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드는 손, 만능 손
김영일
나는 영원한 남편의 조수다. 사람들은 보통 조수라고 하면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잘하는 사람 옆에서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조수라고 하니까. 손발이 잘 맞는 조수가 없다면 명장 이라든가 명인도 없을 것이며 모든 일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혼 한지 몇 십 년이 지났어도 지금도 남편이 만능 손을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
42년 전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학교 개학에 맞춰 먼저 들어간 남편을 두 달 후에 미국으로 뒤따라 들어왔다. 한국은 이른 초겨울 날씨로 무척 쌀쌀했는데 엘에이는 마침 우기라서 매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는 남편의 손재주가 어떤지 모를 때였다. 하루는 퇴근하고 와서 저녁을 먹다 받은 둘째 형님의 전화에 운영하시는 인쇄소를 다녀와야 하는데 같이 가겠냐고 하여 쫒아 나갔다. 갑작스런 인쇄기계의 고장과 고칠 수 있는 수리기사가 바로 올수 없다며 혹시나 하고 연락을 하신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그런 기계 수리의 전문인도 아니었지만 일단은 가서 살펴봐야겠다고 했다. 이런저런 연장과 손전등 까지 준비하고 가게 됐다. 인쇄기계의 앞 뚜껑을 열고 찬찬히 살펴보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불빛을 비춰 주는 것 뿐 이었다. 결국은 더듬더듬 하며 몇 시간 동안 애쓴 결과 간신히 기계를 고치고 왔다. 밖으로 나오니 밤늦은 시간까지 가랑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이제까지의 조수의 삶이 시작 된 계기다.
신혼 초부터 내가 본 남편은 무슨 일이던 꼼꼼히 자세히 살펴보고 연구하는 사람 인듯했다.
뭐든지 고장 나고 못쓰게 된 것도 그의 손을 거치면 멀쩡하게 되살아난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 집에서나 조카들한테도 늘 인기가 좋았다. 심지어는 아는 지인이나 이웃사람 까지도 전부 찾아온다. 고장 난 물건을 고치거나 할 때는 항상 내가 옆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덤으로 고급 조수가 되어 버렸다. 못쓰게 된 물건 뿐 인가. 집에 자잘하게 고장 나는 것 또한 전부 그 손을 거쳐 다시 한 번 유효기간을 늘리게 된다.
나중에 버릴지라도 일단은 아무것도 버리지를 못하게 한다. 고쳐봐야 직성이 풀린다.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 된 금성 소형 냉장고도 잘 돌아가고 있고 몇 십 년 된 연장도 많다. 핸디맨이 하는 일도 목수가 하는 일도 전기기사가 하는 것도 모두 접수다. 뒤뜰로 나가는 패디오의 목재가 터마이트로 인해 많이 상했었다. 친구 한 분과 일주일 만에 전부 새 나무로 패디오를 만들었다. 그 후에도 집 입구에서 뒤뜰로 들어오는 옆문도 재목을 사다 새로 제작했다. 물론 나는 일등 조수가 되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은퇴 후 그동안 장모님이 재미로 일구던 뒤뜰 농사도 접수했다. 지난 4년간 수확한 호박이 무려 829개다. 내가 기록해 놨지만 믿지 못할 정도다.
이웃에 새로 이사 온 은퇴목사님 부부도 단골이 됐다. 싱크대 분쇄기며 갑자기 서버린 큰 냉장고 등등. 뭐든지 물어 보시라며 봉사 중이다. 우리 집보다 먼저 이사 온 김 선생 댁에는 여행 전문 컨설팅 에이전트다. 풍경사진을 찍으러 얼마나 여러곳을 많이 다녔는지 눈감고도 척척이다. 앞집 중국 친구도 플러밍, 페인트에 대해서 자문을 구한다. 손으로 고치는 것 외에도 무엇이든 ‘물어보살’ 이다. 심지어는 시애틀에 사는 친구도 비디오 콜로 보여주며 해결책을 찾는다. 은퇴 전에도 바빴지만 지금 훨씬 더 바쁘게 지낸다.
만능 손, 따뜻한 마음과 봉사의 타고난 인성을 가진 남편, 그리고 맞드는 손을 가진 나는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어쩌랴 그게 바로 그 사람인 것을. “당신은 하루에 한 가지 이상 고치지 않거나 누구를 돕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생길걸요” 하는 나의 놀림도 빙긋 웃는 그이를 미워 할 수가 없다.
첫댓글 사진만 잘 찍으시는지 알았는데 만능손을 갖고 계셨네요.
주위에 사랑으로 망가진 것들을 쓸 수 있게 베푸시니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귀한 가정이네요.
남편의 손 발이되어 푸근한 엄마같은 마음으로 나누어주는 영일샘도 정말 좋아요.
물어보살님과 함께 매일 행복한 삶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