置身常 如坐索之鳥
몸가짐(處身)을 늘 외줄에 앉은 새처럼 하라.
※索줄 삭 / 찾을 색
陷於死地 求援生路 及於危境 計策安全 致思之道也
死地에 빠져 活路(활로)를 구하거나, 위태한 지경에서 安全한 계책을 구할 때는, 道理에 맞도록 생각하라.
論牛病曰 病於後者 行必撓後 病於脚者 行必撓脚 病於足者 踐地卽驚
소의 병을 논하여 말하길, 뒤쪽이 아프면 다닐 때 반드시 뒤쪽이 흔들리고, 다리가 아프면 반드시 다리가 흔들리고, 발이 아프면 땅을 밟을 때 바로 놀랜다.
※撓어지러울 요, 휘다, 흔들리다, 휘감기다
論占山 一曰 後龍屈起蔓聯 二曰 水口緊着藏鎖 三曰 群山層疊擁衛 四曰穴田廣平均的 都是王長在 於宮中 將不出 於軍幕
墓(묘)자리를 말하면, 첫째 뒤쪽은 龍이 일어나서 늘어지게 뻗고, 둘째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급히 흘러 下流가 보이질 않고, 셋째 많은 산들이 여러 번 겹쳐 주위를 끌어안고 넷째 穴田(혈전)이 넓고, 평평하고 고르듯 하여 모두 宮 안에 王이나 우두머리가 있고, 將帥는 幕舍에서 나오지 않는 形이다.
能大能小 能剛能柔 凡百事物處 無不當可也 故聖人不器
모든 일을 잘 처리하고, 능히 강하게도 부드럽게도 하면, 무릇 백 가지 일이나 사물에 處하여도 감당하지 못할 게 없다. 聖人은 不器(불기)이다.
※能大能小: 모든 일에 臨機應變(임기응변)으로 잘 처리함. ※論語 爲政篇 12章 子曰君子不器(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군자는 한 가지만을 잘 한다는 게 아니다.) 器者 各適其用而不能相通 成德之士 體無不具 故用無不周 非特爲一才一藝而已(器는 각각 그 용도에만 적합하여 서로 통용될 수 없다. 成德한 君子(선비)는 體(본바탕)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用(쓰임)이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니, 다만 한 재주, 한 技藝일 뿐만이 아니다.)
心之七情 不形於色 人莫測我 子房之從容步圮 不亦善乎
마음속의 七情은 形體가 없으므로 남들은 나를 헤아릴 수 없다. 張良이 조용히 세상에 발을 내딛는 것이야말로 또한 善이 아니겠는가?
※七情: 儒學에서는 喜怒哀樂愛惡欲, 禮記에서는 喜怒哀懼愛惡欲, 佛敎에서는 喜怒憂懼愛憎欲을 말함. 從容: 沈着하고 덤비지 않음. 조용의 원말. ※從容步圮: 조용히 기울어가는 세상에 발을 디딤(張子房 故事). 圮무너질 비(※圯흙다리 이)
※史記 留侯世家에
良嘗閒從容步游下邳圯上, 有一老父, 衣褐, 至良所, 直墮其履圯下, 顧謂良曰 孺子, 下取履. 良鄂然, 欲毆之。為其老, 彊忍, 下取履(장량이 한가하여 하비의 다리 위를 한가로이 거닌 적이 있는데, 한 노인이 거친 삼베옷을 걸치고 장량에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신발을 다리 밑으로 곧장 던져버리고는 장량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젊은이, 내려가서 신발을 가져와라!” 장량이 놀라서 그를 때려주고 싶었다. 그가 노인인지라 억지로 참고 내려가서 신발을 가져왔다.)
☞張良(?~BC 168): 漢의 건국 공신, 字 子房, 諡號 文成公. 策士로서 蕭何(소하), 韓信과 함께 한나라 창업의 三傑로 불림. 陳勝·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후일 항우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회'에서는 유방의 위기를 구하였다. 漢高祖 劉邦이 나라를 세운 뒤 장량에게 齊나라 땅 3만 戶 되는 지방을 마음대로 선택하게 하니, 장량은 ‘제가 폐하를 처음 만난 곳이 留땅이니, 留候로 봉해 주시면 족합니다.’ 하였음(史記 留侯世家)
※장량에 관한 시에
子房天下士 東見滄海客 자방은 천하의 선비로 동쪽 창해의 나그네를 보고는
從容步圮上 屈身事黃石 자연스레 비교를 걸어가다 몸을 굽혀 황석을 섬기었네.
四百漢家業 肇自陳留夕 400년 한나라의 가업은 劉邦과 만난 留로부터 비롯되었어라.
決意從赤松 一朝遂歛跡 뜻을 결정해 赤松子를 쫒아, 하루아침에 드디어 자취를 감추었네.
☞滄海는 渤海의 다른 이름. 張良이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 下邳(하비)를 떠돌아다니다가 圮橋(비교)에서 노인 한 사람(黃石公: 秦나라 말기 隱士. 군사이론가)을 만났다. 신발을 일부러 강물에 떨어뜨린 뒤 장량에게 주워오도록 하고 그에게 병법서 太公兵法(黃石公三略)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赤松子: 중국에 전해져 오는, 신선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