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혼자일 때 비로소 세상 속에 살면서도 늘 아웃사이더로 있으리라.

[Modulight]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노승이 찾아왔다. 몸은 건강해 보였으며, 삭발을 하고, 사프란색 법의를 입고, 몇 년째 갖고 다니던 지팡이에, 닳아빠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우리는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오른편엔 철교가 위쪽으로 뻗어 있었고 왼쪽엔 강물이 큰 곡선을 그리면서 굽이치며 흘렀다. 그날 아침 둑 건너편엔 안개가 짙게 끼어서 숲 꼭대기만 겨우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드넓은 강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였다. 바람 한 점 없었고 제비들은 수면에 낮게 깔리면서 날고 있었다. 그 강은 매우 깊고 신성한 존재라서 사람들은 그 둑 위에서 죽거나 화장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 그 강은 찬양과 숭배를 받는 가장 신성한 존재였다. 온갖 오물들이 강물 속에 버려져 있었다. 당신은 사람들이 둑 위에서 명상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눈을 감은 채 꼿꼿하게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강은 인간을 풍요롭게 해주었지만 사람들은 강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장마철엔 가끔 강물의 수위가 5~10미터 올라가 온갖 오물을 씻어내면서 대지를 기름진 흙으로 덮어 둑 가에 사는 농부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강물은 세차게 굽이치며 흘러갔는데, 가끔 격류에 의해 뿌리째 뽑혀 떠내려가는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또 독수리와 까마귀떼가 동물의 시체 위에 먼저 앉으려고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어떤 때는 인간의 팔이나 다리, 심지어 시체가 통째로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날 아침 강은 너무나 사랑스러웠으며 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 태양이 중천에 떠서 몆 시간씩 비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강은 무슨 신비한 존재나 되는 것처럼 흐르고 있었다. 노승은 그 강에 매우 익숙해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몇 년간을 강둑 위에서 지냈기 때문에 강이 늘 거기에 있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또 인간이 살아 있는 한 강 역시 살아 있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 강에 익숙해 있던 탓인지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엔 연민이 감돌았다. 지금 그는 수천 번이나 보아왔던 그 눈으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은 미추에 익숙해진 탓인지 하루의 신선함을 간과한다.


노승은 다소 권위주의적인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왜 도덕과 우리가 가장 신성시하는 경전에 반대하는 겁니까? 아마도 제멋대로 자유를 구가하느라고 진정한 규율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소수를 제외하곤 전혀 알지 못하는 서양이 당신에게 해독을 입혔으리라 보오. 분명 당신은 우리들이 신성시하는 경전을 하나도 읽지 않은 것 같소. 나는 전날 아침 당신이 얘기할 때 이 자리에 있었소. 그런데 나는 당신이 신, 성직자, 스승 등에 관해 얘기하는 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소. 그런 분들 없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이오? 만약 그렇게 살아간다면 인간은 유물적이고 세속적이고 지독히 냉혹한 존재가 되고 말 거요. 또 당신은 우리가 가장 신성시하는 지식을 전부 거부하는 것 같소. 그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당신이 진지하다는 걸 알고 있소. 우리는 몇 년 동안 먼발치서 당신을 추종해왔소. 우리는 당신을 형제로서 지켜보고, 당신을 우리와 동류로 생각했소. 그러나 당신이 이 모두를 버린 탓으로 우리는 서로 남이 되고 말았소. 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건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이오."


무엇을 신성하다고 하는가? 사원의 신상이나 상징, 낱말이 신성한가? 어디에 신성이 있는가? 나무에 있는가? 아니면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는 저 농부 아낙네에게 있는가? 당신은 자신이 신성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신성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사람의 손이나 마음으로 조각한 저 신상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 아낙네, 저 나무, 저 새 등 살아 있는 것들은 당신에겐 일시적인 소중함밖에는 없는 것 같다. 당신은 삶을 신성한 것과 신성치 못한 것,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으로 분리한다. 이 분리가 폭력과 불행을 낳는다. 일체가 신성하든지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신성하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당신이 말한 내용, 당신이 구사한 낱말들, 당신의 사고, 당신이 읊조린 영창이 진지하든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마음을 일종의 위안 속에 빠뜨리는 환상이 됨으로써 결국 전혀 진지하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이다. 신성한 무언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고가 구축한 말이나 신상, 조각 등에는 없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이 얘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해 중간에서 말을 가로챘다.
"우리는 진정 무엇이 신성하고 무엇이 신성하지 않은지를 논의하는게 아니오. 그저 당신이 왜 규율을 비방하는지를 알고 싶소."


흔히들 이해하고 있는 규율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제재방식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 순응은 모방과 억압 또는 현실 상태에 대한 일종의 초월을 내포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 규율 속엔 분명히 마음의 특성을 왜곡하는 끊임 없는 투쟁과 갈등이 있다. 보상을 약속하거나 희망을 주었기 때문에 사람은 순응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사람은 스스로를 규제한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복종하고 감수하는데, 그 패턴-은 권위적으로 되어간다. 이 패턴 속엔 전혀 자유가 없다. 진정한 규율은 배우는 것을 의미하고, 배움은 모든 권위와 복종을 거부한다. 이 모두를 보는 것은 분석적인 과정이 아니다. 규율의 전 구조에 포함된 의미를 보는 것 자체가 규율이며, 그것은 이 구조 전체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배움이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규율의 구조와 그 본성을 '즉각' 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규율인데, 까닭인즉 이때 당신은 배우고 있지 순응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뜻이오? 국가의 권위도 무시한다는 뜻이오?"


물론 아니다. 국법이나 경찰법은 뜯어 고치기 전까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차선을 따라 운전해야지 차선을 어기면 다른 차들과 충돌한다. 교통규칙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면 - 은밀하게는 멋대로 행동하지만 - 극심한 혼란이 일어날 텐데, 사실 그러한 혼란 상태에 있다. 사업가, 정치가,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체면의 허울 아래서 자신의 은밀한 욕망과 소원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것이 세상에 혼란을 낳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일시적인 법과 규제 등으로 덮어버리고 싶어한다. 이건 자유가 아니다. 현대나 고대의 경전을 지닌 사람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그 경전들을 반복하여 외우고, 노래로 읊고, 끊임없이 인용하지만 가슴속은 여전히 폭력적이고 탐욕스럽고 권력을 추구한다. 도대체 이런 이른바 경전들이 중요할까? 경전들은 현실적인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인간의 극심한 이기주의, 끝없는 폭력, 증오와 반목이지 경전이나 사원, 교회, 모스크 따위가 아니다.

법의를 걸치고는 있지만 승려는 두려워하고 있다. 그에게도 욕심이 있으며 그는 그 욕망으로 불타고 있다. 법의는 단순히 이 사실로부터 도피한 것이다.

인간의 온갖 고통을 초월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어느 경전이 더 성스러운가 다투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것은 너무나 덜 떨어진 짓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전통마저도 거부해야 하오.....그렇소?"

과거를 현재로 옮겨놓는 것이나 현재의 움직임을 과거의 용어로 해석하는 것은 현재의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파괴한다. 이 나라는 물론 거의 모든 나라가 전통의 무게에 짓눌려 있으며, 상류층이든 서민층이든 모두 그 틀에 얽매여 있다. 옛 전통이든 오늘날의 전통이든 전통에는 신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두뇌는 어제의 기억인 전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걸 두려워한다. 전통 속에서 우리는 안전성을 확보하지만 안주하는 순간 부패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짐 없이 아무런 노력 없이 즐겁게 여행해야 한다. 그 어떠한 성소나 기념비, 사회적, 종교적 영웅에도 한눈팔지 않고, 아름다움과 사랑을 간직한 채 홀로 가야 한다.

"우리 승려들이야말로 늘 혼자 아니겠소? 나는 세상을 버렸고 무소유와 순결을 맹세했소."

바로 그 맹세가 당신을 얽어매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건 결혼할 때 하는 맹세나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당신은 힌두교도이기 때문에 혼자가 아니며, 마찬가지로 당신이 불교도나 이슬람교도, 기독교도나 공산주의자였다면 역시 혼자가 아니었으리라. 이 같은 것들에 당신을 맡겼을 때 과연 혼자일 수 있을까? 그 자체의 활동을 낳는 어떤 관념 형태에 열중했을 때 과연 혼자일 수 있을까? '홀로'라는 낱말 자체는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는 걸 뜻한다. 당신이 혼자일 때 비로소 세상 속에 살면서도 늘 아웃사이더로 있으리라. 홀로 있음 속에서만 완벽한 행동과 협동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나 전체적이기 때문에.


세속에서의 명상 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