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희망의 순례자 27/28번째인 진목정 성지와 죽림굴에 다녀왔습니다. 진목정 성지는 경주시 산내면에 위치한 대구 교구이고, 죽림굴은 울산시 울주에 위치한 부산 교구 소속입니다. 워낙 먼 곳이라 우리 순례단은 새벽 5시30분에 출발해 다섯 시간을 꼬박 달려 11시 미사 시간에 늦지 않게 진목정 성지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양주2동, 고양동, 금촌에서 오시는 분들은 거의 잠을 설치며 오늘 순례를 준비했으리라 봅니다. 순교자의 삶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들의 정성스런 이러한 준비도 그 발자취를 좇아가는 점 하나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목정 성지/진목정 공소
진목정은 단석산 줄기인 도매산 준턱(해발 350m)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부터 참나무가 많은 골짜기라 하여 ‘참나무뎡이’로 불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한자표기로 바꾸면서 ‘眞木亭’(진목정)으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참나무뎡이에 교우촌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확언하기 어렵지만 다블뤼 주교의 편지에 근거하여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된 시기를 1850~1861년 최양업 신부의 사목방문 시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의 선종 후에는 다블뤼 주교와 리델 신부가 병인박해 이전까지 이 지역을 순회 선교하였습니다.
진목정 성지는 병인박해 시기에 울산 장대벌(울산 병영순교성지)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신 세 분 복자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 허인백 야고보께서 신앙을 지키며 박해를 피해 숨어 사셨던 범굴이 있는 곳이며, 세 분의 유해가 합장되어 있던 순교자 묘소(가묘)가 있는 곳입니다. 현재는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인 대구 복자성당에 이장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세분의 가족이 박해를 피해 2년동안 피신해 살았던 자연동굴인 범굴은 현재 완전히 무너져 내려 이를 재현해 조성한 범굴 묵상소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진목정 공소
진목정 기념성당을 조금 내려 걸으면 아담하고 정갈한 진목정 공소가 위치해 있는데 마치 요즘 MZ세대들이 사진찍기 좋아할 법한 이쁜 공간으로 조성해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이 지역 사목 방문시 박해를 피해 죽림굴로 피신하여 박해의 참혹한 사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 곳은 이제 역사 속으로 가라앉은걸까요. 예쁜 공소로 가꾸어 신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좋겠지만 뼈아픈 순교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뜻깊은 공간이길 바래봅니다. 현재 산내 성당의 소속 공소입니다.
죽림굴(대재 공소)
한국 천주교 성지 167곳 중에 접근성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두 군데 중 한 곳은 추자도의 황경한 묘이고 다른 하나는 죽림굴(대재공소)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3월에 최민호 신부님과 함께 근접 위치까지만 이동 순례하며 꼭 방문할 곳으로 숙제를 남겼던 만산교우촌(해발 976미터에 위치) 역시 쉽게 접할 수 없는 성지라 국내 성지로는 이 세 곳을 3대 험지로 기억해도 좋을 듯합니다.
쨍쨍한 한여름 햇빛을 가려주는 울창한 나무숲길로 이어진 가파른 임도를 오르는 길에 유난히 많이 보였던 대나무로 유추했듯이, 죽림굴은 대나무로 덮여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죽림굴은 경남 밀양과 울주군에 걸친 높이 1000m 영남 알프스 9봉이 위치한 간월산 중턱에 있는 곳으로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충청도와 영남지방에서 피난한 교우들이 안전한 장소를 찾다가 발견한 자연 석굴입니다. 1840~1860년까지 샤스탕 신부와 다블뤼 주교가 사목을 담당했던 공소로 활용되었고 경신박해(1860년) 이후에는 최양업 신부가 3개월간 은신했던 곳입니다. 진목정 성지의 세 복자(허인백, 이양등, 김종륜)도 이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1868년 병인박해 시 이곳에 들이닥친 포졸들에 신자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100여 명이 넘었던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죽림굴은 폐쇄되었습니다.
동굴의 입구는 낮으막하며 도무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어보이기까지 한데,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100여명이 은거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불과 3~5미터 정도만 들어섰을 뿐인데 동굴 안이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암흑이었습니다. 핸드폰 손전등으로 어슴프레 보이는 돌과 돌 사이의 안쪽은 대체 길이 어디로 나있는 것인지 들어갈 볼 엄두 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어둡고 습한 이곳이 박해시대를 살던 신자들의 생존을 위한 최선의 장소였던 것이 너무도 처절했고 신자도 사제도 그 어려운 시기의 고통을 받아들이며 죽음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에 절로 눈시울이 적셔졌습니다. 한마디로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죽림굴은 1986년 언양성당의 신부와 신자들이 발견해 성지화가 되었으며, 매주 금요일 11시에 동굴 발견자인 김영곤 시몬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 식사는 든든한 순례를 위해 김정인 마틸다님이 맛있는 콩떡을 준비해주셔서 잘 먹었습니다. 단장님께서 오늘의 땀나는 순례길을 위해 생수를 제공해주셨습니다. 두분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진목정 성지의 김용범 그레고리오 신부님께 정성껏 빚은 매듭묵주를 봉헌하였습니다. 한번씩 웃으시는 투박한 미소가 매우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 웃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매듭 묵주팀에게는 매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기똥차게 의미있는 봉헌입니다. 그리고 오늘같은 무더위에도 죽림굴 가는 왕복 7km의 도보 순례를 마다하지 않으신 평길단원들에게도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연신 땀을 흘리고 지쳐 주저앉고 파스를 붙이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순례는 역시 도보순례야!’ 하시며 다시 걷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가 이 여정을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쌍따봉입니다!
공지해 드린대로 9월과 10월 순례는 순공회 13기 신앙의길 순례로 평길단 순례는 쉬어가며, 11월에는 세 번째 토요일에 순례가 재개되니 이점 양지하시고 스케줄을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어쩐 일인지 처서가 아닌 입추에 벌써 여름 기세가 좀 누그러지는듯합니다. 그래도 한낮 열기는 매우 기승스러우니 건강 유념하시고, 재유행하는 코로나도 조심하시어 건강히 11월에 뵙기를 청합니다.
첫댓글 샬롬^^
글라라 벗님 덕분에 순례날 순간순간
복습하며~~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는 하느님사랑^^
순교자분들의 삶을 묵상해봅니다
힘들었지만 하느님께서 은총의 시간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함께 순례해 주심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