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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베드로전서 4:7-11
여러분이 잘 아시는 '존 하워드 페인'의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이라는 노래입니다. 참으로 좋은 노래입니다. 세계인이 애창하는 노래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곡을 지은 '존 하워드 페인'이라는 사람은 한번도 가정을 가져 본 일이 없는 방랑자였습니다. 그는 고향과 조국을 떠나 돈 한푼 없이 프랑스 파리의 어느 낯선 거리를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거닐다가 "나에게도 가정이 있다면 …"이라고 울먹이면서 지은 노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결국 그는 알제리에서 가정을 그리워하면서 쓸쓸하게 인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클린턴 가드너라고 하는 사회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가정이 있으면 아직 다 잃은 것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우리들의 삶의 기반이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가정에 성공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고 출세하는 것도 좋습니다.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서 진급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은 가족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내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가정은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곳이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결혼하신 분들은 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성장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살다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을 비유하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 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고 산다고 합니다.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합니다. 이 말대로 한다면 지금 우리 부부는 40대니까 서로가 체념하고 산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신이 나서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행복한 가정은 서로의 노력이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원도 가꾸지 않으면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도 3개월만 가꾸지 않아 보십시오.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갖다버린 쓰레기들로 더럽혀지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가꾸지 않으면 시기와 미움과 증오의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만 했다고 해서 행복한 가정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의 노력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서 불행을 꿈꾸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요,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습니다. 왜 그럴까?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서로가 절망하고 낙심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면서 상대방이 변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이 나를 먼저 사랑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행복해 질 수가 없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시오. 그러나 결혼 후에는 한 눈을 감으시오."
그렇다면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두 분이 결혼을 해서 오늘까지 한 눈을 감고 살아오셨습니까? 솔직히 우리는 이것을 거꾸로 적용하여 살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한 눈을 감고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저는 우리 모두가 윙크의 의미를 마음 깊이 되새기며 살았으며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윙크의 의미는 나는 당신의 장점에만 눈을 뜨고 단점에는 한 눈을 감고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부부가 서로를 쳐다보면서 이 말의 뜻을 받아들여 살겠다는 다짐으로 윙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부간에 더 사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 남편, 내 아내를 배나 사랑할 자로 알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숯불도 재를 털어야 빛이 납니다. 부부 사이에 허물을 털어 버리면 사랑이 빛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양면이 존재합니다. 장점이 있는가 하면 단점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점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부족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를 돕는 배필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서로에게 좋은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결코 완성된 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서투른 행동을 볼 때마다 이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은 작업 중이십니다. 내 가정을 향한, 우리 부부를 향한 하나님의 작업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다리십시오. 사랑의 가장 놀라운 정의는 "오래 참고"입니다. 참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의 허물을 덮어버리고 사랑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얼굴은 남편의 책임입니다. 아내의 얼굴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되도록 남편 되시는 여러분, 책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인정받는 아내는 어디를 가든지 당당합니다. 내 아내를 당당한 여자로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남편 되시는 분들은 심순덕 씨가이 지은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를 들으면서 아내의 입장을 한번 깊이 헤아려 보았으면 합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쳐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엄마의 사랑, 아내의 희생 …. 그러나 당연하게 받아들인 아내의 인생 그 뒤안길에 한 여인이 느끼는 슬픔과 눈물, 한숨과 탄식을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한 부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의 마음을, 한 여인의 마음을 모른다면 우리는 부부요,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 대화가 없고 서로의 아픈 마음을 알아 줄 수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도 없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가정의 영향은 한 가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가정은 그 시대 사회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영향을 줍니다.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마틴 캐리커크'라는 주정뱅이 떠돌이의 자손에 대해서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캐리커크의 마누라도 비슷한 여자였습니다. 이 조사가 진행된 것은 1920년 무렵이었습니다. 그리고 캐리커크가 살고 있었던 것은 1770년 무렵이었습니다. 150년 동안 마틴 캐리커크의 자손은 모두 480명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중 143명이 정신 박약아, 36명이 사생아, 24명이 알콜중독자, 3명이 간질병 환자, 82명이 어려서 죽고, 3명이 살인죄로 처형당했습니다. 마틴 캐리커크가 막아내기 어려운 해독의 흐름을 이 세상에 쏟아 놓은 사내라는 것은 이 숫자에 의해 분명해졌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자손손에 대해 유산을 남기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 유산은 "아들에게서 손자에게로 이어지는 오점을 남길 수 있는가 하면, 후대에 이르기까지 좋은 자극이 되는 아름다운 점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앞설 수는 없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정서가 안정됩니다. 그 자녀들은 사랑을 먹고 자라나기 때문에 잘못되지 않습니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으로 집무하던 시절에 백악관 직원들에게 거듭해서 이렇게 강조했다고 합니다. "백악관 직원은 가정생활에 충실해야 자격이 있습니다. 안정되고 건강한 가정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에게도 필요한 사람이며 나라 일도 맡길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도 필요한 사람이요, 우리 영신교회에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교회에 항존 직분자를 세울 때에 저는 부부 추천서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래서 내 남편은 영신교회 항존 직분자로 자격이 있습니다. 이래서 내 아내는 영신교회 권사로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남편과 아내의 추천서를 받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이 불안하면 모든 것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에서 요구하고 있는 직분자의 자격이기도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5절에 보면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했습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사람만이 교회 봉사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작년 9월 동아일보 게시판에 어느 무명의 아버지가 올렸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읽어드리면서 아내되시는 분들이 내 남편을 좀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 때 ―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 때 ―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 때 ―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때 ―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 때 ― 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 때 ―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 때 ―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때 ―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前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때 ―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 때 ― 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助言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지금은 작고했습니다만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던 날 어떤 기자가 물었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장 긴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때 테레사 수녀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기자 선생께서 빨리 집에 돌아가셔서 가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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