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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평창, 정선 쪽으로 출장을 다녀왔더니 책상 위에 공연 할인 티켓이 담긴 봉투 하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신인은 2년 전 음악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던 현대카드 사보의 편집자. 5월 31일 밤 8시 이태원 현대카드언더스테이지라는 소극장에서 ‘스팅Sting’의 공연이 있답니다. 입장료가 무려 2십5만원, 반값 할인한다 치더라도 십이만오천 원! 허얼∼ 내 처지로서는 꿈조차 꿀 형편이 못됩니다.
뭐, 그의 명성과 음악성에 비하면 그리 높은 가격은 아닙니다. 소극장 공연이라 최소한 10m 면전에서 그의 공연을 즐길 수 있으니 형편만 된다면 정상가격으로라도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고로 스팅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먼지 폴폴 나는 내 주머니의 잘못입니다.
스팅, 서정적인 멜로디와 철학적인 가사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는 영국의 대표적 뮤지션입니다. 한때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밴드 더 폴리스The Police의 베이시스트이자 메인 보컬로 활약하다가, 그룹 해체 후 자신만의 밴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미상 16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25회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은 1993년에 발표한 <Shape of My Heart>가 영화 <레옹>의 OST로 사용된 후부터였습니다.
<레옹Leon>은 1994년, 프랑스인 감독인 뤽 베송Luc Besson이 연출한 액션 영화로서의 줄거리자체도 흥미롭거니와 멜로적 요소까지 갖춘 매우 멋진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외적 캐릭터도 특이하여 당시 주인공의 동그랗고 까만 선글라스, 짧은 머리, 그리고 긴 코트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장 르노Jean Reno는 뤽 베송 감독의 페르소나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뤽 베송의 데뷔작인 <마지막 전투>를 시작으로, <서브웨이>, <그랑블루>, <니키타> 등 베송의 프랑스 시절에는 빠짐없이 출연했습니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레옹>의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평생 킬러로 살아온 레옹(장 르노 분)은 허름한 아파트에서 상처를 치료하면서 은닉하던 중 이웃집 소녀인 마틸다(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 분)과 그럭저럭 알고 지냅니다. 마틸다의 아버지는 부패한 마약단속반 경찰 책임자 노먼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먼Gary Oldman 분)가 압수한 마약을 대리판매하면서 살아가는데, 이 양반 간도 크시지… 엄청난 양의 마약을 빼돌렸다가 노먼에게 들통나고 맙니다. 이에 마틸다의 아버지가 눈감아주지 않으면 노먼의 부패사실을 폭로하겠다면서 오히려 협박합니다. 노먼은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수족들과 함께 마약사범 단속을 핑계로 들이닥쳐 난사함으로써 마틸다 가족을 무자비하게 살해해버립니다.
그 사이 우유를 사러 밖으로 나갔던 마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가는 자기 집이 온통 총알자국투성이, 문 앞에는 무장경찰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고서는 즉시 상황 판단을 합니다. 부모가 마약 판매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의 시체로 피범벅이 된 자기 집을 태연한 척 지나서는, 레옹의 집 현관문 앞에 서서 비로소 두려움에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나지막이 그러나 애절하게 부르짖습니다.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제발요. Open the door, please… please…!”
남의 일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레옹, 그러나 이미 같은 층에서 난사되는 총소리를 들었던 만큼 미적거리다가 결국에 살며시 문을 열어주고 맙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게 된 두 사람. 레옹이 킬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마틸다는 문맹인 그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집안일도 도와주는 대신 자신을 킬러로 훈련시켜 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마틸다, 자식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개 같은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부모에 대해서는 슬픔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했던 어린 남동생까지 살해한 자들에 대한 원한은 너무나 크고도 깊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제안에 레옹이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마틸다가 계속 간곡하게 애원하자 장난 반 제자로 삼게 됩니다. 이후 함께 거주하면서 빈총으로 사격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동시에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두 사람 모두 기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어리디 어린 마틸다가 립스틱을 바르고 노출된 잠옷을 입은 채 다 큰 여인의 흉내를 어설프게 내면서 레옹을 유혹합니다.
“난 다 컸어요, 나이만 먹으면 돼요.”
당돌하게도 마틸다는 여자에겐 첫 경험이 중요하다며 동침을 요구합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감정, 순간 흔들리지만 레옹은 거절합니다.
“나랑은 반대로구나. 난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문제는 아직 마음이 어려.”
사실 마틸다의 레옹에 대한 감정은 연애 감정이라기보다는 난생 처음 갖게 된 정상적인 보호자에게 갖는 가족애에 가깝습니다. 작중 마틸다가 매우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성인 여자 흉내를 내면서 레옹에게 계속 성적인 스킨십을 요구하지만, 정작 마틸다가 레옹과 침대에 함께 눕자 그의 팔을 인형처럼 껴안고 자는 것이 다입니다.
본디 살인 청부업자인 레옹은 기습을 경계하여 절대로 침대에 눕지 않고 총을 쥔 채 의자에 앉아서 자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처음으로 마틸다와 침대에서 곤하게 잠이 듭니다. 극중에서 마틸다가 인형을 끌어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레옹에게 갈구한 것은 남성이 아니라 안식처였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평생 냉혈한으로서 살아왔던 레옹이 은연중에 마틸다를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노먼은 몰살시켰다고 생각했던 마틸다 가족 중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정보를 얻습니다. 그는 후일을 염려하여 마틸다를 찾습니다. 마틸다 또한 노먼이 가족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격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생각한 마틸다는 레옹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단독으로 경찰서에 위장 잠입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노먼에게 붙잡혀 마약단속국 창고에 갇히고 맙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레옹은 경찰서에 습격, 처절한 총격전 끝에 구사일생으로 마틸다를 구해냅니다.
백주대낮에 경찰서가 습격당하자 노먼은 갖은 경로를 통해 레옹과 마틸다의 거주지를 파악한 후 특공대를 이끌고 아파트에 들이닥칩니다. 아파트 전체가 포위되었음을 인지한 레옹, 환풍구를 통하여 탈출하려 해보았지만 통로가 너무 좁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틸다만 내보내기로 하는데 마틸다는 레옹과의 영원한 이별을 직감한 듯 끝까지 함께 있겠다고 울면서 버팁니다.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레옹과 마틸다는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연인 간의 감정이 아닌, 아버지와 딸의 그것으로. 마틸다가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사랑해요.”
그러나 레옹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가야 나도 널 사랑해. 어서 빨리 나가렴.”
레옹은 자신의 뒤를 봐주던 토니에게 돈을 맡겨놓았으니 그 돈으로 꼭 학교에 다니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더불어 자신이 아끼던 화초의 화분을 마틸다에게 안겨줍니다. 마틸다는 울면서 매달려보았지만 함께 있으면 오히려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레옹의 설득에 따라 마지못해 환풍구로 올라갑니다.
마틸다를 탈출시킨 직후였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퍼부어대는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사격세례. 유탄이 사방으로 날아듭니다. 그때마다 산산조각 흩뿌리는 창문과 가구의 파편들. 그 와중에 레옹은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됩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은 경찰의 옷을 벗겨 갈아입고 위장하여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가려 애를 씁니다. 그 시각, 마틸다는 화분을 품에 안은 채 종종걸음으로 포위망을 무사히 빠져나갑니다.
한편, 출구를 빠져나가려던 레옹은 급기야 노먼에게 발각되고 맙니다. 자신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채 야비한 미소를 보내는 노먼, 그 순간 레옹은 품속에 숨겨 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노먼에게 마틸다의 선물이라면서 쥐어줍니다. 노먼이 안전핀을 보고 아차하는 순간 바로 큰 폭발음이 울립니다.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사랑의 감정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레옹은 노먼과 함께 처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영화 개봉 당시 한 신문기자가 이런 타이틀로 기사를 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킬러 레옹.’
마틸다는 토니를 찾아갑니다. 토니는 레옹이 전 재산을 물려줬으니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와서 찾아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킬러 일을 하게 해 달라는 마틸다에게 학교로 돌아가라고 단호하게 꾸짖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마틸다, 레옹이 남겨준 화초를 운동장 한 구석에 심으면서 이렇게 되뇝니다.
“레옹, 여기라면 우리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 I think we’ll be okay here, Leon.”
그 장면을 배경으로 오늘의 주인공 스팅의 <Shape of My Heart>이 깔리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에서 기묘한 느낌의 연기력을 마음껏 발휘한 나탈리 포트만. 당시 그녀의 나이는 13살. 도저히 처음 데뷔하는 아역의 연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상영 내내 나는 어쩔 수 없이 롤리타콤플렉스적 시각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티끌만큼도 더럽지 않은…. 아니나 다를까 나이차가 큰 커플이 많은 프랑스와는 달리 미국언론에서는 이 영화를 아동 포르노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아역 때 외모가 지나치게 완벽했던 탓일까요? 나탈리 포트만은 성인이 된 후 ‘역변’했다는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아역시절의 그 모습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녀에 대해 외모로 지적하지 않을 존재로 여전히 배우 그리고 제작자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 달이 가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시인>을 올릴 에정입니다.
첫댓글 정말 멋진 음악입니다.
즐겁게 듣고 가옵니다.
영화 설명도 길지만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휴일 오후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영화 설명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필름이 돌아갑니다.
내 컴퓨터가 문제인지 음악은 듣지를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