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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전작읽기4는 김금희작가의 첫 장편 <경애의 마음>이다. 이 장편은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하루에 두 챕터씩 읽기로 했다. 몇 년전 읽으면서 발췌를 많이 해 둔 책이어서 이번엔 지난 번 단편처럼 마인드맵으로 정리해볼까 했으나 음.. 아니었다;; 마인드맵은 단편에만 하는 걸로... 이런 장편을 정리할 때는 키워드정리나 발췌가 편하다. 하면서 배운다.
[공란은 공란이다]
첫 문장 : 그의 차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인생을 모두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일단 다섯 사람이 탈 수 있지만 뒷좌석에 짐이 차 있고 조수석은 조수석대로 당장 필요한 자질구레한 소지품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 차는 오직 그, 공상수 한 사람을 위한 차였다. (p.8)
상상할 '여지'를 주지 않으니까. 여지는 삶에 있어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상수는 그런 것이 없는 삶은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수에게는 슬픈 일이 많았다. 일단 상수가 사랑하고 떠나보낸 여자들을 떠올리면 언제든 눈물이 나왔다. 대부분 소설과 영화에서 만나고 헤어진 이들이었다. (p.9)
단상 : 이 부분을 읽을 때 상수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감수성이 그를 '여죄다'의 언니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일영은 굳이 덧붙였다.
"나는 아버지를 못 닮아서 이렇게 됐지만."
경애는 그말을 가만히 듣다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p.27)
단상 : 자기를 희화화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위너라는데 타인을 인정하기 위해 나를 깎아내리는 건 자기비하이다.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p.35)
단상 : 사랑은 부지불식간에 스며드는 수채화물감처럼 찾아오지만 사라질 때는 지워지지 않는 아크릴물감같은 자국을 남긴다.
과연 파이팅과 연관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책상에 글귀 하나가 붙어 있긴 했다.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빛어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달라고?
- 밀턴 [실락원] (p.56)
단상 : 갑자기 '멕인다'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E]
첫 문장 : 경애는 그런 마음에 대해서 꽤 잘 알았다. 그러니까 현실의 효용 가치로 본다면 애저녁에 버렸어야 했을 물건들을 단지 마음의 부피를 채우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마음을 말이다. 경애가 산주 선배와의 연애가 끝난 뒤에도 그와 관련한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P.58)
단상 :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 못 하는 관계가 경애와 산주선배의 관계이다. 그런데 김금희 단편에는 경애같은 인물이 여럿 나온다. [세실리아]의 정은이, [체스의 모든 것]의 영지가 그렇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진다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상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끝을 말하려면 지금 발밑에서 너풀거리며 나뒹구는 아이스크림 포장이나, 택시의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같은 눈앞에 지나가는 어떤 것도 아픔을 환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어떤 풍경도 산주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지시하지 않는다고. (P.60)
단상 : 경애에게 마음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듯 하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너와 나의 안녕]
미싱회사 직원인 우리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옷을 왜 입냐는 것인데, 우리가 혼자 살면 옷 안 입어도 됩니다. 그런데 옷을 입는다는 건 어딜 나간다는 거고 누굴 만난다는 거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된다는 거잖습니까. 인간다워지라고 미싱을 돌린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상수씨, 그거 안 잊어야 합니다." (P.83~84)
단상 : 조선생은 어른이다.
옥수수의 힘센 잎들, 동물의 것처럼 부드러운 수염, 그리고 아주 꽉 차 오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으로 문득 들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듯 어떤 환기가 들면서 산다,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다. 경애가 이 방에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안데도 여전히 저 밖에는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고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다행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있어어,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여름의 낮을 보내다 슬리퍼를 끌고 시장으로 나가면 그 살고 있는 것들을 두 손 무겁게 사들고 어쨌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 (P.97)
단상 : 경애에게 산주와의 이별은 한 계절의 무기력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런 그녀를 살게 해 준 것이 옥수수와 언죄다였다.
하지만 경애의 엄마는 언제나 경애가 일어서는 아이라고 믿었고 꽃처럼 예쁘게 보내야 할 경애의 시간들이 오래되어 퀴퀴해진 빨래처럼 방치된 채 흐르고 있어도 슬프거나 경애에게 뭐라고 한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순간이 왔을 때 말그대로 힘들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p.102)
단상 : 경애에게는 그녀를 믿어주는 엄마가 있다. 그런 엄마가 있어서 경애가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상수가 형에게 맞을 때마다 그 분노가 아주 먼 북극의 빙하처럼 차곡차곡 무서운 응집력으로 얼어붙었던 것처럼, 그런 마음에 또다른 분노가 하나 더 올라오면 마음이 고통스러울 만큼 냉담해지고 그런 인력은 너무 세서 웬만해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형에 의해 자기 같은 사람이 하나 더 만들어졌고 이제 그 얼굴을 자기가 확인해아 한다는 것이었다. 마당에 놓인 눈사람을 보듯, 아니면 흡사 거울을 보는 것처럼. (p.119)
단상 : 가끔, 아니 자주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은 가족이다.
아버지는 현명했지만 어떻게 보면 비열했던 것 같다고 상수가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이리 온, 잘 잤니 보다 더 자주 들었던 정의란 그런 것을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p.124)
단상 :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보이준 모습은 어른의 모습이 아니다.
[없는 마음]
어쩌면 산주가 경애와 있다가 자신의 아내가 올라온다는 시각에 맞춰 정확히 다섯시 반, 서울역으로 데리러 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헤어지고 각자에게 펼쳐질 일상을 생각하면 그 사이에 있었던 감정들도 모두 빛을 잃었고 오리배에 적힌 파라다이스라는 글씨처럼 허울 좋은 가짜의 혐의를 풍겼다. 경애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발끝에서 무언가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경애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위태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도 산주를 생각하면 어떤 간절함이 들면서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경애를 붙들었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를 파괴하리라는 것을 경애는 예감하고 있었다. (p.137)
단상 : 경애는 결코 자신이 먼저 손을 놓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 잃어본 사람은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지금 산주와 가까이 있고 싶은 경애의 마음은 로맨스적 욕망도, 관계 회복에 대한 열망도 아닌 일종의 패배감일 뿐이라는 것, 그런 것 뒤의 미약한 연대감만이 지금 두 사람을 추동하고 있을 뿐이라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 사실을 저렇게 예쁜 아기와 밤을 맞을 미유에게 이해시킬 방법은 없어 보였다. (p.138)
[살인은 연애처럼 연애는 살인처럼]
인생은 손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냥 포기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번뇌와 갈등, 고통, 어떤 조갈증, 허기 같은 건 지병처럼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아프면 고쳐가면서 쓰는 게 몸이라고 하는데 마음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대체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싶으면서도 상수는 경애가 익명의 누군가에게 쓰는 줄 알고 이러한 답장을 보낼 때 참을 수 없이 괴로워졌다. (p.143)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자들은 다른 신체는 없이 오로지 성기와 가슴만 지닌 존재처럼 여겨졌는데 그렇게 벗겨지고 지워진 얼굴들에 대한 시시덕거림이 은근하게 퍼져나갈 때면 상수는 내장기관 어딘가가 운동하면서 메스꺼워지곤 했다. 혐오스러웠다. (p.144)
단상 :정말 그런 놈들이 있다.
조교와 상수 사이에 있던 위계가 일종의 권력의 위치에너지를 생산해 감정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런 상수의 분석은 스스로에게 여러모로 이로웠는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특정한 상실감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단번에 괜찮아지는 느낌이었다. 아주 말끔하게, 이를테면 고속도로 같은 것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그 길의 끝이 이제 막 도로롤 포장한 콜타르의 냄새처럼 고약한 냉소와 허무 그리고 자기를 감싸는 모든 감정들에 대한 무한 회의로 이어져 있다느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p.150)
단상 : 감정이라는 게 어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한 안심이었고 이후에 산주를 완전히 잃지 않는 것에 경애가 매달리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선배를 만나고 뒤돌아 걷는 사이사이 그만할까, 하는 말이 올라오기도 했다. 완전히 끝을 낼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하지만 그런 종결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산주를 죽은 사람처럼 만들고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그건 적어도 스스로 피조, 라고 불렀던 어느 시절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에게는 가능하지는 않았다. (p.161)
단상 : 어떤 상실을 겪은 사람은 오랫동안 그 상실에 삶을 잠식 당한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p.176)
단상 : 언죄다 언니 상수가 경애에게 보내는 편지
[차디찬 여름]
장례 기간 동안 아버지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떤 몸짓으로 슬픔을 표현했는가 같은 것. 상규는 마치 곧 터져버릴 공처럼 굴었다. 이미 어떤 것이 가득 차 있는데도 자꾸만 무언가 주입되어서 머지않아 완전히 파괴될 것처럼. 상수에게도 그런 부피를 가진 슬픔이 마음에 들어서 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형처럼 열기와 에너지를 가진 무언가로 그 슬픔이 팽창해 외부로 나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원래 있던 것이 다 빠져나가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유령처럼 몸과 마음 같은 것이 없어져 어머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은 아주 비현실적인 세계로 넘어가버리는 느낌이었다. (p.182)
단상 :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용서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이었을까. (p.184)
단상 : 다른 여자를 곁에 두고 아내가 자살했다면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는 남자의 뇌구조는 어떤 것일까?
[당신은 여동생이 있나요?]
첫문장 : 경애는 호찌민의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도로의 흐름을 완전히 장악한 오토바이, 거리에 나서면 그것들이 웅웅대는 소리에 평소처럼 이어폰을 끼고 걷기란 불가능한 정도였는데 그저 부산한 흐름이 나쁘지 않았다. 활력있게 느껴졌다. (p.188)
"사람 마음 다 똑같아요. 공팀장은 어떨 때 마음이 갑니까? 인간을 걷어내지 마세요. 내 경우에는 어떤 일이든 그렇습니다."
조선생이 기술자인 창식씨와 함께 지내기로 한 것도 경애의 눈에는 인간적인 연민때문으로 보였다. 창식씨는 직급 없는 기술자였다.(p.191)
단상 : 조선생은 항상 인간이 먼저인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른같다.
경애가 자산이 파괴되었다고 생각했다며 이메일을 보내왔을 때 평소처럼 정신차리라든가, 그거 정말 똥 밟는 일이에요,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럽니다, 성욕을 채우려면 어떤 사탕발림도 마다하지를 않아요, 아주 시를 쓰지요, 릴케가 따로 없어요, 라고 말하지 못 했다. 상수는 그렇게 양말 하나 벗지 않고 앉아 있던 산주 앞에서 경애가 느꼈을 모욕감을 떠올리며 조용히 분노했을 뿐이었다. 아마 경애가 그랬을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듯 마음이 오므라들었다. 기가 죽고 축소되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었다. (p.208)
단상 : 상수가 변하고 있다. 경애때문에....
다만 상수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독설에 가까운 불평을 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래도 너는 운이 좋은 거야,라고 했던 정도만 생각났다. 상수가 그러면 너는 운이 나쁜 편이야?하고 물으면 당연히 아니지, 했던 말. (p.209)
단상 : 은총이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상수와 경애의 삶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경애씨, 내가 영업 비밀 하나 가르쳐줄까? 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야."
"뭔가요?"
"여기서는 절대 금방 떠날 사람처럼 굴면 안돼. 떠나는 사람들한테 사이공은 지쳤거든요. 일주일 있더라도 이십년 있을 것처럼 행동해야 해." (p.218)
단상 : 언니, 동생. 이런 호칭으로 서로 가까워진다고 느끼나보다 하며 이 챕터를 읽었다. 하지만 그런 호칭으로 불러도 떠날 사람은 언제든 등을 돌리고 떠날 수 있다.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다'는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경애가 커가면서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경애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는 다친 줄도 모르고 웃을 수는 없었다. (p.225)
단상 : 그렇게 웃었던 게 언제였을까? 문득 어린 애들이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웃는 것과 나이든 내 또래가 공공장소에서 과거 속 경애의 엄마처럼 웃는 걸 상상해 봤다. 웃음에 나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문득 어린 애들이 더 보기 좋다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웃을 일이 있다면 목청껏 웃고 싶다.
* 언죄다 해킹되다
[빗방울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어]
한국의 남부장은 공상수 그 건 못해내면 알아서 하라고 길길이 날뛰는데, 그런 부장의 목소리가 상수의 귀에는, 와서 꽂히는 게 아니라 마치 연기처럼 흘러 들어와 스치고 지나가는 듯 느껴졌다. 그동안 아등바등했던 모든 현실들이 슬로모션으로 나른,하게 아주 아련, 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 모든 것이 가엾고 덧없다는 태도였다. (p.252)
단상 : 이 때까지도 상수는 언죄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몰랐다. 도망치거나 회피하고 싶은 감정이 더 컸다.
'언죄다' 페이지가 털리고 모든 걸 잃어버릴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렇게 버려져 있는, 삶에 있어 디폴트가 없는, 마치 콧물을 닦듯 자기 삶을 팽, 풀어서 아무 데나 흘러버리는 듯한 창식씨에게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p.253)
단상 : 상황이 바뀌면 보이지 않던 어떤 것이 보이게 된다. 지금 상수가 그런것처럼
상수가 결국 경애가 경애인 것는 계속되겠지. 생활을 위해 밥을 챙겨먹고 필요하면 달리고 어쩔 때는 화도 내고 울고 차갑게 뒤돌아서기도 하며 살겠지 생각하니 뭉클해졌다. 그것은 평소에 전혀 가져보지 못한 극강의 다정함이라서 상수는 자기도 모르게 경애의 손을 잡고 말았다. (p.258)
단상 : 이 작품의 유일한 로맨스는 손잡기이다. 둘에 대해서 해야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그럤나보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p.285)
한번 써본 마음은 남죠. 안 써본 마음이 어렵습니다. 힘들겠지만 거기에 맞는 마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 공상수 팀장은 그 힘을 빋고 자책하지 말아요. (p.291)
단상 : 이 책에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마음을 폐기한다. 마음을 써 본다.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니는 죄가 없다]
어디로 가든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아무리 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해도 최후의 낙하점은 있어야 했다. 경애는 다시는 자신을 방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p.306)
단상 : 드디어 우리의 경애가 도약을 시작한다.
요즘 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걸 했던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 시간의 의미가 타인에 의해서 판결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니 님은 요즘 어렵게 지내고 계실 것이 분명하고 이메일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저도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는 일만은 폐기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320)
단상 : 마음이 폐기되는 것. 폐기된 마음은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