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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치 못한 사람을 상대로 논리적인 반박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 반박한다는게 일단 상대방 의견을 들어준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내게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개대장을 보면 알게 된다. 개는 나쁜 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최선인 거다. 본인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짓을 왜 할까? 그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나빠진다는 의미다. 그 행동을 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는 의미다. 문제를 해결하려는게 아니라 내게서 루틴을 얻는게 목적이었던 것이다.
1.왜 욕설하나?(환청) 안했는데?(불가능한 이유 설명) 네 그렇군요.(대화 이어가려고 일단 수긍) 2. 왜 해킹을 하나?(메뉴 바꾸기 기술) 해킹한적 없는데.(소상히 설명) 네 그렇군요.(붙잡아두기 기술) 3. 왜 암호를 심나?(메뉴 바꾸기 기술) 4. 왜 욕설하나?(원위치 무한반복)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환자는 일단 수긍하는 척 하면서 피해자를 붙잡아두고 메뉴를 바꾼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리셋되어 버린다. 호르몬이 팍 치고 나오면 본인도 어쩔 수 없다. 이게 지구 평면설 음모론자 기술이다. 음모론을 서른 개나 시도하니 막판에 하나 먹혔다.
인간들이 이 수준이다. 종교나 믿고 미신이나 믿는 무뇌인간이 99 퍼센트다. 이준석, 김종인, 오세훈 수준이 딱 명태균 수준이다. 나머지 1 퍼센트는 생각이라는 것을 할까? 천만에. 1 퍼센트는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의지한다. 이기는 집단에 의지하는 사람이 그나마 낫다.
검사는 보스를 믿고 판사는 국민을 믿는다. 입자와 질의 차이다. 검사는 입자 역할 하는 보스 개인에게 복종하며 쾌감을 느끼고 판사는 국민의 세력을 믿으며 쾌감을 느낀다. 호르몬이 나오는 지점의 차이다. 인간이 멀쩡한 생각을 하는 경우는 이겨먹을 생각 때문이다.
아픈 사람은 상대를 이겨서 주도권을 잡을 생각이 없으므로 대화가 안 된다. 나쁜 개는 견주를 이겨먹을 생각이 없으므로 말을 안 듣는다. 이기려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생각이다. 승자의 자부심이 없이 맹목적으로 개인에게 의지하려고 엉기는 사람을 조심하라.
판사.. 이기려고 힘을 주는 집단에 의지한다. 질의 세력에 기대는 입자 행동이다.
검사.. 이길 생각 없이 강자 개인에 충성한다.입자 개인에 기대는 힘의 행동이다.
과학자는 일반인을 이겨먹을 생각이 있으므로 합리적인 생각을 한다. 문제는 자기 전공분야가 아닌 곳에 끼어들어 개소리를 한다는 거다. 조경학과 출신의 서경덕은 원예학자가 왜 독도를 팔아? 자기 전공이나 찾아가라고. 대학교수들은 대개 남의 전공에 헛소리 한다.
이겨먹는다는 것은 일반에 비해 심리적 우위에 서는 것이다. 거기에 자긍심이 있다. 세력의 뒷배를 얻어야 한다. 자긍심 없는 사람은 무제한 개소리 특허권을 사용한다. 명태균의 강약약강 행보는 소인배 특유의 의존심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에게만 충성한다.
1. 인간은 원래 그다지 생각을 안 하는 동물이다.
2. 강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나름 합리적이다.
3. 집단은 이겨먹는 방향으로, 개인은 자긍심을 얻는 쪽으로 에너지 압박이 실려 있다.
4. 집단 밖에서 겉돌면 개인에게 충성하고 싶어 개소리 한다. 식객이 주군을 찾아다니는 행동이다.
5. 집단을 자극하여 집단이 자신에게 말을 걸도록 유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므로 죄의식이 없다.
관종은 자신이 환자이므로 상대가 자신을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의존심을 가지고 상대가 자신을 돌봐줄때까지 괴롭힌다. 아이는 엄마가 돌봐줄때까지 울음을 계속한다. 정신병자, 마약범, 얼빠진 놈, 음모론자는 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으므로 답이 없다.
'왜 나한테 욕을 하냐?' '안했는데?' '나도 알지만 내가 미쳤으니까 대본대로 욕한 척 하고 내 말을 들어봐. 레파토리가 있어.' 지구평면설, 사이비종교, 음모론, 각종 개소리는 메커니즘이 같다. 집단을 자극하여 반응을 끌어낸다. 자기를 어린이로 규정하므로 죄의식이 없다.
헛소리 하는 사람은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치료법이다. 나쁜 개는 무시해야 한다. 어떻게든 견주가 반응만 하면 증상이 재발된다. 환자는 자기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 내 병을 가져가버려. 바보도 같은 기술을 쓴다. 내 바보를 가져가. 바보가 옮는 이유다.
소속이 없이 밖에서 겉돌며 자신의 고통을 전가하려고 병이 옮겨갈 숙주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자를 조심하라. 반드시 해꼬지를 한다. 진리의 팀에 들어야 하는 이유다. 강팀에 들고 그 팀이 계속 승리하고 있는 동안에는 집단과 긴밀해져서 인간이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관성의 법칙을 쓴다. 이기는 팀에 들어서 이기는 관성을 내것으로 할때 인간은 그나마 합리적이다. 진보의 편, 역사의 편, 문명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소인배는 소속될 팀을 찾아 테스트 하다가 루틴이 되어 죽을때까지 팀을 찾지 못하고 나쁜 짓을 반복한다.
### 이념성향 ###
에너지의 방향이 정해지면 서로 연동되어 그 방향으로 계속 가게 된다. 올라가는 방향이면 악재도 호재로 작용하고 내려가는 방향이면 호재도 악재로 작용한다. 커지는 방향과 작아지는 방향이 있다. 대륙거대화 현상과 섬왜소화 현상이다. 미국차는 커지고 일본차는 작아진다.
인간은 정치적으로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사생활은 보수적으로 행동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진보주의자가 진보적이지 않을 수 있고 보수주의자가 보수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각 정당이 표를 얻으려고 상대방 노선의 전략을 훔치므로 뒤죽박죽이 되어있다.
오픈AI로 한 배를 탔다가 분열한 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을 비교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대륙 거대화 병에 걸려 있다. 일단 일을 크게 벌인다. 이것저것 시도해서 하나만 성공해도 된다. 아니면 말고다. 원래 기질은 진보적인 성향인데 에너지가 넘쳐서 또라이짓 하고 있다.
샘 올트먼은 섬 왜소화 병이다. 게이로 활동영역이 축소된 김에 채식주의로 더 자신을 축소시킨다. 내부를 쥐어짜서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이 보수성향이다. 민주당에 투표하는 마초도 있고 공화당에 투표하는 게이도 있다. 정치적 신념과 기질은 불일치하며 반대로 될 수도 있다.
상성이 있다. 진보기질이 보수정치와 합이 맞을 수 있고 반대로 보수기질이 진보정치와 합이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정의당 속에 보수기질 꼰대병, 선비병 환자가 다수 있다. 좌파가 반미반일 민족주의에 열중하는게 전형적인 보수다. 한 번 정한 길을 바꾸지 않는 고집이 보수다.
진보 대륙거대화 전략, 사건의 원인 측 = 개방 = 긍정 = 낙관 = 공격 = 모험 = 도전.. 밖에서 확률 높이기 기술
보수는 섬왜소화 전략, 사건의 결과 측 = 쇄국 = 부정 = 비관 = 방어 = 안정 = 유지.. 안에서 쥐어짜기 기술
진짜 진보는 유연하게 변신하여 환경변화에 적응한다. 진보는 공격이고 보수는 수비다. 공격은 원래 100을 먹으려면 선제 기습으로 300을 차지한 다음 후퇴하며 진지를 구축하여 100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100을 원하면 300을 시도해야 하므로 진보가 주제넘은 짓을 잘 한다.
김어준 그룹이 진짜 진보다. 선입견 없이 이것 저것 시도해보는 리버럴한 진보라야 한다. 트렌드를 주도하고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강고한 이념적 원칙을 정해놓고 고집불통 행동을 하는 자가 진짜 보수다. 진보진영과 보수생활에 양다리 걸치고 균형을 맞추는 자를 조심하라.
### 관성 ###
인류의 진짜 지식은 관성이다. 나머지는 부스러기다. 존재는 안과 밖이 있다. 관성은 존재의 안이다. 구조론은 관성을 해명한다. 존재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인류가 지금껏 본 것은 밖이다. 안에 대해서는 에너지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에너지는 안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안에서 무슨 일을 하지? 모른다. 관성은 현재 상태를 변화시키는 외부의 힘에 저항하는 내부 의질서다. 내부에 무언가 있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이 없으므로 관성을 부정한다. 원자론과 관성론은 모순된다.
관성은 내부를 긍정하고 원자는 내부를 부정한다. 원자론은 외부를 보고 관성론은 내부를 본다. 원자론의 사유에서 관성론의 사유로 갈아타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외부 관측자 중심 사유에서 내부 자체 질서 중심 사유로 갈아타야 한다.
존재는 내부가 있다. 지식은 존재를 잘게 쪼개서 관찰한다. 존재를 쪼개면 내부의 구조가 파괴된다. 인간은 산 것을 죽여서 관찰하고, 움직이는 것을 멈추게 해서 관찰하고, 연결된 것을 단절시켜 관찰한다. 쪼개지 않고 안을 관찰하려면 특별한 눈이 필요하다.
### 방향 ###
인간이 실패하는 이유는 내부의 관성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성공하려면 먼저 관성을 죽여야 한다. 내부에는 자체 질서가 있다. 외부에서 작용하면 밸런스의 복원력이 작동하여 원래로 돌아간다. 뻣뻣한 것을 말랑말랑하게 해놓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방향전환에 대해서는 헤겔의 변증법이 알려져 있다. 반은 외부에 있고 합은 내부에 있다. 모든 변화는 외부를 내부화 한다. 우주의 기본 방향은 척력이 인력으로 바뀌는 마이너스 방향이다. 헤겔은 방향을 말하지 않았다. 방향을 알아야 다음 단계로 전진한다.
생물의 진화는 외부의 우연한 변화를 내부의 필연적인 변화로 바꾼다. 체외수정은 체내수정으로, 겉씨식물은 속씨식물로 바뀐다. 눈, 코, 귀, 입, 몸은 불규칙적인 외부자극을 규칙적인 내부자극으로 바꾼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
우주의 기본방향은 밖>안, 척력>인력, 확산>수렴, 열린사회>닫아걸기다. 방향은 마이너스다. 문을 열어서 외부 자원을 끌어들이면 관성이 죽어 부드러워진다.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문을 닫아걸고 내부를 압박해야 한다. 방향전환이 중요하다.
절대성과 상대성, 진보와 보수, 문명과 야만, 합리주의와 실용주의 등 여러가지로 말해지지만 결국 안이냐 밖이냐다. 방향을 알면 직관할 수 있다. 도구는 밖을 안으로 바꾸어 힘을 정확히 전달한다. 방향전환의 순서는 차원이다. 의사결정은 차원을 감소시킨다.
### 차원 ###
에너지의 차원은 다섯이다. 구조는 다섯이다. 다섯 단위에서 방향전환이 일어난다. 에너지는 원인에서 결과로 곧장 가는 것이 아니라 내부 방향전환을 거쳐서 간다. 원인>결정>결과에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을 더하면 다섯이다. 입력>원인>결정>결과>출력 순서로 방향전환이 일어난다.
에너지의 입력 4차원, 사건의 원인 3차원, 의사결정 2차원, 결과의 전달 1차원, 외부로의 출력 0차원이다. 내부에 에너지의 압력을 가두는 닫힌계, 내부적으로 정렬하는 중심체, 방향을 트는 전환각, 내부의 변화를 외부로 보내는 전달선, 최종적으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종결점이 있다.
입력(계)-원인(체)-결정(각)-결과(선)-출력(점)
닫힌계 - 중심체 - 전환각 - 전달선 - 종결점
차원은 계 내부의 모순을 해소하며 그 과정에 발생한 방해자를 외부로 배출하는 절차다. 우리가 아는 공간의 3차원은 다섯 중에서 관측자와 객체를 배제한 것이다. 에너지 차원은 객체 내부의 자체 질서다. 자연의 존재는 에너지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벡터가 걸려 있으므로 4차원이다.
4차원 입력 - 닫힌계 : 에너지가 계를 이루면 계 내부의 압력에 의해 방향성을 가진다.
3차원 원인 - 중심체 : 계 내부의 자원들은 축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정렬한다.
2차원 결정 - 전환각 : 의사결정은 각이 꺾어지는 형태로 방향전환을 일으킨다.
1차원 결과 - 전달선 : 변화의 시간적 진행으로 말단부까지 선으로 전달된다.
0차원 출력 - 종결점 : 에너지의 이탈로 변화가 종결되는 지점이 점이다.
가만 있는 돌멩이도 지구와 중력으로 연결되어 있다. 돌멩이를 움직이려면 먼저 축을 장악해야 한다. 눈으로 보는 풍경은 소실점이 있고 달리는 자동차는 엔진을 중심으로 정렬해 있다. 가만이 있는 것도 외력에 저항하여 자신을 유지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므로 내부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 사건 ###
사건은 존재의 본래 모습이고 사물은 인간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사물은 인간의 신체감관에 포착되는 과정에 왜곡된다. 모든 존재는 매개된 존재다. 사물은 인간의 관측이 매개하므로 객체 자체의 매개가 파괴되어 차원이 낮아진다. 인간은 빛의 반대쪽 그림자를 보고, 산 것을 죽여서 보고, 연결된 계를 단절해서 본다. 인간이 보는 사물의 모습은 계 내부의 질서가 빠져나간 거짓이다.
자연은 4차원 사건인데 인간은 3차원 사물을 보는 것이 오류의 원인이다. 사건의 눈을 떠야 한다. 4차원은 닫힌계 내부의 압력이 밸런스를 이루고 축을 중심으로 정렬한다. 자체의 질서가 관성으로 나타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분야든 반드시 계가 있고 관성이 걸려 있다. 정치의 관성은 권력이다. 권력을 중심으로 정렬해 있다. 내부에 긴장이 걸려 있으므로 방향전환을 못한다.
지식인은 말로 설득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수술하기 전에 마취를 해야 한다. 내부에 조성된 긴장을 해체해서 관성을 제거해야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관성이 방해하므로 같은 차원에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열린계로 바꾸어 내부의 긴장을 해체하면 3차원으로 내려간다. 이때 외부에서 새로운 긴장을 끌어들이고 닫힌계를 걸어서 4차원으로 올라서야 집단의 방향전환에 성공한다.
사건은 방향이 있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야 한다. 어려운 것을 먼저 하는 마이너스 방향이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플러스 방향은 실패한다. 계 내부의 압력이 사차원이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빠져서 수압을 느껴야 한다. 자전거를 타려면 페달을 밟아서 관성을 느껴야 한다.
### 구조 ###
세상은 구조다.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구조의 복제다. 세상은 작은 것이 모여서 커진 것이 아니라 큰 것이 쪼개져서 작아졌다. 쪼개지고 합쳐지는 단위가 구조다. 구조는 관절과 같다. 거기서 에너지의 방향전환이 일어난다. 구조는 의사결정의 단위다.
에너지가 닫힌계를 이루면 내부에 압력이 발생하여 밸런스와 축이 성립한다. 존재는 축이 되는 일점을 이동시켜 의사결정을 한다. 축이 이동하면 전체가 따라오지만 축이 움직이지 않으면 밸런스의 복원력이 작용하여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관성이다.
구조의 작용은 게임과 같다. 축의 제압 여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축을 제압하지 못하면 인간의 의도와 반대로 되는 역설이 작용하는 것이 모든 오류의 원인이 된다. 반대로 축 하나만 제압하면 작은 힘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