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3장 1절~17절 메시아 왕국을 준비합시다
세례 요한이 메시아 왕국의 출현을 준비합니다. 요한이
나타나 유대 광야에서 말씀을 전파합니다. 이 시점은 요셉과
요셉의 가족이 나사렛으로 돌아온 지 25년 이상 지난 시점
입니다.
마태복음의초점은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로 옮겨집니다.
세례 요한은 주전 6년경에 둘 다 제사장 혈통이며 매우 연로한
경건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요한은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활동과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연결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회개'또는 생각을 바꾸는 일'은 구약에서 한
사람의 행동과 삶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을 향한 태도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전환즉 하나의 생활 및 사고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이라는 개념을 수반했습니다.
회개의 일반적인 외적 표시에는 뇌우침의 기도와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일이 포함되었습니다. 천국'이라는 말은 마태복음에서만
발견되지만 다른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하나님 나라와 바꾸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가까이 왔느니라 천국은 곧 성부의 사랑하는
아들로 드러나실 예수님, "천국이 가까이 왔으므로 친히 곧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하실 예수님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서 메시아와
메시아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될 만한 걸림돌을 제거할
것을 촉구합니다(1~2절).세례 요한 은 이사야 40장3절과 더불어
말라기서에 있는 여호와 앞에서 길을 예비하는 사자(말 4:5~6)에
대한 예언을 성취합니다.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요한의 겉모습은 하나님의 진노의 현현을 위한 길을 예비하러
돌아올 '엘리야'에 대한 예언의 이미지를 상기시켰을 것입니다.
요한의 옷은 사막에 거주하는 유목민에게 흔한 옷이었으며 따라서
극빈자들과 관련이 있었습니다.요한이 먹는 음식으로 메뚜기와
석청 이 음식들은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기드문 식량 공급원이
아니었습니다. 메뚜기는 오늘날에도 중동과 아프리카의 극빈자들이
먹는 큰 메뚜기를 말하고 있습니다(3~4절).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요한의 놀라운 선언은 도시 거주자들까지 광야로 끌어
냈습니다. 세례 주다'(헬라어 밥티조') 라는 말은 '밀어 넣다
담그다적시다'를 뜻하며 요한은 '요단강'에서 사람들을 물속에
담갔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을 때 물 아래로
들어가는 행위는 죄를 씻어내고 심판과 사망의 몸을 안전하게
통과하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의
상징적 표현에 있어서 완전한 침례가 요구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어려운 여행을 한 뒤 사람들은
자기들의 좌를 자복'함으로써 자신이 회개했음을 입증했습니다
(5~6절).요한이 바리세인들과 사두개인이 오는 것을 보고'바리세인'
은 보통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지역 회당과 관련되어 있으며 주로
광범위한 성경 외적 전통의 곳으로 특징 지어지는 평신도 공동체의
일원을 말합니다. 이들은 성경 외적 전통을 율법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수단으로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과
관련된 활동에서 자신들의 건의를 찾는 소수집단입니다. 이들은
로마의 통치에 협력할 뿐만 아니라 귀족계급과 제사장으로서의
영향력으로 인해 일반 백성들과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독사는 교묘한 움직임과 치명적인 공격으로 유명
했습니다. '임박한 진노' 오실 메시아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7절).독사의 자식들을 위해 요한이 외칩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 이 말은 강력한 메시아적 기대를 표현합니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요한은 천국의 가까움을 선포하지만 오실
이는 메시아적 통치를 시작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한의
물세례는 오실 이와 관련된 세례로 대체될 것입니다. 회개하고
그 오실 이를 믿는 이들은 성령의 복을 받겠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회개하는 자는 정결하게
하는 불을 경험할 것입니다(11절).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키'는 비유적으로 회개한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의
분리됨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말입니다. 추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예수님이 세례 받은 정확한 위치는
오늘날 논란거리입니다. 전통적인 세례 장소는 요단 강 서쪽 기슭의 '
카스르 엘 야흐두'입니다. 그러나 이 장소는 그 대신 요 1:28절에
언급된 것처럼 (비록 이 본문은 요한이 그 이전에 아마도 다른
장소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음을 의미할지도 모르지만) "
요단강 건너편 [즉, 동편] 베다니"와 동일시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사람들에게 한 곳 이상의 장소에서 세례를 베풀었을
것입니다(12~13절)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광야로
가시지만 요한이 예수님을 말리려 한 이유는 메시아적 세례를 베푸는
더 능력 있는 분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이며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절정에 이르는 구약 곳곳에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성취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또한 요한의 사역과 메시지를
승인하시며 자신의 사명을 요한의 사명과 연결하십니다. 예수님은 회개나
씻음이 필요 없으셨지만 자신의 대속적인 삶과 죽음을 통해 자신이 구원
하러 오신 죄악에 빠진 사람들과 일체가 되셨습니다(참조 고후 5:21).
(14~15절)."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이자 메시아로 기름 부으시며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의로운 '종'의
사명을 맡기십니다(참조 사 42:1).'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는 메시아
적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분뿐만 아니라 영원 전부터
존재했던, 성자와 성부가 공유하는 신적인 사랑의 관계를 확정합니다.
이 '사랑하는 아들'은 영광스러운 메시아 왕이지만 성부가 열방에
구원을 가져다줄 사명을 그 손에 맡기시기를 기뻐하는 겸손한 '종'
이기도 합니다(사 42:1~4) (16~17절)용기 있는 사역자 위선에 대해
과감히 지적함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
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바울과 디모데를 대적하는 이들은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실제적인 본질은 없습니다. '능력'이란
신자들의 삶 속에서의 삶 속에서의, 그 삶을 통한 하나님의 현재의
효력 있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경건"은 거룩함, 경외, 믿음,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포함한 진정한 경건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능력을
성령의 임재와 연결시켰고 이 능력은 고난을 통한 인내와 복음에 대한
신실한 변호를 가능케 했습니다.임박한 진노에 대해 경고함 욘 3: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4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니느웨는 하나님께
중요하며 하나님의 큰 긍휼의 수혜자가 될 것입니다. 니느웨는 '사흘
동안 길을 걸을 만큼', 요나 시대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니느웨 성의
원주도 직경도 사흘 길은 아니었습니다. 요나가 성 곳곳을 걸어 다니며
메시지를 전하는데 걸렸을 시간을 가리킬 것입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무너지리라"는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
시키신 일에 대하에 사용된 동사와 같은 동사입니다. 이 경고는 무조건
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회개하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실 것
이라는 한 가지 조건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요나는 이 조건이 포함된
것을 알았고, 왕은 그런 조건이 포함되어 있을 것을 소망했을 것입니다.
(3)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촉구함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베드로는 재림의 지연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긴 시간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그러한 지연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기도 하며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역사의 현시기를 금방 끝내시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모든 악의 패배를 갈망하지만 역사에 현 시기가
지속되는 한 사람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