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묵상법」의 8장 초안
묵상과 적용: 묵상은 했는데 적용이 안 돼요
1. 여는 말 : 적용이 잘 안 돼요
장*지: “이번 주 큐티는 너무 힘들었어요. 적용을 못하겠더라고요.”
김*림: “왜요?”
장*지: “스가랴서에 묵시가 많은데 그게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전에는 짜내서 뭐라도 적용점을 찾아내려고 했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강*훈: “나도 그래요. 특히 레위기서나 족보가 나오면 무슨 교훈을 찾아야 할지,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해요. 그럴 때 어떻게 해요?”
김*림: “저는 억지로 생각을 하거나 적용할 필요 없다고 봅니다. 생각나면 생각하지, 억지로 쥐어짜서 생각하는 것이 안 좋다고 봐요. 그리고 적용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읽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장과 강: “그래도 되나......”
저희 교회 청년부의 묵상 나눔 때의 일을 그대로 적은 것입니다. ‘김군’의 대답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저의 생각과 같습니다. 저의 대답 역시 그냥 읽으라, 입니다.
2. 나의 적용 실패담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배운 큐티는 정말 달았습니다. 내가 직접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꿈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시골 교회라서 중고등학교 내내 성경을 가르치는 반사, 곧 교사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와 친구들의 단 하나의 기도 제목이 성경을 가르쳐줄 교사, 전도사님도 아니고 그냥 교사를 보내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 아쉬움을 달래고 약점을 보완하려고 성경 퀴즈 대화를 자주 열었고, 성경 암송 대회도 종종 개최하곤 했지요. 그런 제게 선배가 꼭두새벽부터 캠퍼스로 달려와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과 복음도 공부하고, 큐티하는 법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달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한 때이었어요. 그 좋은 큐티를 때려치웠죠. 적용하는 것에서 탈이 난거죠. 왜냐고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거의 일정하게 적용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학교 앞에서 하숙 중이었는데, 내가 먼저 이불 개자, 방 청소하자, 등등. 거진 한 달 동안의 적용이 대동소이했거든요. 나중에는 지치고 지겨워서 큐티를 관두었습니다.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시작하고, 적용이 매번 비슷하고, 적용한 대로 적용을 잘 안하니 죄책감만 쌓여서 그만 두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시편 1편 2절의 진실, 곧 묵상이란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것, 그러니까 조용히 소리 내서 반복적으로 읽고 또 읽어서 마침내 그 말씀에 내가 푹 잠기는 것이란 걸 깨닫고, 어찌나 자유롭고 시원하든지요. 그렇게 읽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적용이고, 그렇게 읽으면 자연스럽게, 얼마간의 시간적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삶에서 우러나고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서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는 족쇄에서 풀려났지요.
3. 적용할 때 주의할 점
일단, 성경을 묵상할 때 반드시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위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적용이 목적이고 지향이지만, 적용을 위해 묵상을 굳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읽으면 됩니다. 그냥 말씀이 좋아서, 말씀이 나를 살리니까, 말씀이 내 길의 등이요 빛이니까, 온 종일 그리고 틈나는 대로 입 속에 담고 다니지요. 그렇게 주야로,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 말씀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 그렇게 하면 물을 머금은 스펀지가 되는 거지요. 쥐어짜지 않아도, 비틀지 않아도 저절로 물이 뚝뚝 떨어지겠지요.
둘째, 적용이 어려운 본문이 많습니다. 앞의 스가랴서 보다 대표적인 것이 강*훈 청년이 말한 것처럼 레위기서나 족보입니다. 웬 제사가 이리 많고, 그것들 사이의 변별점을 찾으려면 진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서면 잊기 일쑤고요. 성전 건축 본문도 그러합니다. 건물과 크기와 모양에 관한 설명, 성전 내 기물에 관한 것은 건축에 관한 얼마간의 지식이 있지 않는 이들에게는 통역 없는 방언 기도를 듣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지요.
족보는 또 어떻고요. 발음조차 어려운, 성경에 딱 한번 나오고 그만인 그 인물의 이름으로 꽉 찬 본문을 읽고 무엇을 어떻게 적용하란 말입니까? 그럴 때는 말 그대로 그냥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억지로 적용점을 찾으려하다가 성경이 더 싫어지고 어려워지게 됩니다. 하루 이틀 하다가 그만 둘 것도 아닌데, 너무 잘 하려다가 아예 안 하는 수가 있어요, 대학 시절의 저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그냥 읽기만 하세요.
선지서도 매일반입니다. 같은 주제의 말씀이 반복됩니다.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데,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너무 다르지만, 평범한 내가 보기에는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데, 그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하고, 오늘 나의 삶에 실천해야만 하는데, 어쩌란 건지. 비슷비슷한 말씀인데, 그걸 세미하게 분별하고 약간이나마 다르게 적용할 것을 찾아내야하는데, 그게 안 되고, 마음은 앞서고, 그러다가 짜증이 납니다. 내가 미워집니다. 내가 못났다고 생각되니까요.
사실, 한 주제가 반복되는 본문의 연속인 경우는 같은 적용을 반복해도 됩니다.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요. 잘 안 되니까, 한두 번의 말로 실천이 안 되니까, 계속 같은 말을 성경이 하는데, 구태여 적용이 달라질 필요가 하등 없습니다. 똑같은 적용을 하고, 다음 날도 어제의 그 적용을 또 하는 거지요. 그래서 안 될 이유가 있나요? 그런다고 죄를 짓는 것도 아니잖아요. 성경이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조금씩 점차 강도를 높이는데, 묵상이 되새김질이라면, 적용 역시 되풀이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용감하게 같은 적용을 또 하세요. 괜찮답니다. 아니 잘 하고 있는 거예요. 응원을 보냅니다. 지지합니다.
바로 위의 것이 적용과 관련되어서 주의할 네 번째 것이라면, 다섯 번째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한 끼 먹고 한 끼 살자!” 무슨 말이냐고요? 말 그대로입니다. 한 끼의 식사로 하루를 산다거나, 그날의 별미를 잊을 수 없어서 그 식사로 며칠을 살 수 없지요. 그러니까 하루 묵상하면 하루치를 적용하면 그만입니다.
좀 더 풀어 설명 드릴게요. 이런 가정을 해 보지요. 오늘 묵상하는데 성경 읽기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20장씩 성경 읽기로 적용을 했답니다. 다음 날 묵상에서는 기도하라는 부분에 감명을 받았기에 하루 1시간 기도하기로 작심했지요. 또 그 다음 날은 찬양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하루에 1시간 정도는 찬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하라는 부름을 듣고 하루에 한 명에게 전도하기로 묵상 노트에 기록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1주일만 하면, 저 모든 적용이 쌓이고 쌓여서 과부하가 걸릴 것이 뻔합니다. 힘들어서 그만 둘 것이 눈에 훤합니다.
왜 스스로를 괴롭히나요? 그것은 묵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반복해서 말합니다. “한 끼 먹고 한 끼 살고, 하루 묵상하고 하루 적용하자!” 그러니까 성경 읽기에 도전을 받았으면 그날 하루 20장을 읽으면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기를 적용한 그날 당일만 기도로 한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족합니다. 찬양도 나만의 공간이나 노래 불러도 좋을 곳에 가서 실컷 찬양하면 충분합니다. 무리하게 한 달, 일 년치를 적용하지 마세요.
4. 닫는 말 : 말씀은 밥이다
저는 종종 “큐티는 밥이다! 묵상이야 말로 밥 먹기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한 끼 식사를 맛나게, 푸짐하게 먹었다고 갑자기 내 몸의 건강이 유달리 좋아질 리 만무합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꾸준히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운동하고 어울려 놀고, 열심히 일하고 깊은 잠을 달게 자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키도 훌쩍 크고, 몸도 튼튼해지는 거지요. 밥을 많이 먹었다고 쪼르르 달려가서 벽에 몸을 붙이고 키를 잰다고 커졌을 리 없지요.
당장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괜한 자괴감이 들어도,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싶은 그때 기억하세요. 묵상은 밥 먹기라는 것을요. 입맛이 떨어져도, 먹기 싫어도 조금이라도 먹어야 힘을 내서 일을 하고 몸도 건강해지듯이, 적용이 안 되도, 적용한 대로 살아지지 않아도 또 묵상하셔요. 그리고 안 될 줄 알지만 또 적용하는 거지요. 그렇게 우리는 점차 성경에 젖어들고, 그렇게 물들다 보면, 바위산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 본 그 사람이 바위산 얼굴이 되었던 것처럼, 성경을 읽는 당신이 바로 성경의 사람이 될 겁니다.
성경의 능력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 겁니다.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 성경입니다. 내 의지와 노력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억지로 무리하게 적용하려다 내 영혼의 어깨나 허리를 다치게 됩니다. 맘 상하게 되지요. 묵상할 의욕이 급격히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니 오늘도 성경이 좋아서 하루 종일 중얼중얼 읊조리다 보면, 깊이 우려낸 맛에 심취할 것이고, 내 몸의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고, 마침내 그 말씀이 내 영과 맘과 몸을 말씀을 빚어낼 것입니다. 그때까지, 그 날이 오기까지 말씀을 읽고 또 읽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대의 적용입니다. 오늘도 당신은 그 적용을 하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