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창(耳瘡)
입재(立齋)가 이르기를 "이창(耳瘡)은 소양(少陽) 삼초(三焦)의 경(經)에 속(屬)한다.
족궐음(足厥陰) 간경(肝經)의 혈허(血虛) 풍열(風熱)이거나 간경(肝經)의 조화(燥火) 풍열(風熱)이나 신경(腎經)의 허화(虛火) 등으로 인한다.
만약 발열(發熱) 흔통(焮痛)하면 소양(少陽) 궐음(厥陰)의 풍열(風熱)에 속(屬)하니, 시호청간산(柴胡淸肝散)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내열(內熱) 양통(癢痛)하면 두 경(經)의 혈허(血虛)에 속(屬)하니, 당귀천궁산(當歸川芎散)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한열(寒熱) 작통(作痛)하면 간경(肝經)의 풍열(風熱)에 속(屬)하니, 소시호탕(小柴胡湯)에 산치(山梔) 천궁(川芎)을 가한 것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내열(內熱) 구건(口乾)하면 신경(腎經)의 허화(虛火)에 속(屬)하니, 가미지황환(加味地黃丸)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불응(不應)하면 가감팔미환(加減八味丸)으로 하여야 한다.
나머지는 당연히 증(證)을 따라 치(治)하여야 한다."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설씨(薛氏)가 이증(耳證)을 치(治)할 때 기허(氣虛)하면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에 산치(山梔) 황금(黃芩)을 가한 것으로 하고, 혈허(血虛)하면 팔진탕(八珍湯)에 시호(柴胡) 단피(丹皮)를 가한 것으로 하며, 간화(肝火) 혈허(血虛)하면 치자청간산(梔子淸肝散)으로 하고, 노(怒)로 간화(肝火)를 동(動)하면 가미소요산(加味逍遙散)으로 하며, 간비(肝脾)가 상(傷)을 입으면 조(朝)에는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으로 하고 모(暮)에는 가미소요산(加味逍遙散)으로 하였으니, 이것이 그 치(治)의 대약(大約)이다.
내가 일찍이 어떤 유생(:儒者)을 치(治)하였는데, 나이가 거의 30세이었다. 평소에 이병(耳病)이 있어 매년 항상 발(發)하고, 발(發)하면 반드시 종(腫) 궤(潰)하였다. 을해년(乙亥年) 2월(月)에 그 발(發)이 심(甚)하게 되었으니., 이근(耳根)에서 아래의 경항(頸項)까지 연(連)하였고, 위로 두각(頭角)에 연(連)하였으며, 이전(耳前) 이후(耳後) 모두가 종통(腫痛)하지 않음이 없다.
제의(諸醫)가 치(治)하되 산풍(散風) 강화(降火)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1개월 후에는 조(稠)한 농(膿)과 선(鮮)한 혈(血)이 이(耳)에서 번갈아 출(出)하니, 매 2~3일마다 반드시 1 술잔(:酒鍾) 정도가 출(出)하였다. 그런데 농(膿)이 출(出)하여도 종(腫)이 전혀 소(消)하지는 않고 통(痛)이 전혀 감(減)하지는 않아, 베개(:枕)를 가까이 할 수조차 없고 식(食)을 더할 수도 없었으니, 기체(氣體)가 모두 곤(困)하여 스스로 그 위(危)하다고 분별(:分)하고는 나에게 치(治)하여주기를 청(:延)하였다.
그 형기(形氣)를 살피니 이미 대(大)하게 부족(不足)하였고, 그 병체(病體)를 살피니 종통(腫痛)이 여구(如舊)하게 유여(有餘)한 듯 하였으며, 그 맥식(脈息)을 살피니 혹 현급(弦急)이 나타나고 혹 완약(緩弱)이 나타났으니, 이는 실열(實熱)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맥(脈)이 심(甚)하게 긴(緊)하지는 않고 간혹 시(時)로 완약(緩弱)하여 또한 궤양(潰瘍)의 맥체(脈體)를 얻었으므로, 치(治)할 수 있는 것에 속(屬)하였다.
먼저 육미탕(六味湯) 2~3제(劑)로 하니, 원기(元氣)가 다소 진(振)한다. 이어 일음전(一陰煎)에 우방자(牛蒡子) 복령(茯苓) 택사(澤瀉)와 백질려(白蒺藜)를 배(倍)로 가하여 군(君)으로 한 것을 50여 제(劑) 복용하고, 외(外)로는 강옹산(降癰散)을 주야(晝夜)로 부(敷)하여 치(治)하니, 2개월 후에 다 나았느니라.
이 증(證)은 비록 궤양(潰瘍)의 유여(有餘)와 비슷하지만 실은 간신(肝腎)의 부족(不足)이니 상실(上實) 하허(下虛)한 일종의 기증(奇證)이다. 따라서 이렇게 적어서 알리는 것이다.
(신안(新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