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고해성사를 하는 날, 앞선 교리 (2021-04-17)
신앙생활을 할 만해요? 이런 질문이 듣는 분에게는 버릇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잘하고 있고, 잘 적응하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게 믿는 듯한 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도로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실제로 어렵습니다. 사제로서 신앙생활에 관한 말씀을 우리 신앙인에게 먼저 말하는 것이 제 위치와 역할이기는 합니다만, 신앙생활을 잘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의 일만 잘하기에도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사람의 삶인데, 거기에 덧붙여서 하느님의 뜻까지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가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신앙생활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될까요? 그렇지 않을 일입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거나 적다고 할 수는 있어도,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살거나 영향을 주고받을 때는 사람의 관계를 조정하는 규칙이 있고 규정이 있고 법률이 있습니다.
규칙이나 규정이나 법률은 사람을 얽어매려는 의도로 생긴 것은 아닙니다. 얽어매려는 방법이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은 세상의 삶을 잘못 판단하는 사람이 하는 소리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하기가 쉽지만, 사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람이 실행해야 할 일에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삶의 법률과 규정과 규칙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담는 내용에서 나의 삶이 얼마나 멀리 도망갔는지, 얼마나 멀리 도망가려고 했는지, 얼마나 본래의 뜻에서 잘못된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찾아내어 다시 돌이키는 과정이 바로 오늘 하려는 고해성사입니다.
사람의 생각대로만 살아도 세상의 삶에서 충실하고도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태어났다가 죽는 존재’이기에 사람에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에 대한 것은 판단할 능력이 모자라거나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받아들이고 실천하는지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만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인간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조화있게 살도록 자리를 잡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커다란 원칙을 제시하신 하느님의 뜻에서 우리가 얼마나 멀리에 있거나 가까이 있는지를 찾고 올바른 길로 돌이키자는 일이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대하는 자세입니다.
구약의 경우에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지켜 충실하게 사는 방법으로 십계명을 말했고 실천하게 했는데, 신약에 와서는 그 구약의 십계명을 예수님께서는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하셨습니다. 표현이 간단해지면 우리가 실천하기도 쉬울까요? 열 개의 계명대신 하나만 기억하기에 편할 수는 있지만, 중요성이 달라지지는 않을 일입니다.
삶을 돌이키는 방법이나 원칙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는 이익을 더 많이 얻으려고 하거나 자기변호를 위한 방법으로 거짓을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만, 세상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앞에서 우리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내용을 전제로 교회공동체에서는 고해성사를 말하고 자기의 삶을 돌이키는 방법을 말합니다.
고해성사는 내가 하느님과 화해하는 과정입니다. 하느님의 뜻에서 내가 얼마나 멀리에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해서 내 삶을 돌이키고 다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이나 과정이 가능하기는 합니다만, 내 삶을 돌이키는 순서를 익혀야 합니다. 그때 사용하는 방법이 십계명의 내용에 따라 내가 삶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십계명을 다 기억하십니까? ***** 십계명은 우리의 행동이 하느님과 부모님, 이웃과 그 대상에 관한 존중문제, 재물에 관한 자세, 그리고 행동으로 일을 만들기 전에 가질 수도 있는 마음과 생각을 돌이키는 일을 찾도록 권고합니다.
고해성사의 효과는 매우 큽니다.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그것은 실제로 그 일을 충실하게 준비하고 실천한 사람에게 생기는 기쁨과 행복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준비하기는 하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짐승이 보이는 자세로 한다면 그의 삶에는 기쁨과 행복이 오지 않습니다. 그저 의무를 실천한 일일 뿐입니다.
고해성사는 내가 준비하고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는 성사입니다. 물론 사제를 통해서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할 수는 있지만, 사제도 자기 목숨을 걸고 그 비밀을 지키게 되어 있고, 또한 들은 내용의 99%가 넘는 내용을 잊습니다. 하느님께서 사제의 기억에서 치우십니다. **고해소설명, **예절순서, **갚음과 보속의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