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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의 시. 동쪽으로 동해, 서쪽으로 영천시 및 청도군, 남쪽으로 울산광역시, 북쪽으로 포항시와 접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도시 중 하나로, 약 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다.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57년 6월 8일에 첫 성읍국가인 사로국이 경주 계림 일대에 세워졌는데, 그로부터 불과 50년 전인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의 왕검성이 함락되었으니 경주시는 도시 전체가 고풍스럽고 역사적인 무대라 할 수 있다.
경주시는 남북국시대에 이미 수십만 명의 인구가 산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도 삼경(三京)의 하나로서 명성을 유지했으며, 고려 후기에 무신정권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나고 나서는 3경에서 제외되고 이어서 몽골의 침략으로 황폐화되었다. 그러나 다시 동경으로 복권이 되어 고려시대 내내 중요한 도시로서 기능했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그 위상은 여전해서 경상도의 '경'자가 경주에서 따왔고, 부(府)로 지정된 동시에 경주부의 수장인 부윤(府尹)은 종2품으로 관찰사와 동급이었던 것에서 보듯이 현대의 광역시급 지위는 되었을 정도로 경상도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동시에 이언적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및 옥산서원을 위시하여 안동시와 함께 영남 남인의 구심점이자 대표적인 양반 도시였다. 즉 신라 멸망 이후로도 주요도시라는 명성은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는 얘기이고 이러한 경주의 위상과 규모는 경제개발기 이전까지 경상도 내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문화유적이 많다는 특성 때문에 시가지 개발과 (바다와 접하지만) 대규모 항만 조성이 어려워 발전이 미흡해지면서 오늘날에는 바로 이웃 도시인 포항시와 (옛 수도 시절 경주의 무역항 역할을 했던) 울산광역시가 대신 성장했고, 또한 인접해 있지는 않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산광역시와 대구광역시가 있기에 지금은 중소 도시가 되었다. 경상북도 내에서는 포항, 구미, 경산 다음가는 제4의 도시다.
대한민국의 시 중 면적이 3번째,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5번째로 넓다. 수도권에서 서울특별시, 고양시, 부천시, 광명시를 통합한 면적과 비슷한 수준이다. 참고로 시 중 면적 1위가 안동시(기초자치단체 기준 3위), 2위가 대구광역시, 4위가 상주시(기초자치단체 기준 6위)인데 1, 3, 4위가 전부 경상북도 소속이며, 대구광역시도 경상북도에서 광역시로 분리된 도시다. 사실 경상북도가 산하 시군 중 무려 7개가 면적이 1,000㎢를 넘을 정도로 큼직큼직한 면적을 가진 지자체가 매우 많은 편이기는 하다.
동해와 접한 도시이지만, 일반 대중들은 경주가 해안도시란 걸 잘 모른다. 그 이유로는 바다와 접해 있는 인근의 해안도시들(울산광역시, 포항시, 부산광역시)과 달리 경주는 시가지가 바다와 한참 떨어진 내륙에 있는 데다 문화유적이 워낙 많아서 관광도시란 인상이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해수욕장도 제법 많은데, 사실 문무대왕릉(대왕암)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며 문무대왕릉과 접해있는 곳이 바로 봉길해수욕장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월성 원자력 발전소와 월성 원자력 환경관리센터가 있다.
2. 신라의 천년과 함께한 경주
경주는 신라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도시다. 고구려와 백제가 계속 수도를 옮겼음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신라 시대에는 서라벌이라 불렸다. 신라 전성기 때 서라벌의 호수는 17만 8936호로, 최대한으로 추산해보면 대략 90만의 인구가 나온다. 세계 최대의 양대 도시인 장안과 바그다드의 인구가 100만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대로 믿기는 쉽지 않은 숫자인데, 그래서 오늘날의 수도권처럼 도시를 넘어선 근교까지 포함한 것이라는 설, 골품제의 신분 유지를 이유로 호적만 경주에 두고 지방으로 이주한 인구까지 포함한 수치라는 설, 호가 아닌 구(口)의 잘못된 표기로 보고 35만여 명 정도로 파악해야 한다는 설, 당대 농업 개간 능력 고평가하는 관점에서 수도 경주의 면적을 다르게 계산해서 그 정도가 나온다고 보는 설 등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가 경주 일대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것을 감안하면 90만 인구는 경주와 경주 일대의 인구를 포함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삼국유사에 같이 적힌 고구려 전성기 인구 105만과 백제 전성기 인구 76만도 실제로는 대성산성과 평양성 지역의 인구와 한성(하북위례성과 하남위례성) 일대의 인구만을 파악한 규모라는 것이 정설이다. 어쨌든 수십만 이상의 인구 규모는 그 당시로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치임이 틀림없다. 일본 헤이안 시대 수도 헤이안쿄(지금의 교토)에는 20만 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당시 교토와 경주의 면적이 비슷하고 신라와 일본의 체급 또한 엇비슷하기 때문에 경주 인구 100만설은 더욱 의문이 간다.
신라가 망한 이후 고려시대에도 한동안은 과거의 영화를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지금의 경주 시가지는 신라 시대의 경주 시가지와는 지리적으로 좀 차이가 있다. 신라시대의 경주 시가지 중심은 현대 경주 시가지의 남동쪽인데 주로 논밭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황룡사 등의 유적지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민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근대에 땅을 파헤치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건설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점이다.
도로와 주택들은 도시계획에 의해 바둑판 모양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앞 부분에 경주 월성이 보인다. 단, 월성 안의 건물 배치는 상상일 뿐이다. 월성 북쪽에는 별궁인 임해전이 있으며 그 동쪽에 황룡사가 있다. 그리고 그 바로 위가 분황사다. 임해전에 붙어있는 안압지 등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통일신라시대가 기준인 것 같다. 또, 월성 남쪽 강 건너에 있는 절은 인용사다. 월성 남북쪽으로는 너비 23m의 주작대로가 있고, 그 북쪽 끝에 보이는 건물은 또 다른 신라의 궁궐터인 전랑지(대궁지)다. 다만 이 곳은 현대 경주의 시가지에 포함되어 버렸고 발굴과 연구가 미흡해서 정확한 이름은 불명이다. 아직까지 이름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
2.1. 시대별 역사
2.1.1. 선사 시대
경주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를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주변지역의 정황상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의 경주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신석기 시대의 흔적은 황성동, 내남면에서 약간의 토기 조각 정도만 나와서, 사람이 살긴 살았지만 그 수는 별로 많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경주분지에 사람이 많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7세기로 그 때부터 만들어진 지석묘로 알 수 있지만 이들은 초기 신라(사로국)의 주도 세력은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다 기원전 3세기 말 ~ 2세기 초 즈음 서북한 일대의 고조선계 집단이 들어와 자리하고, 다시 기원전 2세기 말~1세기경 교과서에 나오는 세형 동검을 비롯해 초기 철기를 보유한 집단이 외부에서 들어온다.
아무래도 전자는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크게 패배해 요동에서 평양 일대로 중심지를 옮기게 되었을 때 발생한 피난민 집단이고, 후자는 위만의 찬탈 당시 위만에게 동의하지 않았던 한씨 조선인들 및 위만조선이 망했을 때 내려온 위만조선인들로 해석된다. 또한 2세기 초중반에는 또 다시 낙랑계 조선인들이 내려오며, 이들이 2세기 후반~3세기 초반경 다른 조선계 집단을 아우르며 그 위에 서는 위계 체제를 확고히 하고 주도 집단으로 부상한다.
2.1.2.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천 년 간 신라의 수도였고, 왕경 일대가 서라벌, 금성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자세한 사항은 서라벌 문서 참조.
한편 안강읍 일대는 신라 초기 때 음즙벌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다가 파사 이사금에 의해 정복되어 신라 소속의 비화현이 되었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일대는 모혜현, 북구 신광면 일대는 동잉음현이라는 고을이 있었다.
6세기 중반 진흥왕의 정복 활동으로 고구려가 백제에게서 빼앗았던 마한 소국 중 하나의 근거지인 충주 일대가 신라의 판도에 들어가게 되는데, 진흥왕이 이 일대를 국원으로 명명하면서 옛 가야인들을 비롯한 서라벌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사민하게 된다.
이후 삼국통일전쟁 기간을 거쳐 통일신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인들이 가장 많이 섞여서 살게 된 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보덕국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고구려인을 서라벌에 정착시켰고, 백제부흥운동 진압 과정에서 역시 적지 않은 백제인을 서라벌에 정착시켰다. 또한 삼국 출신들로 구성된 중앙군 9서당을 서라벌에 설치하여 구삼국의 인력들을 수도 방비에 동원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무래도 왕경인으로서 대우받게 된 정황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통일신라 지방민으로 편입된 고구려인, 백제인과는 달리 전원 고구려인, 백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순탄하게 신라인으로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비화현, 모혜현, 동잉음현은 각각 안강현, 기계현, 신광현으로 개편되었다. 다만 신라의 이러한 천년 영광은 견훤의 서라벌 함락으로 큰 상처를 입으면서 두 번 다시 회복되지 못하게 된다.
견훤은 서라벌을 점령하고 경애왕을 죽인 뒤 약탈과 파괴를 저질렀다. 경주는 폐허가 되었고, 장인 및 궁녀 등등 포함하여 많은 이들을 포로로 잡아 수도 전주로 옮기게 되는데, 적어도 경주가 이런 식으로 조직적 약탈을 통해 타 지역으로 사민당한 건 이 시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정책적인 이주로 따지면 전주가 충주에 이어 두번째였지만, 6세기 충주 사민은 진흥왕이 국가 발전을 위해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한 것이고 10세기 전주 사민은 견훤이 순전히 자국을 강화하고 타국을 약화시키려고 한 것이라 같은 선상에서 비교는 어렵다.
2.1.3. 고려시대
고려시대 경주시 행정구역 변천사
경주
(慶州)
(천수 18)
→
안동대도독부
(安東大都督府)
(940)
→
동경
(東京)
(987)
→
경주
(慶州)
(1012)
→
동경
(東京)
(1030)
→
경주
(慶州)
(1204)
→
동경
(東京)
(1219)
→
계림부
(鷄林府)
(1308)
주로 크게는 경주와 동경이라고 불렸다. 그 외에도 안동, 계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전 신라시대와 비교하여 면적이 넓어졌다. 지금의 외동읍에 해당하는 임관군, 문무대왕면에 해당하는 약장현을 통합하였다.
935년(천수 18년) 신라가 고려에 합병된 이후 태조 왕건에 의해 경주(慶州)라고 부르고 경순왕 김부를 사심관으로 임명하여 이 지역 일대를 통치하게 했다. 이후 987년(성종 6년) 개경(개성시), 서경(평양시)과 함께 고려 3경을 이루고 왕이 가끔 행궁에도 방문했을 정도. 그러나 이후 1012년(현종 3년) 현종에 의해 경주로 격하되었지만 곧 1030년(현종 21년) 다시 동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견훤의 서라벌 함락과 이후 경순왕의 개경 상경으로 주민이 많이 유출된 이래로, 적어도 신라 시대에 비해선 인구는 크게 줄었던 게 분명하다.
흔히 남경의 설치로 동경이 쇠락했다는 주장이 만연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경주가 동경에서 격하된 주요 이유는 반란이나 관제의 변경 때문이지 남경의 성장 때문이 아니다. 남경의 설치 이후에도 동경으로서의 위상은 거의 유지하였고 1308년 격하될 때는 남경도 같이 격하되었다.
정지상(鄭知常)의 시에, “새벽에 작은 누(樓) 머리에 일어나서, 발[箔]을 걷고 하늘을 쳐다본다. 누 아래는 곧 계림이니, 기괴한 것을 이루 다 셀 수 없고. 늙은 나무에 연기가 부슬부슬, 일만호(一萬戶)에 비꼈네. 흰 구름은 동쪽 산에 날고, 푸른 물은 서쪽 포구로 달린다. 우뚝 솟은 황금절들, 서로 바라뵈며 아침 햇빛 따사롭구나. 반월성(半月城) 가운데 빽빽하게 서 있는, 꽃과 대[竹] 이제는 주인이 가고 없네.
(중략)
멀리 조망하려고 서루(西樓)에 오르니, 처마와 기둥이 날아 춤추는 듯. 남쪽 트인 곳에 인가가 조밀하며, 문물은 신라의 옛 땅일세. 금찰(金刹)들이 인가 사이에 섞여 있어 열에 아홉은 되는 듯. 성적(聖跡)이 세속에 섞여 있어서, 지나가는 손이 구경하기에 바쁘도다. 큰 저택과 아름다운 절들이, 전란(戰亂) 뒤엔 들밭을 이루었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21권 경상도 경주부 백률사
정지상은 고려 중기 김부식과 동시대 사람이고 이후 기록은 고려 말 14세기 문인 박효수의 시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신라의 왕궁이었던 경주 월성은 무너져 대나무와 꽃이 무성해졌지만 시가지는 거대했고 황금빛 사찰이 빛나 지나가는 사람이 구경하기 바쁜 화려한 도시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몽골 전쟁으로 많은 큰 건물들이 폐허로 남은 상황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1204년(신종 7년) 무신정권기 신라부흥운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또 다시 경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1219년(고종 6년) 다시 동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1308년 고려의 외왕내제 체제를 제후국 체재로 개편하라는 원의 압박으로 인해 계림부(鷄林府)로 격하되었다. 당시에 고려의 경(京) 다음으로 고려의 최상급 행정기관인 목(牧)도 제후국 체제로 개편되면서 없어지는 판국이다 보니 부 정도만 해도 나름 위상은 있는 편이었다.
흔히 무신정권 기간에 신라부흥운동으로 인해 경주는 서울에 밀려 3경(京)의 위상을 잃었다고 하는데, 위의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란이 일어난지 겨우 15년이 지나 다시 동경이라 불리며 원간섭기에 황제국만 가질 수 있었던 행정구역이 제후국의 위치에 걸맞도록 격하되기 전까지 부수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2.1.4. 조선시대
조선시대 경주시 행정구역 변천사
계림부
(鷄林府)
(1392)
→
경주부
(慶州府)
(1394)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직후, 고려말의 계림부(鷄林府) 지명이 이어지다가 1394년 경주부(府)로 개칭되어 조선말까지 유지되었다. 부(府)는 조선시대 행정구역인 부목군현 중 최상위 행정구역으로, 조선 전기에는 전국에 6개만 존재했는데, 고려시대 4경인 개성, 한성, 평양, 경주에다가 조선 왕실인 전주 이씨의 어향인 전주, 함흥이 부로 승격되면서 조선 전기에는 단 6개의 부가 존재했다.
조선시대에도 전전조 신라의 고도, 경상도의 수부 도시, 유교와 양반 문화의 근거지로서 경주의 위상은 상당히 높았다.
고려시대와 비교하여 지금의 경주시 안강읍, 강동면에 해당하는 안강현, 지금의 포항시 기계면에 해당하는 기계현, 포항시 신광면에 해당하는 신광현, 경산시 자인면에 해당하는 자인현 4현을 속현으로 거느렸다.
조선시대에 특기할 사항으로는 이언적의 본향으로 지금의 양동마을로까지 이어지는 양반 문화가 발달했다는 점이다. 흔히 경주에 널려 있는 불교 유적 때문에 경주 = 불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교에서도 꽤나 유서 깊은 지역이다. 이황과 더불어 영남 학파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이언적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주는 양반 문화가 발전한 지역이었다. 양반 문화가 발달했다는 증거로 1909년 호구 조사의 결과에 있는데, 당시 경주 내에서 양반이 2,599호로 전국에서 양반이 제일 많았다. 인구 비율로 보나 전체 인구로 보나 대도시 중에서는 경주보다 양반이 많은 곳은 없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사상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동학의 탄생지라는 점.
18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 때 경주군이 되었다.
1906년 기계면과 신광면이 흥해군으로, 죽장면이 청하군으로, 동해면이 장기군으로, 외남면(현 울주군 두동면, 두서면)이 울산군에 편입되었다.]
2.1.5.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이후 경주시 행정구역 변천사
경주군
(慶州郡, 1914)
→
경주시
(1955)
월성군
(月城郡, 1955)
→
경주시
경주군
(1989)
→
경주시
(1995)
1914년 양남면과 양북면이 환원되었다. 1931년 경주면이 경주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37년 양북면 일부가 감포읍으로 승격되었다.
일제 초기에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었으나 점차적으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가 성장함으로 인해 경주는 전국 대도시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경상도 내에서의 주요 도시로만 기능했다.
2.6. 대한민국
1949년 강서면이 안강읍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 경주읍, 내동면일원 및 천북면 황성리,용강리, 내남면 사정리,탑리가 경주시로 승격되었으며, 경주군의 잔여지역을 월성군(月城郡)으로 개칭하였다. 1973년 월성군 서면 일부를 건천읍으로 승격하고 월성군 내남면 율리,배리를 경주시에 편입하였다. 1975년 천북면 손곡리가 경주시에 편입되었다. 1980년 외동면을 외동읍으로 승격하였다. 1987년 월성군 현곡면 금장2리가 경주시로 편입되어 석장동이 되었다.
1989년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34년만에 명칭이 환원되었다. '월성'이란 명칭은 '월성 원자력 발전소' 등의 이름으로, 아직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995년 경주시와 경주군이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2021년 양북면이 문무대왕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0년 6.25 전쟁 초기부터 끝까지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 방어선이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사수된 덕분이다. 낙동강 전선이 최대로 밀렸을 때, 경주 북쪽 안강까지 내려왔으나 결국 경주는 방어선 안에서 지켜졌다. 그래서 경주에는 국보급 문화재들이 파괴당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되면서 인근 포항, 울산보다 산업화 면에서 뒤쳐지게 되었다. 항구도시인 포항, 울산보다 입지가 밀리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문화재 보호 때문에 거의 도시 전체가 개발이 제한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 동안 경부고속도로를 제외하고는 혜택을 받지 못 했고, 관광을 제외하면 성장 동력이 없었다. 포항, 울산, 부산, 대구로 인구가 많이 유출되었다.
3. 지리
형산강 유역 평지에 도시가 형성된 분지 지형이다. 경주 서천(형산강)과 북천이 만나는 곳에 평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어 신라의 도읍으로 기능해온 곳이다. 또한 기계천이 합류하는 안강읍 일대에도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면적 자체는 경주 분지보다도 더 넓다. 다만 산내면은 형산강이 아닌 낙동강, 그 중에서도 동창천 유역으로 경주시 타 지역과는 지리적으로 구분된다.
분지 지형이라 여름에 아주 덥다. 특히나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대구, 울산, 포항, 경산, 영천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2015년 8월의 경우 거의 한 달 내내 30℃ 이상을 기록했고 월평균 최저기온이 32°C였고, 2016~2022년 역시 강력한 더위를 매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8월 12일에는 39.4℃를 기록했고, 2017년 7월 13일에는 2016년 8월 13일에 기록한 인근 영천시의 39.6℃의 기록을 뛰어넘고 39.7℃를 기록했다. 이는 대한민국 기상 관측 사상 세 번째로 높은 값으로, 이보다 더 높은 기온은 1942년 대구, 1939년 추풍령 밖에 없었으나 2018년 8월 1일에 강원도 홍천이 공식적으로 41.0℃를 기록하면서 현재는 3위에서 밀려났다. 즉, 최근 들어서는 최고 기온인 셈이다. 심지어 비공식적으로는 1942년 8월 13일 경주에서 43.5℃를 기록한 적도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 관측된 역대 공식/비공식 기록을 통틀어 최고 기온 2위이다.
남쪽이고 동해에 접해 있어서 겨울철에 타 지역보다 덜 춥다는 점이 있지만 비나 눈이 잘 안 내려 산불 위험이 다소 있다. 전반적으로 강수량은 적은 편에 속한다. 다만, 21세기 들어 기후변화로 인해 2018년 1월 10일과 같이 눈이 크게 내리는 해가 있는 편이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경주시의 기상 관측이 시작된 지 불과 13년밖에 되지 않은 고로, 2010년 이전의 경주 날씨는 영영 알 수 없다.
3.1. 태풍, 홍수
원래 경주에는 가뭄이 비교적 흔한 편이며,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는 매우 드물며 기껏해야 태풍이 지나갈 때 폭우 피해를 간혹 겪는 정도다. 하지만 경주에서도 비가 많이 내리는 산내면은 한번씩 폭우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며, 상류에 홍수 조절용 댐이 없는 서천 주변은 조금만 비가 내려도 수위가 금방 높아져 둔치에 주차한 차량의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한국에서 태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경상도 남동부에 위치해 있으나, 시가지는 내륙에 있어서 태풍의 피해는 주변 도시에 비해 적은 편이다.
경주에 피해를 입힌 역대 태풍을 보면 1991년에 태풍 글래디스, 2003년 태풍 매미, 2005년에는 태풍 나비로 인한 강풍과 폭우 피해가 발생했으며, 최악의 피해를 입힌 재난이 되었다. 당시 이 홍수로 가장 피해를 입은 지역은 태풍 글래디스 때에는 안강 지역, 태풍 나비 때에는 시내 남쪽 지역이다.
1991년 태풍 글래디스는 경상도 해안가로 지나가면서 부산, 울산, 창원, 포항에 엄청난 폭우를 뿌려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이 도시에 지나고 있었던 하천인 수영강, 태화강, 형산강이 수위가 급격하게 상승해서 범람 위기를 맞았다. 그 도시의 사이에 있었던 김해, 양산, 경주도 역시 예외도 아니게 많은 폭우를 쏟아내며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특히 안강읍 지역은 아예 물에 잠겼으며 거의 시가지 전체가 잠겼는데, 그 이유는 안강이 형산강의 큰 지류인 기계천이 형산강에 유입되는 평야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두 갈래로 나뉘는 부분에서 홍수 때문에 한쪽으로 물이 흘러넘쳤는데, 이때 흘러넘친 방향이 인구 밀집지역인 안강 쪽이었다. 그리고 큰 강 유역도 아닌 외동읍 지역도 제방이 유실되면서 심각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2003년의 태풍 매미의 경우에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닥친 한 개의 태풍이 이전의 태풍에 의한 피해는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만들어 버렸다. 매미 당시 경주에서는 특히 바람에 의한 피해가 컸는데 태풍 글래디스 이후 처음으로 가로수가 뽑히고 전신주가 기울었으며, 해안가도 아닌데 수많은 아파트의 베란다 샤시들이 박살이 났다. 다만 경주가 태풍 매미의 오른쪽 위험 반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태풍 매미의 사례는 부산과 창원의 피해가 워낙 크기도 해서 자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주목받지 못했다.
2005년에 강타한 태풍 나비도 역시 경주에 최대의 피해를 입힌 태풍이다. 나비는 당시 울산과 포항을 강풍과 폭우로 쓸고 가서 피해가 컸는데, 경주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태풍 나비는 비교적 빨리 한반도를 간접적으로 관통해서 매미 때만큼의 바람에 의한 피해는 없었으나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로 인해 적다고는 하지 못할 정도로 피해를 입혔다. 이때의 폭우로 북천의 상류인 보덕동의 덕동댐이 붕괴될 뻔했는데 만약 그랬다면 경주시 전체가 수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내 지역과 그 남쪽 저지대, 즉, 남천과 고현천(건천에서 오는 하천)이 서천에 유입되는 저지대의 피해가 전반적으로 컸다.
서천은 상류에 조절용 댐이 없어서 원래도 갑작스런 폭우에 취약한데, 이때 경주 동쪽 - 덕동댐 쪽 수계보다는 남쪽과 울산 서쪽에 비가 많이 오면서 서천이 거의 범람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터미널 근처(여긴 저지대도 아니다)와 경주IC에서 시가지 쪽으로 오는 길에 있는 율동, 배동, 탑동이 모두 침수되었다. 다행히 경주시청은 큰 피해가 없었는데, 정작 시청이 위치한 동천동 지역은 침수 피해가 많았다. 어쨌든 당시 북천 연안에 면한 동천동, 황성동 쪽 저지대보다는 서천내 근처 지역의 피해가 심했다.
2022년에도 태풍 힌남노가 강타하면서 양동마을 등 일부 마을들이 침수되었으며 백률사 아래 굴불사지 석불상이 토사에 파묻히고, 서악동 고분군 중 한 고분이 표면이 유실하는 등 문화재 피해도 많았다. 형산강의 범람으로 강변 산책로의 가로등이 쓰러졌고 건천읍과 문무대왕면의 저수지가 붕괴위험에 처했으며, 경주역 주차장이 침수되었다. # 그러나 이는 인근에 있는 포항의 피해가 더욱 컸다. 포항에 비하면 경주는 비교적 피해를 덜 입었다.
3.2. 폭설
경주는 과거부터 눈이 매우 드문 지방이다. 1년에 눈이 내리는 횟수 자체가 5회 내외이고 눈이 쌓이는 경우가 1년에 0~2회 정도 밖에 안 되며 눈이 쌓여도 땅을 겨우 덮을 정도로, 대략 5mm 정도만 쌓이는 그런 곳이었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1990년대 초반 '경주 기준에서 폭설'이 내린 이후 이렇다 할 큰 눈이 없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2003년 이후로는 양상이 달라졌다. 2003, 2004년 겨울에 눈이 제법 온다 싶더니 2005년에는 경주를 포함한 동해안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고, 그 이후로는 거의 1-2년에 한 번 꼴로 큰 눈이 왔다. 2014년 2월에도 폭설이 내렸는데 당시 기온이 영상이던 평야 지역에 눈이 쌓이지는 않았으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산간 지역에는 눈이 쌓여 큰 피해를 입었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도 이때 발생했다. 2003년부터 이후 약 10년간은 눈이 꽤 왔으나 2014년 이후로는 다시 눈이 쌓이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가 이후 2021년에 또 다시 눈이 쌓였다.
2022년 12월 21일에도 눈이 왔다. 8시 이후로 눈이 오기 시작했는데, 출근시간대라 도로가 상당히 혼잡해졌고, 눈 자체도 30~40분 정도 내리다가 잦아들었다. 내남면 경부고속도로 내남나들목 부근에서 차량 3대가 잇따라 추돌했으며 이를 피하려던 25톤 가스 탱크로리 1대가 넘어져 운전자가 다치고 아르곤 가스가 소량 누출되었다. 이 외에도 예보보다 많은 눈이 내린 탓에 피해가 집중되었다. 2023년 2월에도 눈이 내려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어 경주국립공원에 탐방로가 통제되기도 하였다.
3.3. 강풍
경주는 동해안에 인접한 지역이 포함되어 있기도 해서 바람이 잘 불어 강풍주의보가 날씨 안 좋을 때는 가끔씩 발효될 때도 있다.
3.4. 산불
경주는 산이 많은 지역이고 특히 봄과 가을에 건조한 편이며, 건조주의보도 겨울, 봄, 가을에 자주 있어서 산불이 잦은 편이다. 2009년 4월 10일 소금강산에 큰 규모의 산불이 일어나 관계 기관들이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
3.5. 지진
많은 활성단층이 지나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도시인만큼 "지진"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도시 중 하나이다. 그만큼 소규모, 중규모의 지진이 한국 내에서 상당히 잦은 편이다.
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쯤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규모는 5.1이었다가 약 한 시간 뒤인 8시 32분 쯤에 본진이 발생했는데, 규모가 무려 약 5.8에 달했다. 이후로도 수백 차례 여진이 발생했고, 피해액이 최소 75억원을 돌파함에 따라 경주는 국내 사상 처음으로 지진에 의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위 지진의 여진으로 2016년 12월 12일 오후 5시 53분쯤에 3.3 지진이 발생하였다. 2일 뒤인 14일 오후 5시 20분경에도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10km 지역에서 3.3 지진이 발생했다.
삼국시대에도 경주에서 이따금씩 지진이 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사인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데 신라 중대 마지막인 혜공왕 때에 극심한 지진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지질사상 유의미한 지각 변동 중 송림 변동과 대보조산운동에 가린 비운의 불국사 변동이 있다. 경주시를 비롯한 한반도 동남부의 화강암이 이때 형성되었다고 추측되는데,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는 심성암인 화강암이 우리나라에 한두 군데에 위치한 것이 아닌데도 왜 하필 많고 많은 지명과 시설물명 혹은 시대명 중 경주의 불국사가 붙었을까. 경주는 지질학계의 조사 결과 활성단층인 양산 단층이 지나가는 도시이며 화성암을 만드는 화산 활동이 지진과 매우 결부되어 있기에 경주 지진은 놀랄만한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
2023년 11월 30일 새벽에 지진이 났다.
3.6. 인구
신라의 천년고도였던 곳이니만큼 전통적으로 번성하던 곳이었지만 현대에는 과거의 위상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1960년대까진 포항시나 구미시보다 훨씬 큰 도시였지만 경주 관내의 수많은 유적들 때문에 인근 도시들처럼 중공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수 없었고, 청년층이 서울이나 울산, 포항, 대구, 구미 등 가까운 공업 도시로 이주하는 바람에 근 40년 동안 인구 증가가 멈춰 있었다. 1970년대에는 위쪽의 포항시와 아래쪽 울산광역시에서 장 보러 경주로 넘어왔지만,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두 도시가 각각 경주의 2배, 4배로 커졌는데 경주는 변화가 별로 없어 이제는 거꾸로 포항과 울산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다. 실제로도 포항과 인접한 안강읍, 강동면은 포항 생활권에, 울산과 인접한 외동읍, 양남면은 울산 생활권에 속한다. 1999년 292,480명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인구수가 감소하여 2022년 10월에는 25만 선도 붕괴되고 말았다.
2023년 1월 기준 만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4.90%으로 초고령 사회에 속한다. 또한 2018년 8월부터 소멸위험지수 0.496로 김천과 함께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고 2020년 11월에도 0.43으로 나왔다. 다만 아직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의 경우엔 오히려 역유입되고 있다.
도 내에서 인구 순위는 4위다. 공업도시로 발전한 포항시, 구미시한테는 이미 예전에 추월당했고, 2017년 11월부로 경산시에도 인구를 추월당했다. 다만 경산시는 대구의 위성도시라서 지역 자체적인 중심성이 강한 것도 아니고 이렇다할 특성도 없는 도시라서, 경주시의 실질적 지위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상징성과 관광지 덕분에 유명세로는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므로 경주가 차지하는 상징성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2016년 3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이전하면서 한전KPS㈜, 한전KDN㈜,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원전현장인력양성원, 원자력 과학연구단지 조성 등 61개 기업이 경주시로 터전을 옮겼다. 한수원과는 2020년까지 원자력 연관기업 115개를 유치, 2,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침이기도 하다. # 이것만 본다면 경주의 미래가 꼭 나쁘지만은 않아 보이지만, 동국대 WISE캠퍼스가 캠퍼스 이전을 검토하는 등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4. 교통
도로 교통에 비해 철도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편이었지만, 경부고속철도 경주역 개통과 함께 서울까지의 소요시간이 2시간 초반대로 단축되었다. 경주 시내에서 경주역까지 차로 20~30분 정도가 걸린다.
버스는 2012년도에 교통카드를 사용할 경우 30분 내에 환승을 하면 1회에 한해 환승무료제도를 시행했다. 단, 울산, 포항, 영천까지 가는 버스는 환승이 되지 않는다. 울산에서 경주, 포항과 광역환승체계를 도입하려는 계획은 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2018년에 원화로에 위치한 경주역과 현곡면 금장리에 위치한 서경주역 2곳을 없애고 현곡역을 새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래서 현곡면에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 현곡 푸르지오 2차까지 완공되었다. 또한 2024년에는 자이르네가 완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경주시의 인구는 정체 및 감소 추세인 데다 비교적 도심과 멀리 떨어진 탓에 현곡푸르지오 아파트 외에 이렇다 할 개발은 이뤄지지 않고 미분양 상태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여담으로 이 지역을 지나는 4번 국도와 7번 국도는 포항시의 제철소와 울산광역시의 공업단지에 드나드는 차량들과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그리고 경주시로 오는 관광버스들이 지나다 보니 전국 최악의 사고율과 사고 치사율로 죽음의 도로라는 악명을 떨쳤으며, 이 고장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교통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거나 큰 부상을 당하고 그 후유증을 겪는 피해를 겪었다. 그러나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경주시 외곽 지역에 세워진 공장들의 생산품에 포항과 울산의 공업 제품과 울산항, 부산항을 통해 수출입되는 화물 상당수가 7번 국도를 통해 운송되기 때문에 교통량이 제법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주시를 관통하는 7번 국도, 특히 공장이 즐비한 지역이자 이러한 차들이 지나다니는 거대한 도로가 괜히 산업로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고속도로 통행이 곤란한 대형 화물 적재 차량이 많이 통행하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 사고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니 단속 카메라와 사고다발 지역 경고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5. 경제
5.1. 산업
당연하겠지만 관광업이 매우 중요하다. 이건 두말할 필요가 없어서, 시내권과 남산, 불국사 등 신라유적지 관광 및 보문단지를 중심으로 한 컨벤션산업(HICO)이 발달해 있다. 다만 그와 반비례해 시내에는 산업단지가 매우 적은데, 그나마 일진글로벌이 용강산업단지를 본진으로 삼고 있는 정도. 되려 외곽의 읍면지역이 포항, 울산과의 접근성 덕에 공장들이 꽤 많다. 포항과 인접한 안강읍, 강동면, 천북면이나 울산과 인접한 외동읍이 대표적. 특히 외동읍은 김해시를 방불케 하는 난개발이 이루어져 들판 곳곳에 공장들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안강읍에는 풍산그룹의 사업장이 있어 동전 원료, 탄약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금복주의 계열사인 경주법주의 사업장이 있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의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 등과 맞물리면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경주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그 위치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뜬금없는 산골이지만, 어쨌든 경주시의 재정에 기여를 하고 있으며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과 같은 유관 기업들이 함께 따라왔다.
5.2. 상권
경주시는 문화 시설이라는 것도 대부분이 관광지(보문단지)로 편입되어 있어서 실제 경주 시가지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문화 행사를 개최할 만한 장소조차 없이 그저 상업시설(옷가게, 음식가게, 카페, 휴대폰 가게, 은행 등)에만 치중되어 있는 시가지 내부를 볼 수 있으며 영화관도 정말 작다. 이런 현실도 경주시민 나름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다. 예술의 전당이 2010년에 새로 완공되긴 했지만 갈 길이 멀다. 꼭 문화 행사가 아니더라도 도시 개발의 난점 때문에 시민들이 즐길 만한 오락 시설이 매우 적다.
그러나 보문관광단지를 포함하면 급이 확 높아지는데 놀이동산인 경주월드가 있다! 게다가 대구광역시를 제외하면 경북권에서 구미시와 더불어 제대로 된 오락실이 아직까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는 편이다. 특히 GAMEWORKS는 BEMANI 시리즈와 태고의 달인 NIJIIRO로 인해 경주의 리듬게이머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오락실이다.
2010년 11월 예술의 전당이 개관했다. 연극, 콘서트 등 문화 접할 기회가 더 늘었다. 경주시의 문화행사는 거의 대부분 문화재단에서 기획, 추진한다. 경주시의 문화행사를 전반적으로 구경하고 싶다면 경주문화재단 홈페이지를 방문할 것.
5.2.1.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 경주점, 경주용강DT점, 경주황남DT점, 경주보문DT점
노브랜드 버거: 경주용강점
버거킹: 경주용강DT점, 경주터미널FS점, 경주보문점
프랭크버거: 경주용강점
맘스터치: 용황점, 외동입실점, 안강점, 성건점, 경주금장점, 경주양남점, 경주동천점, 경주중앙점, 경주월드점, 경주충효점
롯데리아: 경주점, 경주황성점, 경주안강점, 경주역사점, 경주보문점, 경주용황점
피자헛: 경주황성점, 남경주점
파파존스: 경주점
도미노피자: 경주성건점, 경주보문점
미스터피자: 경주중앙점, 경주황성점
써브웨이: 경주중앙점
경주시는 비슷한 인구 규모의 중소도시 중에선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점포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며 종류도 다양한 편이다.
패스트푸드점의 경우 노브랜드 버거, 파파존스, 써브웨이, 프랭크버거는 단 1곳인 반면 피자헛, 미스터피자, 도미노피자는 2곳, 버거킹은 3곳, 맥도날드는 4곳, 롯데리아는 6곳, 맘스터치는 10곳이다. KFC는 엔제리너스 커피와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들어오면서 사라졌으며 구 KFC 자리에 들어선 엔제리너스와 크리스피 크림 도넛도 얼마 안 가서 문을 닫았다. 2023년 12월 15일을 기준으로 구 경주 KFC 터는 이니스프리 경주점, 빈폴 경주점, 놀숲 경주점, LG U+ 대왕시네마점이 들어서있다.
5.2.2. 대형마트 및 SSM
경주의 대형마트 분포는 아래와 같다.
홈플러스 경주점
경주에 대형마트는 2024년 현재까지도 용강동의 홈플러스 1곳이 유일하다. 2012년에 홈플러스에서 경주시 충효동에 2호점도 개점하려고 했었지만, 지역 상인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다만 경주역 역세권에 농협 하나로마트가 입점한다는 얘기와 보문천군지구에 대형마트가 개점할 예정이라는 얘기는 있다. 어쨌든 대형마트로는 킴스클럽이 개점했다가 폐점한 바 있으며, 1970-80년대에는 신라백화점이라는 백화점이 있었던 적도 있는데, 2002년에 영업을 중단하였다. 현재 신라백화점 자리에는 다이소가 영업하고 있다.
반면 경주시의 SSM은 10곳이 있으며 각 SSM별 분포는 아래와 같다.
롯데슈퍼: 경주동천점, 경주보문점, 경주용황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경주안강점
탑마트: 경주동부점, 경주황성점, 경주안강점
GS THE FRESH: 경주현곡점
이마트 에브리데이: 경주용강점
No Brand: 경주용강점
5.2.3. 아울렛
모다아울렛 경주포항점
5.2.4. 영화관
롯데시네마: 경주, 경주황성
씨네Q: 경주보문
메가박스: 없음.
CGV: 없음.
영화관은 네 곳이 있으며 씨네Q는 직영, 경주 및 경주황성 롯데시네마는 위탁관이다. 과거 단관 극장 시절엔 아카데미극장, 대왕극장 등이 있었고 모두 당시 영화계 큰손이었던 강우석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멀티플렉스들에게 넘어갔다.
사실 경주시의 영화관들은 규모가 작고 조촐해서 많은 경주 시민들은 영화 관람을 위해 지금도 포항이나 울산, 부산, 대구의 멀티플렉스를 이용하는 상황이다. 얼마나 작은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롯데시네마 경주관이 총 2관에 279석인데 울산삼산 CGV의 IMAX 한 관 좌석 수(502석)의 절반 수준으로 적다. 총 6관 767석 규모의 씨네Q 경주 보문점과 총 6관 848석 규모의 롯데시네마 경주황성점이 열린 지금은 영화관 사정이 나아질지 두고 볼 일이다.
5.2.5. 커피 전문점
원래 경주는 인구 24만에 시내 지역 인구 13~14만 명 정도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매우 마이너한 브랜드밖에 없었다. 2008년 내지 2009년 사이에 첨성로 일대에 소규모 카페가 많이 증가했다. 반월성 주변에 유채꽃도 심고 경관 조명을 설치하면서 봄가을 저녁에 이쪽으로 나들이하는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듯했다. 일단 낮이든 밤이든 뷰가 좋고(바로 앞에 고분군 + 첨성대 + 반월성), 나름 아기자기한 곳들이 많아 나름 경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그리고 시내에 탐앤탐스가 유일한 메이져 브랜드 커피 프랜차이즈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더니 2010년 이후부터 갑자기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카페베네, 할리스 등이 보문 일원에 매장을 급속도로 내기 시작했다. 아마 관광객을 목적으로 한 듯한데 보문관광단지 주변에만 스타벅스가 순식간에 세 개(힐튼 호텔 옆에 하나, 대명 리조트에 하나, 콜로세움 입구에 하나), 엔제리너스가 두 개(보문에 하나, 보문 가는 길에 하나), 카페베네가 하나, 할리스는 보문에서 불국사 넘어가는 길에 하나(정말 외곽인데 장사는 잘 된단다! 거기다 한옥 매장이다.)가 생겼다. 이 정도면 "과도하다.", "출혈 경쟁이다." 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경주시에 들어온 거의 모든 커피점이 장사가 잘 된다.
특히 스타벅스가 거의 처음으로 시작했고 가장 대박을 쳤다. 스타벅스 경주 1호점은 한국 최초 DT(Drive thru) 점이며, 한국 최초 좌식 테이블을 적용했다. 초기에 한국에서 매출 좋은 매장 순위 10위 안에 들어갔다고 하니 정말 대박이다. 경주시 인구수를 생각한다면 정말 그러하다. 경주시 인구로는 택도 없고 관광객 수요를 제대로 끌어들인다는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여기서 스타벅스 특유의 다부진 마케팅이 빛을 발하는데, 바로 이어서 주변 대명 콘도 안에 2호점, 경주 시내에 3호점, 보문호 북편 전망 좋은 언덕에 4호점(역시 DT 매장)을 차례로 연 것이다.
그러면 이곳들이 "제 살 깎아 먹는 건가?" "잘 안 되고 있느냐". 모두 약간씩 다른 컨셉인 매장은 모두 그럭저럭 선방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가장 의문이었던 시내 3호점도 상황이 나쁘지 않다. 심지어 얼마 전 위에서 나온 첨성로 경주의 소규모 카페가 모여 있던 목 좋은 곳에 스타벅스 경주 5호점이 생겼다. 그리고 실제로도 주말 저녁마다 사람들로 넘친다. 5호점도 한옥 매장이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낮이든 밤이든 뷰가 좋은 곳에 있고 좌식 테이블이 있다.
경주는 상당히 오래된 분위기를 간직한 역사적인 도시다. 역사와 전통의 고장인 만큼 스타벅스 같은 외국 프랜차이즈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옥 건물에 입주하는 등 현지화를 하면서 현지 분위기에 맞추려 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색적인 조화가 될 수도 있다.
경주시 전역의 커피 전문점들 중에서 가장 흔한 카페는 이디야이며 경주시 내에서 29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특이하게 국립경주박물관 안의 카페테리아에 이디야가 있다. 이디야 다음으로 흔한 카페는 경주시 내에서 15곳이 영업 중인 컴포즈커피이다. 반면 메가커피는 3곳 밖에 없으며 엔제리너스는 양남주상절리점 한곳이 유일하다. 그 외에도 천씨씨커피가 황성동에 하나 있으며 투썸플레이스(5곳), 빽다방(5곳), 할리스(2곳) 등이 경주시가지나 보문단지 등에 입점해있다.
스타벅스, 컴포즈커피, 이디야, 카페봄봄, 메가MGC커피, 더벤티
스타벅스/대한민국/경상북도
컴포즈커피/대한민국/경상북도
이디야/매장/경상북도
카페봄봄/대한민국/경상북도
메가MGC커피/대한민국/경상북도
더벤티/대한민국/경상북도
5.3. 금융
경주시에 위치한 금융기관
제1금융권
국가기관
경주우체국 (20)
국책은행
중소기업은행 (2)
특수은행
농협은행(중앙회) (5)
시중은행
신한은행 (3)
우리은행 (2)
하나은행 (1)
국민은행 (1)
지방은행
대구은행 (5)
경남은행 (1)
제2금융권(상호금융)
농업협동조합
양남농협 (2)
동경주농협 (2)
불국사농협 (2)
안강농협 (2)
외동농협 (3)
천북농협 (1)
내남농협 (1)
산내농협 (1)
신경주농협 (3)
강동농협 (1)
경주축산농협 (10)
경주농협 (5)
대구경북능금농협 (1)
경북대구낙농농협 (2)
현곡농협 (3)
새마을금고
신경주새마을금고 (4)
남경주새마을금고 (3)
내남새마을금고 (2)
동경주새마을금고 (2)
양남새마을금고 (2)
경주새마을금고 (4)
성동새마을금고 (5)
현곡새마을금고 (2)
강동새마을금고 (1)
안강새마을금고 (2)
우성새마을금고 (4)
풍산안강공장새마을금고 (1)
신용협동조합
감포신용협동조합 (1)
서라벌신용협동조합 (2)
안강신용협동조합 (1)
산림조합
경주시산림조합 (1)
상호저축은행(상호금고)
대원저축은행 (1)
2021년 7월 국민은행 서라벌지점이 폐점됨에 따라 경주에는 국민은행이 한 곳만 남게 된다.
6. 관광
6.1. 관광과 문화재
경주는 광역시도 아니고 공업도시도 아니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관광 도시로, 인지도는 단연 탑이다. 한국 사람들 가운데 효도 관광, 수학여행, 신혼여행 등 어떤 식으로든 한 번 이상쯤은 가 본 경험이 있는 곳이다. 신라 천년의 수도이자 조선시대 영남 남인의 구심지답게 각종 불교 유산과 유교 유산이 공존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로마처럼 땅만 파면 유적이 그냥 나온다고. 심지어 가짜 이강석 사건 때에도 첫 번째 타깃이 경주였고, 당시 경주군수 등은 가짜 이강석을 데리고 경주 시내를 구경시켜주며 기념품까지 선물했다.
주요 불교 유산 관광지로는 국립경주박물관, 분황사, 불국사, 석굴암, 토함산, 첨성대, 대릉원, 남산, 동궁과 월지 등이 있다. 일부 사찰의 경우 입장료가 있었지만, 2023년 5월 4일부터 모두 폐지되어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다만 불국사와 석굴암 등 일부 사찰의 경우 주차 요금은 따로 징수한다.
주요 유교 유산 관광지로는 안강과 강동의 양동마을, 옥산서원, 독락당, 교동 최부자댁, 경주 월암종택, 이요당 등이 있다. 일단 경주시민은 문화재를 무료로 이용할 수가 있다.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도시답게 전국 최초로 안내책자 무료 발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안내책자 발송에는 약 일주일 정도 걸린다. 또 평일에는 각 주요 유적지 16곳에 문화 해설사가 근무하고 있다. 문화재를 관람하려고 할 때 돈을 내야 하는 곳이라도 굳이 안 내고 봐도 되는 곳도 많다.
2022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가 강타하면서 소금강산의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이 토사에 파묻히는 등 많은 문화재가 피해를 입었다.
대한민국 관광산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도시이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적극적인 경주 개발로 천마총, 보문관광단지 등이 개발되었고, 이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아져 1978년엔 연간 외국인 관광객 100만 명 돌파에 성공했다. 이 경주 개발을 발판 삼아 제주도, 설악산, 한려수도 등 다양한 관광지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3년 인천을 제치고 국내 여행 인기 지역 5위에 뽑혔다.
한국의 또 다른 관광도시인 전주와 경주를 비교분석한 영상이 있다.
숙박업은 대형 유스호스텔이 있던 불국사 주변은 몰락하고 여유가 있다면 보문단지로 가거나, 아니라면 황리단길이나 구 경주역 주변의 숙박업소로 가는 추세로 바뀌었다. 즉, 예전의 단체관광 메타에서 개인~가족 관광으로 변하는 추세로, 의외로 혼자 여행하기 나쁜 편은 아니다.
6.2. 경주시 주요 유적지(관광지)
경주 월성
국립경주박물관
대릉원 - 천마총이 있는 곳. 다른 지역 사람에게 대릉원이라고 하면 어디인지 모를 때가 많다.
금관총: 금관총 금관정보센터가 있다.
서봉총
천마총
호우총
황남대총
내물왕릉
법흥왕릉
쪽샘지구 44호분
분황사 - 석탑으로 벽돌탑의 양식을 흉내내어 만든 모전석탑으로 유명하다.
월정교
황룡사지
흥륜사지
6.2.1. 삼국시대
오릉
법흥왕릉
진흥왕릉
6.2.2.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 - 쌍석탑으로 유명하지만 시내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얘는 동해안, 즉 감포해수욕장하고 가깝다. 감은사 건립 당시에는 절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있었다.
경덕왕릉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경주 천군동 사지
경주 황성동 고분
골굴사
구정동 방형분
금척리 고분군
기림사
김유신 장군묘 - 주변 주민들의 주요 등산로. 주변에 김유신 장군의 시호를 딴 흥무공원이 있으며, 경주의 대표적인 벚꽃 구경 코스이기도 하다.
나정 - 박혁거세가 탄생한 곳이자 신궁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
동궁과 월지 - 안압지로 잘 알려져 있다.
망덕사지 - 통일신라의 쌍탑식 가람을 가진 사찰로, 두 개의 목탑이 있었다.
명활성 -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거점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기록된 산성.
무열왕릉
문무대왕릉
문성왕릉
민애왕릉
배동 삼릉
불국사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경주 불국사 다보탑
사천왕사지 - 통일신라의 쌍탑식 가람을 가진 사찰로 목탑 두 개가 있었다.
서악동 고분군
석굴암
선덕여왕릉
성덕왕릉
신무왕릉
신문왕릉
원성왕릉(괘릉)
이견대
傳인용사지(인왕동 사지) - 월성 남쪽에 있는 절터.
일성왕릉
일정교지
남산, 낭산, 토함산, 단석산 이곳저곳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백률사 - 불국사의 말사로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이 있다. 석탈해왕릉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석탈해왕릉
성덕대왕신종 - 종을 보호하기 위해 2004년부터는 아예 타종하지 않고 녹음된 소리를 틀어주고 있다.
전랑지 - 일명 대궁지. 경주 북쪽에 있는 궁궐터로 북궁이었을 것으로 추정.
정강왕릉
진지왕릉
진평왕릉
진흥왕릉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진덕여왕릉
첨성대 - 첨성대 서쪽은 시민들에게 개방된 잔디밭으로 연날리기나 각종 행사용으로 사용되며, 첨성대 동쪽은 각종 꽃이나 식물을 심어 감상하기 좋다. 가을에는 핑크뮬리가 심어져 있다.
탈해왕릉
포석정지
헌강왕릉
헌덕왕릉
헌안왕릉
효공왕릉
효소왕릉
흥덕왕릉
6.2.3. 조선시대 주요 유적지
양동마을
옥산서원
독락당
경주읍성
운곡서원: 가을 은행나무가 예쁘다. 들어가는 길은 좁아서 사람이 많을 때 불편하다.
6.2.4. 양반의 고장
안동시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안동과 함께 영남 남인의 양대 거읍으로서 '양반의 도시'였다. 양반 문서에서 설명하듯, 1910년 전국 호구조사에 따르면 총 군현을 단위로 양반이 많았던 고을 1위가 경상북도 경주군(2,599호)이었다.
6.2.4.1. 경주 북부
여주 이씨: 양동마을, 이언적, 옥산서원
경주 손씨: 양동마을, 손소, 손중돈, 동강서원
안동 권씨: 안강, 국당, 홍천 등. 권덕린, 권덕란, 권사악.
청안 이씨: 안강 산대, 이팽수.
아산 장씨: 강동 유금, 장계현.
영월 신씨: 모서. 신맹경.
영일 정씨: 하곡. 정극후.
경주 김씨: 사동. 김종일.
경주 이씨: 양월. 이제현/ 천북 이을규.
이천 서씨: 현곡. 서유.
6.2.4.2. 경주 시내 및 남부
경주 김씨: 내남 월남. 월암종택, 김호.
경주 최씨: 이조, 교촌. 최부잣집, 최진립.
서산 유씨: 화곡. 유의건.
풍천 임씨: 남산. 임화세.
영양 남씨: 보문. 남구명, 남경희.
여주 이씨: 보문.
김해 김씨: 외동 활성. 김득례.
6.3. 현대 관광지
보문관광단지 - 해마다 4월 초에 피는 벚꽃이 전국에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우니 이때 꼭 둘러보도록 하자. 하지만 벚꽃 시즌에 경주 보문단지를 차로 들어가는 건 거의 자폭 행위. 오히려 자전거가 더 빠를 정도로 차가 밀리니 차가 밀리지 않는 시간을 잘 알아보고 들어가자.
경주월드 - 경주월드 어뮤즈먼트, 캘리포니아 비치 등이 있다. 과거 '도투락 월드' 시절엔 비수도권 소규모 놀이공원과 다를 바 없었지만, 드라켄이라는 국내 최초의 다이브코스터가 등장하면서 롤러코스터 매니아들의 성지가 되었다.
블루원 워터파크 - 캘리포니아 비치는 탈 건 많은데 좁고, 여기는 공간이 여유 있다더라. 물이 좀 더 깨끗하다는 소문도 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 통칭 엑스포 공원. 1998년 이후로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석 달 동안 약 2~3년 간격으로 유치한다(2019년부로 10회). 공원 자체는 평상시에는 썰렁하기 이를 데 없고 표 자체도 성인 12,000원으로 비싼 데다 내부 시설 중에 추가 이용료를 받는 곳도 있지만, 엑스포가 한 번 열렸다 하면 '이래서 엑스포라 부르고 이래서 엑스포 공원이구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노점 매대는 기본에 온갖 구경거리들이 한 곳에 몰리고 사람들 역시 엄청나게 몰려 눈이 돌아가게 된다. 코로나 사태가 풍토병 급으로 낮아지고 종식된다면 작성일 기준 2022년이나 2023년 가을에 볼 수 있을 듯. 부속 시설로 솔거 미술관이 존재하여 박대성 화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정문 기준 좌측(동쪽) 엑스포 기념관에는 백남준의 백팔번뇌 작품이 여기에 전시되어 있으나, 브라운관 TV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현 상황에서 기계의 열화로 인해 주말에만 실제로 작동시키고 평소에는 사전 촬영한 영상으로 대체한다.
신라밀레니엄파크
경주 보문 유스호스텔 - 학교 수련회나 수학여행의 숙소로 많은 학교들이 이용한다.
양남 주상절리군 - 원래 군부대 안에 묶여 있다가 비교적 최근인 2009년에 민간에 개방된 해안가 지형. 제주도 등 다른 지역의 주상절리와는 다르게 가로로 누운 주상절리가 부채꼴로 펼쳐져 있단 특징을 가지고 있고 기본적으로 동해 바닷가라 경치도 좋아서 유명세를 얻고 있다. 2017년 10월 27일에는 전망대도 완공하였다. 단. 행정구역은 경주지만 위치는 울산, 포항과 인접해 거리가 꽤 멀다. 차량 이용이 필수며 신경주역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산길을 타야 해 운전난이도가 좀 있다. 주차는 근처 카페에 하면 되며 카페베네 2층 방문을 추천한다. 아니면 킹콩 카페도 좋다.
교촌마을 - 양남주상절리와 비슷한 시기에 관광지로 도약한 곳. 원래는 경주 최부자집이 있던 곳, 고급 한식당 요석궁, 경주향교 정도가 전부였으나, 그 주변에 월정교가 복원되고 한옥을 신축하여 관광지로 조성되었다. 규모는 전주 한옥마을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대릉원 방면 관광지를 보면서 같이 볼 만한 거리에 있다. 교리김밥이 유명해서 줄 서서 사먹는다.
황리단길 -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들어서 유명해진 관광지. 황남동 + 경리단길이란 뜻으로, 대릉원 천마총 구간의 서쪽에 위치해 개량식 한옥이나 길가 상점을 개조한 독특한 카페, 맛집, 한옥 민박 등이 입점하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경리단길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전주한옥마을과 좀 더 비슷한 분위기이고, 원래는 그냥 원도심의 한적한 주택가였다는 점까지 같다. 독특한 분위기 탓인지 거품이 굉장히 빨리 꺼진 다른 길에 비해서는 잘 되고 있는 편이다. 3년도 안 돼서 급성장한 곳이다 보니, 전주한옥마을에 비해서도 인프라가 모자라다. 특히 주차에 어려움이 있으며 차로가 좁은데 통행 차량은 물론 통행객도 많아 사고 위험이 있다. 시에서도 이를 인지해, 황리단길 중앙을 지나는 2차선 도로의 절반을 보행로로 바꾸고 일방통행도로로 만들었다. 또한 황리단길에 있던 황남초등학교가 용강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황남초등학교 운동장 등을 관광객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신라대종 - 2016년 11월에 완공된 대종과 종각으로, 2003년 이후 더 이상 칠 수 없게 된 성덕대왕신종을 대체하기 위해 봉황대 근처 옛 경주시청 자리에 만들어졌다. 신종의 형태를 완전하게 모방하고 있으며, 제야의 종으로도 사용된다. 한동안 단청은 칠하지 않고 있었으나 2018년 11월 기준으로 단청작업을 했으며, 결국에는 상록하단의 조선식 단청으로 칠해졌다.
도리마을 은행나무 숲 - 서면 도리 마을회관 근처에 있는 은행나무 숲으로 마을 중간중간에 키 큰 은행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11월 초에서 중순 사이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일 때 방문하면 가장 예쁘고 꽤나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은행나무 숲 옆으로 황화 코스모스도 피어 있고, 마을에 있는 주택 담벼락마다 아기자기한 벽화들도 그려져 있으니 같이 둘러보면서 사진 찍기에도 좋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 사진 작가들과 SNS를 통해 굉장히 유명해진 단풍 명소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다 보니 현재는 숲 근처에 카페도 생겼고, 가을철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화랑의 언덕 - 산내면 내일리 단석산 자락에 위치한 목장으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화랑의 언덕이라는 명칭보다 OK 그린목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1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나, JTBC 캠핑클럽의 촬영지로 알려지게 되면서 현재는 주말마다 많은 가족, 커플 단위의 여행객들이 찾고 있으며, 핑클 멤버들이 언덕 아래(내남면 비지1리)에 위치한 다랭이논을 바라보며 감탄한 명상바위가 이곳의 포토존으로 급부상 하였다.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들에게 먹이 주기 체험도 있다.
6.4. 세계문화유산
역사적인 가치로 봤을 때 일본의 교토나 나라와 비슷한 위치에 있으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도시 면적은 교토와 나라를 합친 것보다 넓다(1324.05㎢ > 827.9㎢+276.84㎢). 실제로 시 단위로 면적은 전국 3위이고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5위에 해당한다. 감이 안 온다면 대충 서울 면적의 2배보다 약간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은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성군의 읍면과 통합한 경주시의 면적이라 동 지역 부분만 따지면 경주의 면적은 222.63㎢이다. 일본의 행정구역 체제하에서는 도농복합제가 없기 때문에 동 지역 면적으로 비교하는 게 좀 더 적합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재 천지라 남산과 토함산을 포함하는 경주 시내 유적지구들이 경주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국보와 보물이 넘쳐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불국사와 석굴암, 경주역사유적지구, 양동마을, 옥산서원까지 도합 네 번 지정되었다. 경주역사지구 설명에서는 문화재의 밀도나 품질로 보면 교토나 나라보다 뛰어나다는 극찬도 받았다.
전술했듯이 경주는 서울보다 면적이 두 배 넓고 지하철이 없다. 그리고 산속에 숨어 있는 문화재들도 꽤 많다 보니 경주를 정말 제대로 살펴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자가용을 사용한다면 2박 3일 만에 주요 유적을 볼 수 있다.
6.5. 복원 계획
한국 역사 찾기의 첫 단추 "예산 1조…신라왕경 복원정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던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을 수립하였고, 무엇보다 방폐장 유치에 대한 보상으로 예산폭탄급의 막대한 자금을 얻은 경주시가 문화재 복원에 폭풍처럼 매진하면서 지금 경주는 유적복원이 매우 활발하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복원 문서를 참조.
6.6. 도시 개발의 어려움
하여튼 신라의 1000년 수도였던지라 매장된 유물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공사를 하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는 곳이기도 하다. 경주 사람들이 흔히 땅을 파기만 하면 유물이 나온다는 말을 하는데, 문제는 이게 반 정도는 진담이라는 것이다. 밭 한 가운데에서 유물이 나오고 경주 시내를 도보로 여행하다 보면 그 시기가 언제든 간에 발굴 현장 한두 개쯤은 지나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는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시골 주택가 한가운데서도 발굴 현장을 볼 수도 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가 '지우지는 않아도 좋으나 절대 웹에 업로드하지 말아달라'는 눈물나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도굴꾼이 웹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올라오기가 무섭게 찾아와서 도굴해가기 때문. 또 초등학교 공사 중 유물이 나오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미 한 번 파해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심지어는 하수도 공사를 하다가도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어지간한 큰 공사라면 유물 발견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다. 황성동 지역 아파트 개발 공사, 경주 시내 kt 신사옥 건설 공사, 동천동 우방 아파트 공사 등등 공사하면서 유물이 발견되어 발굴 때문에 공사가 2-3년 넘게 지연된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앞에서 예시로 든 공사 모두 유물을 발굴한 뒤 흙을 다시 덮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워낙 심하다 보니 예전에는 공사 중 땅 파서 뭐가 나왔을 때 신고하면 건설이 중단되므로 모두 깨버리고 그냥 지었다고 한다.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돌 줍기 하면 상당한 분량의 돌이 깨진 연적이나 그릇 등 토기 조각이었다. 1980년대에는 친구들과 비석치기 할 때 "어? 여기 이 돌엔 귀신얼굴 그려져 있다, 부수자" 하고 비석치기 했다고.
다만 이것은 과거 신라 왕경 근처에 한정된 것으로 구 신라 왕경(현재 경주 시가지가 아니라 옛 신라 경주 기준)을 벗어나면 남산 등을 제외하고는 이 정도까지 많은 유물이 출토되지는 않는다. 물론 경주시 손곡동-(천북면)물천리 경주 경마장 공사장 문화재 발굴, 경주시 동방동 아파트 공사장 문화재 발굴 등 오늘날 경주 시가지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곽지역에서도 공사 중 대량의 문화재가 발굴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손곡동-물천리, 동방동 모두 육부촌 중 두 촌락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일단 문화재가 발굴되면 공사를 다 멈추고 유물부터 발굴해야 하며 이 비용 또한 문화재법에 따라 사비로 내야 한다고 하니 이쯤되면 경주 사람들은 유물이 발견되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신축공사를 하면서 신라의 도로 유적이 발견되자 아예 도로 터를 감싸서 건물을 짓고 바닥에 투명 아크릴을 박은 적도 있으며, 2009년쯤엔 경주시내에 있는 태종로에서 지중화 공사를 하던 중 또(!) 유물이 발견되어서 공기가 길어졌다. 덕분에 시가지 내에서 "문화재특별법 폐지" "고층건물 제한 완화" 같은 내용이 써진 플랜카드를 늘 볼 수 있다.
이런 고층건물 제한 탓에 10층 이상 넘어가는 건물은 북천 이남 도심에선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경주 원도심의 경우 고도제한이 7-8층 정도로, 경주역 부근에는 7층 정도 되는 건물이 몇 채 있다. 대신 북천 이북의 황성, 용강, 동천의 택지 개발 지역이나 서쪽의 충효동에는 15층이 넘는 고층 건물이 많다. 2010년에 세워진 경주 예술의 전당은 황성동, 동국대학교 경주병원은 형산강(서천) 건너편이라서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있었고 고층 아파트 단지도 여럿 있다. 다만 구 도심 일대는 4층 이하의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홈플러스 경주점도 1층이다. 경주 홈플러스가 단층 건물이 된 까닭은 건물을 높게 지으려면 지하에도 더 깊이 받침대를 만들어야 하나 전술한대로 경주의 역사적 특성상 공사하다가 유물이 나오면 유물부터 파야 다시 공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단층으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동해선 철도가 시 외곽으로 이설되는 것도 문화재 보존의 일환이라 하며 다른 곳도 아닌 유네스코의 권고 사항이다. 이건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게, 기존 철도가 동궁과 월지와 사천왕사지를 밟고 지나가는 코스라 이설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설계상의 허들이 올라가는 악재가 겹치기도 했다.
6.7. 무덤
굳이 땅을 파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시내 곳곳에 엄청난 크기의 고분이 언덕처럼 솟아 있다. 학교 안에 고분이 있는 곳도 있다. 또한 금관총, 천마총 같은 경우는 고분 내부를 전시실처럼 만들어 놓고,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경주시민은 거의 무덤과 함께 산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나 유적지구 근처는 층수 제한으로 인해 높은 건물은 못 봐도 높은 무덤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다.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같은 경우, 고분의 높이도 높은 편이고, 바로 옆이 시내이고 주택이라서, 이런 게 된다. 시가지에서부터, 척추라고 볼 수 있는 위치에 봉황대가 위치하고 있다. 근처 대릉원은 아예 공원 같은 느낌으로 조성되어 있어 아침에 조깅하면서 보는 게 몇십 개의 능들이다. 그 때문에 무덤도시, 네크로폴리스라는 소리도 간간이 나온다. 옛날에는 겨울에 가끔씩 눈이 내리면 꼭 포대 한 자루 가지고 고분으로 올라가는 초딩들이 있곤 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없다.
여담으로 원래 한민족은 무덤을 가족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보이도록 지었다. 죽은 조상이나 가족이 함께 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무덤이 도시 외곽이나 먼 산에 위치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이며 일제가 조선인들의 땅을 쉽게 점유하기 위해 묘지 문화까지 바꿨다는 설이 있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 고인에게 입히는 삼베옷. 원래는 비단 옷이나, 고인이 살아 있을 때 가장 좋아하던 옷을 입혔는데 일제에 의해 거친 삼베옷으로 바뀌었다고.
결론적으로 무덤 도시라는 것은 오히려 경주가 그나마 전통 문화가 잘 살아 있다는 방증이며, 신라 고도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의 고분군은 6곳 정도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시내 안에 있는 노서동 고분군과 노동동 고분군, 시내에서 가까운 대릉원, 내물왕릉 주변 고분군, 오릉, 삼릉 일대가 그것이다. 규모상으로는 대릉원과 노서동 고분군이 가장 크다. 그 밖에도 외곽에 따로, 단독으로 위치한 왕릉도 무지 많으며, 주인 모를 큰 무덤들도 곳곳에 있다.
심지어 황성동에는 공동묘지가 주택가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있었다. 이 공동묘지는 현재 무덤이 모두 이장되었고 그 자리에는 공영주차장이 들어섰다. # 또한 용강동 대신아파트와 동천동 우방아파트 사이에도 고분이 있다.
7. 문화행사
경주 술과 떡잔치 - 해마다 4월에 열렸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 참고
동리,목월문학제 - 참고
봉황대 상설공연 - 봄~가을 매주 금요일
신라 문화제 - 해마다 10월에 열린다.
한류드림페스티벌 - 해마다 9월에 열린다.
봉황대 프리마켓- 매주 금토
8. 특산물과 음식
경주빵으로 알려진 황남빵이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식 과자인데, 어찌어찌하다 경주의 대표 명물이 되었다. 갓 만들어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 대표적인 가게는 세 곳으로 황남빵 1대 장인인 최영화의 제조 기술을 이어받은 큰며느리가 운영하는 『최영화빵』, 차남이 뒤늦게 뛰어들어 가게를 크게 키운 『황남빵』이 있고, 최영화로부터 황남빵 간판을 허락받았던 수제자 이상복의 『이상복명과』가 있다. 유사품으로 '경주빵'이 존재한다. 그리고 찰보리빵도 유명해졌다. 2002년 서영석이 개발한 것으로, '단석가'가 원조다. 황남빵은 본점 하나와 분점 하나에 끽해야 역에 판매소 하나 있는 정도인 반면, 경주빵과 찰보리빵은 둘을 묶어 판매하는 점포가 거의 한 블럭에 한 점포 꼴로 있는 서울의 편의점 밀집도와 맞먹는다(시내 한정). 이제는 신라미소빵, 주령구빵, 첨성호두빵 등 종류가 꽤 많아지고 있고 가끔 짝퉁 경주빵집에서 계피빵도 판다. 2020년대 부터는 경주 황리단길에서 유래한 십원빵이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인 인기를 얻은 뒤 일본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짬뽕 불고기 또한 유명하다. 경주에서는 짬뽕이라고 줄여 불러도 통하는데, 낙지와 돼지고기의 불고기를 뜻한다. 석거돈이라고도 불린다.
팔우정 로타리 쪽의 해장국, 특히 묵 해장국이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묵과 멸치 육수에 잘게 썬 김치를 푼 국물의 조합(+콩나물, 모자반)이 괜찮고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 처음 먹는 경우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원래부터 있던 지역 음식은 아니고, 20세기 중반 전라도에서 온 아줌마가 시장통에서 팔던 장터국밥이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 향토음식이 되었다.
의외로 한우가 특산물이다. 경주 천년한우라는 브랜드가 있으며, 사실 우리나라의 한우 전국 최대 생산지가 경주다. 기초지방자치단체급에서 축산과가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경우가 서너 곳 정도로 드문데, 그 가운데 한 곳이 경주이다. 다만 도축은 울산이나 영천 등지에서 이루어지는 편. 경주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할 때 등심에 소주 한 잔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서울보단 확실히 소고기 값이 싸다. 서울의 삼겹살 가격의 1.5~2배 가격에 소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농협 같은 곳에 가면 더 싸다. 잘 찾아보면 특A급 고기를 괜찮은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숱한 광고에 속지 말고 잘 찾아보자. 자신이 없다면 천년한우 직판장이 용강동 5일장 구역에 있으므로 싸고 확실한 품질로 구할 수 있고 직판 식당도 근처에 존재하므로 편하다.
삼릉 인근에는 우리밀 칼국수 가게들이 모여 있다. 인근에서 직접 재배한 국산 밀과 각종 곡물 위주의 칼국수로, 국물 맛이 꽤나 독특한데 바지락 칼국수나 명동 칼국수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들깨 칼국수라고 불리는 것이 이쪽과 비슷하다.
먹거리 골목으로 해장국(국밥) 골목, 황남빵(경주빵) 골목, 분식 골목, 쌈밥 골목 등이 있다. 쉽게 말해서 구 시청 청사 인근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구 청사가 대릉원을 바라보는 방향 기준으로 바로 좌측에 황남빵과 경주빵, 좌측 도로를 타고 가면 해장국 골목이고, 분식 골목은 좌측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쌈밥 골목은 경주빵 옆의 샘물 지구 인근에 있다.
정식류(한정식, 쌈밥 정식)의 경우에는 그래도 아직 유명한 한정식 집이 몇 군데 있고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 비해서는 가격 대 성능비가 좋은 편이다. 참고로 경주에 한정식이 '약간' 발달한 까닭은 경주 최부자댁 덕분이다. 비교적 나중까지 조선 후기의 양반 음식 문화를 잘 보존해서, 그 영향으로 괜찮은 한정식 후발 주자들이 생길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한정식 집들은 최부자댁과 전혀 상관없다. 또한 '요석궁'이라 불린 요정의 음식이 매우 유명했었고 나름 주변 큰 도시에서도 중요 인물을 대접할 때 오는 곳이었지만, 한정식 집으로 재개장한 뒤 주인이 바뀌면서 음식 맛이 폭망했다.
경주가 조선 후기 이후에는 '비교적'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사실 경주만의 음식이나 식문화라고 남아 있는 건 명확히 찾기 어렵다. 하지만 경주 자체가 땅덩어리가 큰 만큼 바다, 강, 평야, 산을 모두 두루 갖추었으며 여름/겨울의 차이도 명확해서 다양한 해산물, 농산물, 축산물이 풍부한 편이라, 여러가지를 값싸게 경험하기는 좋다.
부산과 가까워서인지 돼지국밥이나 순대국밥을 하는 식당도 많다. 밀면 또한 나름 유명하다. 시내와 불국동 쪽에 유명한 맛집이 몇 곳 있으니 먹어본 적이 없다면 한번 가서 먹어보도록 하자.
그리고 경주 사람도 잘 모르는데 체리의 전국 최대 생산지다. 전국 생산량의 7~80%가 경주에서 나온다. 경주역(KTX) 인근 과수원에서 거의 모든 양이 나오는데, 2022년 기준 1kg 한 통에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사이 정도의 가격에 팔린다. 5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 아주 짧게 나오므로 과일을 좋아한다면 한번 먹어보는 걸 추천. 과수원에서 체리를 바로 구매할 수도 있고, 체리 따기 체험 신청 후 직접 수확해 볼 수도 있다. 수입 체리에 비해 씨알은 작으나 당도가 상당히 높다. 야채 종류로는 버섯과 부추가 상당히 많이 난다. 버섯의 경우, 전국 생산량의 25%, 경북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해산물로는 참가자미 회가 유명하다. 아직까지 양식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경상도 제수 음식의 상징인 돔배기도 많이 판다.
대구와 더불어 육개장도 유명하다.
9. 여담
스탬프투어나 올댓스탬프 앱으로 경주시의 관광지를 찍을 수 있다. 문화재청(첨성대, 경주 월성, 불국사, 석굴암)이나 경주시(첨성대, 대릉원, 동궁과 월지, 김유신장군묘, 무열왕릉, 원성왕릉, 불국사, 석굴암, 양동마을)에서 찍을 수 있다.
가끔 문화재청 투어 도장을 경주시 도장을 찍는 경우가 있는데 찍으면 안 된다.
문화재청 스탬프 투어는 문화재청 관련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고, 받기에는 오래 걸린다. 없다면 해당 스탬프를 찍는 경우에 종이가 있다.
영남알프스가 산내면에 살짝 걸쳐 있긴하나 고헌산 등산로만 걸쳐 있어 경주시는 딱히 홍보를 하지 않는편이다. 문복산이 지정해제된 것도 경주시에서 지정해제 요구를 했던것도 있다.
10. 생활문화
10.1. 교육
유명한 학교로는 경주고등학교와 경주여자고등학교가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 많이 유입되기에 기숙사가 존재한다.
경주고등학교는 전통의 유명세로 먹고 들어가는 학교이다. 선후배 관계를 잘 챙겨준다. 경주시에서 택시기사를 해도 경주고등학교 나온 사람이 먹어준다고 할 정도로 학연이 매우 강력하다. 특목고, 외고, 과학고 등을 포함해도 2022학년도 11월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 성적정보 유출 사건 통계에 의하면 경주 내 다른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뿐더러 경북외국어고등학교도 압도적인 평균점 차이로 제치고 김천고등학교 풍산고등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에 이어 경북 4위 고등학교를 차지해 여전한 입지를 보여줬다.
경주는 아직도 비평준화 고교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데 이것이 학교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말이 많아 주낙영 시장이 고교 평준화를 도입 추진 중이다. 참고로 주낙영 시장은 대구 능인고 출신이다. 하지만 경주시 정/재계는 경주고등학교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평준화의 실현여부는 불투명하다.
계림고등학교의 경우 설립 이후 2005년부터 특별반(화랑반) 제도를 실시하는 등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전부터 지역 상위권 학교라는 인식으로 경주여자고등학교는 경주 내에서 그냥 여고라고 부른다.
특성화고등학교는 신라공업고등학교, 경주공업고등학교, 경주정보고등학교,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 경주디자인고등학교, 삼성생활예술고등학교, 효청보건고등학교, 안강전자고등학교, 한국국제통상마이스터고등학교가 있다. 그 외에는 건천읍 천포리에 무산고등학교, 문무대왕면 장항리에 대안학교인 경주화랑고등학교가 있다.
경주시에 마이스터고등학교는 1곳이 존재한다. 한국국제통상마이스터고등학교가 2020년 3월 1일에 개교했다. 여담으로 신라공업고등학교를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전환하려고 했다가 전문계 선생님보다 인문계 선생님이 더 많다는 이유로 철회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경주시 문무대왕면 장항리에 들어오면서 한수원 직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원래 한수원에서 경주에 자사고를 설립하려고 했지만 무산되었고 대신에 한수원에서 경주고와 학교 재단을 통폐합 또는 재정 지원 및 학교 건물 신축을 논의했지만 경주고 재단 운영권을 놓고 다투었다. 이후 학교법인 수봉학원 재단 이사장과 재단 이사회의 격렬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대학은 다음과 같다.
4년제 대학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신경주대학교
위덕대학교
도시 역사가 오래된 편이라서 그런지 인구 대비 대학이 많은 편이다. 덕분에 인구 대비 대학 수가 부족한 바로 옆 울산에서 가까운 경주시로 많은 대학생들이 유입된다. 다만 이와 별개로 이들 대학들에 대한 울산광역시 수험생들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못하여 주로 중하위권 학생들이 경주시 소재 대학으로 진학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경주시 소재 대학들 대부분이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이름을 올렸던 전력이 있고 입결이나 재정 건전성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 의대, 한의대생이 있는데다 가끔 포항공대에서 원정 과외를 경주로 오기도 한다. 또, 방학 시즌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인서울 대학교 대학생들로 인해 과외 선생님 풀이 좋은 편이다.
동국대 경주캠과 위덕대 모두 불교 관련 미션스쿨이다. 그나마 미션스쿨이 아닌 경주대학교는 2021년 현재 재정지원 제한대학이라 이들 대학을 진학하기 싫은 학생들은 경주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신경주대학교, 신라고등학교는 김일윤 전 국회의원이 설립한 원석학원 산하 학교들이다. 두 학교 모두 같은 재단에 소속되어 있다.
도서관 목록은 아래와 같다.
경주시 공공도서관 목록
꿈마루도서관 목록
경주시립도서관
송화도서관
11. 출신 인물
11.1. 현대
강우석: 영화감독.
강힘찬
고영훈
구본찬: 양궁선수.
구홍일: 前 경찰청 차장.
권영해: 前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前 안기부장.
권희동: 야구선수.
김경주(정치인)
김규택: 민선 1~3기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장
김규형: 축구선수
김동리: 소설가, 시인.
김동일: 경제관료
김동하(1961)
김동해
김만득(독립운동가)
김말룡
김범부
김상수(1961)
김상호(배우)
김석기: 現 제20, 21대 경주시 국회의원, 前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수학
김순규
김오곤: 한의사. 한의학보다는 말을 잘 해서 프로그램 진행을 꽤 하고 있다.
김외숙
김웅빈: 야구선수
김일곤: 범죄자
김일윤: 정치인, 경주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신라고등학교 설립자, 前 국회의원.
김재하
김종해(1922)
김종해(1955)
김종헌(야구선수)
김종훈: 現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제20대 국회의원
김주찬: 야구선수. 단, 출생지는 수원이다. 경주는 유년시절을 보낸 곳인데, 정작 야구는 서울의 충암초, 중, 고에서 한 특이한 케이스이다.
김철(1898)
김태천
김학진: 서울특별시 행정2부시장
김형수(1961)
김호진: 경주시 부시장
김효남: 야구선수.
남준재: 축구선수.
노영진: 프로게이머.
밍찬
박동규(1939)
박목월: 시인. 출생지는 경상남도 고성이지만 어린 시절을 경주에서 보냈다고 한다. 학창시절은 대구광역시에서 보냈다.
박병훈
박성결: 전남 드래곤즈 소속 축구선수.
박성철(1913): 북한의 정치인
박승동: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학창시절은 서울에서 보냈다.
박승직(정치인)
박재현
박정우(씨름)
박주점: 前 배구선수
박진현: 前 경북지방경찰청장
박차양
박춘택
방원팔
배어진 (Dade):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배진석
백상승: 前 제29-30대 경주시장.
백복인: KT&G 대표이사 사장(2015~).
서명옥
서수종
서효원: 대한민국 여자 탁구 선수
선미: 가수. 태어난 곳은 전북 익산시이지만, 경주 황남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서라벌여중에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갔다. 현재 본가는 윗동네인 포항시에 있다.
손석락: 前 대구교육대학교 총장
손학익
손정목: 공무원. 교수.
송재욱(1969)
심봉섭
안귀령: 아나운서
안용대
엄주환: 성우, 정확히는 경상북도 월성군 출신으로 월성군은 1989년 경주군으로 환원되었고 1995년 경주시와 통합했다.
에스오디 : 과학 기술 유튜버
우병택
우원재: 래퍼. 경주고등학교 출신.
우학
유시민: 정치평론가, 작가, 前 보건복지부장관, 前 국회의원. 다만 초·중·고등학교를 대구광역시에서 나왔다.
유시춘: 소설가, EBS 이사장. 유시민의 친누나. 유시민과 마찬가지로 학창시절은 대구광역시에서 보냈다.
이강환
이관섭: 현 대통령비서실장, 前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前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이도경(배우)
이동협
이동호
이순우
이영표
이원식
이상두
이상식
이상주: 前 교육부장관.
이상진: 前 교육부 차관.
이상효
이영해
이원경: 여강 이씨. 前 외무부장관.
이원준
이인강
이장희
이재화
이재화(1963)
이제원: 前 서울특별시 행정2부시장
이진경
이진곤
이진구
이진락
이철우
이채관
이태식(외교관)
이한구: 여강 이씨. 한나라당 원내대표, 前 국회의원.
이현세: 만화가. 경북 울진 태생이지만, 학창시절을 경주에서 보냈다.
이협우
임진출: 前 국회의원
임혁백 :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
장가현
장영모
장지훈: 야구선수
전준우: 야구선수. 대구 태생이지만, 경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전충렬
정명희
정수성: 前 경주시 국회의원, 前 군인.
정연주: 언론인. 前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前 KBS 사장.
정재민(1977)
정종복: 前 경주시 국회의원
정종섭: 現 한국국학진흥원장, 제20대 국회의원, 헌법학자, 정치인.
정홍교(정치인)
정홍섭: 前 동명대학교 총장, 신라대학교 총장
조규화
조상구: 배우 겸 번역가.
조성훈(농구인)
조희대: 現 대법원장
주낙영: 現 경주시장
주동근
주석수: 現 부산광역시 연제구청장
제나: 걸그룹 RESCENE의 멤버.
차화준: 1986년생 야구선수.
최덕규
최병덕
최병준
최상용(1942)
최성환(씨름)
최양식: 前 경주시장
최완
최원병
최익성: 前 야구선수
최정규: 前 대동중기 대표
최종혁: JTBC 기자
최준(1884)
최창엽
최채흥: 야구선수
태일찬: 유튜버
편정희
하일(야구선수)
한공식: 국회사무처 입법차장(차관급)
한영태
한혜진(가수)
함슬
허언욱
황수관: 교수, 사회활동가. 출생지는 일본이지만, 경주시 안강읍에서 성장했다. 집안이 양동마을의 노비였다.
황윤기
황한수
후추: 양띵크루의 멤버
11.2. 신라 시대
신라/왕조 및 신라/인물 문서 참조. 신라의 처음부터 끝까지 수도였던 곳이라 여기서 다 열거하기 어렵다.
11.3. 고려, 조선 시대
신성왕후
이만집
이언적: 조선 성리학 주리론의 선구자. 문묘 및 종묘 동시 배향공신.
이의민
이한구(1870년 9월)
최제우 (동학의 창시자이자 몰락양반)
이항복: 본관만 경주일 뿐, 한성부 출신이다.
12. 자매 결연 지역
일본 나라현의 나라시와 중국 산시성의 시안시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 세 도시는 고대 한중일의 대표 고도기도 하다. 세 도시가 돌아가면서 체육대회도 연다. 무산고등학교에 나라시의 자매학교에서 학생들이 찾아왔고 동천초등학교에 도요오카시 국제교류 체험학습단이 찾아왔었다. 그 외에 이탈리아의 폼페이시, 이란의 이스파한, 프랑스의 베르사유시, 독일의 베를린시와도 자매 결연 도시 관계에 있다.
12.1. 국내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충청남도 부여군 (우호도시)
서울특별시 중량구 (우호도시)
12.2. 해외
일본 나라현 나라시, 후쿠오카현 오바마시, 오이타현 우사시 (우호도시), 도치기현 닛코시 (우호도시)
이탈리아 폼페이시
중국 산시성 시안시, 장수성 양저우시 (우호도시), 허난성 자어쭤시 (우호도시), 후베이성 이찬시 (우호도시), 후베이성 청더시 (우호도시)
프랑스 베르사유시
베트남 후에성 후에시
슬로바키아 니트라
우즈베키스탄 사마트칸트시 (우호도시)
이란 이스파한시 (우호도시)
페루 아레키바 (우호도시)
아제르바이잔 가발라시 (우호도시)
이집트 룩소르시 (우호도시)
13. 주요 시설
경주월드
경주화백컨벤션센터
블루원 리조트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신경주역세권개발사업
국립경주박물관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14. 기타
경주 출신자가 외지 사람들한테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수학여행은 어디로 가냐?다. 당연히 지겨워서라도 경주는 아니다. 이건 대구, 포항, 영천, 경산, 울산,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안이며 어느 지역이든 마찬가지지만 가까운 곳은 소풍이나 체험학습용이지, 수학여행 장소로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곳으로 수학여행을 온다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제주도 정도의 거리에서나 할 만한 일이다. 한때 경주고등학교의 경우 2012년까지는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갔다오기도 했으나 2013년부터는 국내에서만 간다.
경주시의 역사 문서에서도 서술했듯이 천년왕국의 천년수도였던 땅이다 보니 건축물을 설치하기 위해 착굴하다 보면 유물 혹은 유적이 발견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파기만 하면 나온다 수준. 상술한 선덕여고가 이로 인해 신축 건물 공사가 지연되기 일쑤였다. 학교 자체가 왕궁 근처에 위치해 땅을 팔 때마다 중요 유물 및 유적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 계림고도 몇 년 전 체육관 공사를 하는데 웬 유물이 나왔지만 사소한 것이라 무사히 지어졌다. 유물 및 유적이 공사만 하면 나오는 경우가 많아 건설비가 높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경주 내 공사 시에는 문화재 조사 기간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준공 기간을 잡는다. 실제로 경주시 교외로 조금만 벗어나도 심심찮게 유적 발굴 현장들을 볼 수 있다. 일부 시민들은 유물 때문에 통행에 불편한 경우도 종종 느낀다. 그래서 경주에선 언제 어디서 유물이 나올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며 꼭 필요한 공사(아파트, 도로, 상, 하수관거, 심지어 고속철 공사 현장 등)현장에서도 유물이 시시각각 나온다. 당연히 조사 기간도 짐작할 수 없다. 한 예로 시내의 KT 경주지사는 유물, 유적 때문에 건물 짓는데 4~5년 정도가 걸렸고, 동천동의 우방타운도 3년 정도 지체되었다. 하지만 건천읍에 착공한 경주역은 예정대로 완공했다. 동천우방타운 공사장과 KT 경주지사 공사장 모두 유적지를 곱게 덮었다. 용강동-천북면 사이에 있는 곳에서도 유물이 굉장히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미 대단지 아파트단지들이 준공되었다. 이러다 보니 경주에서는 자기 집 사유지나 논밭에서 유물이 나오면 주인이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도 돌 정도인데 실제로 유물이 발굴되면 일정 기간 동안 농사짓기나 재산권 행사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경주의 토종견종으로 동경이가 있다. 꼬리가 매우 짧거나 거의 없는 견종인데 경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지만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한국의 5대 성씨는 모두 경주를 본관으로 한 경우가 하나쯤은 있다. 경주 박씨를 제외하면 모두 해당 성씨의 주요 본관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성씨들이 경주에 본관을 두고 있으며 빙씨와 봉(鳳)씨는 아예 경주 단본이다.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의 개수는 무려 87개나 된다.
현재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유치가 성사되면 보문관광단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