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저리 못 잊어 대문 앞 양지쪽에 쪼그려 앉아 있는 걸까. 큰길을 응시하는 눈길이 힘이 없다. 엉클어진 머리칼이 길을 쓸고 가는 산들바람에 나풀댄다. 머리를 빗지도 않는 얼굴에는 듬성듬성 검버섯이 피어있다. 딱지처럼 흩어진 검버섯이 연륜을 짐작 하게한다.
지금 어머니는 황혼의 길을 느릿느릿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무거운 세월을 이고 왔듯 잔뜩 꼬부라진 허리 옆에는 생기 있게 꽃방석을 펼친 민들레가 방시레 웃고 있다.
대문을 열고 나오면 숨 막히게 열매를 매단 자두나무가 화사하다. 텃밭 건너편에는 직선으로 넓게 펼쳐진 길이 보인다. 그 길로 가끔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가 대문 앞에 자리를 잡은 건 텃밭 자두나무 때문이었다. 나뭇가지가 찢어지도록 매달린 열매들을 사람들이 주인 몰래 따가면서부터 생긴 일이다. 자두나무가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매달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뭇가지를 뒤덮은 하얀 꽃들이 벌들의 노랫소리에 묻혀 술렁거릴 때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꽃이 지고 손톱만한 열매가 나뭇가지가 비좁도록 주렁주렁 달린 후에야 예감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것이 달라보였다. 반지르르한 자두의 빛깔이 울긋불긋해지더니 크기도 주먹만하게 변했다. 맛도 설탕을 설탕을 들어부은 것처럼 혀끝을 새콤달콤하게 적셨다. 거름을 퍼붓지 않고 농약조차 치지 않았는데도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것을 보고 적잖이 놀랬다. 길을 오고 가던 사람들이 자두를 보고 유혹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대문가에 자리를 잡고 자두나무를 지키는 것도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을 제지하기 위해서다. 자두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어머니가 이렇게 한가한 날은 없었다. 훈풍이 불고 꽃향기 상큼한 날에는 텃밭에 나와 부지런히 일손을 움직였다.
어머니가 시골 생활을 접고 대전에 피폐한 육신을 풀어놓았을 때 이 텃밭은 어머니와 함께 고스란히 한 시절을 보냈다. 시골에서 평생을 농사일로 잔뼈가 굵은 어머니는 텃밭이 주는 고마움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시골의 그 많은 전답을 거친 노동으로 이겨낸 후라 손바닥만한 텃밭이라도 있어 적적함을 달랠 수 있었다.
텃밭에서 꼬물꼬물 일을 할 땐 영락없는 농군이었다. 호미를 꼬나 잡고 고랑의 잡풀들을 콕콕 찍어내며 씨앗을 파종하고 채소도 옮겨 심었다. 치마를 훌렁 걷어 부치고 흙투성이 맨발로 밭고랑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발길에 눈살을 찌푸린 일도 있었지만 그것이 적적함을 이겨내는 어머니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넓은 마당에 텃밭 딸린 이 집을 전원주택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노후에는 따로 전원주택을 마련하지 않고 이 집에서 계속 살아도 좋겠다는 속편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도심의 외곽지대라 시골스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골목으로 연탄을 실은 리어카가 드나들고 집집마다 낡은 기와지붕위로 감나무 한주씩 솟구쳐있는 풍경이 시골과 다름없었다. 골목에 나와 장난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감나무 가지에 걸려 나풀거리면 어디선가 장닭의 홰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북잡한 도시생활과 답답한 아파트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 옛날 시골집에서 살았던 향수를 추억하곤 한다. 그래서 요즘들어 귀농귀촌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숨 막히는 도회를 피해 한적한 시골에서 꿈같은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 탓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전원의 즐거움을 손쉽게 생각하고 귀촌한 사람들은 늘 맞닥뜨리는 고독과의 싸움을 감내해야 한다.
고독에 지쳐 되레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현실에서의 전원생활은 더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한다. 주변에 집이라고 있고 대화 상대라도 있어야 그나마 전원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걸로 따지면 지금 살고 있는 우리집은 시골집 못지않는 즐거움과 여유를 맛본다.
황혼 무렵까지 대문가에 쪼그려 앉은 어머니가 여전히 큰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생기 잃은 눈동자 속으로 자두나무의 열매들이 붉은 알전구처럼 일렁인다. 주먹만한 열매는 싱싱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았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자두나무가 시련을 겪는 게기가 되었다. 어쩌다 자두 맛을 본 사람들이 단맛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주인 몰래 자두를 따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텃밭에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어 큰길에서 손만 내밀어도 누구나 쉽게 자두를 딸 수 있었다. 한두 개 정도 따서 맛을 보는데 야박하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쳐도 “할머니 한 개만 따갈게요” 하면서 넉살좋게 자두를 따 종종 걸음을 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눈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평소에는 온순하던 얼굴도 그때만은 얄궂게 변해 주름투성이 입에서는 연신 험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두 하나에 웬 타박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 어머니의 철칙 같았다. 시골에서 뼈 빠지게 농사일을 해서 근근이 다섯 남매를 키운 어머니로서는 뼈 빠지게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은연중에 자두 하나라도 아끼는 지독한 욕심으로 변했다.
그러나 난 어머니와 달랐다. 그까짓 자두 하나 남에게 주었다고 자두가 전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주고받는 사람 모두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더욱이 골목에서 마주치며 익힌 얼굴들이라 더했다. 그래서 주인 몰래 자두를 슬쩍하는 것을 보고도 못 본척했다.
어쩌다 집에 앉아 있으면 담장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넘어왔다. 텃밭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자두나무를 잡아당기는 소리, 까르르 웃는 소리, 후다닥 도망치는 소리가 함께 뒤섞여 들려왔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불만은 늘어났다. 저렇게 아까운 자두를 사람들이 몽땅 따간다며 펄쩍 뛰었다.
그날부터 어머니가 대문을 열고 나가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틈만 나면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어머니를 겁내지 않았다. 땟국물 절어있는 옷에다 반백의 헝클어진 머리를 날리며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은 초라한 몰골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빤히 쳐다보는 데도 제 것처럼 자두를 따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어머니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주름투성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망할 놈들”
물기 다 빠진 새털구름이 하늘을 밀고 가는 한낮, 텃밭을 쓸고 가는 바람이 어머니의 백발을 흩트려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