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소개로 아폴리네르와 熱愛
프랑스 女 화가 마리 로랑생
예술의 전당서 작품전 열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이 가고 나는 남는다.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명시 '미라보 다리'는 실연의 아픔과 상실을 드러내는 시다. 시의 주인공은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1883-1956)이다. 로랑생은 '미라보 다리'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원래는 피블로 피카소, 앙리 루소 등의 야수파와 큐비즘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함께 파리 화단을 누빈 이른바 '몽마르트 뮤즈'였다.
프랑스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예술의 전당의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다. 70여 점의 유화와 석판화, 수채화와 일러스트 등 1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대부분 일본 도쿄에 있다. 한 일본인이 평생에 걸쳐서 그녀의 작품을 수집한 결과이다.1983년에 일본 나가노 현 다테시나에서 처음 문을 연 마리 로랑생 미술관은 올래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으며 도쿄 치요다구에서 재 개관했다.
연분홍과 파랑,청록과 회색이 어우러지니 로랑새의 화폭은 말 그대로 색채의 향연이다. 그는 파리의 여성을 주로 그렸는데 피부색이 흰색에 가까운 회색으로 독특하다. 창백한 얼굴에 입술과 볼에서만 붉은 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윤곽선을 그래는 대신에 오직 색의 명암의 차이만으로 구분해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했다.
로랑생은 피카소의 소개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를 만나 사랑에 푹 빠진다. 하지만 1년 뒤인 1911에 아폴리네르가 루불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연루되어 두 사람은 이별했다. 로랑생은 독일 남작과 결혼한다. 이 무렵에 큐비즘 형태를 띠었던 로랑생의 딱딱한 그림이 조금씩 자유로워지며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구축한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망명과 이론이라는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로랑생의 작품은 노랑과 빨강의 원색의 강렬한 색채로 물들기 시작한다. 침울해 보였던 그림 속의 여인들도 자신감이 넘치는 표저을 띠게 된다.
로랑생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 엘리스'와 알렉산드로 뒤마의 '춘희' 등에 일러스트를 그렸다. 코코 사넬, 피카소를 비롯한 명사들의 초상화도 그렸다. 요시자와 히로히사 마리 로랑생 미술관 관장은 '여성이 화가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대에 특유의 감성과 황홀한 색채로 인정받은 작가'라고 평했다.
예수의 전당 한가람 미술간엔서 1918년 3월 11일까지 전시회가 열린다.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정의) -- 페인팅(회화)이나 드로잉, 콜라주 각종 이미지의 형상들을 장식을 위해서 또는 글과 다리
역할을 위해서 쓰인다.
*삽화, 도해, 신문이나 잡지 광고의문낭이나 내용을 보충하거나 강조하기 위해서 참가되는 그림, 대중의 이해를 위해 텍스트와 함께 출판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림, 또는 어떤 특정한 용도를 위해 주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그림을 말한다.
(월간미술사 발행 세계미술용어 사전에서)
* 모나리자 도난 사건
모나리자 그림은 200년 동안이나 퐁텐블로에 보관되어 있다가 1700년 대 후반에 베르사이유로 옮겨져서 걸려 있었다. 다시 1804년에는 나폴레옹의 침실에 걸렸다. 다시 파리의 루불 박물관으로 옮겼다. 이때 까지만 해도 그냥 유명한 구람이었지만, 지금처럼 세계가 들썩거릴만한 그림은 아니었다.
모나리자가 공식적으로 위대한 작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도난당한 덕택이라고 한다. 1911년에 반첸초 페루자라는 자가 이그림을 훔쳐 갔으나 2년 뒤에 체포되었다. 이후로는 다른 곳에 전시를 금지했다. 이로서 모나라자의 그림 가치는 급상승했다. 1963년에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 1974년에 도코와 러시아 전시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