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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주님의 성전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일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좌우 앞에 계신 분들과 사랑과 축복의 인사를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지 어느덧 두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3개월이라고 돼 있는데 이제 3개월째 진입하는 시점이라는 거예요. 출애굽 하기 전 그들이 보고 경험한 10가지 재앙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이었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출애굽 이후에 경험한 것도 그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즉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가는 홍해 도하의 사건뿐만 아니라 애굽인들을 홍해에 수장시키셨던 크고 놀라운 사건들을 그들은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길로 진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후에는 어땠습니까? 한 달 반 동안 광야길을 경험하면서 식수난과 식량난으로 인하여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기게 하셨고, 아말렉과의 전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그러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광야산 앞 장막을 쳤다. 오늘 본문 2절은 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어요.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들이 리비듬을 떠나 신의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의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느라.
그렇다면 여기에 표현돼 있는 거기 산 장막을 짓던 그 산은 어떠한 사일까요? 이 산은요 모세가 애굽에 가기 전 양떼를 인도하면서 풀을 먹이던 중에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던 그 산 또한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오라는 사명을 받았던 그 산 뿐만 아니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에서 데리고 나오면 이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던 그 산 그 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약속은 출애굽기 3장에 기록되어져 있는데 3장 12절 말씀을 우리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증거로 삼겠다는 거예요.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은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 후 두 달의 시간이 지난 그때에 하나님의 산에 장막을 치고 그곳이 어디예요? 시내산이죠. 그 장막을 침을 통해서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요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며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시고 약속의 자리로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의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내신 거죠. 그들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증명이 되지 않지만 그들이 이미 앞서 말씀하신 것이 그 땅 가운데 이루어짐을 통해서 증명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지키시는 것처럼 모든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과 또한 선지자들의 글 그리고 시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이 성취가 된 것이죠.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못 박혔던 손과 발을 보이신 후에 구운 생선 한 토막 드시고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4절인데요. 같이 보실까요?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하는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즉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 사건은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선지자들의 글을 통해서 시편을 통해서 예언하셨던 말씀이었고, 그것이 이제 이루어졌다고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것이죠.
또한 사도바울은요.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 자신이 받은 것이고 또한 자신이 전한 말이다. 그렇게 성경은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 4절인데요. 같이 읽어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요. 성경대로 저와 여러분들의 죄를 위하여서 죽으셨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약속 구원의 사역을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면서 성취하셨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것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새기고 살지만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나름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할 것이 있지 않겠어요. 이미 성취하신 것은 성취하신 것이고, 또 앞으로 성취하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붙잡아야 되는데 여러분 다른 건 몰라도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하셨던 두 가지 말씀만은 우리가 꼭 기억하고 그거 붙잡고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죠. 너희 가운데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이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초림에 주님으로 오셨던 그 예수님께서 재림의 주님으로 오신다는 분명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이것을 붙잡고 믿음의 선한 삶을 싸워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오시겠다는 재림의 주님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소망 없는 자처럼 살지 마시고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을 소망하면서 믿음으로 선한 싸움 싸우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혹시라도 아직 나는 믿지 못하겠어요. 초림의 주님 오셨다는데 내가 2천년 전에 본 것도 아니니 그리고 재림의 주님이 오신다는데 내가 아직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마음속에 기도의 마음이 불타오르기를 소망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도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져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면서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데 그때를 향해서 전진해 나아가는 거룩한 성도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간구가 있어 동일하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소망 가운데 표대를 향해서 전진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현장에서 또 한 가지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보혜사 곧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그 말씀을 약속해 주셨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가운데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선포하셨잖아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약속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재림의 전까지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말씀이라는 거예요. 이 말씀을 신뢰했던 제자들과 비롯해서 120문도는 어떻게 했습니까? 한 곳에 모여서 그 성령 오시기를 기도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에 때가 찬 시각 성령이요. 각 사람에게 임하여서 놀라운 은혜를 그들이 경험하고 결국에는 말씀하신 대로 성령 충만하여서 언어가 바꿈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그러한 일들을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 확신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그 자리에서 봤던 그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성경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약속하신 말씀이라는 거예요. 따라서 재림하시는 그전까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은요. 성령의 은혜, 성령의 역사,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할 때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아버지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 그냥 물론 아무 생각 없이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진실된 고백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할 수 있다는 거예요. 따라서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 자체가 이미 내 안에 성령께서 좌정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성령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혹여나 이 시간에 예배를 드리지만 아직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혹여나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는데 성령의 충만한 은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저와 여러분들도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우리도 저 제자들처럼 성령 충만하여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이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가만히 있으면 성령께서 자연적으로 오셔서 내 마음을 감동시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 간절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배의 자리가 성령의 역사로 내 삶을 다스리는 축복의 자리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 이 시간이요. 그냥 들여지는 시간 되지 마시고 여러분 기도로 준비하십시오. 예배 나오기 전부터 하나님 오늘 이 예배 나에게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인지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요.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것처럼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이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초청합니다. 금요 기도에 나오십시오. 나오셔서 함께 모여서 부르짖고 기도하는 현장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고 살겠다. 여러분 쉽지 않습니다. 우리 어르신들도 나오십시오. 금요일만 조금 늦게 주무시고 토요일날 조금 늦게 일어나신다 생각하고 어르신들도 나오시고요. 우리 중직자들도 나오십시오. 정말 부득이한 사정이 있지 아니하고서는 중직자들이 기도의 자리에 있는 것은 마땅한 일인 것 아니겠어요 일반 성도님들도 나오십시오.
여러분 성령 충만함은 중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시간이라는 거예요. 젊은 부모도요. 자녀들 이끌고 나오십시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언제 기도할 시간이 있겠어요? 여러분들 자녀를 위해서 언제 그렇게 뜨겁게 기도하시겠어요? 여러분 한마음으로 간절히 모여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소망과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사모하는 만큼 기도하는 자리에 나아가게 되면 예비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이 그러한 동행이 우리 시는 공동체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3절에 보니 하나님의 산에 장막을 치자 모세는요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도 산에서 모세를 불렀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3절 같이 한번 다시 읽어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여러분 모세가 지금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는 그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억지로 올라갔을까요? 아니면 룰루랄라 즐겁게 올라갔을까요? 아니면 잘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면 이 모세가 올라간 이 산의 정체를 한번 다시 한 번 떠올려보십시오. 모세가 올라가고 있는 시내산은요. 하나님께서 처음 떨기나무로 만나주셨던 그곳입니다. 그곳에서 모세의 이름을 친히 불러주시며 이 땅은 거룩한 땅이다 말씀하시고 네 신을 벗어라.
거룩함의 장소였죠. 또한 앞서 나누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올 것이다. 약속해 주셨던 장소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 있는 산 여러분 억지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올라갔을 거예요.
제가 이렇게 모세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요. 두 달의 시간을 쭉 살았잖아요. 10가지 재앙도 있었고 또 홍해를 건너는 사건도 있었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여러 가지 일도 경험했지만 얼마나 그 자리가 속시럽고 힘들었던 자리였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지친 그의 마음 어디에서 위로를 받을까? 지금 하나님께서 과거에 만나주셨던 그 산에 올라가면서 하나님 날 좀 다시 좀 만나주셔서 힘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나머지 이 길들을 잘 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달라고 그러한 마음으로 올라가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모세가 여러분 그 자리 아마 사모하면서 나아갔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만나주셨던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사모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세가 그 자리에 올라갔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만나주셨던 과거의 그 자리를 사모하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혹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그 자리가 여러분 생각나지 않거든. 오늘 이 시간 이 자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인자하셔서 친히 만나고 말씀해 주시는 귀하고 복된 자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 여러분 그래서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자리 오면 돌아가기 싫고 돌아가면 빨리 오고 싶은 자리. 여러분 그런 자리 있어요. 학생들은요. 게임의 자리 가면 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렇죠 여러분 내가 오면 돌아가기 싫고 가면 빨리 오고 싶은 자리 그 자리가 어디입니까? 바라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가 되어야 되지 않겠어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 자리가 가면 돌아가고 싶지 않고 다시 집으로 가 돌아오고 싶은 그 자리 그 자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놀라운 것은 모세만 하나님께 달려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요. 모세를 불러주셨답니다. 과거에 떨기나무 자리 앞에서 이렇게 보면서 올라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 이 땅은 거룩한 땅이니 이 신 벗어라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또다시 그 모세를 불러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요. 실수나 후회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자리에 선 것은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것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사실을 고백합시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내 의지와 뜻도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실수하심과 후회하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하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 부르심 앞에 오직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가 주와 함께 걸어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부르셨잖아요. 모세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 그 말씀을 이제 좀 보려고 하는데 우리 다시 한 번 3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모세가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다시 읽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여기 보면 반복되는 표현이 있죠. 말하고 말하라. 또한 야곱의 집, 이스라엘 자손 다 동일한 것 아니겠어요? 하나님께서 지금 같은 의미를 반복해서 선포해 주었다는 것이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반드시 말해야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말해야 될 내용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말해야 될 내용은 무엇입니까? 3절에는 이 가치에 해당하는 거 이같이 말하라. 그럼 이같이 속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어지는 4절부터 6절의 말씀이에요. 이 4절에서 6절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 첫 번째 4절 한번 먼저 보실까요? 읽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여러분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요. 너희가 보았느니라 상기시키는 거예요. 너희 봤잖아? 뭘 봤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출애굽 시킨 것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지금 이 자리까지 독수리로 안고 이곳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셨다. 그거 너희들 봤잖아라는 것을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거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일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죠.
여러분 여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있잖아요. 이 크신 능력은요.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았던 애굽도, 이스라엘의 앞길을 막았던 홍해도, 삶의 문제로 찾아왔던 목마름과 기근도, 연약할 때 후미를 공격했던 아말렉 족속도 결코 방해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거예요. 즉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하나님의 그 은혜 속에서 그 어떤 것도 끊어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야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 머리털 끝 하나 상하지 않고 모두가 호렙산 도사의 그 앞에 도착하게 하신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크신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고 그분은요 과거에 역사하셨던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만 저와 여러분들을 이미 구원하셨고 할렐루야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하셨다.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무엇으로요? 크신 능력으로 사단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우리를 죄의 자리로 이끌고 가려고 할 그때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셔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잖아요. 그분이 참 목자 되어서 그와 같이 우리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겠다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속에서 안전하게 인도받고 있다라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는 다른 데서 오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구원과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앞으로도 그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평안이 있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겠어요 조금 있으면 전쟁 난다고 막 이곳저곳에서 이야기도 하고 그거 아니어도 세상 돌아가는 모습 보면은 어떻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지 막막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평안의 길로 가게 하신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원하고 안전하게 인도하셨다는 것을 먼저 상기시킨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걸 처음으로 말씀하신 이유 그 뒤에 이어지는 구원과 인도하심의 목적을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 5절과 6절에 보면 너희를 구원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을 인도하신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세 가지로 말씀하는데 첫 번째는 너희가 내 소유가 되겠다는 거 내가 너희를 구원하고 여기까지 인도한 것은 내 소유로 삼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잖아요. 다 하나님께 속한 것 아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를 내 소유로 삼겠다고 말씀하신 특별한 의미가 무엇일까를 알아야겠죠. 이 소유라는 단어를 보면 개인 소유물로서 특히 가치 있는 소장품이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세계 열국이 하나님께 속한 것은 맞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물로 선택하겠다라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죠.
여러분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요? 보물 1호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1호.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그것을 대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귀히 여기는 마음만 있을 뿐만 아니라 애지중지 정말 귀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한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기쁨이 있잖아요. 내가 정말 저거 갖고 싶어서 얻었는데 이게 내 본물의 1호가 되었고 야 이것만 있어도 난 너무 기쁘다 그런 마음이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베풀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또한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존귀한 자임을 깨닫고 위로받고 힘 얻기를 소망합니다.
스바냐 3장 17절 말씀 우리 큰 소리로 함께 읽습니다. 시작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보시고 늘 기뻐하시며 반겨주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주시고요.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을 보시면서 빙그레 웃으시며 언제나 노래하고 계신다는 거 여러분 감사하지 않아요. 내가 뭐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날 보면서 행복해하신다.
여러분 자녀 낳아보신 분은 알겠지만 자녀 보면서 그냥 웃잖아요. 뭘 해도 웃고 싶고 그게 아버지 마음 아니겠어요. 내 자녀들이 세상 어렵게 살고 힘들고 그렇지만 그래도 내 사랑하는 자녀를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아이고 잘한다 아이고 즐겁다. 감사한 일 아니겠어요. 여러분 이 놀라운 사실로 인하여서 저와 여러분들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기쁨을 이기지 않는 삶이 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만 사랑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노래하며 기뻐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게 바로 소유된 하나님의 특별함이죠. 둘째는 제사장 나라 삼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백성 사회를 연결시켜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죠. 따라서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세상 나라 백성들 사이에 연결시켜주는 가교의 역할로 삼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이것은 누구에게 약속하신 말씀인지 아십니까?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이죠.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이것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주셨던 축복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저와 여러분을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기 위해서 제사장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귀한 사명을 잊지 마시고 저와 여러분들도 한 영혼의 생명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가교의 역할을 감당하는 귀한 제사장의 사명을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이루어 가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는요.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거예요. 거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 아니겠어요 깨끗하고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구별된 모습을 떠올립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거룩하기를 소망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부정하고 탈락한 것을 미워하고 옳은 일을 따르는 구별된 자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이왕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좀 들어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했으면 좋겠다. 내 하나님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오 왕 같은 제사장들이오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귀한 빛에 들어가게 하시니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그런데 그런데요. 하나님의 소유 됐다는 것은 내가 존귀한 자라고 여기고 살아가는 쉽게 말해 자존감이 높아지는 삶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그냥 이것이 될까요? 제사장 나라로서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소개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겠죠. 거룩한 백성 참 귀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살아낼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서 상기시켜 주었던 그 이야기를 내가 인정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셨다. 그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끝내지 않고 지금 오늘 이 자리까지 안전하게 독수리의 날개로 인도하셨다.
맞네. 다 존귀한 사람 맞네. 내가 뭐라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안전하게 여기까지 인도하셨을까? 정말 존귀한 사람이야라고 인정하지 않겠어요 나를 그렇게 구원하셔서 구원이 무언지 알게 하셨는데 제사장 나라 맞아 이 구원의 복된 소식 내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이 소식을 나도 옆에 사람에게 알려줘야겠네라는 마음이 안 들겠어요.
거룩함이 그런 것이구나. 여러분 그냥 그것이 내 안에 맞아요 맞아요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구원의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 그 감격의 은혜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오늘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았구나라는 고백이 되어질 때에 이 세 가지는요.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낼 수 있는 모습이 되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그 무엇보다도 구원의 은총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물론 삶을 돌아보면 힘들고 어렵고 고난과 고통 속에 있었던 일들도 많습니다만 그것 보지 마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말씀대로였다. 그 말씀대로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그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고백할 때에 그때 내 자존감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소유야 그래 당당하게 이 땅에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는 그러한 성도의 거룩함이 우리 안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하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될 것은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며 한번 따라해보실까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이야기를 먼저 하시면서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다 말씀합니다.
여러분 잘 들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자들 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삶은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갈 것이고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가 이번 한 주간 앞으로의 우리 인생 가운데 날마다 충만하게 이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