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어떻게 선별해 읽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놀랄 만큼 많은 시들이 발표되고 있다. 2014년판 『문예연감』을 보니 1년에 약 17,000편의 시가 발표되었고, 거기 시를 발표한 시인만도 약 2,600명 정도 된다. 이렇게 많이 발표되고 있는 시 중에서 상당수 시편들이 시의 기본을 익히지 못한 것들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시는 상당량의 몰입, 용맹정진의 과정을 거치면서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정치한 언어의 구조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라야 독자에게 공감되는 것이고 오랜 생명력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선 매달 1,200여 편의 시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셈인데, 상당수의 시편들이 왜 썼고, 왜 발표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가네
- 서정주 [동천]
좋은 시는 난해하지 않은 말로도 깊고 심오한 비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시는 쉬운 말로 써졌으면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깨달음을 준다. 시는 진술적 산문과는 판이한 존재양식으로 구조를 이룬 실체이다. 한 편의 시가 지니는 함축을 깊이 있게 꿰뚫어보고, 자신의 체험과의 접점을 찾으며, 시 자체가 지니는 말의 음성적 요소까지를 세세히 살피는 독자라면 이런 시의 秘意 앞에서 깊은 감동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마른 이불과 따끈따끈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
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역의 겨울밤
- 박후기[자반고등어]
슬픔과 정서가 금강석의 언어로 응축되어 있다. 박후기의 ‘자반고등어’의 경우 시의 표제와 시의 본문이 은유의 관계로 결합되면서 방대한 내포를 형성해내고 있다. 소금에 절여진 채, 큰 고등어가 보다 작은 고등어를 포개 안고 있는 한 손 간고등어와, 지하역 신문지 위에서 노숙하고 있는 부자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파생해내는 슬픔이 진한 공명으로 울린다. 이런 시가 담고 있는 현실이나, 사회 구조적 모순 등은 얼마든지 생짜 발언으로 표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과감한 생략과, 단절과, 비약을 선택함으로써 방대한 질량을 담은 짧은 언어 구조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이우걸[팽이]
나는 잘 쓴 현대시조에서도 현대시가 나아가야 할 향방을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곤 한다. 현대시의 시정신과 현대시조의 정제미가 일체화 될 때, 무잡한 한국현대시의 출구가 있지 않을까싶은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박재삼의 시조, 이근배의 시조들 중 현대시의 시정신과 현대시조의 정제된 형태의 수준 높은 융합을 본다.
푸른 눈동자의 여자가 있었네
가늘고 긴 휘파람을 불면
푸득푸득! 햇살을 털고 어느 사이엔가 내 곁으로 와 파도치던 여자, 밀주든 독주든 그득이 잔 치던 여자
정성껏 비늘을 걷어내고 껍질을 벗겨
한 점 두 점 제 살을 발라 밤새도록 내게 먹이던 여자
곤이며, 애며 남김없이 제 것을 다 주던 여자
그리하여 은빛 가시와 비린 뼈만 남은 여자
해풍이 불 때면 바다를 등지고 앉아 고개를 떨구던
그 여자
누나가 되어 날 쓰다듬어 주었고
아내가 되어 양귀비꽃처럼 활짝 웃던 여자
우리 모두가 붙어먹던 여자
목 타는 새벽녘엔 제 젖을 물려주던 여자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잠 재워주던 여자
잠 깨니 사라져 버렸네
별이 간 길 따라 떠나버렸네
입 안엔 아직 비린 기억이 꿈틀대는데
푸른 눈알 파먹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네
― 김요일 〈인어 이야기〉
소멸된 것, 사라져 버려서 이제는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최초의 자리로 복원시켜 보려는 염원은 모든 사람에게 간절한 것이 되게 마련이다. 그리움이 간절한 것일수록 소멸된 빈자리는 큰 것이 된다. 시인은 이제는 소멸되어 버리고 없는 그리움의 자리에서 곡진한 말들을 찾아내고 있으며, 그렇게 찾아내진 곡진한 말들이 ‘그 여자’를 불러낸다.
시인이 되살려 내고 있는 ‘그 여자’는 “한 점 두 점 제 살을 발라 밤새도록 내게 먹이던 여자/ 곤이며, 애며 남김없이 제 것을 다 주던 여자/ 그리하여 은빛 가시와 비린 뼈만 남은 여자”이며, “누나가 되어 날 쓰다듬어 주었고/ 아내가 되어 양귀비꽃처럼 활짝 웃던 여자”이며, “목 타는 새벽녘엔 제 젖을 물려주던 여자/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잠 재워주던 여자”다. 이 시에서 시인이 불러내 준 ‘여자’는 온전한 헌신과 희생의 모습으로 여실하며, ‘누나’나 ‘아내’의 모습으로 자애롭다. 시인의 말들이 오감의 언어로 살아 움직이면서 망극한 성애의 기억을 현재의 시간 속에 되살려내 주고 있다.
인간의 영혼을 상승시키며 초월적인 힘으로 사물과 현실이 지닌 안일과 타성 속에서 ‘발견’의 지평을 열어 보여주는 시가 좋은 시이다. 시는 인간성의 핵심과 연관되어 있는 예술이다. 인간의 정서와 상상력과 사유에 기반하는 예술이며, 인간 영혼을 심오한 가치로 고양시켜 주는 예술이다.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피와 살과 뼈로 구성된 유한 존재이고 미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지만 정서와 상상력과 사유와 영혼을 통해서 영속하는 가치가 되기도 한다.
단언컨대 요즘 한국시에 넘쳐나는. 길이가 긴 시편들은 시적 수련이 부족한 사람들의 표현 능력 부족에서 연유된 것이라 생각한다.
“한 편의 시가 지니는 진미를 이해하려면 한 편의 시를 최소한 30분은 읽어라, 그것이 어려우면 열 번 정도만이라도 되짚어가며 천천히 읽어라”
내가 대학 문학강의실에서 강조하곤하던 말이다. 시의 이론을 공부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깊이 읽어내는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었다.
흔히, 난해한 시는 나쁜 시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높은 차원의 비유나 중층 비유로 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시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난해해진 시들은 공들여 읽을수록 발견의 광휘를 보여준다. 인용한 앞에 제시된 ‘동천’같은 시가 좋은 난해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으로 독자를 깊이 끌어들이는 시, 견고한 비유 속에 놀라운 섬광을 담고 있어 읽을수록 큰 감동을 건네주는 시인 셈이다. 우주를 상상력의 범주로 포괄하고 있다.
지금, 한국 시는 감각, 상상력, 영감, 문체, 이런 것들에 대한 가치를 보다 소중하게 일깨워가야 한다. 물론 이런 요소들은 시가 지니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 시는 시의 근본을 돌이켜보고 순정성의 바탕에서 시를 성찰해보았으면 한다. 새로운 생명으로 숨 쉬는 시어들을 만나야 하는 것이고, 시가 그런 시어로 만든 구조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전제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최적의 구조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시인의 능력이다.<이건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