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에 관한 논쟁(1)
1. 18세기부터 시작된 ‘역사적 예수’에 관한 탐구는 19세기말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시도된, 윤리적이고 무시간적인 예수상에 대한 비난과 함께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특히 이 시대를 대표하는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는 복원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20세기 초반은 예수에 대한 신앙적인 관점만이 지배하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제기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였다.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기독교 내에서는 비주류에 가깝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을 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과거의 사실들을 입증함으로써가 아니라 현재 실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확증된다.”와 같이 말하며 역사적 예수 연구의 중요성을 축소시켰다.
2. 그럼에도 역사적 예수가 결코 신앙의 그리스도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토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레안더 캑은 『역사적 예수의 미래(1971)』에서 역사적 예수 탐구의 신학적 타당성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①만일 예수에 대한 주장들이 실제적으로 뒷받침될 수 없고 단지 설득을 위해서만 유용하다면 기독교 설교의 진실성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②예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예수와 그의 메시지에 대한 현대의 ‘이념적 왜곡’에 맞서는 ‘주요 방어벽’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③책임있는 역사적 예수 연구는 교회에서 건실하고 온건한 기독론을 유지하도록 도울 수 있다. ④서구세계에서 ‘기독교 세계의 소멸’과 ‘사고의 다원론적인 시장’이라는 상황에 처한 현대 신앙인은 진지한 역사적 숙고와 분리된 신앙이 주변 문화 속에서 지적인 소외를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한다.
3. 역사적 예수 탐구는 20세기 중반부터 다시 활기를 띠었고 1980년대 들어서는 논의의 깊이와 다양성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도출시켰다. 역사적 예수에 관한 관심의 고조는 탐구에 대한 다양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탐구 방법론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를 이끌어내었다. 현재의 ‘제3 탐구’ 단계에서 경쟁하는 방법론적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적 예수 탐구의 출발점을 예수에 관한 단편적인 내용(페리코페)에서부터 시작하는냐(원자론), 아니면 예수에 대한 전체적인 전제에서 출발하느냐(전체론)와 같이 연구의 강조점을 달리하는 입장이 있고, 둘째, 역사적 예수의 진정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말씀과 활동/행동 중에서 무엇에 더 초점을 두어야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셋째는 역사적 예수를 확정짓는 기준에 대한 논의로서 초기에 등장했던 비유사성의 기준에서부터 라이트의 ‘유사성과 비유사성의 이중기준’, 타이센의 ‘역사적 개연성’, 던의 ‘특징적 예수’라는 기준이 제기되었다. 넷째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학제간 탐구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의 문제로 20세기 초반 실존주의적 철학이 영향을 미쳤다면 현재는 고고학적 발견과 사회학적 모델 적용을 통한 역사적 예수 탐색이 강화되고 있다. 다섯째는 예수에 관한 문헌을 어느 정도 채택하는 가에 대한 논의로 신약의 4복음서를 바탕으로 Q복음과 도마복음, 베드로 복음과 같은 비정경적 자료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립적인 태도가 경쟁하고 있다.
4. 역사적 예수 탐구의 방법론적인 대립이외에도 연구 주제에 관한 다양한 논쟁이 존재하는데 이번 글에서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주제를 다뤄본다. 로버트 프라이스는 <소실점에 선 예수>라는 논문에서 “역사적 예수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프라이스는 먼저 연구 방법론의 전제를 밝힌다. 먼저 ‘유사성의 원칙’으로 “현재의 체험에서 유사성을 찾지 못한다면 그 내용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며, 예수의 말씀은 사실성보다는 교회의 적합성때문에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또한 합의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증거를 따라가면서 증거에 의해 판단하고 이제까지 나온 학술적인 결론들이 잠정적이고 제한적이며 수정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적 전제를 통해 볼 때 예수에 대한 기록은 ‘그리스도-신화’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5. 프라이스는 ‘그리스도-신화’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첫째, 세속자료에는 예수가 행한 기적에 대한 언급이 없다. 둘째, 복음서보다 이른 시기에 기록된 서신서들이 새로운 역사적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지 않는다. 셋째, 서신서들은 구세주가 오직 그의 죽음 이후의 승귀(exaltation)와 관련해서만 예수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었다고 하는 기독교 초기 단계의 신앙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프라이스는 이런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예수의 말씀을 “서신서에서 발견하는 초기 기독교의 말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의 것으로 돌려졌으리”라고 추정한다. 또한 복음서의 내용이 구약성서의 대한 미드라쉬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만일 복음서 에피소드를 구약성서의 재진술로 볼 수 있다면 그러한 에피소드가 실제로 예수에게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컴의 면도날 이론을 거스르는 중복설명이라 할 수 있다.”
6. 프라이스는 예수의 부활이 고대 근동신화의 영웅들과의 유사성을 반영한 것이며 예수의 수난 이야기 속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비교할 때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특히 헤롯의 유아살해, 산헤드린의 재판, 빌라도의 예수를 구하려는 시도는 전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결국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에 관한 내용은 신화적이고 전설적이었던 예수 전승을 역사 속에 정착시키려 했던 다양한 시도들의 잔재로서 고대인의 ‘신화를 역사화하려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이 살아나셨다.’라고 부활을 외쳤을 때, 그들은 단지 ‘야웨가 살아계시다’라는 고대의 찬사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고대 이스라엘인들과 동일한 의미로 그 외침을 사용한다.”
7. 프라이스의 “예수 이야기는 신화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다른 학자들은 문제를 제기하며 비판한다. 프라이스가 중시한 서신서 속에 실제적 예수에 관한 내용이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며 서신서들은 실제로 생존했던 인물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써졌으며, 예수의 형제였던 야고보에 대한 명시적인 내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티모스 존슨은 예수가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번째 사실은 역사 속에 갑자기 출현한 예배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신들’에게 드려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한 메시아’에게 드려졌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사실은 신앙운동의 구성원들이 50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저술했던 27권의 구별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신학자 크로산 또한 다음과 같이 예수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역사적이고 비폭력적인 예수상과 묵시적이고 폭력적인 예수상이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는데, 바로 그런 이유로 전자(비폭력적인 예수)가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인간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8. 예수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주장은 지나치게 파격적이고 자료를 편협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수는 살아있을 때,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과 같은 지위를 휙득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권위있는 기록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사후에 기록된 비기독교인의 기록 속에서 예수의 모습은 분명하게 감지된다. 오히려 문제는 예수의 역사성과 관계없이 예수에 대한 기독교의 기록이 얼마큼 실제적 예수의 모습을 증언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라이스의 ‘그리스도-예수’ 개념은 후대 교회가 적합성이라는 목적으로 예수의 이야기를 왜곡하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첫댓글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인간적이고 종교적이고 .... 예수, 그는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