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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소설가협회에서 발간한 "소설로 읽는 하동" <하동과 전설, 그리고 소설>에 수록된 소설가 박영희 회원의 단편소설 "삼사순례 가는 길"을 올립니다.
단편소설 삼사순례 가는 길 박영희
윤달이 들어있는 사월이었다. 뜻하지 않게 사찰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니 때문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어머니와 오붓하게 떠난 여행은 거의 없었다. 내 쪽에서든 어머니 쪽에서든 어디를 가자고 먼저 살갑게 말을 꺼내는 성격도 서로 못되었다. 그냥 무덤덤한 모녀사이로 지내온 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으니 좀 얼떨떨했다. 이 난데없는 제안이 내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이유를 대며 거절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상스레 거절을 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결정을 하고도 왜? 하는 의문에 며칠 동안 시달렸다. 먼저 챙겨드리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초봄부터 어디라도 떠나버리고 싶다고 복닥거리는 이 마음이 그렇게 응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더는 심란해지는 게 싫어서 마음이 그렇게 했다고 믿어버리기로 하고 여행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쌍계사로 가는 길은 섬진강을 따라가는 강의 길이다. 쌍계사라는 말만 들어도 섬진강이 떠올라 집에서부터 물소리는 내내 귓가에서 맴돌아 강물이 휘돌아가며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지 않나 싶었다. 화개장터를 지나고 넓은 계곡과 산비탈의 녹차밭을 보며 달리자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하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지리산에 안긴 계곡의 물소리가 차창을 뚫고 들어올 듯이 기운차게 들려 그 유명한 십리벚꽃이 진 뒤의 아쉬움을 덮고도 남았다. 늘 한번 가 봐야지 하면서도 못 가본 하동 십리벚꽃 길을 아주 천천히 걷는 기분으로 드라이브했다. 꽃이 없어도 초록 잎으로도 그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쌍계사 임시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우고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란을 뒤져보았다. 도착시간은 그런대로 맞춘 것 같은데 어머니가 먼저 도착했다고 하니 관광차만 찾으면 될 일이었다. 어머니가 불러주신 차번호 정도는 자연스레 암기될 것인데도 미심쩍어 다시 한번 정확하게 확인해본다. 주차장을 넓히는 공사를 하는 중인지 슬핏 부는 가는 바람에도 미숫가루보다 더 보드라운 흙가루가 날린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는 남쪽 고향에서 온 관광버스를 찾아 아래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느닷없이 어머니가 쌍계사주차장으로 이렇게 부른 것은 5일 전이었다. 그러니깐 월요일 아침 아파트 상가에 있는 네일아트점의 문을 열고 숄더백을 카운터 책상서랍에 넣고 커피포트에 물을 붓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포트 뚜껑을 닫고 걸어오기까지 정확히 여섯 번의 울림 끝에서야 받을 수 있었다. “내다.” 흉벽을 치는 북소리 같은 한마디에 의식은 빠르게 M시의 부림시장 한복집으로 가 있었다. 휴대전화도 아니고 가게전화로 연락을 취한 것은 어머니 나름대로의 예의였다. 아무 곳에서나 울리는 휴대폰으론 거의 연락을 하시지 않는 편이었다. 집 아니면 일터였다. 시간상으로 어머니도 재래시장 한복집의 문을 연 뒤인 것 같았다. “저도 지금 막 가게 문 열었어요.” “요즘 우찌 사노?” 짧은 안부의 말을 묻기까지 많이 기다리고 주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안에 여러 가지 궁금증들이 들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입장에선 딸아이 데리고 혼자 사는 딸이 늘 목의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렇게 다짜고짜 손녀의 안부도 묻지 않고 사는 꼴을 묻는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엄마는 어떻게 지내세요?” 겉으론 봄날 같았지만 속으로는 여름 한 철 변덕스런 날씨 같은 나날들을 일일이 말할 수도 없지만 어머니가 원하는 답도 또한 아니었기에 대답대신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어물쩡 넘어갔다. 휴우, 전화기 저편에서 내뱉는 한숨이 내게로 건너오기까지는 아득한 낭떠러지 끝에 있는 기분이다. 이럴 때마다 어머니를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에서 밀어내진다. “다가오는 금요일 날 삼사순례 간다. 예린이는 학교 가니 괜찮을기고. 가게 문은 닫고 오든지 아니면 일하는 아가씨에게 좀 맡겨놓고 오너라. 탯줄 목에 두르고 나온 니가 부처님 앞에 우짜든지 참회해야 업이 소멸될 것이니 사는 곳에서 멀어도 우짤끼고? 얼굴도 좀 볼 겸해서…….” “삼사순례요?” 처음 듣는 단어였다. 성지순례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삼사순례는 생소했다. 그래서 되물어 본 것이다. “윤달이 끼인 해는 불가에서든 민간의 보살들 사이에서든 세 곳의 절을 밟는 것이 전통이다. 이 어미처럼 복 없이 살지 말고 니는 복을 많이 지어야 앞으로 잘 살 것 아니냐. 그러니 꼭 가도록 해라.” 모전여전이라고, 어머니는 복 없는 자신의 업이 뻗쳐 딸이 이렇게 산다고 한탄했다. 모든 게 어머니의 정성이 모자라기 때문에 생긴 업이라고 자신을 볶아대었다. 아니라고, 나는 나의 생을 스스로 선택해서 사는 것이라고 해도 어머니의 고집은 막무가내다. 어머니와의 만남이 머뭇거려지는 것은 늘 이런 말씨름들이 지치게 만들기에 고향집으로 가는 마음을 도로 접어버리곤 했다. 어머니가 독한 말을 내뱉는다든지 귀찮게 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고집 센 어머니의 얼굴이 수화기 너머에서도 그려진다. “어느 곳에 있는 절에 가신다는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바빠서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처음으로 어머니가 내게 어디를 가자고 물어온 것이다. 어머니 뜻대로 조금 수그러들고 싶어졌다. 그냥 그렇게 한 번 응해 드리면 그게 곧 어머니맘 편하게 해드리는 일이지 싶어진 것이다. “원래는 세 개 도를 돌아야 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순천 송광사를 돌아서 지리산에 있는 절 두 군데를 가기로 했다. 다들 늙은이들이라 걷는 게 힘들고 하니 하동 쪽으로 가는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정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유순해진다. “그러면 아침 일찍 나서야겠네요.” “송광사까지 다녀오면 쌍계사는 아마도 점심시간이지 싶다. 너는 예린이 학교 보내고 출발하면 안 되겠나. 그때 와서 우리하고 같이 점심이나 먹고 쉬엄쉬엄 하면서 쌍계사하고 화엄사 다녀와서 가까운 칠불암이나 연곡사에나 들리면 삼사순례가 안 되겠나 말이다.” “어머니 시장 친구 분들도 오시겠네요.” “늙은이들이 절에나 다니지. 어데 갈 곳이 있나.” “알겠어요. 그날 뵐게요.” “시간 늦지 않도록 미리 와 있어라.” “가서 전화 드릴게요.” “더러운 것 먹지 말고 보지도 말고 마음을 경건히 하고 오너라.” 어머니의 통화는 간단했고 할 말 다했다는 듯이 딸깍, 끊겼다. 위태위태하게 이어져 있는 끈이 탁,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다. 언제부터인지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나면 지독하게 목이 말랐다. 정수기 앞에 서서 물컵 가득 냉수를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 초록으로 물든 지리산이라니. 그것도 봄날에 말이다. 이렇게 평일에 와서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움츠렸던 마음이 갓 솎아낸 풋 상추같이 푸들푸들하게 되살아난다. 오늘은 오로지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런저런 일상의 일들은 잠시 미뤄두자고 마음먹었다. 쌍계사 절 밑에 새롭게 조성하고 있는 간이주차장에 몇 대의 자가용과 관광버스들이 보인다. 한미관광 버스라고 했지 싶어 가까이 걸어가니 주차장 나무그늘 아래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야야! 은주야! 여기다.” 어머니가 손녀딸 이름도 아닌 내 이름을 저렇게 크게 부르다니 새삼스럽다. 어머니는 짙은 회색 물먹은 몸빼 바지 위에 같은 색의 저고릿감으로 윗옷을 풀 먹여 다려 입고 염주를 손목에 감고 있다. 늘 고운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만 보다가 짙은 회색 물빛 옷을 입고 있는 어머니가 영락없이 신심 깊은 보살님 모습이었다. “꼴이 와 이렇노. 얼굴에 분이라도 좀 바르고 다니지.” 보자말자 타박은 주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온 딸 손목을 덥석 잡고서는 버스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게 어머니식 반가움의 표현이다. 버스 안은 중앙을 통로로 양 옆으로 두 사람씩 앉는 자리가 있는 고속버스와 같은 구조지만 맨 뒷좌석에 있는 좌석을 떼어내고 앞좌석 위치와 똑같이 돋움하여 만든 곳인데 그곳에 다리를 뻗고 눕기도 하고 노는 공간인 것을 자리 위에 반쯤 접은 요위에 슬쩍 보이는 화투패를 보고 짐작을 했다. “아무도 없네요. 다들 절에 올라가셨나 보죠. 우리도 올라가죠?” “뭣이 그리 급하노. 여기 앉아 입이라고 축이고 올라가도 된다.” 어머니는 들고 다니시는 둥근 가방에서 음료수를 꺼내 직접 스트로를 꽂아 건네준다. 비닐봉지에 담긴 작은 영양떡도 먹으라고 내민다. 아침 공양 하라고 주신 걸 이렇게 넣어 두셨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딸의 얼굴을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하며 숨은 그림을 찾듯이 찬찬히 들여다본다. 말씀은 안 하셔도 이렇게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을 어머니는 그리웠나 보다. 굳이 관광차 안에까지 데려올 이유는 그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 이유를 알면서도 애써 태연한척 버스 바깥 풍경에 눈길을 주었다가 바라본 어머니의 얼굴은 그동안 많이 축나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어도 어머니, 어디 편찮으셨어요? 라고 다정스럽게 묻지 못한다. “뭐 묻었어요? 아버지 닮은 얼굴이라 바라보면 열불 난다더니…….” “별 소리를 다한다. 그래! 얼굴 봤으니 됐다. 올라가자.” 둥근 쥐색 복주머니를 챙겨들고 끄응, 힘들게 일어선다. “무릎은 치료 꾸준히 받으시기나 해요?” “괜찮더니 요즘 들어 좀 애 먹인다.” 일 년 만에 만난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 표현이다. 한낮의 햇볕 속을 걸어 올라가며 어머니 곁에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는다. 성큼, 곁으로 다가가 팔짱을 답삭끼지 못하는 것은 나의 밋밋한 성격 탓이다. 그런 성격을 두고 어머니는 늘 못마땅해 하셨다. 여자가 좀 살가운 데가 있어야지. 꼭 주워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뭣이고? 야시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산다는 말 못 들어봤나, 제발 좀 살랑거리면서 살아라. 어머니는 결혼생활이 위태해 보일 때마다 내 성격을 탓하셨다. 그러면 상냥한 성격으로 낳아 주시지 그랬어요? 대꾸라도 하면 그놈의 종자들 별수 있나? 하는 어머니의 타박은 몇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싸잡아 탓하신다. 그러면 끝이었다. 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길에 들어서니 저 멀리 일주문이 보인다. 쌍계사는 절 앞으로 힘차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뒤로는 지리산 줄기의 푸른 소나무가 시퍼렇게 감싸고 있어 올 때마다 청년의 단단한 기상이 느껴지곤 했다. 늘 그랬다. 섬진강의 구부러진 강줄기를 따라 화개에 접어들면 처져 있던 마음이 희한하게도 조금씩 생기를 찾곤 했다. 벚꽃이 핀 계절에 찾지 않아도, 지리산의 단풍이 지쳐 잎사귀 하나 없는 계절이어도, 언제 어느 때 와도 늘 위안이 되었다. 더듬어 보면 대학시절 아쉽게 끝난 첫사랑의 아픔 뒤에도, 임용에 떨어져 찾아온 여행에서도, 이혼 후 아이와 찾아왔을 때도 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어 돌아가곤 했다. 어쩌면 지금도 등 두드려주는 위안이 필요해서 이 여행을 거절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옛 일을 더듬으며 다시 그 자리를 찾는 것은 현실의 자리를 선명하게 자각하게 해준다. 금강문을 향해 계단을 올라오니 천왕문이 보였다. 쌍계사는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만 부처님을 만나 뵐 수 있다더니 정말 그 문을 통과하니 탑이 나오고 팔영루를 거쳐 대웅전이 보인다. 저 많은 문을 통과해야 부처님을 뵐 수 있듯이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진 얼마나 많은 문을 통과해야만 삶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싶어져 지나온 문들을 뒤돌아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아이고, 형님! 인자 올라오능교. 이게 누고? 우리 은주 아이가? 참말로 오랜만이다.” 팔영루를 지나 대웅전 앞뜰에 올라서자 누각 마루에 앉아있던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환하게 반겨주는 사람은 분명 하동댁 아주머니다. 여전히 넉넉한 마음으로 성격도 시원하시고 나이가 드셔도 얼굴 단장도 고우시게도 하신 것이 예전 그대로다. 어머니 가게 옆 자리에서 양품점을 하시며 어머니와 늘 붙어 다니는 친자매 같은 분이시기에 친이모님을 본 듯 반가웠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고우시네요.” “어데? 많이 늙었지 뭐.” 미간을 모아 눈을 찡그리듯 웃으며 몸을 흔드는 애교스런 몸짓도 여전하시다. “절에서 여편네가 왜 이렇게 큰소리로 시끄럽게 구노.” 마루 끝을 내어주는 아주머니를 향해 어머니가 타박을 주어도 아주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아따 참, 형님도. 절에 오면 벙어리처럼 있어야 된다고 부처님이 그랬는교? 맨날 조용히 법당에 앉아계시는 부처님도 심심할낀데, 이렇게 이쁜 사람들이 와서 살아가는 이야기 재미나게 하면 부처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맞제? 은주야.”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는 아주머니 따라 나도 웃는다. 예전부터 그랬다. 아주머니를 보면 잃었던 미소가 절로 나오곤 했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분이었다. 실없는 농담이 불편하셨는지 어머니는 쉬시지도 않고 나를 앞장세워 법당부터 들른다. “절 많이 해라. 업장소멸해달라고 마음으로 빌어라.” 산문에 들어서고 법당에 무릎을 꿇으면 어찌 그리도 서글퍼지는지 묻어두었던 슬픔들이 태풍처럼 밀려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질까봐 삼배를 겨우 마치고 법당 문을 곧바로 나선다. 어머니는 시원찮은 무릎을 가지고도 신심으로 절을 하신다. 도대체 무얼더 바라는 게 있어 저렇게 엎드려 애절하게 기도를 드리실까? 법당 밖에 벗어놓은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쌍계사 경내를 가만히 걸어본다. 탑들과 누각들과 법당들이 예전 그대로다. 지나온 세월의 문과 앞으로 거쳐 가야 할 문들이 아득하게 그려지는데 이곳은 세월의 흔적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이곳에 풀어놓았던 중생들의 세월을 가만히 끌어안고 다독이고 있는 듯싶었다. 저 탑전 앞에서도 산신각 앞에서도 내가 서 있었지 싶어 오래 전 찍은 사진을 보는 듯 선명해진다.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의 결이 봄날인데도 선선하다. 스쳐가는 바람결에 생각들이 하나씩 둘씩 차례대로 떠오른다. 이러지 말자고, 생각의 그물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자고, 생각을 떨치듯 일어선다. 문득 손에 두르는 작은 염주를 하나 사고 싶어 올라올 때 본 용품점으로 가기 위해 대웅전 계단을 내려서자 뜻밖에 큰 비석이 우뚝하니 서 있다. 처음 보는 것은 아닐 것인데 무심하게 지나쳐 간 고운 최치원선생이 썼다는 비석이었다. 오늘은 이 비문이 내 마음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래서 그 인연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공탑비를 천천히 몇 바퀴 돌아본다. 어머니도 이제야 대웅전에서 기도를 끝내셨는지 대웅전 앞뜰에 내려와 계신다. 계단을 내려오실때 조금 기우뚱거리는 모습이 왼쪽 다리가 불편하신 게 역력하다. 계단을 올라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들고 있는 생수병을 가방에 넣고 어머니 팔을 잡아 드리려 하자 어머니는 괜찮다고 기어이 손을 내저어신다. “다리도 아프시면서 삼배만 하시지. 무슨 절을 그렇게 많이 해요?” “내 좀 불편하다고 부처님 앞에서 까딱 인사 몇 번 하고 시줏돈 놓고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내 아픈 것까지 잊어버려야 그게 진짜 기도다.” 어머니의 말씀에 달리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 얕은 정성을 탓하는 말씀이기도 했다. 아직은 마음이 부족해서 기도에 정신을 쏟지 못하는 초보 신도인 것이다. 온 마음으로 법당에서 절을 하고 계시는 어머님들의 신심에 관광객처럼 휘익, 둘러보고 떠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절로 고개 숙여진다. * 어머니를 모시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식사를 위해 마땅한 자리를 찾다가 차박물관 앞뜰 그늘진 곳에다가 자리를 편다. 출발하며 늦게 먹은 아침식사 탓인지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그곳으로 향했다. 식사를 하고 절에 오르지 않고 마음과 몸을 비우고 부처님을 뵙고난 뒤였다. 기사님과 젊은 보살님들이 일행들에게 돗자리를 펴고 수저를 나눠주고 하얀 쌀밥에 구수한 된장국과 물김치와 산나물 몇 가지, 풋고추와 배추김치가 전부인 깔끔한 식단이 차려졌다. 거절하기도 어색해서 어머니 옆에 앉는다. 어머니는 갈증이 나시는지 물부터 한 잔 청해 달게 마신다. “절에 오면 모두 다 이렇게 먹는다. 시장하제. 어서 먹자.” 어머니는 자꾸 반찬그릇을 내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형님! 한 잔 하이소.” 하동댁 아주머니가 어디서 구했는지 종이컵을 불쑥 어머니 앞으로 내민다. “동생은 낮부터 무슨 술이고? 아직 부처님 뵐 곳이 남았는데.” “아따, 형님도 한 잔만 하면 될거로. 어시기 머라 캐샀는다. 부처님도 다 이해하실 겁니다. 중생들이 이렇게 먹고 산다고 힘든데 일년에 한 번 정도 소풍처럼 와서 부처님 뵙는 핑계로 술 한 잔 한다꼬 부처님이 뭐라 안 그래요. 오늘은 세상만사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놀다 가서 다시 열심히 살아라, 하시며 이해해 주실 겁니더. 형님은 됐다하니 은주야! 니가 내 잔 받아라.”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무슨 정신을 이렇게 쓰느냐 말이다.” 어머니의 계속된 나무람에 아주머니가 무안해질 것 같아 잔을 받는다. “나는 딱 쌍계사만 오면 옛날 우리 정하 아버지하고 연애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기라.” “아저씨하고 여기에도 오셨어요.” “하모. 내 친정이 하동 아이가. 시댁은 구례고. 우리 정하 아버지 그때 진짜 인물 좋았다. 나도 괜찮은 인물이었지만. 딱 이맘때였다. 친구들하고 우루루, 봄나들이 왔다가 우리 신랑하고 내가 눈이 맞았다 아이가. 이 나이에도 나는 연애결혼 했거든. 그 덕분에 우리 아버지한테 지게작대기로 죽도록 맞았지만 우짤끼고. 딸년이 좋아 죽겠다는데.” “그러셨어요.” “내사 쌍계사에 오면 십리벚꽃 길도 좋고 물도 좋고 산도 좋고 사람도 좋고 그렇다. 죽은 우리 정하 아버지도 보고 싶고. 그래서 내 한 잔 한다 아니가. 사랑하는 우리 형님! 너무 꾸중하지 마이소.” 어머니를 향해 몸을 슬쩍 비트는 하동댁 아주머니가 귀엽게 느껴진다. 어머니도 웃으며 술보다 밥을 먼저 먹으라고 권하는 모습 이 이해한다는 뜻이다. “은주야! 니도 인자 저무는 하현달이다. 처녀 적에는 그리도 야들하고 곱더만. 얼굴에 주름 생기는 것 보니 세월은 못 속이는 갑다. 너거 엄마는 니만 잘 살면 걱정이 없다 하는데 어떻게 다시 결혼할 생각은 없나?” 입에 문 풋고추를 와삭 깨물었더니 매운 내가 혓바닥을 때린다. 매운 땡초였나보다. 더듬어보면 땡초보다 매운 결혼생활이었다. 남편은 뒷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끈질긴 청혼을 받아들인 것은 두둑한 배짱과 앞뒤 가리지 않고 저질러버리는 용기였다. 모든 것이 그의 식대로 된다면 완벽하게 성공한 인생이었다. 수입에 의존하는 기계부품을 국산으로 개발한다는 명분은 좋았지만 그의 부품은 독일제와 일제에 밀려 어느 곳에서도 물량을 쉽사리 주문하지 않았다. 기계구입비와 공장임대료, 직원들의 밀린 급료를 아파트를 처분하고도 모자라 어머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서 시장에 있는 점포를 팔아서 겨우 메웠다. 그도 어쩔 수 없었는지 더 이상 당신에게 폐가 없도록 하겠다고 이혼을 요구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가 하자는 대로 했다. 마지막 남은 패물까지 팔아 그에게 주고 나니 아무것도 내 손에 없었다. 무일푼이어도 아이만 내 곁에 있으면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가는 놈 잡지 말고 오는 놈 막지 말라, 하는 말도 있는데 고마 다 잊어버리고 니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나 살도록 해라. 세월은 금방 간다. 총알보다 더 빠르다. 내 봐라 아들 키운다고 정신없이 살았더마 이제 저거 앞가림 다 하고 나니깐. 난 이 꼴로 늙어부따 아이가? 돈 많은 영감이나 있으면 팔자를 확, 바꿀 낀데 내 좋다하는 영감도 없고 말이다. 아까운 세월 보내지 말고 좋은 사람 있나 하면서 좀 알아보고 해라. 내가 중매설까?” “하동 동생은 술 취했나? 별소리를 다한다.” “참말로 형님은! 내가 뭐 마음에 없는 소리 했는교. 우리 은주 짝 만나 사는 꼴을 보고 죽어야지 한 사람이 누굽니꺼? 형님 아입니꺼.” “그만하면 됐네. 은주도 다 알아들을 것이네.” 어머니의 꾸지람 때문인지 하동댁 아주머니는 그만 입을 다물고 들고 있던 술잔만 만지작거린다. 식사를 끝내고 버스로 돌아오니 기사님이 염불을 틀고 있었다. 기사님에게 다음 행선지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두시 반에 화엄사로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버스를 타고 같이 이동을 할까 싶었는데 혹시 바로 성삼재를 넘어 가는 길을 택하실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승용차를 가지고 따로 가야 했다. 내 계획은 화엄사에 들러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난 뒤늦지 않다면 다시 쌍계사 쪽으로 나와서 칠불암을 가든지 아니면 피아골 안에 있는 연곡사에 갈 생각이었다. 그러면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삼사순례가 될 것 같았다. 차는 다시 섬진강변을 따라 달린다. 흰 모래벌을 따라 가다 보이는 강 건너편 저 길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한 번 저 쪽 길을 달리면서 강 건너 이 쪽 편을 한 번 보고 싶어졌다. 그러면 어떤 풍경으로 보일 지 느닷없이 궁금해진다. 화엄사 입구에 다다랐는지 관광차는 지리산 깊숙이 우회전하여 들어간다. 화엄사는 처녀 적에 와 본 이후로 처음이다. 넓은 도량이 아슴아슴하게 눈앞에 그려질 뿐 별다른 기억의 장소는 떠오르지 않는다. 옆자리에 앉은 어머니는 친구 분들과 같이 관광차를 타지 않고 굳이 내 차를 타셨다. 그건 어떤 징조이기도 하다. 곧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긴장은 되지만 애써 묻지는 않는다. “은주야! 이제 너도 나이를 생각해봐라. 이래 계속 살 수 있겠나?” “이렇게 사는 게 뭐 어때서요?” “하동 동생 얘기 하나도 버릴 말 아니다. 좋은 사람 생기면 놓치지 말고 우예 인연을 만들어 보거라.” 짐작은 했지만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기는 뜻밖이다. 여태 별말씀 없으시다가 무슨 이유인지 어머니는 마음이 급한 사람처럼 재촉하신다. 혹시 어머니가 그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그럴 리는 없다. 어머니가 아무리 원하셔도 아직은 어머니에게 그의 얘기를 하지 못한다.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 저 이런 사람 있어요.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에요, 라며 보여드리고 싶다. 그 사람을 어머니에게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안 되는 일이다. 예린이 아빠로도 충분했다. 이제는 정말 걱정 끼쳐드리지 않는 게 효도하는 것이다. 아무런 욕심 부리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이다. 이렇게 노년을 잘 보내시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또 다시……. 지금처럼 예린이 크는 것 보면서 네일숍 잘 운영해가며 조용히 살면 되는 것이다. 아랫입술을 더듬어 아프도록 힘껏 깨문다. 마음 단단히 먹자는 결심이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한다는 게 10년이 넘었다. 이제 이쯤하면 짝 맞출 때도 안 되었나 싶어 하는 소리다.” “참! 어머니도. 이러시려고 저 보자고 했어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에요?” “혼자 있는 니 꼴 더 이상 보기 싫어서 그러지. 왜 그러겠노?” 어머니는 갑갑증이 난다면서 창문을 내린다. “남의 집 여식들은 잘도 살더만. 우리 집 딸들은 어째 다들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내가 업이 많아 그렇나 어찌 이렇노 말이다. 이렇게 무릎이 닳도록 부처님께 비는데……. 그 정성을 조금만 생각해서 니 짝이나 만들어주면 내 소원이 없을 것인데.”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이지만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다. 갓 결혼하여 신혼에 교통사고로 어이없게 숨진 형부 때문에 일찌감치 종교에 귀의한 언니와 짧은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아이와 사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으면 때론 스스로 반문하고 싶어진다. 왜 하필 그 사람인지. 꼭 그 사람이어야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해도 생각만으로 끝나곤 하는 그 사람이었다. * 지난 봄이었다. 이상스레 날이 풀리고부터 잠이 오지 않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봄이 온지 오래되었고 아파트 화단에 진달래와 목련이 피고 있었다. 보름달이 창문 가까이 왔다 서쪽하늘로 지울 때까지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 이유도 없었다. 최근에 애를 먹이는 숍매니저도 없었고 예린이도 학교 잘 다니고 있었고 꾸준히 회원은 다달이 증가해서 매출도 오르고 있었다. 어디 특별히 아픈데도 없었다. 술기운이라도 빌리고 싶어 목이 긴 포도주 병을 반이나 비워도 정신은 말짱했다. 추리소설집을 읽다가 말다가 반복했고 OCN에서 하는 지나간 영화도 다시 봤다. 밤을 꼬박 새울 태세였다. 굳이 잠을 청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할 일도 없었다. 내일 아침 아이의 식사는 국과 밥도 새 것으로 준비되어 있고 서너 가지 반찬도 냉장고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원한다면 시리얼과 우유도 과일과 토스트를 만들 재료까지 다 구비해 놓았다. 베란다 창가에 다가서서 아파트 화단에 핀 목련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옆 동 출입구에 서 밝은 색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산행을 하기에는 얇은 차림이었다. 남자는 서서히 몸을 풀더니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아파트 마당을 가로질러 상가와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 넓은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을 택해 달려 나갔다. 아마도 새벽 마라톤 동호회 회원인 것 같다. 몇 번 동호회 회원을 모집한다는 플랜카드가 아파트 입구에 걸린 걸 본 적이 있었다. 순간 달리기라니? 새벽공기를 마시며 저렇게 한번 뛰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어졌다. 잠이 오지 않으면 다 늦은 시간인데도 차를 끌고 나가는 밤의 드라이브도 지겨웠고 뒷산이라도 오르는 산행을 하기에는 좀 더 용기가 필요했다. 그냥 운동장에서 걷다가 쉬더라도 나가보고 싶었다. 실내복을 벗어두고 신발장 옆 진열장에 개켜둔 트래이닝복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었다. 휴대폰을 챙겨들다 그냥 두었다. 어스름했지만 운동장 입구에 들어서자 정말 동호회 회원들이 십여 명 정도 모여 몸을 풀고 대열을 지우고 있었다. 그쪽으로 발길이 절로 움직여졌다. 그냥 그쪽을 거쳐 천천히 걷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때 같은 회원으로 착각한 것인지 손 하나가 불쑥 나와 당기듯이 내 팔을 끌어당겼다. 맨 뒷자리에 서 있는 남자였다.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누군가가 호루라기를 불었고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옆 사람의 얼굴의 윤곽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순간 하얀 색 트레이닝복이 옆 동에서 나온 바로 그 남자인 것 같았다. 이건 무슨 억 지도 아니고 싶어져 몇 걸음을 같이 뛰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저기요, 저 회원 아닌데요.” “알아요. 그러면 뭐 어때서요.”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남자의 호흡이 리듬감을 타듯 경쾌하게 들렸다. “혼자 하는 것 보다 같이하면 좋잖아요. 그냥 뛰어요.” 얇아지는 어둠 속에서 남자는 잇몸을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미소 때문인지 거리감이 느껴졌던 남자의 실루엣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래 나쁠 것은 없다. 어차피 뛰려고 나왔지 않는가. 약간의 강제성을 띠는 것도 도움이 되지 싶었다. 하얀 입김을 뱉으며 느닷없이 남의 운동 대열에 끼어들어 뛰는 것이 꿈인지 발걸음이 바닥에 닿을 때에야 현실감이 느껴진다. 두 바퀴 정도 돌았다. 찬 공기가 뺨을 얼얼하게 했지만 서서히 열기가 느껴지면서 호흡이 리듬을 타는 것이 느껴졌다. 다섯 바퀴 정도 돌자 숨이 차서 더 이상 보조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힘들면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요. 그게 편해요.” 남자는 앞만 보고 뛰면서 말했다. “그래야겠네요.” 호흡을 정리하면서 천천히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더 걸었다. 동이 터오는지 사물이 확연해지자 아파트 쪽에서 새벽운동을 하러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벽의 활기가 느껴져 진즉에 이럴걸 싶었다. 이제 운동이 필요할 나이기도 했지만 저녁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가벼운 산책정도였지 혼자 이렇게 뛴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가쁘게 뛰는 심장박동 수만큼 그녀는 흥분되었다. 이제 잠이 오지 않으면 그녀의 심장박동소리를 친구삼아 쿵쾅 쿵쾅, 거리며 뛰면 되는 것이다. 몇 달치 수강료를 끊고도 시간 맞추기와 옆 사람의 눈이 의식되어 그만둔 헬스장과 수영강습하고는 다른 자유로운 점이 좋아 보였다. 미니 야구장 옆을 지나 운동기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허리돌리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흰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그녀와 마주보는 기구에 발을 올리고 허리를 비틀었다. 그녀는 얼떨결에 남자와 눈이 가까이에서 마주보게 되었다. 그녀의 팔을 당겨 뛰게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많이 힘드시진 않으셨죠?” “네.” “운동이 필요하신 분 같네요. 자주 나오세요. 이렇게 한바탕 뛰고나면 몸이 아주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야겠네요. 잠을 설쳤는데 이 새벽에 이렇게 조깅을 하는 분들이 많은 줄 몰랐어요.” “그렇죠. 아까 그 분들은 마라톤 동호회 회원 분들이에요. 곧 다가올 마라톤 대회에 나갈 분들이라 이렇게 매일 모여서 연습을 하는 거예요.” “마라톤 오래 하셨나봐요?” “네……. 한 오 년 정도 되었어요.” “오 년씩이나요?” “뛰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현수 씨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봄날 새벽 어둠 속에서 트랙 바깥이 아닌 안쪽이라고 팔을 당겨 자기 쪽에 세워준 사람이었다. 자신의 심장박동소리를 박자에 맞춰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가 몇 번 더 새벽에 조깅을 하러 나가다가 정식으로 마라톤 동호회 회원으로 가입하던 날 장미꽃을 사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고 아직 미혼이고 직원 둘을 거느리고 작은 컴퓨터 가게를 운영하고 지방에 홀로 된 어머니가 계시고 두 여동생은 일찍 결혼하여 조카를 둘씩이나 두었다고 했다. 장남에 종손인 그만 아직 혼자라 홀로 자식들을 길러낸 어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었다. 작년까지 동생과 같이 지내던 25평 아파트에서 지금은 혼자서 김치찌개를 자주 끓여 먹으며 산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음식 하는 것을 게임보다 더 즐긴다고 했다. 언제 한 번 기가 차게 맛있는 찌개 맛을 보여주겠으니 거절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웃으며 기대할게요, 라고 말한 것 같다. 농담처럼 알아들은 말을 그는 혼자 밥 먹는 게 이제 더 이상 싫어졌다고 밥 같이 먹어주는 친구 해주실래요? 라며 밥을 먹다 말고 어느 날 진지하게 물어왔다. 주저는 되었지만 거절하지도 못했다. 마주보며 앉아 찌개냄비에 숟갈을 넣어 국물을 떠 넘길 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따끈한 느낌을 알기에,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쓸쓸한지 알기에 그러마, 하고 승낙했었다. 그게 지난봄이었고 다시 이렇게 봄을 맞았다. 화엄사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어머니와 같이 일주문 앞으로 걸어갔다. “김 여사님! 여기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올라갑시다.” 일행인 듯 싶은 영감님이 어머니 쪽으로 다가와 캔커피를 불쑥 내밀었다. 어머니는 못 들은 척 지나친다. 불편한 걸음걸이가 빨라지며 빨리 가자는 듯이 내 팔을 잡아 이끈다. 나를 의식하는 몸짓이었다. “어머니, 저 분이 부르시는데요.” “참말로 숭시럽구로. 저 영감이?”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보다 어머니의 당황해 하는 모습이 더 의아했다. 나 역시 순간의 사태에 어리둥절해져서 가까이 다가와서 잔을 내미는 영감님의 손만 바라볼 뿐이다. “김 여사님 따님 되시나 봅니다. 커피 한 잔 드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정 교감님! 저도 커피 한 잔 주이소.” 어머니를 기다리고 계셨던 하동댁 아주머니가 다가와 농담처럼 말을 건네자 선뜻 검은 비닐봉투에서 캔 커피를 하나 더 꺼낸다. “네. 정 여사님도 한 잔 하세요.” “그만 지체하고 올라가자.” “아따! 형님도. 참말로 유난스럽다. 커피 마시고 올라가도 대웅전 부처님 어데 안 가고 계시거든요.” 캔커피를 마시다 말고 샐쭉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하동댁 아주머니도 빨리 올라가자고 재촉하시는 어머니도 두 분의 행동들이 좀전과 너무 달랐다. “은주야! 너거 엄마 한 번 봐라. 사람이 따신 데가 없다. 참말로 내가 다 늦게 시집 산다 시집 살아. 니는 천천히 정 교감님하고 이야기 하고 오너라. 나는 형님 모시고 올라갈게.” “네 그러세요.” “정 교감님! 저는 형님하고 먼저 올라갈게예. 우리 은주하고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올라오이소.” 앞서가는 어머니를 의식하는 아주머니의 행동이 선생님 눈치보는 초등학생처럼 분주하다. “형님! 같이 올라가입시더! 형님 때문에 내가 못산다. 못살아.” 아무리 어머니가 눈치를 주어도 거절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연장자가 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떤 분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다. 커피잔을 엉거주춤 건네받고 나서 가만히 정 교감님을 살펴보니 희끗한 흰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세련된 노신사의 분위기를 가지신 분이셨다. 등산옷을 입은 모습도 깔끔하고, 교양 있는 말솜씨까지 괜찮은 분으로 보였다. 늙어간다면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여유로워 보였다. 지나온 삶의 흔적을 찾기에는 그리 어렵지가 않아보였다. “어머니와 같이 노인대학에 다니는 동창입니다.” 이쪽에서 궁금해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취하는 행동이 연륜에서 나오는 배려가 자연스럽게 베여 있었다. 허허, 웃는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은 동창이라는 그 단어가 주는 묘한 울림 때문이었다. 노인대학 동창이라고?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저 너머에 있는 관계들의 모임이다. 노년에 들어 만나는 관계에서는 어떤 느낌들이 존재할까? 사람의 일이고 또, 사람들의 관계라면 그 모임이 어떤 연유에서든 늘 처음 같은 순수한 느낌이 들까? 도리어 욕심 부릴 나이도 아니고 또 계산이나 하는 사이도 아니니 어쩌면 더 순수하고 진실한 관계일 수도 있겠다. 그런 좋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저렇게 매몰찬 행동을 하는 것은 의외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누구에게도 공평하고 친절하게 대하시는 분이었다. 혼자 사는 딸을 의식해서였나? 그렇다면 엄청 다행한 일인데 말이다. “중학교 교감을 정년퇴직하고 나서부터 각 절마다 탱화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으면서 이렇게 노년을 보내고 있지요.” 그러고보니 옆 어깨에 검은 가방이 메어있는 것은 카메라 가방이었다. 여유로운 취미생활을 하는 분이었다. 술을 즐기는 아버지, 화투짝을 버리지 못한 아버지, 병상에 누워 있는 날이 많았던 아버지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분이다. 어머니는 앞서 걸으며 대웅전으로 천천히 올라가신다. 딸에게 못 볼 것이라도 보인 것처럼 무안해하는 것이 정말 내 어머니가 맞나 싶었다. 여장부 같으신 어머니가 저렇게 부끄러움을 타시다니 풋,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보니 어머니가 노인대학에 다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전화를 해도 주로 어머니 쪽에서 먼저 해왔고 늘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고 내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서둘러 통화를 마쳤기에 어머니의 변화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먼저 어머니에게 다니시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역시 활동적인 어머니답게 씩씩하게 남은 생도 잘 살아가고 계시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괜히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모녀사이는 나이가 들면 서로 친구처럼 지내야 된다고 다들 이야기하지만 나는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솔직해지자면 마음을 열어 다가가지 못했다가 맞는 쪽이다. 어머니에게 뭔가 보여줄 것도 없고 자랑거리도 없는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어머니도 자신을 보는 듯 딸의 불행을 바라보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짐작으로도 느껴지는 아픈 마음을 서로가 바라보는 게 싫어 여태 회피한 것은 아닐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 네 그러세요.” 대답은 했지만 생각들이 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몇 발자국을 걷다 문득 걸음을 멈춘 그는 느닷없이 손을 내민다. “우리 인사나 정식으로 합시다. 전직 교감이라 정 교감이라고 다들 부릅니다.” “네. 전 김은주라고 합니다.” “김 여사님과 고운 눈매가 많이 닮았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어머니하고는 친구처럼 지낸답니다. 늙어가면서 다들 친구가 되지요.” “네. 커피 잘 마셨습니다.” 인사를 끝내고 앞서가는 어머니를 따라가면서 이상스런 마음보다 따뜻한 마음이 일었다. 어머니에게 이성친구가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즐거운 노년을 보낸다면 딸인 나로서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발걸음이 빨라지며 대웅전으로 길게 뻗은 화엄사 경내로 들어선다. 어머니는 벌써 대웅전에서 염주를 굴리며 108배를 하고 계신다. 법당에서 겨우 삼배를 드리고 물끄러미 부처님 얼굴을 올려다본다. 어쩌면 부처님은 이 복잡한 속내를 다 알고 계시겠구나. 싶어지는 것이 투정이라도 한 번 부려보고 싶다. 부처님은 제 마음 다 아시죠? *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요. 저는 어머니의 소망도 들어드리고 싶어요. 예린이에게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고요. 하지만 저는, 저는…… 안 되겠지요? 제 욕심 때문에 그 사람의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되겠지요? 죽어도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그의 어머님 마음을 정녕 돌릴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저는 그 사람을 보내주고 싶은데 마음이, 이 마음이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 어머니의 기도는 여전히 엄숙하고 신심 깊다. 절을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눈물이 곧 불어 닥칠 폭우처럼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법당을 나와 경내를 이리저리 쏘다니며 탑도 보고 산도 바라본다. 지리산 줄기에 둘러싸인 화엄사는 위엄 있고 경건한 힘이 깃들어 있지만 푸근한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평화로운 사찰이기도 하다. 탱화가 수수하게 그려진 법당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수선한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며 조금씩 편안해진다. 박영희 각황전 옆으로 나 있는 길은 부처님 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이다. 표지판에 적멸보궁의 4사자삼층석탑에 대한 유래가 적혀 있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위해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유래한다, 고 적혀 있다. 4사자삼층석탑 앞에서 어떤 바람을 담아 간절하게 절을 해야 이 못난 마음이 둥글어질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쓰는 마음이 미워져 울컥해진다. 눈물은 안 된다고, 절대 안 된다고 마음을 추스르며 숲길로 접어든다. * 어머니의 전화를 받기 한 달 전 현수 씨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여동생이 어쩔 수 없이 알려준 모양이었다. 당연히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아들의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어머니의 의무이며 권리이기도 했기에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환절기에 따라붙는 감기 몸살로 일주일 내내 골골거렸다. 한 겨울도 아니고 계절의 이동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몸이 가라앉고 가벼운 감기라도 하고 지나갔다. 그 날도 까끌거리는 입안에 약을 먹을 요량으로 겨우 빵조각을 밀어넣고 약을 삼킨 다음이었다. 약기운에 조금 나른해 있을 때였다. 휴대전화도 아닌 가게 전화벨이 울렸다. 나이현수 어미 되는 사람입니다. 흉벽 안에 돌덩이 하나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어머니라는 것을 인식되자 몸이 뻣뻣해지는 것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목의 통증이 느껴져 겨우 침만 삼킬 뿐이었다. 막상 전화를 걸어왔지만 어머니 쪽에서도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숨을 쉬고 그리고 현수 씨가 얼마나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애처롭고 미안해서 눈물 난다고 했다. 우리 현수를 놓아주면 안 되겠냐고. 이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힘들게 전화를 넣었는지 모른다. 다섯 살이나 많은 나이도 결혼을 한 경험도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도 묻지 않았다. 착한 아들이었다고 한 번도 부모 속 썩힌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고 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고 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달리 다르게 드릴 말도 없었다. 그렇게 해드린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해드리려고 노력은 하겠다는 뜻이었다. 현수 씨나 나 역시 두 분 어머니에게 다 소중한 자식들이다. 대웅전 법당에서 좋지 않은 무릎으로 108배를 올리고 있는 나의 어머니처럼 그의 어머니도 아들의 밝은 미래를 생각하며 고향 마을 부처님 앞에서 108배를 신심 있게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를 내 마음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밀어내어야만 했다. 그에겐 그의 어머니에 대해선 말하지 못했다. 그냥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만남을 피했다. 그런 어느 날 술이 취한 현수 씨가 새벽 두 시가 넘어 전화를 해왔다. 진짜 용기를 내어서 이렇게 겨우 말한다고 했다. 술이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말을 하기위해서 술을 조금 마셨다고 했다. 우리 같이 살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너무나 듣고 싶은 말이었지만 너무나 안 될 말이었다. 안 된다고 해놓고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이렇게 그의 심장소리만 듣고 아무 요구도 없이 사랑만 한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둠속에서 자신 쪽으로 당겨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종손의 장남인 그의 위치를 위태롭게 하고 싶지도, 그의 어머니의 기대를 허물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를 만나러 내려오기 몇 주 전에 다 늦은 밤에 난데없이 몸에 열이 올랐다. 아이는 영어학원에서 하는 캠프에 참가 중이어서 혼자였다. 그 깊은 밤에 그녀는 일어나 서랍장을 열어 아이가 먹고 남은 시럽으로 된 해열제를 삼켰다. 찬바람을 쐬러 문을 열고 베란다를 내다보다 깜짝 놀랐다. 그가 이 깊은 밤에 목련 나무 아래서 하염없이 4층의 그녀의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놀라움에 그저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몇 주 못 본 것이 몇 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니라고 거부하며 애써 눌렀던 마음의 열기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그를 알고 나서 한 번도 그녀 집에 들이지 않았던 그를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내려갔다. 그는 열에 들뜬 그녀를 끌어안고 언제나처럼 가만히 심장의 소리를 듣게 해주었다. 오늘은 내 곁에 있어달라고 그녀는 처음으로 말했다. 새벽녘 그녀를 안고 리듬감 있게 움직이는 그의 등은 부드러웠고 편안했다. 서두르는 법 없이 심장을 맞대어 일어나는 열기로도 충분히 몸의 열기를 식혀줄 수 있었다. 그라면 가능했다. 다시 원점이었지만 마음은 더할 수 없는 지옥이었다. * 4사자삼층석탑은 아름다웠다. 여지껏 탑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네 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정교하고 섬세하게 부조되어 있는 탑을 홀린 듯이 돌았다. 이렇게 돌다보면 꼬여있는 어떤 매듭이 스르르 풀리기라도 하듯이 어지러움을 느낄 때까지 돌았다. 두 분 어머니를 생각하며 오로지 한 생각을 하며 기도를 드렸다. 두 분 어머니들 뜻대로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머리에 아무런 생각들이 머물지 못하도록 돌고 또 돌았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숲을 빠져 나오자 어머니는 여전히 각황전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보제루 누각에 들러 지친 몸을 가만히 뉘였다. 얕은 잠이 스르르 밀려왔다. 낯선 여인이 차를 한 잔 내밀었다.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자 인연 따라 가는 것이니 인연을 믿으세요, 라고는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깜빡 졸았나 싶어 일어나 각황전 앞뜰을 내다보았다. 꿈이었다. 현실의 내가 자각이 안 되어 물끄러미 잔을 받은 내 손을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다. 세상에나, 그 여인은 누구였을까? 연기조사 어머니가 부처님께 차 공양을 하는 모습을 부조한 4사자석탑을 돌고 난 뒤라 꿈을 꾼 모양이었다. 하지만 인연을 믿으라,는 여인의 말은 여전히 생생하게 귓가를 맴돈다. 인연을 믿으라. 바깥을 내다보니 따뜻한 사월의 햇빛 아래 젊음 그것만으로도 환한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영상과 학생들인지 지도하시는 인솔자의 설명에 따라 각황전의 모습과 뜰 앞에 있는 탑을 향해 다양한 각도로 렌즈를 갖다 대고 있다. 가만히 보니 저만치서 어머니가 친구 분들과 같이 누각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미소 짓고 서 계셨다. 예의 정 교감님이 렌즈를 들이대며 셧트를 누르고 있다. 렌즈 속에 담긴 어머니의 얼굴이 궁금하다. 다시 정 교감님이 사진기를 한 남학생에게 넘기고 어머니와 하동 아주머니 옆자리에 서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시는 듯 보였다. 어머니 쪽으로 몸이 많이 기울이고 계신다. 웃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환하고 행복해 보인다. 다시 남학생이 어머니와 정교감님을 탑 앞에 세우시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기울인 어머니의 모습이 생기 넘치는 소녀의 표정이다. 어머니의 저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뜻밖의 모습이다. 챙겨드리지 못한 미안함과 어머니에게 무감했던 지난날들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차례대로 밀려든다. 딸인 내가 하지 못한 제안을 어머니에게서 먼저 듣는 게 더 미안했다. 어머니도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고 여린 감성을 가지신 분이었다니……. 어쩌다 친구들이 친정어머니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부러우면서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엄마는 나랑 여행가는 것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애.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하시거든. 그건 변명이었다. 어머니와 여행을 갈 거라고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었다. 누구보다 내 형편을 알기에 그리고 내 자존심을 나보다 더 잘 알기에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딸의 제안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드디어 어머니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어머니란 자리는 저런 자리구나. 나의 딸인 예린이에게도 어쩌면 나의 어머니처럼 먼저 말 걸고 제안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겠다는 결심이 보제루 누각에서 느닷없이 들었다. 깨달음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머니는 이런 깨달음을 일러주기 위해 여행을 제안했을까? 꿈속의 여인이 전해 준 말처럼 인연을 이렇게 믿을 수밖에 달리 무엇에 의지할 수 있을까. 파우치를 열고 립스틱을 바르고 어머니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정 교감님에게 각황전 탑 앞에서 어머니하고 나란히 서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각황전에 계시는 부처님도 슬며시 다가와 우리 모녀와 같이 나란히 서실지도 모르기에 환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어머니의 팔짱을 꽉 끼고 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멀리 지리산의 넓은 품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머니도 내 몸의 온기를 느끼시는 듯 몸의 균형이 내 곁으로 기웃해지신다.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인연을 믿으라. 내게 다가온 그 많은 인연의 고마움이 사월의 햇살처럼 따뜻하다. 어머니와의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인연을 알아가는 끝이면서도 시작인 순례의 길이었다. *
박영희 경주 출신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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