 20:18~20은 모세가 내려온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출 19:에 나오는 현상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
즉 십계명과 규칙 선포는 세 번째 올라갔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다시 보면
첫 번째 올라감 :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
두 번째 올라감 :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준비
세 번째 올라감 : 임재를 준비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십계명과 각종 율법을 선포하심
19:21에서 하나님은 경계를 넘지 말라고 확인시키시고, 24에서 아론과 같이 올라오라고 하심
19:21~24절이 출 24:1~2에 다시 반복되어 있다.
(출 19:21-24, 개정)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22]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23]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출 24:1-2, 개정) “[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19:25에 모세가 내려가서 하는 말은 출 24:3에 반복된다.
(출 19:25, 개정)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알리니라”
(출 24:3, 개정)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십계명 내용은 나중에 자세히 배운다. 생각해 볼 질문들
출 20장에는 십계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이 표현이 언제 처음 나오는가?
이 단어가 어디에 나오며 이 단어가 히브리어로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10계는 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다.
십계명에 사용된 히브리어 명령 부정어 체계는 무엇일까?
넷째와 다섯째만 하라고 되어 있다.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래서 두 돌비라고 할 때, 계명이 나누어서 기록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이것은 뒷 부분에서 살펴본다.
10절을 보자. 십계명 중에서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기록된 유일한 계명이 4계명이다. 성서 학자들은 나머지 계명은 정명법(당연하게 지켜야 하는 것)인데, 넷째만 사회적 신분이 나와있으므로, 사회적 신분을 고려한 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명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출 21:1, 개정)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이 법규와 관련된 것들은 민수기를 공부할 때 살펴본다.
제사제도는 레위기 공부할 때 살펴본다.
1~3 등정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졌다.
세 번 등정이 끝나고, 네번째 등정을 보자.
출 24:9~18
이 본문은 성소를 만들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을 체험하시켜 주시는 것이다
모세의 시내산 성소 체험 본문.
산 자체가 성소의 기능을 하도록 하시고, 모세에게 경험시키심
하나님은 이 때 경계를 나누신다.
하나님이 홀로 정상에 오른 순간, 하나님이 임재하신다.
시편 68장을 보자.
이것은 출애굽에서부터 다위시대까지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시 68:4, 개정)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
(시 68:5, 개정)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 68:7, 개정)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 출애굽 시대
하나님은 광야 어디에서 출발하셨나? 신 33장을 보자
(신 33:1-2, 개정) “[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신 33장은 모세가 죽기 전에 한 노래이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이 하늘이 아닌 시내산에서 오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출발점은 시내산이다.
시 68장으로 돌아간다.
(시 68:8, 개정)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시 68:14-16, 개정) “[14] 전능하신 이가 왕들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15]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16]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이곳은 시온산이다.
(시 68:17, 개정)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시 68:17절은 시온산 성소를 이야기 하면서 시내산 성소를 언급한다.
구약은 두개의 산 모티프가 하나님의 임재를 이야기한다. 시내산과 시온산이다.
신학자들은 시온산을 제2의 시내산이라고 말한다.
시내산 모티프는 시온산 모티프는 호환된다.
브레이크타임
출 24:9에서 모세는 네 번째로 산에 올라 감
모세는 네 번째 올라가서 40일 동안 있었다
(출 24:18, 개정)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출 25장부터 주어지는 말씀은 이 사십일 동안 이루어진 일이다.
출 32:15에서 모세가 산에서 내려온다.
출 25장을 보자.
(출 25:8-9, 개정)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은 8절에서 성소를 지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9절에는 장막을 지으라고 하셨다.
번역도 다르고 히브리어도 다르다.
성소 : 미크다쉬 / 장막 : 미쉬칸
두 단어는 동의어처럼 사용됨
하나의 물건을 두개의 다른 단어로 표현할 때는, 그것이 두 개의 다른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성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한 가지로 대답할 수 없다. 쉐키나라를 단어를 파생시킨 미쉬칸이라는 단어는 거주를 강조하는 단어이다.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성소는 또 무엇하는 곳일까? 왕상 8장의 솔로몬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 제사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솔로몬은 그곳을 기도하는 집으로 묘사한다.
성소의 다기능적 의미를 알아봐야 한다.
언약궤, 법궤, 증거궤
왜 같은 궤인데 세가지로 표현할까? 이렇게 달리 표현할 때에는, 그 문맥 안에서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
성소, 성막, 성전, 장막, 회막
새 하늘과 새땅에는 성소가 있나?
(계 21:22, 개정)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3, 개정)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에는 성전은 있고 장막이 있다. 이 개념을 구분해야 설명이 된다.
이러한 개념이, 출 25:8~9부터 나온다.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중심 개념이 있다.
성전 : 미크다쉬 – 제사 / 장막 : 미쉬칸 – 거하시는 곳
전(헤이칸) - 통치하시는 장소 (이사야에 나옴)
(출 25:9, 개정)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모양 : 타브니트
25:40
(출 25:40, 개정)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양식 : 타브니트
부조 : 343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성소의 구조를 도면으로 보여 주시고 그 크기와 형태와 사용할 재료들과 그 안에 비치해야 할 모든 기구에 대하여 상세한 지시를 주셨다. 손으로 지은 성소는 “참 것의 그림자”요,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히 9:23, 24)이다. 즉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후 죄인을 위하여 봉사하기로 되어 있는 하늘 성소의 축소판이다.
지상성소는 하늘 성소의 축소판인데, 하나님은 하늘 성소의 도면을 보여주셨다.
성도들이 할만할 질문
하늘 성소의 축소판이면, 하늘에 물리적인 성소가 존재합니까?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하늘 성소의 축소판이 아닐까요?
여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타브니트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 히브리어에서 인용되어 설명될 때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하자.
(히 8:5, 개정)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창 1:26, 개정)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한 신학자가 위의 두 성경절을 비교하여 하늘 성소와 지상 성소에 대한 상관관계를 설명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람을 닮았다고 물리적으로 제한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모양과 그림자의 관계도 같다. 지상 성소가 하늘 성소의 모양과 그림자이지, 하늘 성소가 지상 성소의 모양과 그림자로 제한해서는 안된다.
하늘에는 성소가 있다. 그러나 어떤 모양인지는 모른다.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모양이신지를 모른다.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경계를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