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하항마상, 녹야전법상, 쌍림열반상
부처님의 생애를 탄생부터 80세 열반에 이를 때까지 주요한 부분을 여덟 부분을 뽑아서 그림으로 만든게 팔상성도라고 했어요.
자, 팔상성도는 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하항마상, 녹야전법상, 쌍림열반상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이 중에서 다섯 번째 장면인 설산수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태자의 탄생
지난 번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기원전 약 624년전에 음력 4월 8일에 인도의 작은 나라 카필라국 석가족, 아버지는 숫도다나 대왕이고 어머니는 마야부인 사이에서 왕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잉태한 마야부인은 아기를 낳으러 친정집으로 가던중 룸비니 동산에서 잠시 쉬어갈 때 아기를 낳으셨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기 석가모니 부처님은 태어나시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씩 걸으면서 오른손 검지는 위로, 왼손 검지는 아래로 향하게 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화택 아당안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홀로 존귀하니, 번뇌로 불타는 집과 같은 삼계를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날 아기부처님을 이제 목욕시켜 드릴텐데,
그때 아기 부처님은 이러한 동작을 하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아버지 숫도다나 대왕은 아들이 태어나자 몹시 기뻐하면서 태자의 이름을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난지 7일이 지나자 어머니인 마야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그 시대의 관습대로 숫도다나 대왕은 마야부인의 자매인 마하파자파티을을 부인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태자는 마하파자파티의 양육을 받으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 태자의 성장과 출가
싯달타 태자는 어릴 때부터 영특해서 64종의 언어, 수학, 신화, 서사시, 경제학, 정치학, 수사학, 논리학, 동식물 연구, 음악, 기예,승마, 창술, 궁술, 격투기, 수영 등 29종의 군사학을 연마하고 숙달해서 마침내 스승의 학식을 뛰어넘어 스승들도 태자에게 경외심을 품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태자가 열 아홉살이 되자 이웃 꼴리아족의 공주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하게 됩니다.
호화로운 궁전생활을 하던 태자는 궁전 밖의 네 개의 문으로 나들이를 나가면서 몹시 늙어 누추한 노인과, 끔찍한 모습을 하고 괴로워하는 병자,그리고 부와 명예가 있어도 죽음을 맞이한 장례행렬, 그리고 평화롭고 고요한 수행자를 만나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게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를 결심하고 숫도다나 대왕에게 출가의 의사를 밝히죠.
그러나 숫도다나 대왕은 태자에게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줄테니, 출가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태자는 영원히 젊음을 누리며, 늙지 않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러나 숫도다나 대왕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태자는 또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출가하지 않겠다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고통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게 해주시면 출가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숫도다나 대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깊게 봐야 할 부분은 부처님께서 출가를 하신 목적이예요.
부처님의 출가의 목적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였어요.
인간이 겪는 고통인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가 알고있는 철학이나 깨닫기 위해 출가를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스물 아홉이 되던 해, 태자는 성밖을 나가 출가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시종들이 달려와서 야소다라 태자비가 아들을 낳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태자는 하늘을 보며 “라훌라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낳았구나.”라고 탄식하자,
새로운 왕자의 이름은 속박이라는 뜻의 라훌라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왕자가 탄생하자 칠일동안 떠들썩한 잔치가 벌어지던 밤에 싯다르타 태자는 마부 찬다에게 깐타까 말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성문을 뛰어넘어 강가에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 출가를 하게 됩니다.
이때가 기원전 595년 2월 8일 태자가 스물 아홉 되던 해의 일이었습니다.
불교에는 4대 명절이 있어요. 돌아가신 열반재일을 제외하고 모두 8일에 맞춰져 있어 기억하기 좋죠.
- 첫째 탄신일 음력 4월 8일 -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
- 둘째 출가재일 음력 2월 8일 -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
- 셋째 성도재일 음력 12월 8일 - 싯달타 태자가 6년간의 고행과 수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성자인 부처님이 되신 날.
- 넷째 열반재일 음력 2월15일 -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날.
# 스승을 찾아 떠난 보살 - 알라라깔라마
이렇게 출가한 싯다르타 태자는 더 이상 태자라 불리지 않고 부처가 되기 전 상태라 하여
보살이라고 불리웁니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된 보살에게 숫도다나 대왕은 신하들을 시켜서 다시 왕궁으로 돌아오라고 보냅니다. 그러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자 하는 굳은 보살의 의지를 꺽지는 못했습니다.
그러자 보살의 고단한 모습을 외면하지 못하고 신하들 가운데 5명인 꼰단냐, 왑빠, 밧디야, 마하나마, 앗사지 신하가 남아 뒤따라 수행하게 됩니다.
보살은 스승을 찾아 물과 불을 섬기고, 해와 달과 여러 정령을 숭배하며 무리를 찾아 갔습니다. 그들은 고행자로 나뭇가지나 풀을 먹는 사람, 쇠똥을 먹는 사람, 풀이나 나무껍질로 몸을 가린 사람, 땅바닥에 눕는 사람, 벌거벗은 채 가시 위에서 자는 사람,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뽑는 사람 등 차림새나 수행법은 가지각색 이었습니다.
이들은 육체를 속박이라 생각하고 온갖 고통으로 육체를 학대하고 괴롭혀서 스스로 정화하면 그 보상으로 다음생에 안락한 생활을 누리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단식을 하다 죽거나 절벽에서 몸을 던지거나 태운다면 그 보상으로 천상에 태어나 천상의 즐거움을 누리면 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보살은 천상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괴로움을 감내하는 고통의 연속의 수행은 생로병사의 윤회의 고통을 끝내는 수행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그 곳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그 무리의 대표인 박가와는 웨살리에 있는 알라라깔라마라는 선인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보살은 웨살리에 있는 알라라깔라마 선인을 찾아가 수행의 방법을 묻게 됩니다.
알라라깔라마는 고통스러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선이이였습니다.
보살은 알라라깔라마를 스승으로 삼고 열심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알라라깔라마는 무소유처정에 이르는 수행까지가 전부였습니다.
무소유처 삼매에 이르면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했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그대로 윤회의 고통을 받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보살은 이 가르침은 마음의 고요와 평안을 가져오지만, 윤회를 벗어나는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알라라깔라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 스승을 찾아 다시 떠난 보살 - 마가다국
당시 인도대륙의 16대국중에서 가장 큰 나라중의 하나였던 마가다국의 라자가하라는 도시에 들어선 보살은 아침일찍 거리로 탁발을 나갔습니다.
이때 멀리서 마가다국의 젊은 왕인 빔비사라왕이 높은 누각에서 기품이 넘치는 보살의 모습을 니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빔비사라왕은 신하에게
“저분은 틀림없이 훌륭한 가문의 왕족 출신이다. 저분 뒤를 따라가 어디에 머무는지 알아보아라.”라고 명령했습니다.
보살의 거처를 알아낸 빔비사라왕은 보살에게 직접 찾아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북방 히말라야 기슭의 석가족 왕자중에 재능과 지혜가 뛰어난 자가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 빔비사라왕은 서른두가지 대장부의 상호를 갖췄고 전륜성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보살이 첫눈에 범상치 않음을 알아본 빔비사라왕은 호의를 보이며 말했습니다.
“사꺄족의 왕자여, 제 땅을 나눠드릴테니 함께 나라를 다스립시다.”
그러자 보살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라며 거절을 합니다. 그러자 빔비사라왕은 다시
“작아서 싫다면 제 나라 전부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재상이 되어 받들겠습니다.
제 나라가 싫다면 군사를 동원해 다른 나라를 정복해 그 땅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보살은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것이라고 다시 정중히 거절을 합니다.
그러자 빔비사라왕은 다음과같이 다시 한번 부탁을 합니다.
“바라시는 대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거든 가장 먼저 이 도시를 찾아와
저에게 제일 먼저 가르침을 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16대국중 가장 큰 나라중의 하나였던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첫번째 가르침을 받는 재가자가 되기로 약속을 합니다.
수행자들을 환대하던 마가다국의 젊은 빔비사라왕 덕분에 라자가하는 사문들의 도시가 되었고,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사상가들로 북적였습니다.
사문중에 웃다까라마뿟따라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칠백명의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보살은 웃다까라마뿟따를 찾아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정에 대한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비상비비상처정에서 의식 없는상태에서 진정한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난 해탈의 길을
찾을 수 없자, 스승의 자리를 내어주겠다는 웃다까라마뿟다의 호의를 뿌리치고 다시 수행의 길을 떠납니다.
[팔상성도: 설산수도상]
이제 보살은 혼자서 고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극심한 고행을 하기 위해 호흡을 멈추는 고행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호흡을 멈추는 고행은 몸에 극심한 고통을 줄 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보살은 다시 먹지 않는 고행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음식을 줄여나가던 보살은 강낭콩 또는
완두콩으로 만든 죽을 한 방울씩만 먹었습니다. 점점 야위어가던 몸은 결국 피록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보살은 마른 넝쿨처럼 뼈마디가 불거지고 엉덩이는 낙타의 발처럼 말라버렸습니다.
등뼈는 쇠사슬처럼 드러나고 갈비뼈는 건물의 석까래처럼 울퉁불퉁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뱃가죽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으면 등뼈가 만져지고, 등뼈를 만져보려고 손을 뻗으면 뱃가죽이 만져졌습니다.
오직 깊은 우물 속 반짝이는 물처럼 움푹 팬 눈두덩 깊숙이에서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고행상/1~2세기, 라호르박물관, 파키스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행이었습니다.
육신을 학대하는 수행은 기대와 달리 극심한 고통만 남겼습니다.
보살은 문득 어린 시절 부왕과 함께 참석한 농경제에서 선정에 잠긴 일이 생각났습니다.
바르고 차분하게 사유하며 탐욕을 떠나 선정에 들었을 때가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해탈을 향한 입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살은 이제 새로운 수행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연못가를 찾아 목욕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때 장군의 딸 수자따가 꿈에 토지신이 수행자에게 최초의 공양을 올리라는 목소리를 듣고
우유죽을 준비하여 지나가는 수행자에게 우유죽을 공양 올렸습니다.
그 수행자가 바로 보살이었고 보살은 우유죽이 담기 발우를 들고 강기슭에서 발우를 내려놓고
오랜 세월 다듬지 않은 머리와 수염을 말끔히 자르고 강에 들어가 몸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기슭으로 올라와 나무아래 자리잡고 우유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보살의 고행에 대해 경외심을 품었던 다섯 수행자들은 크게 실망하고
“고따마는 고행을 버렸다. 고따마는 게으르는 사람이다.
고따마는 타락했다.”라고
손가락질하며 보살을 떠나갔습니다.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린 보살은 시원하게 넓은 그늘을 드리운
삡팔라 나무인 보리수 나무아래 고르게 풀을 깔고 몸을 바르게 세우고 호흡을 고르고 맹세하였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없어져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