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다른 한쪽을 찾아서
변택주
법정 어른스님 말씀 가운데 가장 또렷이 제 가슴에 박힌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第一精眞’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에는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란 말씀도 있습니다.
‘수본진심제일정진’ 으뜸가는 정진은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란 말입니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참마음자리. ‘부모미생전본래면목’이 말씀은 선가 화두 가운데 하나로 ‘부모 몸 받기 전 본디 모습은 무엇인가’ 이 화두 역시 뿌리 찾기, 제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평생을 바쳐서 뿌리를 찾기 위해 몸소 퍼즐을 맞춰 온 세계를 두루 다니며 40여년을 바쳐온 고고학자가 있습니다. 김병모 박사가 그 분인데요. 평생 연구를 집대성해 책 한 권을 엮어 작년 봄에 내놨습니다.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가 그것입니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나온 김해 김씨 김박사는 대학생 시절, 김해 김씨 시조 수로왕릉을 찾았다가 수로왕비 허황후릉에서 파사석탑婆娑石塔이야기를 듣고 수로왕비는 과연 인도여자인가 궁금해 하면서 본인 얼굴이 까맣다는 것과 연결시켜 ‘임금님 국제결혼’을 캐기 시작합니다. 그러기를 40년. 평생을 그 뿌리 ‘쌍어’ 사상에 얽힌 퍼즐을 목숨 걸고 발로 뛰면서 찾아 맞춰왔습니다.
결국 그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아유타국이 어디인지, 끊임없는 역사로 대탐험을 펼쳐 끈질기게 추적, 인도 옛 지도를 살펴 아유타국이 인도 남동쪽 아요디아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아요디아국이 1세기에 북방 월지족月氏族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층은 쫓겨나 중국 서남 고원지대를 거쳐 사천지방인 촉蜀나라에 정착한 것으로 봤습니다. 더구나 허황후 능비에 ‘보주태후普州太后 허씨릉’이라 쓰인 데서 허황후가 보주普州란 곳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그 행적을 따라가, 보주가 사천성 안악현安岳縣임을 알아냈습니다. 그곳에서 서기 48년 전해에 반란을 일으켜 다시 강제 이주를 당했는데, 그 반란을 주모한 이들 가성家姓이 허씨라는 것도 후대 기록에서 확인합니다.
이렇게 역사궤적을 확인하는 연구결과를 보고받은 한국유전체학회는 허황후 후손으로 추정되는 왕족 유골에서 북방계가 아닌 인도 남방계 DNA를 추출해 냅니다.
까무잡잡한 인도 소녀 허황옥. 오빠와 더불어 장강長江을 타고 삼협三峽을 거쳐 황해로 나와 김해 앞바다에 이른 보트 피플이었습니다. 이들이 옮겨 다닌 지역을 꿰는 문화 공통분모로 김박사는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쌍어雙魚신앙에서 찾았습니다.
이 책을 권해드리는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40여 년 짧지 않은 세월을 뿌리 찾아 전세계를 돌며 퍼즐을 맞춰낸 김병모박사처럼 ‘어서 부지런히 정진해서 정견正見(바르고 능숙한 이해)을 얻어야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퍼뜩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에 들어왔다고 알려졌지만, 그보다 3백여 년이나 앞선 48년. 또 다른 길.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과 결혼한 허황후를 통해서도 들어왔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허황후 오라버니 장유화상長遊和尙이 은하사銀河寺라는 절을 세웠습니다. 그 은하사에는 쌍어 두 쌍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심장을 보호하는 물고기 한쌍, 쌍어. 생명나무를 보호하는 물고기 한쌍 쌍어. 아직까지 우리나라 절에서는 김해 은하사를 비롯한 울산 개운사, 양산 통도사, 양산 개원사에서만 발견되어 주로 가야 고지에 퍼져있습니다.
언어학자 강길운 교수는 ‘가야말과 드라비다말 비교’라는 논문에서 가락Karak은 구舊드라비아말로 물고기를 뜻하고, 가야Kaya는 신新드라비아말로 물고기라고 밝혔답니다. ‘가야’나 ‘가락국’은 물고기나라라는 말이죠. 생명나무를 보호하는 두 마리 물고기 쌍어. 부처님 심장을 보호하는 두 마리 물고기. 부처님을 외호하는 나라 가야국, 물고기나라.
왜 물고기가 생명나무, 부처님을 지키는 것일까요? 불교에는 풍경, 목어, 목탁이 다 물고기입니다. 물고기에 담긴 뜻이 단지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눈을 부릅뜨고 정진하라는 뜻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식물. 나무는 우리 사람들 어머니, 뿌리입니다. 식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올 수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식물이 우리 목숨 근원인 것처럼 물 또한 우리 목숨 뿌리라는 이야기도 담겨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보고, 우리가 본디 해양, 물에서 왔으니 그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을까? 혼자 상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해답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답을 찾는 것은 아마도 우리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 박사는 마치는 글에서 이런 말을 올렸습니다.
쌍어신을 믿고 살았던 사람들은 지중해로부터 한반도까지 넓은 지역에 살았다. 대강 기원전 7세기부터 쌍어를 신앙 상징으로 형상화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스키타이, 간다라, 마가다, 운남, 서첨, 가락국, 야마다이 등지에 걸치는 광범한 내륙지방을 오가면서 교역했다.
쌍어는 사원 대문에서 군왕이나 신을 지켰고, 신령스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막이나, 때로는 물속에서 버텨 서 있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달리는 말 이마나 안장에도 쌍어는 수호신으로 매달려 있었고, 굴러다니는 자동차나 인력거에도 수호신으로 장식되었다. 중국에서는 여행자들 숙소나 식당, 돈을 지키는 존재로 대접받았다.
한국에서는 왕릉 대문과 부처님을 모시는 수미단에 장식되었고, 왜국에서는 여왕 옷을 장식하는 무늬로, 후세에는 재물신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한국 민속에도 오래 남아서 가게나 식당입구 안쪽에 매달린 북어 두 마리로 끈질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국적과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과 풍속이 다른 지구상 여러 민족들이 공통으로 믿고 있던 쌍어신앙은 경전이 남아 있지 않아서 민속신앙으로 취급되어왔다. 경전이 없기 때문에 학문으로 연구하기 힘들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오병이어五餠二魚로 남아있고, 네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 심장을 보호하는 물고기로 종교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로마 박해 시절 예수 그리스도교도들 사이 암호인 IXƟYƩ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는 내 주님’이라는 말의 약자다. 그 낱말들 머릿글자를 조합한 말이 물고기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기간 중에 습득한 쌍어신앙이 전승과정에서 지역화된 암호다. (356~357)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 200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