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송정이다.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열차를 타고 시간 반 가량 원주 쪽으로 가다 보면 양동(楊東) 역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내려서 꼬불꼬불 신작로 8.5킬로를 가야 송정 마을이 나온다. 그 흔한 버스조차 다니지 않던 두메산골 촌락이다.
고향에 난 길을 걸어가노라면 넘어야 할 높은 산이 먼저 기다리고, 그 높은 산 고개를 하나 넘고, 내를 건너서 비포장 자갈길을 가노라면 군데군데 옹기종기 초가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 있고 인공의 흔적이 전혀 없는 자연 그대로의 논밭에는 경계를 긋는 두렁들이 구불구불 구렁이같이 이어져 있고,
깊은 골 타고 흐르는 시내에는 청정 옥수淸淨玉水가 흐르고 자그마한 돌 밑에는 각종 물고기와 달팽이가 사이 좋게 이웃하며 살고 있다.
이른봄부터 동백꽃으로 시작하여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 앵두 꽃,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산에 들에 길가에 나름의 자태를 뽐내며 자연 화폭을 이루고 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겹겹이 둘러있는 울창한 송림이 위용을 자랑하고 하늘만 빼꼼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의 유년시절 솜처럼 포근하고 새의 깃처럼 따스하게 정 깊던 그곳! 대자연에 정기를 마음껏 마시며 꿈을 키워왔던 고향! 20리가 넘는 학교를 언제나 걸어서 다녔고 학교가 끝나면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찔레와 시경, 삘 기, 진달래꽃으로 허기를 채우며, 냇가 아무 데서나 엎드려 벌컥벌컥 마음껏 먹던 그 달콤한 물맛의 재미에 저녁 해가 넘어가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어린 시절! 오월 단오 즈음에 관솔에 불을 붙여 들고 밤 가재 잡으러 다니던 일과, 날이 밝기도 전에 송이 밭에 가서 우거진 송림 사이사이를 헤집고 송이 따면서 기뻐했던 추억들!
여름에 김치를 담그면 우물 옆 물 흐르는 곳에다 쉬지 말라고 보관한 항아리 뚜껑 열고 시 큼 새큼한 열무김치 국물 떠먹던 그 맛은 지금도 내 입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옥수수를 맷돌에 갈아서 칡 잎사귀 에다 떠서 놓고 가마솥에서 통 옥수수와 함께 쪄낸 칡 떡과 간 옥수수를 짜낸 국물을 묵이 될 때까지 달여서 만든 올챙이 묵과, 감자와 고구마, 보리밥이 여름철 주식 이었고,
보자기 에다 책과 도시락을 함께 싸고 왼쪽 어깨 위와 오른쪽 겨드랑 사이로 책보를 메고 학교에 가서 점심시간에 꺼내먹는 도시락 속엔 보리밥과 고추장이 범벅이 되어 둥글둥글 뭉쳐져서 자연 비빔밥이 돼버린 그것을 맛있게 먹었던 가난한 추억들……
추수가 끝난 논배미 마다 벼 이삭 주워서 공책 사 쓰던 아련한 기억들!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엔 몽둥이 하나 들고 노루, 토끼 잡으러 주먹밥 허리에 차고 형님들 뒤 따라 눈 덮인 산을 온종일 뛰어 다니던 일이며,
밤이 이슥해서 총 떡과 메밀국수 눌러 먹던 즐거움, 저장용으로 땅속에 묻어 놨던 무수를 꺼내서 깎아먹던 시원 달콤한 그 맛은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잊지 못하리……
소 풀 뜯기러 들에 나가 팔베개 하고 누워 티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속 꿈의 날개를 펼치며 상상의 세계를 꿈꾸던 어린 시절의 그리움!
지금 그곳엔 비포장 이었던 도로엔 까만 아스콘이, 정겹던 초가집은 자취를 감추고 울창한 송림은 삭막한 잡목이 대신하고, 멱 감으며 마시던 청정 옥수는 오염으로 가득하고 순수하고 정답던 넉넉한 인심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리운 추억만이 아쉬움을 토해내며 예 그린 속에만 잠겨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섬세한 사랑과 추억이 숨쉬는 사랑스런 내 고향 송정! 그곳엔 언제나 나의 부모 형제들의 꿈과 숨결이 떠나지 못하고 항상 맴돌며 그리움을 더해가는 혈육의 도가니 같은 그곳 임에 더더욱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나, 추억 속에서는 변함없이 나를 반기고 심신이 피로할 땐 언제나 달려가 안기고 싶은 그곳이 엄마의 품속처럼 그리워 진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죽마고우竹馬故友 한 친구! 가끔씩 찾아갈 때면 모든 일 뿌리치고 반겨주는 모습에서 고향의 애틋함과 정겨움에 위로되어 돌아올 수 없는 옛 이야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거니 받거니 한잔 술로 시름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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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朋이 좋아
벗 집에서
벗과 함께
한잔 술 하니
채우는 잔마다
기쁨이 넘치고
비우는 잔마다
추억이 흐르네
초순배初旬杯는
동심배童心杯
중순배中旬杯는
꽃동산
가랑비에 옷 젖듯
취기도 향기로워!
2006.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