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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목사님 나오시기 전에, 담임 목사님께서 이상규 목사님에 대한 간단한 양력 소개 후에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한 30년이 더 됐을 겁니다. 제가 학교에서 공부할 때 저를 지도하시고, 교훈해 주시면서 가르쳐 주신 은사 교수님, 목사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제 은퇴를 하셔서 늘 마음에 제가 두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제 연락이 되어서 오늘 부탁을 드려서, 또 목사님께서는 기꺼이 허락하셔서 이렇게 오시게 됐습니다. 제가 특별히 소개를 안 해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워낙 유명하신 분이십니다. 이상규 교수님이신데, 우리나라에서 교회 사 분야에는,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가르침을 많이 주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부탁을 드려서 말씀드리게 됐는데, 여러분들 그 정도만 하시고, 나중에 인터넷이나 보시면 여러분들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시간에 우리 이상규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의 귀한 말씀을 근거로 해서 말씀 증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이렇게 귀한 교회 에 와서 또 우리 담임 목사님도 배웠고, 또 우리 성도님들 배울 수 있는 좋은 교회 를 갖게 된 것을 감사 합니다. 제가 고신대학교에서 35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고신대학교에서 은퇴하고 나니까, 제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1년에 60명씩 계산해도 제가 35년 동안 근무했으니까, 신학 학생만 해도 한 2000명 이상 졸업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저기에 남아있는 몇몇 학생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박길서 목사였어요. 학교 다닐 때 아주 공부를 정말 잘했습니다. 공부 잘했다는 것이 목표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모르지만,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교회 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구원 이라는 무엇인가를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지적인 능력이 필요해요. 한국에 많은 목사님들이 계시지만,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일이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학문적인 수련을 잘 겪었기 때문에, 박길서 목사님은 저 기억에 늘 남아있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한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책을 보는데, 한번은 "은사론"이라고 하는 은사에 관한 박 목사님 책을 접하게 됐는데, 책을 너무 잘 썼더라고요. 성경에 말하는 은사를 정말 정확하게 짚어내고, 회사를 하고 있는 걸 보고 박 목사님을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디서 계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또 유튜브를 보게 됐는데, 박 목사님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어요. 정말로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바른 신앙 을 지도하려는 의지가 나타나는 걸 보고 아주 감동이 됐고, 그래서 제가 추적해 보니까 기장에 비전 중앙교에 계신다고 해서 인터넷에 추적하니까 전화번호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전화해서 오늘 이렇게 와서 뵙게 되었고, 박 목사님은 저의 초기에는 교수로 계셨기 때문에 제가 참 선생이나 은사로 불리기 부족합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또 뵙게 되고,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참 진짜 귀한 목사님이 되셔서 목회하는 걸 보니까 감동이 됩니다. 저는 사실 어떤 교회 를 담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교회 를 다녀봅니다만, 제가 이 교회 에 오면서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벌써 성도들이 와서 30분 전에 찬송을 부르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교회 에 가면 찬양대 가운을 입고 찬양하는데, 회중석에 앉아있다가 앞에서 나와서 찬양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찬양을 잘하는지 정말 감동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바른 신앙 , 바른 교회 를 만나는 것은 환자가 아플 때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이 큰 축복 이듯이, 좋은 목사님을 만나는 것은 참 큰 축복 이에요. 신앙 에 잘못 지도받으면 얼마나 영혼의 상처가 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볼 때 비전 중앙 교회 에 다니신 여러분들은 축복 된 성도라 생각합니다. 속으로 어떤 분이 이 목사님이 오셨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진심으로 정말 훈련되고 경건한 믿음으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설교하는 우리 박 목사님의 신앙 지도를 받는 것은 큰 축복 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목사님이 설교하는 것이 더 좋은데, 제가 설교도 잘 못하는데 오늘 추수 감사 절을 설교하게 되어서 송구할 마음이 없습니다.
추수 감사 절이라는 것은 추수에 대한 감사 는 성경에서 말하는 중요한 사상이기는 하지만, 추수 감사 절이라는 이 절기는 미국 교회 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17세기 영국에 청교도가 있었잖아요. 우리가 청교도에 대해 많이 듣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분이 계시던데요. 청교도는 '퓨리탄'이라고 하죠. Puritan의 말은 'purify', 깨끗하게 한다는 동사의 명사형이니까, 청교도를 가장 간략하게 말하면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영국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이에요. 엘리자베스 1세의 왕 때가 영국의 성공회인데, 성공회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천주교적 잔재를 제거하기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이 청교도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천교도들의 정신을 세 가지로 간추리면, 첫 번째, 성공회 그 당시 교회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천주교적인 잔재를 제거하고, 이런 많은 천주교적인 의식들이 성공 예배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이것은 좋지 못한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이 청교도들이에요. 두 번째로 청교도들은 역시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각종 관행들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천주교는 지금도 그래요. 오늘은 성 누구의 날, 내일은 성 누구의 날 다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축일 혹은 성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잖아요. 마틴 루터, 잘 알잖아요. 루터가 1483년 11월 10일 날 태어났는데, 그 이튿날 영세를 받았어요. 영세 받았던 날이 성 마틴 1일이기 때문에 마틴 루터라고 부르게 된 거예요. 그래서 천주교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당시 교회 도 오늘은 성 누구의 날, 내일은 성 누구의 날 다 정해놓고, 성경에 근거도 없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할 때, 이런 것을 다 제거하고 초대 교회 의 단순함으로 돌아가자. 이게 청교도들의 두 번째 생각이었어요. 세 번째는 이러한 것들을 청교도들이 진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애를 썼습니다. 예를 들면, 주일날 예배 들으러 올 때 아침에 잡수고 오셨죠? 그래서 청교도들은 주일날 예배 드리러 갈 때는 금식하든지 아니면 소량의 음식을 먹도록 권장했어요. 병약자들, 낙은애들, 노약자들 이런 분들은 음식을 접수해야 하니까, 그런 분들은 소량의 음식을 먹고 성도들에게는 어떻게 해요? 금식하도록 권장을 했습니다. 꼭 규정을 만든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 에 도움된다고 그렇게 가르쳐서 청교도들은 주일날 예배 드리러 갈 때는 금식하든지 소량의 음식을 먹도록 권장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예배 드리는 시간이니까 속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왜 그랬을까? 왜 청교도들은 주일날 예배 드리러 갈 때 금식하든지 소량의 음식을 먹도록 권장했을까?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음식 많이 먹으면 어때요? 많이 잡수고 오면 어떨까요? 졸음이 올 거죠? 졸음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설교에 집중할 수 없겠죠? 설교에 집중할 수 없던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주일날 예배 들으러 갈 때는 소량의 음식을 권장했는데, 그 정신만 보더라도 청교도들의 신앙 정신이 어땠던가를 알 수가 있어요. 청교도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다 같이 예배 드립니다. 모자실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에요. 유럽의 나라를 다 가보면 모자실이 없습니다. 자녀들 다 데려가서 자기 옆에 앉혀서 다 예배 드립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삶의 습관을 통해서 주님을 경배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말을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예배 마친 다음에 집에 돌아가서 설교 문답을 합니다. 설교 문답이라는 것이 뭔가? 설교 문답은 집에 돌아가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묻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뭐야? 목사님의 설교 본문이 뭐야? 오늘 설교에 세 가지 중요한 강조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뭔가? 이렇게 묻는 것이 설교 문답이었어요.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고, 설교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 설교 문답을 했어요. 그럼 예배 들으로 갈 때 자녀들이 어떻게 할까요? 집에 가면 부모들이 문답을 하니까 설교를 잘 듣겠죠? 부모들은 집에 돌아와서 자녀에게 설교 문답을 하려면, 부모도 설교를 잘 들어야 되겠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설교에 집중하게 되고, 설교에 집중하다 보니까 어떻게 할까요? 목사님들이 어떻게 해요? 야, 성도들이 이렇게 설교를 경청하는데, 정말 설교를 은혜 롭게 잘 준비해서 성도들에게 덕을 끼쳐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겠죠. 그래서 청교도 가운데 위대한 설교자가 많이 나온 거예요. 이런 것들이 청교도들의 삶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우리 한국 교회 는 고신교도 마찬가지예요. 주일 예배 를 드린 다음에 어떻게 해요? OEFC 그 사이에 탁구 치기도 하고, 그러죠. 탁구도 치고, 심지어는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우리 어릴 때 농촌에서 예배 드릴 때, 낮 예배 드리고 저녁 예배 드릴 때 그때까지 뭐합니까? 수건 돌리기. 다 그런 오락을 했습니다만, 예배 에서 천주교적 잔재를 제거하기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 두 번째 성경도 근거 없는 각종 관행들, 성일, 축일도 다 폐지하고 초대 교회 단순함으로 돌아갑니다. 셋째, 이런 것도 경건한 신앙 생활을 추구했던 사람들, 이게 청교도들이에요. 그런데 우리 청교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좀 더 해도 될까요? 청교도, 청교도, 청교도 그러는데, 사실은 청교도 안에 두 그룹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분리파 청교도, 다른 한 가지는 비분리파 청교도. 그러면 분리파는 뭐고 비분리파는 뭔가? 아까도 말했지만, 청교도들은 성공회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천주교적인 찌꺼기를 다 씻어내고, 진짜 성경적인 그런 계획을 추진했던 사람들인데, 성공회 안에 남아있으면서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성공회 안에 남아 있으면서 교회 를 개혁하자 했던 사람들이 비분리파 청교도들. 그런데 성공회 안에 남아 있으면서 교회 를 개혁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우니까, 안 되겠다, 성공회를 떠나서 별도로 교회 를 개척하고 별도 교회 를 설립해서 그렇게 새롭게 출발해야 된다, 이렇게 보았던 사람들이 분리파 청교도들이에요. 그러니까 비분리파 청교도의 대표적인 사람이 라이트푸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만, 이분들을 중심으로는 좀 불편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회 안에 남아 있으면서 교회 를 개혁하자는 분들이고, 성공회 안에 남아 있으면서 교회 개혁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성공을 떠나서 그렇게 하나님 의 교회 를 좋아하는, 깊은, 정말 바른 교회 를 세워보자. 이게 분리파 청교도들이에요. 그때 브라운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을 중심으로 분리파 청교도들이 형성됐던 거죠. 그럼 여러분, 1620년에 신앙 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갔던 청교도들은 분리파입니까? 비분립할까요? 예? 잘하시네요. 제가 설명을 잘 하니까. 1620년, 예 잘하시네. 우리 학생들이 물어보니까 좋은 배를 타고 갔다더라고요. 5월에, 메이플라워는 배를 타고 몇 명이 갔습니까? 천을 갈 때. 우리 학생들이 물어보니까 여러 명이 갔다더라고요. 102명인데 남도 몇 명이 통계가 다 있습니다만, 제가 쓴 책에 102명이 가는데, 진짜 생각해 봐요. 그 중에 임신한 부인도 있었어요. 그 배 안에 의석이 없습니다. 북미 대륙, 그 당시 미국에 걸어지면 제가 동부 쪽이니까, 그 동부 쪽을 청주하던 뉴 잉글랜드 세 영국을 불렀어요. 두 달 걸었어요. 두 달. 9월 16일에 출발했는데 도착했을 때 11월 10일에 걸었어요. 두 달 걸었어요. 그 당시 조치평이 크기가 얼마나 됐냐면, 우리식으로 말하면 34m 곱하기 8m, 34m 길이가 폭이 8m 밖에 안 돼요. 거기 102명이 탔으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양식도 좀 가져갔겠죠. 생활 기구도 좀 가져갔겠죠. 정말 열악했어요. 그 거리가 얼마입니까? 그 당시 그 거리가 5600km 이상이었습니다. 그 먼 길을 갈 때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그 당시 세계 도시에 달린 범선이었으니까요. 진짜 위험하죠. 근데도 바른 교회 를 세우게 했던 그 한 가지 의지 때문에 먼 길을 간 거죠. 영골, 출발할 때 한 곳은 프리머스 한 곳인데, 그곳에 도착해서 이름을 프리머스 한 곳으로 지은 거 아니에요. 도착했을 때 11월 달이니까, 여러분 어떻게 농사 질 수 없잖아요. 11월, 12월, 1월, 2월, 3월, 3월에 파종했어요. 그 다음에 11월, 10월에 추수, 11월에 추수했으니까, 1년 가까이 다른 소독물이 없어서 가족 같은 걸 가지고 살았던 거예요. 진짜 신앙 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힘쓰고 위험을 감수했던 걸 알 수 있어요. 자, 이렇게 말하면 정말 그랬을까 하는 분이 있는데, 양식이 없어서 애기도 태어났지만, 비 안에서 죽기도 했고,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죽기도 했습니다만, 20, 27, 6, 21. 뭐 때문에?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주님을 바로 성기해 보겠다. 그게 미국의 건국의 정신이 되었잖아요. 그때 가져간 양식도 떨어지고 하니까, 그렇지만 누구도 먹고 누구도 굶주릴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것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나눠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한 끼 식사로 한 사람에게 옥수수 두 톨씩을 나눠줬어요. 우리 점심 대신에, 밥 대신에 옥수수를 먹으려면 저거 몇 자리 정도 잡수도 될까요? 많이 잡수도 되면 한 다섯 자리 먹어야 되겠죠. 저는 두 자리만 먹어도 됩니다만, 보통 두 자리, 세 자리 정도 먹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한 사람이 옥수수 두 톨씩을 식사로 나눠줬어요. 그게 양식이 되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 께 감사 한 거죠. 첫해 수확이 그 당시에 미국이라는 풍토를 잘 몰랐기 때문에 수확이 얼마 되지도 못해서 그걸 내놓고 하나님 께 감사 했던 이것이 추수 감사 절의 시작이 되었고, 조지 와싱턴 때도 너무 귀한 일이다. 처음에 거두는 것을 하나님 께 감사 하는 것은 정말 좋은 것입니다. 조지 와싱턴 때 추수 감사 절을 지키는 것이 시작되었고, 아브라함 링컨 때와서는 이것을 국가적인 의식으로 지킵니다. 이 좋은 정신을 국가적인 의식으로 지키는, 그래서 추수 감사 절을 지키는 것이 미국의 국가적인 절기가 되었고, 우리가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추수 감사 절을 전해서 2주, 3주 학교 다 쉬는 절기를 지키는 시작이 된 거예요.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왔잖아요. 아시다시피, 1884년에 알렌이 들어오고 언더우드가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이 왔잖아요. 해방 전까지 우리나라에 선교사 1,600명이 왔어요. 그런데 초기 와서 선교사들이 일할 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는 추석 감사 절을 지키는데, 한국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교회 가 지키는 이 아름다운 전통을 우리도 지키면 좋겠다. 그래서 1904년부터 한국에서 추수 감사 절을 지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수요일에 들여서, 나중에 11월 셋째 주일로 정해서 한국 교회 의 아름다운 전통이 된 거예요. 구약 성경에 보면 추수에 대해서 하나님 께 감사 하라는 그 정신은 많이 언급되었지만, 추수 감사 절을 지키는 직접적인 배경은 미국 교회 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 의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추수 감사 절을 지키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추수 감사 절을 왜 지켜야 될까요? 추수 감사 절이라는 그 전통이 미국 교회 의 전통으로 출발했다고 할지라도, 이 정도를 지킴으로써 어떻게 해요? 늘 감사 하고 살아도 부족한 우리들인데, 그때만이라도 하나님 께 감사 하고 하나님 의 은혜 에 감사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국 교회 의 전통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감사 절을 지키는 것은 뜻이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늘 감사 하고 살아도 부족한데, 1년에 추수 감사 절이 두 번 있으면 얼마나 더 좋겠어요. 그래서 그 중간에 한 번에 한국 교회 가 지키는 것이 맥 주 감사 절이 되게 된 거예요. 어쩌면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쯤 감사 절을 지키는 것도 좋을 수가 있습니다. 있습니다만, 너무 많이 하다 보면 힘드니까, 그렇게 해도 이런 기회라도 오늘만이라도 하나님 께 감사 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오늘 읽었던 본문을 읽었습니다만, 구약 성경에 기록된 감사 에 쭉 정신을 보면 여러분, 실제로 맥추절, 오순절, 칠칠절, 장막절, 다 사실 추석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왜 하나님 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 께 감사 의 절기를 지키라고 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레위기 19절에 보면 나오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 께 감사 하는 절기를 지키라 그랬잖아요. 그렇죠? 맥추절에 절기를 지키라, 수상절에 절기를 지키라, 오순절에 절기를 지키라, 다 추석과 관련돼 있어요. 왜 이런 절기를 지키라 했을까요? 그게 감사 절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거죠.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많은 신을 섬기면 섬길수록 좋다고 하는 다신교였어요. 여러 신들을 섬기면서 그 신들이 충돌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모든 신은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어요. 어떤 신은 비를 내려주고, 어떤 신은 바람을 내려주고, 그래서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 믿었던 것이 바로 추수를 얻게 된 것은 바알과 아세라가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 의 산물이라고 보았어요.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은 신들도 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아시다시피 바알은 남성신이고 아세라는 여성신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남성신과 여성신을 있게 하며, 마치 동물도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놓듯이 그렇게 해서 추수를 가져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바로 바알신이 추수를 일으켜준다고 믿었던 겁니다. 추수를 어떻게 가져옵니까? 바알신의 은덕이라고 믿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곳에 살게 될 백성들에게 하나님 께 추수에 대해서 감사 하는 말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을 주시는 분은 다가 아니라 하나님 인 것을 고백 하는 의미입니다. 비를 내려주고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이 그 신들이 아니라, 가나안 땅의 신이 아니라 하나님 께서 하신 일임을 고백 하는 것이 추수에 대한 감사 의 진정한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기록되어 있죠,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 어떻게 했습니까? 가나안 땅의 신들이 비를 내리게 해주고 바람을 불게 하고, 다 그렇게 믿지 않았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 께서 하신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 신명기 11장 14절이에요. 신명기 11장 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히 내리시리니" 비를 내린 분이 누구라고 말합니까?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 을 고백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얻는 추수의 결실들은 내 능력이나 내가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께서 주신 은혜 , 산물이에요. 여기 있는 중에 직접적으로 농업의 종사 분이 별로 없을 것인데, 있다 하더라도 내가 어떤 것을 무슨 일을 하든지, 추수 감사 주일을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모든 우리가 얻은 결실이 내 능력이나 내 힘의 소산이나 내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께서 주신 것을 고백 하는 것이 감사 의 첫 번째 정신입니다.
여러분, 농사지을 때 다 끌어가면 토지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포도원에 과실을 다 따가지고 가면 포도원에 과실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포도 맛을 볼 수 있겠습니까? 추수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하나님 의 잔잔한 사랑 을 볼 수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왔던 펄벅, 알고 계시죠? 펄벅의 부모가 중국의 선교사였어요. 그래서 펄벅이 중국에서 출생했잖아요. 중국에 살다 보니까 중국의 역사 문화도 잘 알게 되니까, 중국의 땅을 향한 중국인의 애정을 배경으로 한 대지 소속의 뜻이지 않았어요? 이분이 우리나라에 제일 처음 와서 한국을 사랑 하게 됐다고 그래요.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 때 그때 추석이었습니다. 농사를 다 짓고 추수한 것을 우마차, 구르마라고 그러잖아요. 싣고 다 돌아오는데, 저는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정말 농사 짓고 살 걸 다 보았잖아요. 그런데 농사 다 짓고 추수한 것을 가지고 다 올 때 주인도 그냥 가지 않고, 말 못하는 동물에게만 과도한 짐을 지우지 않고 주인도 지게 지고 가잖아요. 이런 거 보셨죠? 이걸 보고 펄벅이 감동을 받았어요. 말 못하는 동물에게만 과도한 짐을 지우고 주인은 빈손으로 빗물을 가지고 잘라도 짐을 나누어 가는 걸 보고, 동물까지도 배려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보고 펄벅이 감동을 받아서 펄벅이 쓴 작품에 보면 "흔들리는 갈대는 한국이다"라는 소설책을 썼는데, 그 제일 앞에 보면 "한국은 동양의 보석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두 번째, 이분이 한국에 왔을 때, 옛날에 조선일보에 있었던 이규태라는 논술위원과 그 분은 경주를 방문하기 위해서 안강을 지나가는데, 그때도 가을이었다고 그래요. 늦은 가을인데 집안에 감나무가 있는데, 감을 다 딴다고 몇 개 남아있는 거예요. 펄벅이 물었대요. "왜 저 감을 다 안 따고..." 남겨놨습니까? 이게 됐어요. 설명이 됐어요. 저게 까치밥입니다. 곡식을 뵐 때 다 걷어가지 말고 일부를 남겨두고, 보통은 가와시를 딸 때도 다 걷어가지 말고 일부를 남겨두라 했더니, 이 말씀 속에는 토지를 가지 못한 사람들, 고아와 과부들, 나그네들, 한국인들, 타국인들,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 의 큰 사랑 의 배려가 기록되는 것입니다. 초수 감사 주의의 세 번째 정신은 독점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서 기뻐하는 절기가 초수 감사 주의의 진정한 절기입니다. 감사 주의를 맞을 때마다 내가 얻은 것으로, 내가 많은 것을 얻었다고 그렇게 감사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은 것이 적은 것을 할지라도 감사 할 뿐만 아니라, 내 만큼 얻지 못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사랑 을 베푸는 것이 소주 감사 절의 진정한 정신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을 백성들에게 가난 땅에 들어가서 할 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1년 동안 뒤돌아볼 때 정말 감사 한 일이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도합니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간밤 잘 자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여러분, 여기 여러분들도 간밤 잘 주무셨죠? 아침에 6시, 오후 5시, 새벽에 4시 반에 일어나면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0명 중에 3주 오면 4명 정도가 편안하게 잠을 자지 못해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 주변에도 지금도 불면증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만히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감사 한 일이에요. 제가 아는 나이 많은 분이 계시는데, 아침에 소변을 못 봐요. 소변을 보긴 봤는데, 아파서 소변을 못 봐요. 우리 아침에 일어나서 자연스레 화장실을 가죠. 우리가 사는 자연스러운 일과 같은 이것이 다 따져보면, 이대로 보면 감쌀 것 밖에 없어요. 감쌀 수밖에 없어요. 이런 병원에 가보십시오. 뒤돌아보면 감사 한 것뿐이에요. 그렇게 감사 하고 살아도 부족한 우리들이기 때문에, 미국 교회 가 지키는 추적하면서 주의할 때 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고, 하나님 께 감사 하는 기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절기를 행사를 지키고 있는 거예요. 뒤돌아보면 다 감사 한 것뿐입니다. 여러분, 제일 크게 하나님 께 감사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뭡니까? 수천만, 수만 명 중에 우리를 하나님 의 백성을 삼아주시고, 예수 믿게 해주시고, 구원 의 반열에서 살게 해준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 한 일 아닙니까? 죽음의 임박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도해도, 전도 보고 되고, 되찾고 있어요. 제 처가 어떤 사람을 전도하려고 몇 번 방문하고 있는데, 고충을 갔는데 그런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도할 때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사시길, 얼마나 감사 한 일이냐는 거예요.
우리 감사 의 죄를 지키면서, 지금까지 늘 감사 한 삶을 살았지만, 앞으로도 변함없이 늘 감사 한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청교도들이 풍요로운 산출 때문에 감사 한 것이 아니고, 한 사람에게 옥수수 두 톨씩 하나 주면서도, 그걸 가지고도 하나님 께 감사 했던 이 정신이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정신입니다. 날마다 이 땅에 사는 날까지 감사 하며 사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 과 은혜 가 충만해진 아버지 하나님 ,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감사 한 삶을 살게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이곳에서도 여러 교회 가 있지만, 정말 말씀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비전 중앙 교회 의 성도들 되게 하시고, 바른 신앙 의 훈련을 받고, 가르침을 받고, 양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하나님 , 기뻐하는 좋은 교회 를 세우게 돼, 우리 주변과 기장과 부산, 한국 교회 의 큰 모범을 보이는 교회 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삶이 감사 로 충만한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