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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Israel National Trail)
글.사진: 원대식/우정 산악회
2018년 뉴 질랜드의 북단끝에서 남단 끝까지 이어가는 3,000km의 트레일인 '태 아라로아(Te Araroa)'를 걸었다. 그 때 우연히 만난 네델란드에서 온 트레커들과 여러날 트레킹을 함께 하며 종료 지점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미 미국의 PCT와 AT등 장거리 트레일을 이미 경험하였고 다음 목표가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이라고 했다. 사막 지역의 물 확보등이 문제지만 장거리 트레커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트레일 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라 했다.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이어지는 트레일의 존재를 알았고 나의 '버킷 리스트'에 추가하였다.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Israel National Trail)은 이스라엘의 북단에서 남단으로 이어지는 1,100km의 도보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쉬빌 이스라엘(Shvil Israel: 히브리어) 이라 부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세계에서 가장 멋진 20개 트레일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낮 익은 장소들과 텔 아비브, 예루살렘 같은 도시들, 지중해 해변, 경이로운 네게브 사막을 지나며 이스라엘의 고대와 현대를 체험할 수 있는 장거리 도보길이다.
2019년 11월 10일. 이스라엘의 관문인 텔 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어 렌트카를 몰고 130km 거리의 네게브 사막 초입에 있는 아라드(Arad)로 향했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아라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사다와 사해를 들러 본다. 마사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며 아라드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있다. 거대한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고대의 왕궁이자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예루살렘에서 이곳으로 피신한 후 3년 간 로마군에 항거하던 천여명의 유대인 저항군이 로마군의 공격에 패배가 임박하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전원 자살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기원 후 37년의 일이다. 이스라엘에서는 18세가 되면 남녀 불문하고 군에 입대를 한다. 이곳의 고대 전쟁사를 이스라엘 국방군의 상징으로 보고 마사다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의 신병훈련을 끝마친다고 한다.
사해는 마사다에서 내려 보이는 곳에 있는 해발 - 430미터에 있는 호수로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염분이 높아 생물이 살지 못하고, 사람이 둥둥 뜬다고 유명한 곳이다. 구약 성경에 '소금 바다'로 기록될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마사다와 사해 관광 후 렌트카를 반납하러 갔다. 렌트카 회사의 문이 잠겨 있어 전화를 하니 이스라엘 전역에 철도를 비롯한 대중교통이 일시 중지 상태이며 모든 회사들은 무기한 영업을 중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날 아침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여러 도시로 로켓포탄 천여 발을 발사하여 전쟁 중이기 때문이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차량을 반납할 수 있는 장소는 텔 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이었다. 1시간 30분 거리의 공항으로 이동하여 차량을 반납하고 다시 그 곳에서 할 수 없이 비싼 요금의 택시를 타고 아라드로 이동하였다. 여행을 할 경우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며 나아가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이스라엘의 동남부에 자리하고 있는 네게브(Negeve) 사막은 이스라엘 땅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네게브는 히브리어로 광야 또는 황무지를 뜻한다. 사막지역의 특성 상 거주 인구는 매우 적으며 건조하기 때문에 주로 유목 민족인 베두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더운 여름 날씨보다는 선선한 늦가을의 날씨가 사막을 걷기에 적당하다. 겨울이 오기전에 남부의 사막 구간을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겨울의 이곳 사막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사암으로 형성된 협곡들이 많아 비가 올 경우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위험할 수 있다. 전 년도에 갑자기 내린 폭우로 네게브 사막에서 2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면서 겨울철 우기를 앞둔 네게브 사막에는 물이 다 말라버린다. 따라서 트레킹 중 필요한 물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하나의 방법으로 스스로 트레킹 전에 필요한 물을 특정 장소에 보관 후 트레킹을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 다른 방법 하나는 약속한 장소에 물 보급을 지원해 주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인데 나는 8군데의 야영장에 하루 6리터의 물을 공급받는 서비스를 받기로 하였다.
트레킹 첫날. 6일치 식량과 2리터의 식수를 메고 아라드를 출발한다. 6일 후에나 식품점이 있는 마을에 도착 예정이다. 사막 지대를 걸으며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낙타와 같은 짐승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나할 칸판(Nahal Kanfan) 이라는 이름의 물이 다 말라버린 계곡길을 따라 12 km 거리의 트레일을 따라 걷는다. 나할은 히브리어로서 개천이란 뜻이다. 빗물로 침식된 계곡의 규모를 보니 사막에도 우기철인 겨울에는 비가 상당히 내리는 것 같다.
땅거미가 질 무렵 베어 에페(Be'er Efe)에 있는 야영터에 도착하였다. 아무런 시설도 없고 물이 마른 작은 계곡에 텐트를 칠 만한 평평한 곳이 여기 저기 있는 곳이다. 이 근처에 내가 먹을 물이 감추어져 있다. 출발 전에 전자 메일로 받은 위치 정보를 따라가 보니 야영장에서 멀지 않은 도로변 수풀속에 감추어 놓은 10여개의 2리터 생수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중 6리터의 물이 나의 몫이다.
트레킹 3일째, 작은 분화구란 의미의 마크테쉬 카탄(Marktesh Katan)을 지난다. 길이 6km, 폭 4km, 깊이 500m의 5백만년 동안 바람과 물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광활한 분화구 속으로 트레킹이 시작된다. 마크테쉬(Marktesh)는 오랜 세월동안 물과 바람으로 인한 침식작용으로 인해 생긴 움푹 파인 형태의 지형을 말한다. '침식 분화구'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이런 지질학적 형태는 화산 폭발 로 생길 수도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화산 분화구(Volcanic Crater) 이다. 네게브 사막에는 다섯개의 침식 분화구가 있는데 트레킹 중 세 개를 거쳐간다. 다양한 색깔의 모래와 모래속에 여러 광물질들 섞여 있는, 이곳 에서만 볼 수 있는 경치를 즐기며 마크테쉬 카탄에서 하루 밤을 지낸다.
미즈페 라몬(Mizpe Ramon)은 규모가 제법 큰 네게브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이다. 이곳은 식료품점과 식당이 있어 하루를 쉬어 가기에 적당한 곳이다. 부근에 마크테쉬 라몬이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침식 분화구가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환상적인 색깔의 다양한 바위들로 둘러 싸인 라몬 분화구는 이스라엘의 ‘그랜드 캐년’ 이라고 묘사되는 곳이며 이것의 크기는 길이 40km, 폭 10km, 깊이 400m이다.
하루를 휴식하고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난다. 트레일 초입에서 큰 뿔을 가진 수십 마리의 아이벡스가 나를 환영해 준다. 낙타모양을 한 작은 동산 같은 카멜 봉을 뒤로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침식 분화구로 진입한다. 화산이 폭발하여 흐른 검은 용암과 주상절리 모습도 보인다. 수백개의 암모나이트 화석을 품고 있는 사암 언덕도 지나고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물이 만들어 낸 기이한 모습의 모래와 바위 속을 거닐며 24km를 걸어 야영장에 도착한다.
숨겨놓은 물을 찾아 저녁을 지어먹고 피곤한 텐트에 몸을 눕힌다. 잠결에 발 아래쪽 텐트 모서리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여우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나의 식량을 노리는 것이었다. 소리를 질러 짐승들을 쫓으니 여러 마리가 후다닥 튀는 소리가 들인다. 아침이 되어 점심때 먹으려고 지퍼백에 담아둔 식량이 보이지 않는다. 텐트 모서리를 살펴보니 작은 수박 만한 크기의 구멍이 나 있다. 여우가 텐트를 뜯고 식량을 훔쳐 간 것이다. 이 사막에는 늑대, 여우, 쟈칼, 하이에나, 산양등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나의 영역이 아니고 그들의 영역이다. 남의 집을 침범하여 머물고 있으니 그들에게 세금을 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1일쨰는 조파(Zofar)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식료품점에 가니 근처의 파인애플 농장에서 고단한 일을 마친 필리핀 노동자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트레킹 하면서 가끔 만나는 식료품점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좁은 텐트 대신에 캠핑장에 지어진 베두인 막사에서 하루를 지낸다. 모닥불을 피우고 붉게 물든 지평선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킨다.
히말라야 무스탕 계곡과 비슷한 모래들이 흘러내린 큰 규모의 사암 능선을 끼고 걸으며 12일째 야영지인 바락 캠프(Barak Camp)에 도착하였다. 주변의 경관이 수려해서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에 캠프장도 잘 정돈이 되어 있고 지프차들이 접근할 수 있게 길도 잘 닦여 있다. 오토 캠핑 하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물이 보관돼 있는 장소를 GPS에 의존하여 찾아 간다. 인적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물 보관 장소가 멀리 떨어 져 있다. 10여분여 만에 수풀속에 감추어 있는 물을 찾았다. 그러나 10개 정도의 물통들은 모두 구멍이 나 있고 빈 통 들이다. 모양새를 보니 짐승들이 물어 뜯어 물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허탈한 심정으로 물통 속에 남은 물들을 모으니 1리터 정도 된다. 그것으로 저녁을 해결하였다. 다행히 인터넷이 가능한 지역이라 물 보급 서비스 업자에게 구멍 난 물통들의 사진을 전송하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니 물을 보내 주겠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여기서 100여 Km 떨어진 곳이다. 그날 오후 11시쯤 그가 지프를 몰고 생수를 가지고 왔다. 그는 물 보관 장소에 50여 리터의 물을 다시 보관하고 나에게 6리터의 물과 바나나 몇개를 전해준다.
트레킹 13일째 날은 사암속의 협곡인 바락 캐년과 바르딧 캐년(Barak Canyon & Vardit Canyon)을 지난다. 비가 오는 날은 계곡이 물 폭포들로 변하여 매우 위험 한 곳이다. 경사진 바위 구간은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하며 도중에 만나는 물 웅덩이는 가슴까지 물에 몸을 담그며 로프를 잡고 건너야 하는 곳이 여러 곳이 있다. 물 울덩이에는 로프 두개가 위 아래로 설치되어 있다. 위의 로프에는 배낭을 걸고 아래쪽 로프는 손으로 잡고 건넌다
17일째가 되는 날은 팀나 파크(Timna Park)를 지난다. 팀나 파크는 가파른 절벽에 둘러 쌓여 있는 말 발굽 모양의 계곡으로 솔로몬 왕 시대의 구리 광산이 있고 수려한 경관과 역사적인 유적지로 네게브 사막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자연이 만든 경이로운 작품들 뿐만 아니라, 가혹하고 건조한 조건에서 살아남은 야생동물, 식물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멋있는 자연의 모습에 눈이 호강을 하며 걷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수천년 동안 물과 바람의 침식으로 빗어진 거대한 사암 기둥인 '솔로몬 필라'이다.
검은 화강암과 사암이 어우러진 능선과 계곡을 지난다. 오른쪽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경선 철책이 길게 뻗어 있다. 홍해 바다가 보이고 이어서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에일랏에 도착했다. 네게브 사막 초입의 아라드를 출발한 이래 21일만이다. 중간 마을에서 2일을 쉬었고 19일간 422 km를 걸었다.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의 북쪽 들머리는 2,814m 높이의 이스라엘의 최고봉인 헤르몬 산의 남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키브츠 단’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키브츠는 집단 공동체란 의미의 이스라엘 특유의 마을 형태의 하나이다. 사유 재산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재산과 생계 수단은 공동으로 소유한다고 한다.
최 남단의 에일랏에서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렌트카를 타고 하이파(Haifa)를 거쳐 키르야트 시모나(Qiryat Shemona)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북쪽 출발점인 ‘키부츠 단’으로 이동하였다. 그 날 이스라엘 전역에 많은 비가 내렸다.
어제 내린 비로 트레일은 진흙길로 변했다. 신발 바닥에 달라 붇는 진흙 덩어리는 걷는 속도를 더디게 했다. 훌라 밸리의 하천이 멀리 이어 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에 있는 헤르몬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땅에 스며든 뒤 ‘키부츠 단’에서 풍성한 물줄기를 이루고 훌라 밸리의 하천을 따라, 갈릴리 호수, 사해까지 흘러 간다. 이스라엘 북쪽 지방은 남쪽의 사막 지역과 달리 푸르른 산과 계곡, 초원이 주를 이룬다. 가을철에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이동이 장관이라 한다.
12시간을 걸어 언덕위에 있는 성터인 예사 포트(Yesha Fort)에 도착했다. 가이드 북에 의하면 이 곳은 야영이 허용이 되고 근처 주차장의 공중 화장실에 있는 수도물을 이용하면 된다고 하는데 화장실은 굳게 잠겨 있다.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공장이 보인다. 그곳의 경비원의 도움으로 공장안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식수를 얻을 수 있었다.
아침에 길을 가는데 대 여섯 마리의 자칼들이 죽은 소를 뜯어먹고 있다가 나의 기척을 듣고 달아난다. 저녁에는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는데 사방에서 여우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여우와 자칼의 구분은 꼬리의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배고픈 들짐승들은 나의 텐트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식량을 높은 나무가지 위에 묵어 걸어 놓고 자기로 했다.
트레일 시작점을 출발하여 100여 km 지나면 갈릴레아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1km이며 호수 둘레는 약 50km이다. 해수면으로부터 약 209m 아래에 있다. 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헤르몬 산에서 발원한 물이 갈릴레아 호수로 흘러 들어온 뒤 요단강을 통해 사해로 흘러 간다. 예수의 주요 활동지로 성경을 통해 잘 알려진 카파르나움, 베쎄이다, 겐네사렛, 티베리아스등이 호숫가에 있던 마을이다. 식량도 구입할 겸 티베리아스에서 하루를 묵었다.
티베리아스를 출발하여 서너 시간을 걸으면 갈릴레아 호수 남단에서 호수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도달한다. 요단강으로도 불리는 요르단강이다. 큰 강으로 기대 했는데 개천 같다. 요르단 강 초입에는 야르데닛(Yardenit) 이란 곳이 있는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곳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장소이다. 요르단 강 물속에 몸을 적시고 나오는 사람 들도 보인다,
다음날은 나자렛 마을을 지난다. 나자렛은 예수님이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예전엔 한적한 시골마을 이었지만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아랍인 들이 거주하는 도시로 변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순례하는 성지 중 하나이다.
트레킹 30일째, 12월 16일.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인 가이샤라(Caesarea)에 도착했다. 헤롯왕이 그리스 아테네를 본떠서 만든 도시로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서 가이샤라로 이름을 붙인 곳이다. 로마 대리석으로 바닷가에 왕궁과 신전을 짓고 원형극장, 경기장, 목욕탕과 수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고대 석조 수로를 끼고 걷는다. 초 겨울이지만 지중해의 아열대 기후는 온화한 겨울 날씨가 이어진다. 윈드 서핑을 하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이틀간 해변길을 걸어 텔 아비브에 도착한다. 장거리 트레일을 걸을 때 가끔씩 나타나는 도시는 지친 방랑객에게 소소한 기쁨을 준다. 오랫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샤워를 하고, 식량도 구입하고 그리고 카메라와 GPS를 위한 배터리 충전을 위해 하루를 쉬어 간다.
텔 아비브에서 4일을 걸어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역사의 도시인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이스라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란 뜻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예루살렘은 역사상 늘 바람 잘 날 없는 분쟁의 도시, 유혈의 도시였다.
예루살렘이 특별한 이유는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왕이 통일왕국을 세워 수도로 삼은 곳 이자 솔로몬 국왕이 최초의 유대교 성전을 세운 곳이다. 이슬람 신도들에게는 선지자 마호메트가 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로 찾아와 승천한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기독교 인들에게는 예수의 숨결과 발자취가 곳곳에 서린 곳이다. 최근 몇 년 전에 이스라엘 수도는 텔 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변경되었다.
예루살렘의 동과 서는 높이 8미터의 장벽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치안의 벽이라 하고 팔레스타인은 인종차별의 벽이라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가보기로 한다. 어렵지 않게 검문소를 통하고 장벽을 따라 걷는다. 장벽에는 ‘자유’등을 표현한 벽화들이 눈에 띈다. 예수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트레일 종점인 아라드까지는 150km를 더 걸어야 한다. 이 구간에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인류가 머물었던 흔적이 있는 많은 동굴들과 고대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많은 유적지를 지난다. 높은 산이 없는 평야 지대로 포도밭, 올리브 농장이 많은 작은 마을들을 통과한다. 사막 한가운데 빌딩들과 나무숲들이 저 멀리 보인다. 드디어 예루살렘에서 닷새를 더 걸어 아라드에 도착하였다.
총 1,100km의 거리의 45여일 간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40일간 걸었으며 31일은 텐트에서 밤을 보냈다. 텐트 주위를 서성이는 들짐승들, 한 밤중 짝을 찾는 여우들의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지만 쉽게 잊혀 지지 않을 추억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유대민족의 역사와 역경을 극복해가는 그들의 저력을 부분적이지만 살펴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의 역사도 보았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세력은 130만의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고 60만 유대 왕국을 건설하였다. 팔레스타인의 85%가 난민이 되어 이집트, 레바논을 떠돌고, 일부는 요르단 서안 일부와 가자 지구에 남았다. 여행 중 내가 만났던 아랍인들은 세계의 강대국들의 암묵적인 방조와 묵인에 의한 이스라엘이 저지른 대규모 반인도적 범죄라고 주장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네게브 사막의 숨막힐 듯이 아름답고 다채로운 경관들이다. 장엄하면서도 독특한, 불타오르는 듯한 인상적인 암석들의 모습이 그 중 하나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