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47
이영호 아동문학가
이영호(李榮浩) 선생을 만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존함(尊啣)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교감한 것은 필자가 문협 사무처장으로 갔더니 거기에서 상임이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신세훈 이사장 재임시에 어찌어찌하여 김창완 사국국장을 편집국장으로 전보하고 공석인 그 자리에 필자가 사무처장(사무국장에서 직위 승급 변경)으로 발탁되어 그동안 19년여의 예총 생활을 마감하고 문협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당시 한국문협에서는 정관 개정이라는 업무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실무작업을 필자가 전담하여 진행하면서 기획과 실행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이영호 상임이사의 실질적인 지침과 조언에 따라서 수행하고 무난하게 정관을 통과시키는 대 역사를 이루어냈다.
이영호 선생은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진주사범을 나왔다. 1961년 마산일보(현 경남신문)에 소설「부화설 . 종」이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하면서 문단에 나오게 된다. 그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년소녀소설「토끼」가 당선(1966)되어 동화작가로 등단하고 다시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하복(夏服)」이 신인상에 오영수 선생 추천(1967)으로 당선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다.
그는 그후 동화집과 소설집 등 많은 저서를 출간하였는데 1966년에 창작 단편동화집『배냇소 누렁이』『오두막집 아이들』(1971)『별을 따는 아이들』『행복한 매미』(이상 1979) 장편소설『둘이서 넷처럼』동화집『웃으며 생각하며』『고향으로 간 삐삐』콩트집 『개구장이 소동』명랑소설『꿈꾸는 해바라기』『쌍둥이 형제』(이상 1980)를 발간하여 아동문학과 소설계에서 동시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 80년대에도 그의 창작열은 식지 않았다. 장편소설『거인과 추장』『대숲 안집 사람들』(1982) 장편소설『늪마을 스쳐간 바람』동화집『옹순이와의 이별』『감꽃 목걸이』『그래도 남은 소원』(이상 1983) 장편소설『아버지의 바다』(1984)『장군의 소원』동화집『아기바람 엄마바람』『새벽을 달리는 아이』(1985)소년소설집『은행잎 편지』장편소설『다시 핀 무궁화』동화집『버려졌던 풀각시』(이상 1986) 동화집『아버지와 호박 풀때죽』『소년소녀 삼국지』전기소설『이원수』장편소설『장순경과 삼총사』『난파선을 탄 소년들』(1987) 장편소설『남쪽나라 등대섬』『추적 25시』(1988) 장편소설『영웅 요지의 꼬마 루딘』글짓기 이론서『새글짓기 교실』(1989)등 한 해에 평균 두 세권의 저서를 발행하는 열정이 넘쳐나고 있다.
이영호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편마다 스며 있는 투철한 작가의 의식을 느끼고 놀라게 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다 작가 의식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분처럼 뚜렸한 이도 없다. 선생님은 동화책을 묶어 낼 때마다 머리말이나 작가의 변에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가’를 적어놓고 있다. 그 면면이 그 작품을 쓸 때의 사회문제점이나 민족의 역사에 옹이를 지게 했던 큰 사건을 소재로 다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질곡의 우리 역사를 바로 보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이동렬 동화작가는 2002년 가을호『시와 동화』에서 위와 같이 이영호 선생의 작품에 대한 치열성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1990년대에 들면서도 많은 저술활동이 빛나고 있다. 동화집『귀염이와 예쁜이』『매일 싸우는 아이』장편소설『비둘기의 꿈』(1990) 동화집『이사를 늦춘 휘파람새』『날개를 허수아비』『열쇠목걸이를 찬 아이』『살구꽃 피던 날』장편소설『열두 컷의 낡은 필름』전기소설『물위를 걷는 삼손』(1991) 동화집『말썽이 형제』(1992) 동화집『마지막 백조』장편소설『얼굴없는 기념사진』(1993) 장편소설『임꺽정』『기특한 녀석』(1994) 그림동화『동수와 다람쥐』장편소설『당고개를 넘나드는 바람』(1996) 장편소설『피난열차』그림동화『인어공주를 만난 선장』『지혜창작 동화』『난중일기』(1997) 장편소설『보물섬』『80일간의 세계일주』(1999)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는 다시 유아동화집『엄마 또 읽어 주세요』(2000) 동하집『멀리 보는 새』(2001) 기소설『숭고한 영혼 안중근』『걸리버 여행기』영상소설『괴물』(2006) 장편동화『덜렁이와 망태할아버지』 다시 쓴 우리 고전『옹고집전』위인전『윈스턴 처칠』(2009) 그리고 최근에『이영호 동화선집』(2013-‘지식을 만드는 지식’ 간)을 발간함으로써 그는 약 70여권의 동화집과 소설집을 간행한 원로 작가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제6회 세종아동문학상(1973), 대한민국문학상(1982), 방정환재단 5 . 5문학상(1997), 남명문학상(1997), 한국문학상(2003), 한국아동불교문학상(2009) 등의 문학상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또한 그는 문단활동도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협회 상임이사, 한국문인협회 아동분과회장,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부회장, 회장(1986, ) 어린이문화진흥회 사무총장, 회장(1997),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 겸 『월간문학』편집주간,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현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문협 고문과 어린이문화재단 명예회장,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고문 그리고 방정환기념사업회 집행위장을 맡고 있다.
동화작가 이영호 선생님의 ‘삶’에 대해 ‘선이 굵은 선장 같은 사나이(동화작가 이동렬’라 비유했다. ‘작품’에대해선 ‘겨레가 당한 질곡의 증언(아동문학평론가 최지훈)’이라고 자리매김했다. 적절한 표현이라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영호 선생님은 우리 동화가 해방이후 일본냄새와 때를 빼고 고유의 서사문학으로 골격을 갖추는데 이바지했으며 특히 광복에 이은 6.26의 상흔과 그 질곡을 풀고 나온 새싹 같은 겨레 얼을 옹기에 담아 갈무리 하듯 개성 넘치는 창작활동에 매진해 왔다. 그동안 작품을 발표할 때마나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또 문단 활동에서도 적잖이 하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글은 2012년 겨울호『열린 아동문학』(이하 인용)에 게재된 ‘이영호 선생님을 찾아서’에서 인용한 글
인데 그에 대한 인품과 작품에 대해서 적절하게 표현된 대목이다. 그는 근무시간이나 밖에서의 대화도 인자하면서도 근엄하고 어쩐지 한 동네에서 함께 살아온 따스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풍모에서고 존경하는 대 선배임에 틀림없다.
한국문협 시절 미국 L.A.에서 심포지엄을 마치고 멕시코와 쿠바를 함께 동행한 일이 기억에 새롭다. 쿠바는 우리나라와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기꺼이 입국을 허락하는 그들의 사회주의를 더욱 놀라게 했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의연하시고 <아닌 것>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꼿꼿한 의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보여주셨던, 내가 만난 유일한 분’의 ‘선비정신’ 이원수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논란이 있었던 이원수 선생의 친일작품에 대해서 격한 분노로 감정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김종상 동시인과의 오랜 교분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상주와 함안이라는 먼 지역 교사로 근무했지만 아동문학 교단동인회와 신문지도협회 등에 활동하면 사귄 사이고 상경 초 몇 년 마포에서 이웃으로 살게 되어 더욱 돈독해진 사이’라고 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이영호 선생님께 방문의사를 밝히고 일산 주엽역에서 기다렸다. 보기 좋게 잘 다듬은 턱수염에 더욱 멋이 넘쳤다. 커피집에서 요즘 문협과 문단 얘기를 나누면서 호프라도 한 잔 대접할까 했더니 통풍이 심해서 금주령이 내렸다고 했다. 건강 유의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보여달라는 주문을 남기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