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5월의 하순이다 아침 5시면 먼동이 터온다 한겨울 같으면 아직도 어두운 밤일 것인데 한낮의 날씨는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시골의 아침은 바쁘기만 하다.
밭에 심어야 할 것 들이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농사도 시기와 때가 있는 법 철이 지나고 나면 심어봐야 소용이 없다. 엊그제부터 참깨 모종을 심는데 많이 심어서가 아니라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심어야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심고 한낮의 햇살을 피해 오후 늦게 또 심고 나면 물을 주어야 한다. 물을 주고 나면 다시 흙으로 심은 자리를 덮어 주어야 하니 모종 하나를 심고도 손이 몇 번을 가는지 모른다. 아내는 벌써 밭으로 가고 나서야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천천히 일어나 산책길에 나선다.
산책길이래야 우리 산으로 가는데 산에는 온갖 과일 나무 감나무 밤나무 귤 에다가 앵두며 유자에 두릅나무 엄나무 더덕 도라지 여러 가지를 심어 두어서 봄이면 두릅을 따고 엄나무 순도 따기 위하여 사흘 걸어서 다녔던 곳이기에 눈을 감고도 갈수가 있다고나 할까 집에서 거리가 몇 분이 안 걸리는 500m정도이기에 더 더욱이나 산책길로는 이 만한 곳이 없다 벌써 빨간 앵두가 익어 가는 계절이다.
이렇게 산에 오르고 나면 산과 딸려 있는 바다가 있어 더 좋기도 하는 우리산은 나에게는 보물단지와 같은 곳이다. 그 작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빠금히 내미는 작은 꽃잎들이 앙증맞기도 하고 저 큰 풀들을 헤집고 어떻게 꽃잎을 피웠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요즘은 산에 갈 때도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가야만 한다. 풀숲도 짙어지고 혹시라도 뱀이라도 나올까 봐서 등산화에 지팡이까지
동백꽃에 진달래 산 벚나무 꽃이 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 한번 참 빠르기도하다. 온산이 짙은 녹음으로 물들어 바람결에 푸른 잎을 살랑거리고 산 까치가 반겨 울어주는 날이면 더없는 행복감에 젖어들고 마는 것이다. 그것도 산책길이라고 이마에 땀이 송실 송실 맻힐 때면 바다가 그늘에 내려앉아 잠시 쉬고 나면 뜨거운 햇살도 바람이 다 녹여 내리고 찰랑이는 파도 소리에 흥얼거리는 콧노래는 나도 모르게 물 나간 개펄의 낭만을 꿈꾸어 본다. 소라 고동 낙지 돌계 아낌없이 내어만 주는 바다. 겨울이면 매생이 감태 까지.
아내는 지금도 참깨 모종을 심느라 고생하고 있을 텐데 나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한가하게 세상 구경이나 하고 있으니 허기는 일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프지만 말라는 아내의 그 말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말이던가.
나 역시 아프고 싶어서 아프겠는가마는 요즘 애 이곳저곳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모두가 나이 탓이겠지 하면서도 제 몸 관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내가 바보인 것 같기도 하다.
불과 몇 년 전에 심어둔 과일 나무들은 벌써 자라서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데 저 나무들도 늙으면 나처럼 병들고 허물어지겠지 싱싱한 지금 너희들을 보면 꼭 지나온 내 청춘을 보는 것만 같구나.
하늘가 떠가는 구름 한조각 내 마음을 아는 듯이 손짓 하는 것만 같다 빨간 앵두 한 알 입에 넣어본다 새콤달콤 내 살아온 인생살이도 새콤달콤했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아내의 전화 더없이 반갑기도 하다 어디서 뭐하고 있어 빨리 와, 응, 그래 달려갈게 . 해님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녘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