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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문보기 글쓴이: Next Paul Scholes No18
베켄바우어 - 로날드 쿠만 - 펩 - 피를로로 이어지는 현대적 빌드업의 의미
필자가 펩의 전술은 어디에 있는가란 제목으로 처음 언급하는 포지션이 리베로인 이유는 간단하다. 크루이프에서 반할 펩으로 이어져 내로오는 동안에 이들의 철학을 가장 잘 관통할 수 있는 포지션이 리베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617시즌 이피엘로 건너온 펩의 15라운드까지의 전술의 명암을 설명하기 전에 리베로에 대한 설명부터 마치고 시작하려고 한다. 이 글은 펩의 전술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펩의 전술을 써내려가기 시작하면 그 전술 자체로도 30페이지가 넘어가기 때문에 읽은 사람의 눈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의가 안되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면 걍 필자가 그렇다고 말했으니 일단 그렇다 치자.
앞서 말한 선수들은 모두 이 칼럼에서 상세히 다뤄지게 될 선수들이다. 베켄바우어는 크루이프에 필적할만했던 선수이고, 실제 크루이프가 이끌던 네덜란드를 상대로 우승을 거머쥔 핵심 선수였다는 점을 기억해 보자.
# 리베로
[ 스팔레티의 제로톱 ] [ 루쵸 시절의 로마의 티키타카]
1. [ 선수들의 위치 ]
리베로와 상반된 대응 전술이 있다면 제로톱 전술이 될 수 있는데 이 전술의 중심은 2선의 미들이다. 반대로 4-2-3-1이나 4-1-2-3을 썻던 유벤의 키는 3선의 피를로가 쥐고 있었다. 빌드업과 경기력 유지는 적어도 제로톱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2. [ 키 플레이어에 의한 선수들 움직임 ]
유벤투스와 AS 로마는 키가 되는 선수의 포진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전형과 무관하게 볼의 순환과 선수들 동선의 이동에 많은 차이를 보인다.
3. [ AS 로마 스팔레티 전술의 제로톱 VS 루쵸의 티키타카 ]
요새는 맨시티가 바르샤의 전통에 목을 메고 있는데, 워낙 전통이 없다 보니 컨셉을 잡은 듯 하다. 그런데 세리에에서도 바르샤의 점유율 축구를 이식시키는 시도가 루쵸를 통해 일어났다.
4. [ 전형의 차이 ]
스팔레티의 전술은 로마가 주축으로 쓰던 4-2-3-1에서 변형된 4-6-0으로 공격에서 주도하는 선수들의 편중 없이 연계를 위주로 돌아갔고, 당시 이 전술이 핫했던 이유는 공격수 없이 연계를 기점으로 침투가 파생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전술로 로마는 2연속 리그 2위를 찍게 된다. 그리고 수페르코파 대회에서 우승도 한다.
5. [ 루쵸식 티키타카의 실패 ]
하지만 루쵸가 들어오면서 로마는 바르샤 출신들이 항상 그렇듯, 4-3-3의 전형을 기반으로 패스 위주의 축구를 하게 된다. 펩과 다른 것은 라볼피아나의 스리백을 적극 활용하고, 메시를 활용한 제로톱 전술을 유효하게 써먹은 것과 반대로 양쪽 윙포워드를 적극 잘쓴다는 점인데, 문제는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하다보니 적절하게 볼이 전방에 배급할 시점을 놓친다는 점이다.
6. [ 공격이 아닌 점유율은 공격시점이 애매하다. ]
데로시는 후방의 빌드업보다는 2선에서 연계에 능한 선수다. 점유율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지속적인 탈압박과 패스인데 이런 능력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제로톱이 추구하는 공격의 색채와 달리 어느 순간 파생된 공간을 이용한 침투가 아니라 포백에서 풀백이 약간 올라간 상태로 윙포워드에게 볼을 전달하거나 역삼각 미들에서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유지하고 패스를 하다보니 상대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오스왈도를 이른 시기에 전진시켜 버리니 루쵸가 원하던 패스 축구는 아예 뜬금포가 되어버린다.
7. [ 전방의 선수들 포진 ]
07시즌 시절의 로마는 토티를 최전방에 세우고 데로 실제 만시니나 부치니치가 처진 측면을 받쳐 주는 형태는 2선을 중심으로 패스가 연계 되었기 때문에 이 제로톱 전술은 리그에서 잘 나가던 시절에도 많은 한계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맨유에게 계속 패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제로톱을 운용하기 위해 2선의 많은 선수들이 플레이 메이킹을 하다보니 상대 압박과 역습에 취약한 단점이 드러났다. 스팔레티는 0910 성적 부진을 이유로 시즌 중 자진 사임하게 된다.
8. [ 공격 전개의 중요성 - 전형의 유동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공간이 창출된다. ]
패스든 압박이든 중요한 관점은 공격이 제대로 풀리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루쵸 시절의 로마는 제로톱 전술로 로마가 잘나갈 때처럼 전방에는 토티가 존재하지만 오스왈도가 토티와 동일한 동선을 유지하고 있고, 공격루트는 중원에서 빌드업은 포백으로 올라갔다. 따라서 펩이 거둔 바르샤의 티키타카보다 점유율을 생각할 때 상당히 덜떨어진 티키타카에 해당한다.
9. [ 공격 전개의 중요성 - 공격을 풀어나가는 옵션 ]
그래서인지 예상보다 많은 시점에서 별볼일 없는 성과를 거뒀다. 위의 그림을 보면 볼의 동선이 뻔하다. 저런 식의 볼 점유는 상대의 압박을 유발하기 때문에 탈압박을 제대로 하더라도 풀백이 일찌기 오버래핑 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공격을 풀어나가는 옵션이 줄어들게 된다. 다음 그림을 보자.
그렇다면 리베로롤을 얘기하면서 제로톱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치가 빠르다면 AS로마가 가진 수비형 미들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을 느낄것이다. 두 전형에서 중요한 것은 미들이다. 류쵸는 역삼각 미들을 스팔레티는 6명이 돌아가면서 전방의 침투 조건을 완성시키며 두 전형 모두 토티가 전술의 핵심이 되었다.
이렇듯 리베로롤은 수비형 미들에서 출발하지 않았지만 현대 축구에서 독일의 베켄바워나 유벤투스의 가에타노 시레아와 같이 수비에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공격 전개의 중요성을 중원이 아닌 수비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은 과거 빌드업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한 선수에 대한 클래스의 가치가 팀 전력에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팀 전력의 상승은 수비 밸런스와 공격 전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팀의 색깔이 바뀌기도 한다.
공격 전개의 방법론이 과거의 리베로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루쵸의 4-3-3처럼 점유율을 유지하며 지공으로 시간을 벌 때 공격 전개가 원활해지는 경우도 있고, 60대 이후부터 남미에서 발달한 투볼란치처럼 상대 볼을 미들에서 빼앗고 바로 전방에 포진한 4명의 공격수들에게 볼을 전달하는 방법도 존재했다.
다만 이러한 공격 전개의 방법론은 시간이 지나 역습의 중요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차츰 트렌드가 바뀌어 간 것 뿐이다. 그리고 포포투의 토털 축구에서 현대 축구의 신기원이 일어났다고 보여진다.
베켄바우어가 만들었던 룰이자, 그가 사라진 후로는 진정한 의미의 그를 대체하는 선수는 없다라고 말했던 리베로롤은 사실 80년대를 넘어서 90년대를 넘어갔고, 세리에에선 리베로롤을 소화할 수 있는 철의 포백이 존재했던 시기의 2000년대 까지 그 계보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보누치가 이 역할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현대 축구의 라인업과 전형]
어쩌면 리베로롤은 현대적 의미의 빌드업을 의미하는 빌드업과 공격 전개 롤이기에 단순하지 않지만 포백 보호의 역할까지 맡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롤을 정의하는 수순으로 봐야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하지만 리베로롤이 분화과정을 한가지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수비적롤임에도 공격적인 역할을 강요하기 때문에 수비에 밸런스를 맞춘 기존의 스리백에서 보이기 어려웠던 빌드업의 의미는 사실 베켄바우어보다는 로날드 쿠만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베켄바우어가 리베로롤로 활동하던 시절 같은 시기에 레알에서도 그와 비슷한 역할을 가진 독일 출신 전술의 선수가 있었다. 그 이름은 슈틸리케다. 빌드업을 방해하는 전략의 전방압박을 중시하는 게겐프레싱은 프레싱 알토 영역, 즉 높은 영역에서 선수들의 유기적인 압박을 중시하지만 당시 전방압박은 공격과 수비의 조화가 중요했지만 당시에는 공미플메 전술을 막기에도 급급한 시절이라 리베로롤의 출현은 당시에 혁신적인 롤에 가까웠다. 지금 그 롤을 정의하는데 적합한 롤이 있다면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 정의할 정도로 당시의 롤을 소화해 내는데 흔하지 않았떤 선수들은 손에 꼽을만큼 희소하다.
오늘날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는 그 롤을 훈련시키는데 여러가지 제한점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처음부터 패스를 잘하는 선수들이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선수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 축구가 추구하는 트렌드에서 아주 유니크하게 발달한 한 토털축구의 구사하기 힘든 전술의 제약점을 찾을 수 있다.
크루이프의 패스에서 가장 중요한 빌드업의 의미는 전 선수의 패스에 의한 탈압박과 다름없었다는 점이다.
다음 그림을 보자 .
[ 피오렌티나 VS 유벤투스 ] [ 나폴리 VS 유벤투스 ]
1. [ 현대적 의미의 리베로롤와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 ]
이 경기는 유벤투스가 4대 2로 패했던 라인업이다. 어쨋든 유벤투스의 라인업을 보면 피를로와 포그바 마리키시오의 역삼각 미들 뒤에 보누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2. [ 보누치의 역할 ]
보통은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들이 빌드업에 관여하거나 포백의 경우 플랫한 라인을 유지하며 경기 양상에 따라 라인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일반이다. 하지만 유벤투스에서 보누치의 역할은 다르다. 피를로처럼 볼을 달고 자유롭게 동선을 이동하는 포지션이 아니기에 후방에서 찔러주는 전진패스를 자주 보인다.
3. [ 스리백과 포백의 전환 ]
알레그리 감독이 콘테를 대신해 유벤을 맡고 나서는 콘테처럼 마법을 부릴 수 없다 보니 시즌 중에 콘테처럼 승리하지 못해서 포백으로 전환을 했는데, 여기에도 보누치가 적응해 잘 나가고 있다. 앞서 카테나초의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했던 시절의 리베로인 프랑코 바레시가 사키를 만나며 플랫 4-4-2에서 공간압박을 자유롭게 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리베로 롤을 수행하고 있는 듯 하다.
4. [ 유벤투스가 쓰는 쓰리백의 함정 ]
공교롭게도 지금 위의 사진은 유벤투스가 모두 패했던 경기의 라인업이다. 나폴리를 상대로 3대 0으로 졌는데, 두 경기의 공통점은 2선내지는 전방에 움직이는 선수들의 동선을 스리백이 유동적으로 이끌지 못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나폴리전의 경우 코파컵 결승에서 콩테가 짠 라인업이며 나폴리는 유벤투스를 상대로 높은 위치에서 볼을 소유하며 공격을 하면서 스리백이 내세운 다이나믹한 속도로 유벤투스의 수비진을 압박했다. 만약 스리백을 쓰려 했다면 이런 방식으로 쓰는게 맞았을지 모른다.
사진을 보면 후방의 선수들이 5명이 포진하고 비달-피를로-포그바가 역삼각 미들을 구성하고 전방의 투톱이 존재하는 파이브백이다. 공수 간격이 넓다 보니 전방의 포진된 선수들이 부족함에도 수비에서 단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벤투스는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상대로 1대 0으로 신승하며 1213시즌 챔스 리그 16강을 확보하게 된다.
5. [ 점유율은 스리백에 맞는 것인가? ]
보누치와 피를로가 후방에 존재했지만 두 선수 모두 패스에 강점이 있다보니 상대가 역습으로 빠르게 높은 라인에서 치고 올라올 때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가 된다. 이날 나폴리전에서 공수의 연결고리는 라베찌였는데 유벤투스의 전방 공격수의 나폴리의 함식과 카바니를 유효하게 막지 못했다. 이로써 콩테가 들고 나왔던 점유율 컨셉은 나폴리의 공격에 말려들게 된다. 당시 나폴리 감독은 스리백으로 핫하게 주목받았던 발테르 마차리. 현 왓포드 감독이다.
6. [ 알레그리가 유벤투스에 와서 내세운 포백 ]
콘테 시절에도 스리백에 대한 약점이 간간히 존재했지만 어쨋든 리그 3연패를 이뤘으니 감독으로서는 성공적인 시즌들을 보냈다. 그리고 후임으로 알레그리 감독이 유벤을 맡았는데, 문제는 콘테의 3-5-2 전술은 콘테를 위한 전략이었다. 콘테처럼 마법을 부릴 수 없다 보니, 스리백에 익숙한 알레그리지만 팀이 계속 승을 거두지 못하자 포백으로 전환을 한다.
아래 사진은 프랑코 바레시의 선수시절.
# 실사구시가 힘든 선수들의 구성을 채워야 하는 패스 축구
[ 요한 크루이프 ]
따라서 사키의 플랫 4-4-2가 밀란의 혁신을 이끌고 있을 때 즈음에 크루이프의 바르샤는 아약스의 유스 시스템을 바르샤에 이식하면서 당장 유스에서 하루 아침에 걸출한 선수들을 끌어내기에는 많은 제한점이 존재했기에 크루이프가 바르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빌드업을 뿐만 아니라 리베로롤의 공격적 완성형에 가까운 로날드 쿠만을 영입한다. 이것이 바르샤의 중흥을 이끈 성공적인 영입이었다. 90년대 중반 밀란에 의해 혹독하게 망타기 전까지 크루이프가 이식하려 했던 바르샤 축구는 적어도 성공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크루이프마저도 선수빨이라 한다면 할말이 없다. 하지만 유독 크루이프가 아닌 펩대에 이르러서야 선수빨이란 말이 난무해진듯 하다. 그에 비하면 반할은 선수발굴만 엄청 해댔지 막상 월클에 다다른 선수들은 활용할 줄 모른다는 문제가 불거졌었다. 어쨋든 셋의 비교는 여기서 각설하자.
당시 로날드 쿠만의 능력은 수비수뿐만 아니라 중원을 조율하고 킥력으로 바르샤의 득점을 일정부분 담당했는데, 한시즌에 21골이라는 수비수로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쿠만이 바르샤를 떠나고, 펩이 폼 저하로 바르샤를 떠나면서 2000년대를 전후로 바르샤는 수비와 공격의 패턴에 많은 혼란을 겪는다.
이는 크루이프가 남긴 유산의 재능들과 관련이 있는데, 라우드럽이 존재하든 리켈메가 존재하든 히바우두가 존재하든지 간에 크루이프가 가진 패스 축구의 관점은 철저하게 수비에서 공격으로 시작되는 빌드업과 공격에 관여하는 후방의 공격능력과 밀접하다는 점이다.
다음 그림을 통해 설명해 본다.
1. [ 크루이프의 패스 축구 ]
보통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론으로 스리백이 나온건 크루이프가 저 전형을 정의하고부터다. 그 이전의 스리백은 상대의 공미를 막기위한 전형으로는 상당히 취약한 단점을 안고 있었다. 스리백의 혁신적인 진화형이던 카테나치오 식 이탈리아 축구는 네덜란드나 아약스만 만나면 토털축구에 털리며 반코트 경기만 해야 했다. 전원이 공을 가진 상대를 압박하는데 레프트 백이 혼자서 아무리 볼을 가지고 올라간들 볼이 전달되기는 힘들었다.
2. [ 쿠만 라우드럽의 거리 ]
쿠만이 중앙 수비수임에도 당시로선 드물게 공격적인 능력이 좋아서 킥을 찰 때도 라우드럽이 아닌 쿠만이 차야만 할 정도였는데 당시 쿠마 앞에는 과르디올라가 있었다. 패스할 줄 아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지금이나 그때나 아주 드물었다. 그리고 저 두 조합은 수비를 안정시키고 공격적으로 빌드업하는데 아주 유효했다. 쿠만과 펩은 지금도 사이가 좋다.
3. [ 보누치 + 피를로 ]
이와 비슷한 스리백 조합이 유벤투스의 보누치-피를로 조합으로 볼 수 있는데 쿠만-펩의 조합과 다른 점은 피를로가 전방 어디든 볼을 가지고 헤집고 다니면 보누치는 후방에서 볼을 받을 때마다 패스를 전진시킨다는 점이다.
4. [ 현대로 와서 ]
과르디올라 바르샤에 감독으로 부임하고부터 크루이프가 즐겨 쓰던 3-3-3-1이 아닌 3-4-3의 변용을 할 수 있는 4-3-3을 썻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3-4-3의 진화는 반할이 수비수중 한명을 미들 싸움에 참가시킴으로 공격축구의 토털리즘을 배가 시켰는데, 맨유로 와서 수비밸런스를 강화시킨 투 볼란치를 썻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어찌되었든 펩은 2000년대 중반 멕시코 리그에서 풀백을 전진시켜 수비형 미들과 중앙 수비 조합의 스리백을 수시로 형성시키는 라볼페의 전술을 들고, 3-4-3의 자연스런 빌드업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그도 크루이프처럼 3-3-3-1전형을 쓰긴 힘들었다. 문제는 빌드업할 때 생기는 수비불안이 아니라 상대가 역습해 올 때다. 만약 바르샤에서 3-3-3-1 전형을 써야 한다면 비엘사의 다이나믹 전술을 써야 할 듯 하다.
5. [ 비엘사 VS 크루이프 ]
같은 전형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축구를 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둘다 토털축구를 구현하는데 최적화된 전형을 찾다 보니 스리백으로 귀결된 듯 하지만 비엘사식 축구가 좀더 패스와 선수들 이동에 역동적이고, 이러한 성향에 가장 적합한 선수로는 맨유의 에레라가 될 수 잇다. 패스 앤 무브가 구현된 축구의 리즘은 벵거볼에서도 찾을 수 있고, 압박으로 토털축구를 구현한 클롭의 게겐프레싱에서 볼 수 있지만 이 둘의 축구가 스리백에서도 성립된 감독이라면 비엘사가 더 적합하다.
[첼시의 스리백 11라운드 에버튼 전] [비엘사의 스리백]
6. [ 첼시의 스리백 VS 비엘사의 스리백 ]
비엘사의 축구와 가장 유사한 축구를 구사하는 감독은 과르디올라가 아니라 첼시의 콘테라 볼 수 있다. 물론 전형은 3-4-3을 기본 포맷으로 깔고 있지만 유벤투스 시절의 콘테는 3-5-2 전형으로 나왔는데, 이 전형의 차이는 피를로의 있고 없고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즉 중앙 수비수가 유벤투스는 첼시처럼 역동적이지 않았고, 후방의 빌드업에 치중한 반면 지금의 첼시는 윙백부터 중앙 수비수까지 발밑 기술이 좋고, 치고 올라가는 성향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이 부분이 지금 콘테가 구사하는 전술과 빌바오 시절의 비엘사 감독의 축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 한 건 콘테가 선호하는 전형은 4-2-4인데, 이 전형은 남미에서 발달한 투볼란치 초기 전형이고, 토털축구와는 반대로 수비, 공격 미들의 구분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전형은 감독이 전술을 구현할 수 있는 그림이니 그림은 그림으로만 참고해야 할 듯 하다.
# 리베로가 추구하는 관점과 비슷한 세 감독의 지향점 = 빌드업에 우수한 선수들 재능.
[ 반할과 아귀다툼했던 쿠만 ]
적어도 여기서 벗어나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반할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반할의 전술은 변용 3-4-3을 즐겨 썻다는 점이다. 아약스 시절이나 바르샤 시절에 엄청나게 막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수비 라인의 미들 참여에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 라볼피아나 전술도 없었던 시절의 반할의 전술은 10년을 앞서간 듯 했다. 다만 단순히 미들의 수적우위를 유지하는 것과 빌드업에서 자연스럽게 풀백의 오버래핑을 유도했던 방식의 차이가 다를 뿐이다. 이점이 반할은 90년대에 명장으로 만들었던 비결이다.
그리고 그는 어린 선수의 발굴과 포변으로 월클의 능력을 이끌어내는데 탁월했다. 적어도 이 부분은 펩이나 크루이프가 가지지 못한 반할의 장점인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할이 맨유 부임 시즌에 보여준 막강한 공격력이나 2010년대 이후 네덜란드 국대 감독으로 있으면서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간 경위를 보면 빌드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빌드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처럼 보인다.
스트루트만의 전력 이탈로 네덜란드에 스리백을 이식시키며 다소 답답하지만 좌우 크랙에 의해서 꾸역꾸역 이긴 승리를 제외한다면 스리백으로 바르샤 선수들로 재구성된 스페인을 5대 1로 대파한 경기는 상대가 점유율을 크게 가져가며 라인을 끌어올렸던 바르샤 축구가 라볼피아나 전형을 가져가게 될 때 스리백 VS 스리백 대응 과정을 보게 된다.
이 때 반할의 스리백은 상대가 라인을 높이게 되면 가장 큰 위험 요소를 안게 된다는 점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바르샤는 라인을 너무 올려서 네덜란드에게 털린게 패인의 원인이다. 후에 리버풀이 맨유를 상대할 때나 맨시티가 맨유를 상대할 때 라인을 올리며 크게 무너지고 결국 맨유가 승리하게 되는 패턴은 반할이 강팀에 강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약한 상대를 상대로는 아주 답답해진다는게 단점이긴 하지만.
후방의 공격 능력과 관련해서 언급하다 반할에 대한 설명을 하다 보니 다소 논점에서 멀어졌지만 적어도 반할은 후방의 빌드업이 여의치 않을 때 스리백 전환과 미들의 수적우위의 묘미는 그대로 가져갔다. 그리고 이 부분은 뒤에 다뤄질 펩의 스리백 대응과 콘테의 스리백 대응의 차이와 관련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 월드컵 때 대박친 스리백]
1. [ 스페인을 상대로 ]
사실 반할이 월드컵에서 스리백으로 대박친 경기는 스페인 경기말고는 거의 없다. 나머지 경기는 로벤의 크랙기질로 캐리된 것이 대부분이고, 다소...음... 다소는 아닌 듯 하고, 아주 많이 답답하게 진행이 되긴 했다.
2. [ 스투루트만의 부상 ]
네덜란드가 포백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선수의 부상으로 인해서인데, 대안으로 스리백을 썻다는 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첫째, 네덜란드가 스리백에 생소한 건 아니지만 스리백을 쓰기엔 적합하지 않았던 스네이더같은 선수들은 포백에서 가장 잘 능력이 발휘되는 플레이메이커로 활용이 되는데, 당시 스트루트만처럼 부상을 당해 대열에서 이탈한 반더바르트의 조합말고는 스리백에서 그 활용도를 찾기 힘들었다.
3. [ 수비형 미들 ]
그나마 데용이나 바이날둠이 존재했던 스쿼드이기에 무리뉴가 스네이더를 잘 써먹던 4-3-1-2의 2선에 착안해 3-4-1-2로 나와서 수비에 대한 밸런스는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 어찌되었든 4강 간거는 반할의 공이 크다.
4. [ 카윗의 존재 ]
수비형 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반할이 스리백을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카윗의 존재다. 어쨋든 스리백에서 멀티형 인재는 아주 중요하다. 카윗이 존재했기에 반할의 스리백은 빌드업의 어려움을 활동량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맨유에서의 스리백은 실패했다. 본디 반할의 스리백 자체가 2000년대에 들어서서 재미없기도 했거니와 맨유에서는 박지성 같은 활동량을 가진 선수가 부재했고, 가장 중요한 크랙이 없었다.
반할이 리빌딩의 귀재이며 후방 빌드업이 여의치 않으면 전술에 굉장히 유연하게 반응한 것과 달리 바르샤는 리빌딩을 하는데 가장 중요하지만 까다로운 선수의 발굴이 후방 빌드업과 관계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어찌되었든 크루이프가 바르샤 감독으로 재직하며 쿠만과 펩으로 이어져 내려온 계보는 바르샤 축구에서 가장 중요했던 승리의 보루였다.
# 반할에게로 넘어간 바르샤
[ 바비롭슨과 무리뉴 훈련장에서 ]
[ 바비롭슨과 무리뉴 경기장에서 ]
[ 바비롭슨과 무리뉴 피치위에서 ]
밀란에게 크게 패한 크루이프가 바르샤 감독직을 떠나면서 잠깐 바비 롭슨이 바르샤를 맡고 이후 아약스에서 큰 족적을 남긴 반할에게로 바턴이 넘어가게 되었는데, 반할은 크루이프의 유산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업그레이드의 관점은 역시나 포변과 유스들을 월클로 올려놓는 1군 등용이다.
그리고 그에 적합한 선수들로 토털축구에 최적화된 아약스에서 클루이베르트와 데부어를 영입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반할의 경력은 꽤 성공만을 추구하며 가는 감독의 엘리트코스를 따르는 듯 했고, 실제 아약스 시절 리그와 챔스리그 모두 무패로 우승하는 신화에 버금가는 라리가 두시즌 연속 우승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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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크게 올립니다. 반할과 무리뉴 동반사진.
[ 반할과 무리뉴 ]
하지만 크루이프처럼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반할의 방식이 더 이상 정점을 찍고 있는 선수들에게 먹히지도 않았고, 선수시절 빈약하기 짝이 없던 경력을 근거로 항명했던 선수들도 존재했으며, 바르샤 선수들을 와해시켰던 가장 큰 사건이 있었으니 히바우두의 항명 파동 이후로 방출될 선수들의 명단을 상세히 적어 바르샤 회장에서 보낸 문건이 시즌 중 누출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방출명단에 적힌 선수들은 더 이상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 건을 계기로 바르샤는 반할 3년차에 바르샤는 경기의 집중력을 잃고 한창 잘나가던 경기력도 금세 저하되면서 우승도 내준다. 그리고 위의 언급했던 것처럼 펩은 반할이 떠나면서 이듬해에 바르샤를 떠난다.
크루이프 전형의 최대 단점은 중앙수비수의 패스 능력이 부재할 때다. 흔히 빌드업과정이라 부르는 수비수의 탈압박은 크루이프가 체력 소모를 줄이고, 선수들의 동선을 최대한 줄이며 라인을 유지하며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토털축구 방법론이지만 그 전술 자체에 소화할만한 선수 구성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독일에서 이런 롤을 소화할만한 선수는 리베로 롤에 해당하는 베켄바워나 슈틸리케, 잠머 정도고 베켄바워나 슈틸리케는 동시대에 같은 축구를 했던 선수지만 잠머와 슈틸리케는 20년 세월의 격차를 둘만큼 꽤 세대차가 나는 편이다.
이탈리아의 카테나쵸가 레프트 백의 전설을 써 내려가며 파케티처럼 경기 내내 기회를 창출하면서 공격력을 이끌어 가듯 크루이프의 토털축구는 포지션의 위치는 달라도 중앙 수비수나 수비형 미들의 공격적인 패턴을 창출할 줄 아는 선수들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 선수들의 유형은 펩에 이르러서 어느정도 정립이 되었다.
# 같은 듯 다른 반할과 펩의 3-4-3의 전술적 의미
[ 크루이프 이후에 정의된 패스 축구의 도식도 해당 그림은 메씨도나님의 글에서 그림을 참고 했다. ]
1. [ 공간의 이동과 선수들의 동선 ]
토털축구의 조직적 방법론을 제시한 사키의 4-4-2와 후에 4-4-2의 대항마로 자리잡았던 4-3-3의 큰 차이는 역삼각 미들의 구성이다. 결국 사키의 축구는 플랫한 수비 라인이 경기에 따라 위아래로 유동적으로 내려가면서 역습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핵심인데, 가장 큰 단점은 투미들의 활동량과 조합이 역삼각 미들을 상대로는 밀려 버린다는 점이다.
2. [ 윙포워드의 존재 ]
윙어는 1선으로 올라가 공격수겸 윙어의 역할을 맡다보니 결국 아군의 수비라인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공격수는 2명이 아닌 세명이 되어버린다. 그러다면 2선이 아닌 1선에서의 공격 옵션은 오프사이드 파괴가 추가된다. 오프라인을 통과하면 득점에 이르는 패턴은 단조롭지만 다이나믹해진다. 이것이 4-4-2가 4-3-3을 상대로 많이 밀리게 된 이유였다.
3. [ 메잘러와 4-3-3 ]
하지만 4-4-2가 4-3-3을 상대로 항상 밀리는 것은 아니다. 첼시의 강력한 4-3-3 조합을 상대로 0910시즌 퍼거슨이 내놓은 조합은 플레쳐- 긱스 조합이었는데, 결과는 3대 0으로 대박을 터뜨린다. 플레쳐와 수비 라인이 상대의 들어오는 길목을 다 차단해 볼을 끊어내면 긱스가 드리블해서 상대 중원을 유린하는 방식은 공미 플메의 변형에 가까운 4-4-2의 활용 방식이다. 퍼거슨은 이 컨셉을 잘 활용했다.
4. [ 바르샤의 축구에서 4-3-3을 쓰는 이유 ]
어찌 되었든 바르샤가 주구장창 4-3-3을 쓰는 이유는 3-3-3-1을 제외하고는 가장 트라이앵글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 전형이기 때문인데,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4-4-2의 선수들 간격과 4-3-3의 선수들 간격은 차이가 난다. 4-3-3의 전형의 볼을 받기 쉬운 위치에 선수가 존재하고, 미들 또한 역삼각형을 취하고 있다보니 선수들의 이동 경로는 포백을 제외하면 간격의 유지가 쉬워진다. 플랫한 라인에서 벗어나 삼각형을 지속적으로 만든다는 건 어찌되었든 패스에 의한 이동과 전진이 가능하다는 걸 의미한다. 어쨋든 바르샤는 4-3-3 덕후에 벗어나기 힘들 듯 하다.
[ 펩과 비슷한 유형의 세르히오 부스케츠 ]
펩 시절에는 중앙 미들 싸움에 중점을 두었던 변용 3-4-3이 아닌 후방에서 템포를 느리게 가져가며 자연스런 점유율 유지와 풀백의 오버래핑에 포인트를 두었던 라볼피아나 전형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치긴 했으나 애당초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 중반에 고안이 된만큼 변화의 의미는 상당히 많은 조건을 수반했고, 부스케츠의 존재가 0708시즌 이후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오래도록 그 자리는 리베로 롤처럼 선수의 세대교체가 지연되고 있는 편이다.
캐릭과 비교할 때 가장 부러운 건 아직도 30대라는 점이다. 88년생이니 만으로 치면 28살이다.
부스케츠의 폼은 캐릭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항상 저평가 되거나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과 한시즌 정도를 제외하고 꾸준히 폼을 유지하고, 팀을 보이지 않게 캐리해 간다는 점, 그리고 팀이 망가질 때마다 팀을 캐리해서 우승에 공헌한다는 점이다.
실제 1516시즌의 부스케츠는 1213시즌의 캐릭 모드와 많이 닮아 있다. 부상으로 주축 선수 대부분이 전력에서 이탈된 와중에 바르샤를 우승시킨 일이나 윙어, 중원, 그리고 중앙 수비 모두 헬인 상황에서 캐릭- 루니- 반페르시 조합으로 우승시킨 일은 최악의 상황에서 수비안정화와 실점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점유율 유지, 그리고 전방으로 전진하는 패스의 모든 조건이 승리와 연결된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할까.
비단 수비형 미들이 승리를 캐리한다는 점은 굉장히 어불성설로도 보인다. 부스케츠가 230경기 가까이 바르샤에서 출전하는 동안 골은 6골에 불과하고 캐릭은 400경기 넘게 맨유에서 출전하는 동안 24골 정도인데 이는 경기당 0.026골과 0.05골 정도이다. 한 마디로 로날드쿠만처럼 골을 넣어 승리를 결정하는 유형이 아니다.
# 펩은 크루이프가 밟았던 실패의 전술을 밟고 있다.
펩이 맨시티를 이끌면서 좀처럼 보기드문 대패를 당했는데 상대는 레스터 시티다. 어딘지 모르게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이 역사는 20년 전에도 반복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무대는 챔스리그와 같은 이피엘 리그 사이에 벌어진 정도, 그리고 스코어의 골득실 수 정도다.
그 경기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카펠로가 이끌었던 밀란전 경기에서 4대 0으로 대패당했던 크루이프의 바르샤 경기다.
[ 그러게 왜 조하트를 버리냐... 버릴 거면 우리에게 주든가? 아차 우리는 시츄가 있었지.. ]
펩이 추구하는 크루이프를 파훼하는 해답은 사키의 초기 전형에 충실한 플랫 4-4-2의 다이나믹 축구론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 경기를 기점으로 펩의 경기는 90년대 말의 바르샤처럼 변형될 가능성이 크다.
초기 크루이프 전형이 사키의 4-4-2에 크게 패하면서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중앙수비수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과 과정을 상당부분 포기한채 스리백과 포백의 변용을 추구하는 중간 과정의 스리백의 천이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전철을 펩이 따라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한가지다. 펩이 말하는 패스 축구는 압박과 공세 전환시 라인 변화를 쉽고 빠르게 가져갈 수 있는 사키의 4-4-2전술에서 아주 쉽게 구현되는 역습 패턴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거다. 점유율이 아무리 높고, 경기력이 좋아도 상대에게 볼을 몇 번 빼앗기면 쉽게 실점되는 경기라면 90분 내내 경기력이 좋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 경기기록]
1. [ 득점과 점유율은 상관관계가 있는가? ]
경기기록에서 유의한 수치가 아닌 한가지는 볼 점유율이다. 이 볼점유율이 유의하지 않다는 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득점이 일어난 시간대다.
2. [ 압박의 승리 ]
이른 시간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전반 3분과 5분에 일어난 득점은 비교적 빨리 거둔 선취점이라 보기엔 여러모로 맨시티 전술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날 4-4-2로 나온 레스터를 상대로 과르디올라는 3-5-1-1 전형을 들고 나왔는데, 누가 봐도 이 점은 맨시티에게 전술적 보완이 아주 필요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3. [ 미들의 우위 ]
언뜻 보기에는 맨시티의 미들 숫자가 레스터보다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라인의 유동성이다. 5명이 3선에 포진하다보니 윙백에 해당하는 나바스나 데브루잉은 공격하는 순간에 빨리 측면을 공략하면서 귄도간이나 사발레타는 윙백내지는 풀백의 역할을 공유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많이 결여된 상태로 라인을 끌어올렸다. 실제 귄도간은 수비형 미들에 적합하고 사발레타는 풀백의 위치에서 가장 빛을 발휘하지만 이 역시 중앙에서 아군이 경기를 주도하고 있을 때 얘기다. 따라서 맨시티는 수만 많았지 공격에서는 제대로 풀기 어려운 포지션을 들고 나왔다.
4. [ 빌드업의 의미 ]
가장 재앙에 가까웠던 포지션은 스톤스의 위치다. 그리고 이 경기의 MOM은 브라보의 예능이다. 빠른 볼 전환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후방에서 지향하는 토털축구의 패턴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중원의 중심은 페르난두가 아닌 귄도간이 파이브 미들의 중앙을 맡아야 실바에게 들어가는 패스가 원활해진다.
스톤스가 중앙에 자리잡다 보니 바디의 빠른 압박과 스피드를 이겨내기에 여러모로 제한점이 존재하고, 이 부분이 수비의 불안을 야기하면서 맨시티는 이른 시간에 실점을 서두른다. 실제 레스터는 20분 안에 3골을 넣었다.
5. [ 스리백 VS 포백대응의 결과 ]
적어도 펩이 3-5-2에서 추구하는 다이나믹한 전술을 쓰려면 스리백의 인원을 빌드업에 국한시킬게 아니라 첼시처럼 공격력과 패스웤, 그리고 빠른 주력을 가지고 대항할 수 있는 윙백에 가까운 중앙 수비수들로 구성했어야 했다. 그리고 사키의 초기 축구에 아주 근사한 다이나믹 4-4-2로 나온 레스터 시티전에서는 미들 압박이 관건이니 본인의 패스 철학을 버리고, 압박을 타이트하게 가져가는 4-3-3으로 선수들을 재구성했어야 했다.
결국 패착은 본인의 철학 고수였던 듯 하다. 그림을 보자.
[ 1516시즌 유벤투스 VS 피오렌티나 ] [ 1516시즌 우디네세 VS 유벤투스 ]
6. [ 스리백 VS 스리백 대응 ]
다음은 피오렌티나 전에 들고 나온 유벤투스 전형이다. 콩테가 구사하는 3-5-2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피를로와 포그바 마르키시오의 조합이다. 세 선수의 조합은 전방에서 능동적인 압박을 마르키시오가 맡고 볼운반과 컨트롤, 킥을 포그바가 미들에서 맡으면 피를로가 후방에서 볼을 지속적으로 배급하는 역삼각 미들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할은 우디네세를 상대할 때도 죽 어이진다. 윙백과 공격수는 모두 라인업이 바뀌었는데, 공통적으로 스리백과 미들의 역삼각 미들 라인업은 두 경기 모두 바뀌지 않았다. 이것이 콩테가 3-5-2 전술을 이끌때 다이나믹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7. [ 맨시티의 스리백의 한계 = 조합의 실패로 시너지를 낼 수 없다. ]
적어도 펩은 스리백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들 조합을 귄도간-페르난두-사발레타로 가면 안되었다. 이 세선수의 조합은 스리백에서 중앙의 압박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사발레타는 전진성이 강하고, 귄도간 역시 공미에서 부상을 이유로 활동량이 저조해지면서 수비형 미들로 전향한 케이스며, 페르난두는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지만 그에게는 페예그리니 시절에 중용되었던 야야투레가 없기 때문에 빌드업과는 무관한 능력 때문에 파괴자 유형에 가까운 단점을 펩의 전술에선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8. [ 스리백의 융통 ]
스리백이 포백을 상대로도 효과를 발휘하려면 윙백의 능력은 중앙 수비가 이른 시간에 공격으로 빨리 전환시킬 줄 알거나 중앙 미들의 역삼각 대형 조합의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두가지 옵션이 충족되어야 적절히 상대를 압박시키고, 무력화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펩이 추구하는 패스의 본질은 압박에 탈압박을 시전하기 때문에 공간을 압박하고, 측면을 파고드는 상대에게는 쥐약과 다름없다. 적어도 스리백은 현재 최상의 폼을 보이는 첼시의 전철을 따르는 것이 많다. 물론 이 전철은 전형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선수의 재구성을 뜻한다.
[ 레스터를 이끄는 라니에리 ]
# 활동량의 중요도
활동량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 압박을 넘어 오프 더 볼이 가진 자유로운 공간 이동과 그에 따른 상대 패스에 대한 커팅이 주효하고, 따로 본다면 압박이 아닌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데 있다. ,
하지만 현대축구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던 활동량의 변화는 바르샤의 패스 축구가 요구했던 부분이 아니었다.
펩의 바르샤 시절에도 앙리의 인터뷰를 인용한다면 포지션 체인지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이로 인해 제한된 공간에서 탈압박하는 기술은 경기내내 상대 수비의 수적 우위에 의한 압박을 극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풀백의 오버래핑을 적극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라볼피아나 전술은 펩의 전술에서 제일 중요한 빌드업 유지와 점유율 상승의 축이었다.
하지만 전형의 이식이 쉽고, 선수들의 조직적 압박이 어느 때보다 우수하게 조합이 되던 시절에도 투미들의 조합은 박투박과 빌드업의 관점에서 이뤄졌는데, 보통 우리가 말하는 빌드업은 수비에서 공격으로 올라가는 기초공사에 해당하는 말과 거리가 좀 있다. 투미들이 플랫한 라인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명은 쳐진 위치에서 패스유형의 역할을 담당하고, 다른 한명은 미들에서 개싸움을 해줄 수 있는 유형을 말할 때 빌드업을 쓰곤 한다. 하지만 이 빌드업의 본래의미처럼 투미들 중 한명이 수비라인의 빌드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로는 잘 쓰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스리백에서 요구하던 리베로롤과 달리 현대 축구에서 빌드업은 미들의 중원 라인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은 그 동안 후방에서 진행되던 빌드업이 2선으로 올라왔던 90년대의 가장 큰 미들 조합의 특성이다.
[ 글라브바흐 전 맨시티 ] [ 폐예그리니 시절의 선수들 분포 ]
1. [ 확실한 컨셉 ]
맨시티에 부임한 이후로 확실히 펩은 맨시티에 패스 축구라는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꿔놨다. 선수들은 높은 라인에서 많은 움직임을 가져가고 특히 콜라로프와 스톤스 오타멘디와 페르난두에 이은 데브루잉의 활동량과 공헌도는 커졌다. 풀백과 중앙수비 그리고 공격형 미들 사이의 패스를 가져가는 선수들 간격은 확실히 좁고, 트라이 앵글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고 볼 수 있는데, 볼의 순환은 전방보다는 후방에서 볼에 많이 관여함을 알 수 있다.
2. [ 폐예그리니 시절 맨시티 ]
레알마드리드를 챔스에서 상대할 적이 1516시즌을 보면 선수들이 얼마나 중원에서 패스를 가져지 않고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페르난두는 좀더 오른쪽에 치우치고볼에 관여한 선수들은 오타멘디나 콤파니, 클리시가 많지만 선수들은 중원에서 활동하지 못했고, 사이드 위주였다. 이 컨셉에서는 아무런 희망을 볼 수 없었다. 비록 맨시티가 4강까지 어느 감독시절에는 가지 못한 4강까지 갔음에도 말이다.
다음 그림을 보자
3. [ 토털축구의 관점 ]
보통 토털축구를 실시하는 팀들은 빌드업에서 볼에 많이 관여하거나 지속적으로 전방 압박을 하는 상황을 지속시킨다.
4. [ 클롭의 리버풀 ]
과거 도르트문트에 게겐 프레싱을 입힌 클롭이 리버풀에 오면서 변화된 모습은 선수들 전원이 전방압박하러 수시로 올라갔다는 점이다. 볼에 대한 관여도는 도르트문트에 비해 상당히 작은 원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원형이 의미하는 것은 경기력이라고 볼 수 없다. 클롭이 온 이상 리버풀은 점유율이 아닌 전방압박으로 득점하는데 한발짝 다가서고 있을 뿐이다.
5. [ 도르트문트의 변화 ]
만약 클롭이 도르트문트에 있었다면 리버풀의 선수들 분포와 볼 관여도는 도르트 문트와 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투헬은 게겐프레싱 위에 패스축구를 입혀 지속적으로 볼이 아군 수비 뒷공간에서 교환하는 빌드업을 하면서 정교한 패스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수비라인이 높다 보니 뒷공간이 열릴 위험이 존재하고 클롭처럼 전방압박을 경기내내 가져가지 않다보니 수비 라인의 지공과 탈압박이 아주 중요해졌다는 점은 클롭 시절에는 보기 힘든 결과다.
6. [ 도르트문트와 리버풀 ]
도르트문트의 게겐 프레싱 흔적은 수비라인이 얼마나 라인을 높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1516시즌에는 클롭의 축구가 완벽하게 입혀지지 않았음에도 최종 수비라인은 도르트 문트의 수비라인과 동일하다. 그리고 도르트문트의 높은 수비라인 유지는 클롭이 전수한 게겐프레싱의 흔적이다. 프레스 알토 영역까지 올라가는 공격적인 형태는 점유율을 중시하는 감독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모형은 아니다.
[토트넘 VS 맨시티 ] [뮌헨 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7. [ 포체티노의 토트넘 ]
마찬가지로 클롭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는 포체티노의 경기 스타일은 리버풀처럼 전방에 많이 포진시키고 수비라인을 올리는 건 아니지만 선수들이 넓게 포진한 것에 비해 선수들의 볼 관여도는 로즈와 시소코 에릭센을 제외하고는 원형이 상당히 작다. 사실 에릭센이나 로즈의 원형 모두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도찐개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시티를 상대한 토트넘은 2대 0의 승리를 거둔다. 볼 관여도가 적은 대신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활동량으로 상대의 경기력을 저지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압박 축구를 하는 팀들 대부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8. [펩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안첼로티의 뮌헨 ]
이에 비해 펩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바이에른 뮌헨은 타이트하고 플랫한 4-4-2 라인의 직선적인 축구를 하는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선수들 대부분의 볼관여도가 상당히 많다. 펩은 떠났지만 펩이 중시하거나 영입한 선수들은 볼에 상당히 많이 관여하고 풀백인 알라바의 위치는 티아고 알칸타라와 동일선을 유지하고 알론소는 중앙수비수 두명과 함께 라볼피아나 전형을 유지하고 있다. 분명 안첼로티가 보여준 라인업은 4-3-3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볼에 많이 관여하고 터치했을 때의 전형은 3-4-3에 가깝다.
[ 펩의 3-4-3 ] [ 펩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은 뮌헨 ]
9. [ 펩의 3-4-3 ]
맨시티에 와서 에버튼을 상대로 스리백으로 전환한 펩의 축구는 뮌헨의 그것과 달리 선수들의 분포도가 대부분 중앙에 치우쳐 있고, 선수들 사이 간격도 공격 라인과 미들라인을 기준으로 상당히 좁게 유지된다. 펩의 패스 축구의 결과이지만 그림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볼관여도 분포도는 상당히 비정상적이다. 지속적인 트라이앵글 유지가 어렵고, 이런 분포도는 선수들 간의 최소한의 자유도가 결여되며, 상대 또한 밀집수비로 막아낼 가능성이 큰 분포도다. 실제 에버튼전에서 맨시티는 1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10. [ 점유율의 결과는 무승부 ]
실제 에버튼 전에서 맨시티는 72%의 볼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렇게 볼점유율을 높이는데 선수들의 볼 관여도는 당연히 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볼 관여도는 일반적으로 보여준 패턴이 아니다. 뮌헨이 압도적인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레반도프스키의 볼 관여도는 미들라인의 선수들은 물론 수비라인에 포진한 선수들의 볼관여도보다 지극히 작다. 실제로 패스위주의 경기가 아니라면 볼에 가장 많은 관여를 하는 선수는 공미 플메에 해당하는 선수이며 이 선수를 꼭지점으로 선수들이 상하 라인을 유지하는 역삼각 형태를 가져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1. [ 이피엘에 온 펩의 한계 ]
바로 이점이 뮌헨에서는 가능하고 이피엘에선 불가능한 펩의 용병술이다. 분데스에 비해 수비와 공격의 촘촘함은 많이 없으나 대신 공수전환의 속도가 빠른 리그에서 커팅과 압박이 지속적인 이피엘에선 펩이 추구하는 축구가 압도적인 수준차이를 보여준 바르샤나 뮌헨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실 바르샤도 질뻔한 경기를 더티한 헐리웃 매너로 승리를 챙긴 적이 많은데 이피엘은 심판의 농간은 있어도 기술축구보다는 체력싸움 축구에 관대하니 여간해선 펩의 패스 축구가 많이 고전할 수 밖에 없다.
[ 토털축구의 관점에 대한 결론 ]
12. [ 토털축구의 모식도와 같은 두 클럽 ]
많은 부분에서 뮌헨 선수들의 볼관여도와 패스 빈도는 아약스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토털축구의 모태가 되었던 아약스나 뮌헨이나 가장 중요한 볼 컨트롤은 중원이고, 어디서든 트라이앵글을 유지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펩이 남긴 뮌헨의 흔적인 라볼피아나 형태를 경기내내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13. [ 현대 축구의 이해 ]
필자가 앞서 보여준 여러 팀들의 볼관여도와 경기장을 쓰는 형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토털축구 이 한가지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여러 감독들이 포메이션으로 라인업을 내세우지만 경기장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준 예를 통해 실제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볼관여도 선수들이 주로 활동했던 영역을 보면 그 선수가 실제 어떤 롤을 소화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롤은 감독들이 중시하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 여러가지로 다를 수 있다.
# 플메 전술에 대항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대응 전술
그렇다면 투볼란치의 메커니즘과 투 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거 브라질에서 4-2-4 전형을 내세울 때, 선수들의 개인기와 능력이 유럽의 선수들에게 비해 특출나게 뛰어났기 때문에 이 전형에 대해 대항했던 전술로 세리에에선 카테나치오 전술의 빗장수비와 네덜란드에선 아약스의 미헬스 리누스가 이끄는 토털축구로 압축되었다. 그리고 추가하자면 분데스리그에선 수비와 빌드업, 공격 전개를 모두 담당하는 리베로롤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 세가지 전술이 지향하는 바는 한가지다. 공미 플메 전술에 대항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대응 전술이란 점이다.
볼트 시스템에서 유래된 카테나치오에선 갈라져서 리베로롤이 발전하게 되면서 희소하지만 그나마도 현대 축구의 줄기에 까다로운 유형의 계보는 계속 이어져 왔다. 애당초 볼트 시스템은 피라미드 시스템에서 오프사이드 룰로 개정되면서 수비 숫자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WM 시스템으로 변화되는 과도기에 고안된 시스템이었는데, 약팀이 강팀에 대응하는 시스템으로 꽤 오랜 시간동안 약팀에게는 좋은 전술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지 않는 전술은 승리와 무관하다. 패하지 않는 경우의 수는 무, 승 두가지인데, 보통은 승리하기 위한 조건에서 약팀이 취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카테나치오의 발전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 공격으로 전개시 상대적으로 공간압박이 덜한 풀백이 공을 운반해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을 취해 왔다. 수비는 수비형 미들과 중앙수비수 두명, 리베로가 포백으로 전환하며 당시 공미 플메 전술에 대항했던 빗장수비의 완성이 에레라 이후의 6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남미 축구에 비해 재능적으로 열세였던 유럽 팀들 중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이 카테나치오 전술도 아약스의 토털 축구를 만나면 반코트의 게임 운영을 해야만 했다. 이 반코트 운영이 항상 상대의 조직적 열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격 전개 과정에서 카테나치오의 비대칭 전술은 경기 전체를 압박하며 공의 흐름을 쫓는 네덜란드 축구에선 전혀 전진이 되지 않는 버뮤다의 삼각 지대같은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란 곳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투볼란치의 메커니즘은 뛰어난 중앙 지향형 선수의 침투할 공간을 차단하기 위해 중앙의 수비를 두줄로 만들어 차단하는 걸 의미한다. 1선의 4명중 측면에 포진한 두명은 스리백에서 윙백의 역할보다 자유로운 공격과 수비의 전환을 이끌어냈는데,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자유로운 만큼 4-2-4- 전형은 공격수 한명이 미들에 내려가는 4-3-3 전형으로 발전하게 된다.
비단 4-4-2에서 4-3-3으로 변화되는 2000년대 초기의 발전 방향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이런 전술적 성과가 60년대에 일어난 이유는 투볼란치의 2선 포진이 측면의 공간을 다 커버할 수 없는 만큼 공격수 한명이 미들로 내려오면서 공간압박과 공격의 전환 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런 전형의 변화는 남미에서 일어났지만 실제 이 전형이 쓰는 목적은 국대로 거의 한정되다시피 했다. 유용한 전형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남미 축구는 공격적 재능을 지향하기 때문에 압박의 개념이 아닌 중앙의 플메를 막는 전술로 쓰인 투볼란치의 메커니즘은 공격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을 막는 형태였다.
중원의 압박은 미들만의 역할이 아니라 아약스의 토털축구처럼 어디서든 공간을 내주지 않는 축구를 지향할 때 높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6,70년대 남미 축구에서 그런 방향을 굳이 지향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투볼란치는 상대 선수중 드리블로 공간을 파괴하는 선수나 파고드는 선수가 없다면 유효한 전술은 아니다. 하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존재하는 남미에선 투볼란치의 메커니즘은 아주 효율적이었다.
잠시 여담으로 세리에가 왜 카테나치오 전술로 선회했는지에 대해 썰을 풀고자 한다.
40 분내로 올라갑니다. 원래는 한개의 주제인데 페이지가 57쪽이 넘어가는 관계로 잘라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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