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8. 09.
- 중국, 거대한 內需 시장 바탕으로 IT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선도
- 한국도 主力 산업 잡아먹힐 위기… 美·인도와 제휴해 中 견제해야
이정동 서울대 교수(산업공학)의 혜안(慧眼)대로, 중국은 '공간의 힘'으로 축적의 시간을 압축하고 있다. 고속철 도입 역사가 10년밖에 안 되지만 이미 102개국과 중국산 고속철 수출 계약을 맺었다. 그 힘은 불과 10년 새 1만9000㎞ 이상 고속철을 깔아 본 실전 경험에서 나온다. 이 교수는 "중국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원천은 넓은 내수 시장, 즉 공간의 힘으로 시행착오를 빠르게 축적하면서 개념 설계 역량을 기르는 데 필요한 시간을 압축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런 중국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중국산 반도체 1호를 선보였다.
반도체를 연간 2600억달러씩 수입하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마저 압축 성장하며 수입 대체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공포감이 든다. 이미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특허 출원 톱10 기업 중엔 중국 기업이 3곳이다. 굴뚝 업종이 아니라 휴대폰(화웨이·1위), 통신 장비(ZTE·2위), 디스플레이(BOE·7위) 같은 최첨단 정보 기술(IT) 기업들이다.
중국의 기술 추격에 놀란 미국이 '무역 전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임해온 미국으로선 체면 깎이는 선택이지만, '중국의 급부상을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무역 전쟁 지휘자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은 혐중파(嫌中派)로 유명하다. 그는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시절 쓴 저서, '웅크린 호랑이(Crouching Tiger)'에서 "중국이 온갖 반칙을 쓴 끝에 미국을 추월하기 직전"이라며 "무역 보복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취해야 할 명백한 정책 방향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무역 균형 재조정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들이) 국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성장 동력과 제조 기반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무역 전쟁에선 일단 미국이 승기(勝機)를 잡은 것 같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휘두를 관세 보복 카드가 무궁무진하지만, 중국은 실탄이 거의 바닥났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 절하로 맞서려 하지만, 급격한 자본 유출을 촉발할 수 있어 딜레마에 빠져 있다. 중국 권부에선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 참여해 하고 싶은 걸 한다)로 대외 전략을 섣불리 전환한 게 화근(禍根)이 됐다는 자성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 굴기는 이미 확대 재생산 궤도에 들어섰다. 이번 무역 전쟁에서 미국이 이긴다 해도 추격 속도를 늦출 뿐, 중국의 기세를 완전히 꺾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은 세계 질서를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맞서 '인도·태평양 전략' 벨트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일본·호주·인도와 손잡고 안보와 경제 전선에서 중국을 본격 견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에 거의 모든 주력 산업이 잡아먹히거나 추월 직전인 한국 경제로선 미국의 새 전략 구상에 올라타 미국·인도 중심의 글로벌 분업 체계에서 새 활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미국 원전(原電) 산업과 우리나라 원전이 서로 손잡는다면 원자력 대국으로 뜨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현대차 같은 제조 기업은 하이닉스(한국)-도시바(일본) 제휴 모델을 인도에서 구현해 대중(對中) 경쟁 구도를 짤 수 있지 않을까. 정책 당국자와 기업들이 'G2 산업 패권' 전장에서 우리의 선택안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홍수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