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람들이 조선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딛었을 때에 그들은 조선 사람들에게 큰 구경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키는 크고, 머리 털은 노랗고, 얼굴은 하얗고, 눈은 파랗고, ...조선인들이 보기에 얼마나 신기했을 것인가?
하루는 서양 사람 하나가 통역관을 데리고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조선 사람이 이 서양 사람을 보더니 "감자나 먹으라"고 하면서 주먹쥔 팔을 내밀었다.
아마 당시엔 나라에서도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던 때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서양 사람은 통역관한테 저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통역관은 그것이 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민망했다. 그래서 "당신을 환영한다"는 뜻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이 서양인은 매우 좋아하면서 자기도 그들을 향해 주먹쥔 팔을 연신 내밀었다는 것이다.
통역관은 서양인의 이러한 행위는 여러분이 반갑다는 뜻이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이래 저래 양편은 서로 웃으면서 주먹질을 하였을 것이니, 이렇게 인식이 다르면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얼마든지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정월 보름이 되면 밤 하늘에 두둥실 커다란 달이 떠오른다. 그 달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겨우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계수 나무 아래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상상을 할 것이고,
조금 더 큰 아이는 강위를 두둥실 떠가는 배를 상상할 것이다.
어른 들 중에서도 생각이 다르다.
젊었을 때, 달빛 아래서 나무에 기대고서서 연인과 정담을 나누던 사람들은 그 당시의 연인을 떠올릴 것이다.
필자 같은 경우에는 뜬금없는 소리 같을지 모르지만 풍악소리와 신명나게 노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날엔 온 동네사람들이 꽹과리를 치고, 장구를 치면서 놀았던 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보면, 신명나는 풍악놀이가 떠오른다.
이것을 볼 때, 주관적인 인식 혹은 관념이라는 것은 천차 만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식이라는 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어떤 학습을 했느냐, 또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관적인 인식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 즉 <허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각은 다르다.
조선인에게와 서양인에게 하얀 종이와 연필을 주면서 주먹진 팔을 그리라고 하면, 그들의 눈으로 본대로 <주먹쥔 팔>을 그릴 것이다.
또 어린아이나 어른들에게 정월 보름달을 그리라고 하면 그들이 평상시 눈으로 본 그대로 어두운 <밤하늘에 <둥그렇고 환한 달> 하나를 그릴 것이다.
그렇다.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의 달을그린다. 이것은 마음이 슬픈 사람이건, 기쁜 사람이건,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지각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지각은 인식보다 정직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각보다 인식을 더 신뢰하게 되면, 성경도 자기의 인식(관념)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게 된다.
잘못된 인식은 그만큼 위험하다.
<출처 : 청골산 봉서방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