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 세라
흘러간 노래가 나의 심금을 울린다. 나이에 걸맞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굳세어라 금순아,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라든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가 아니다.
‘케세라 세라 왓에버 윌비 윌비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이다.
틱톡 TikTok에서 갑자기 코니 프란시스의 노래 ‘프리티 리틀 베이비(Pretty Little baby)’가 인기 폭발하였다는 뉴스를 봤다. 뭐가 젊은이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87세의 코니 프랜시스는 자기가 그 노래를 불렀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 매니저가 내 노래가 틱톡에서 바이럴(viral)하다고 했을 때, 뭐라구요. 뭐가 어떻다고? 내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들어왔다고?” 했었다고 한다.
1962년도에 나온 이 노래가 틱톡에 올라오자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비디오가, 지난 6월달 틱톡 정보에 의하면, 1천7백만 개가 올라왔고, 조회수가 세계적으로 총 2억 7백만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코니 프랜시스는 나도 잘 알고 있는 가수다. 한국에서 코니 프란시스의 노래를 많이 들었었다. 당연히 구글을 해봤다. 맞다. 내 기억에는 ‘립스틱 언 유어 칼러’, ‘아임 소리 쏘 소리….’ 하던 노래들이 더 익숙했다. 코니 프랜시스 노래를 새삼스럽게 찾아 들어본다. 엉성하면서도 자신있게 살던 옛날이 떠오른다. 남편도 덩달아 ‘뻐꾸기 울던 언덕”을 찾아보라고 한다. 나보다 몇 년 위의 남편이 청소년쯤일 때 좋아했었단다. 이 노래는 코니 프랜시스가 아니었다. 구글해보니 페티 페이지(Patty Page)였다. 신여성이었던 내 어머니가 콧노래를 하던 ‘테네시 왈쯔’를 부른 가수.
‘뻐꾸기 울던 언덕’의 가사가 얼마나 부드럽고 평화로운지.
트랄라라 트우들리~ 머킹 버드 힐~… 요즘 세상과는 딴 판인 미국의 어느 가정집 창문가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자 유튜브에는 온갖 미국의 흘러간 노래가 올라온다.
그러다가, 도리스 데이의 ‘케세라 세라’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나. 케세라 세라!…그 옛날에 뭔가 복잡하고 귀찮아지면, 아 됐어. 그냥 케세라 세라야. 될 대로 되라지… 하던 일이 생각이 난다. 영어도 잘 모르던 때에 마치 라틴어 같은 발음의 뜻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쓰던 용어이다.
정색을 하고 그 노래를 들어봤다. 유튜브에 뜬 그 노래는 도리스 데이가 어린 소년에게 잠옷을 입혀주며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같았다. 몇 번 클릭으로 히치콕 감독의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남자(The Man Who Knew Too Much)라는 영화라는 걸 알아냈다. 이게 다 무슨 우연의 일치일까, 마침 그 무렵, 넷플릭스에서 한두 개씩 올라오는 히치콕의 1950년대 영화를 몇 편 보던 중이었다. 당연히 1956년 작인 이 영화를 봤다.
스릴과 서스펜스에다가 코메디까지 가미가 된 히치콕 영화에서 ‘케세라 세라’가 차지하는 역할이 컸다. 1955년 작곡된 이 노래는 이 영화에서 도리스 데이가 부름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1956년 아카데미 오리지날 노래 상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새삼스럽게 케세라 세라가 내 노년을 장식하게 되었다. 옛날엔 케세라 세라 밖에 모르던 노래 가사를 소리내어 다 부른다. 영어도 쉽다.
When I was just a little girl
I asked my mother what will I be?
Will I be pretty? Will I be rich?
Here's what she said to me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What will be, will be
‘홧 윌비 윌비’는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의 체념이 아니다. 올 것은 오는 것이니까 걱정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한창때 비틀즈의 ‘렛잇 비(Let it be)’에 심취했었지만, ‘내가 어려울 때 마리아가 다가와 현명한 말을 속삭여준다. 렛잇 비, 렛잇 비’ 그 뜻이 마음에 깊이 다가오지는 않았었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아지는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가 ‘렛잇 비’, 즉 ‘케세라세라’인 것이다. 그 영화에서 ‘ 케세라 세라’ 노래는, 도리스데이와 제임스 스츄어트의 아들이 납치되었을 때, 도리스 데이가 아들을 재우면서 항상 불러주던 이 노래를, 아들이 잡혀 있을 만한 곳에서 온 정성을 다해 크게 부른다. 결국 아들이 노랫소리를 찾아온다.
Now I have children of my own
They ask their mother what will I be
Will I be handsome? Will I be rich?
I tell them tenderly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What will be, will be
Que sera, sera.
운전을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목청 높여 “케세라아~ 세라아~ 왓에버 윌비 윌비~” 한다. 나의 유튜브에는 지난 며칠 사이에 케세라 세라가 수백 번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중이다.
노려
1952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산업미술 대학원, 기전전문대학교 전임강사. 뉴욕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웨체스터 지국장 역임, 한국 디자인하우스, 아시아나 기내지 통신원.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역임, 국제PEN 한국본부 미동부지역위원회 부회장. 저서 『그랜드센트럴에서 달리기』. nohr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