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주장' 김정은 "'망신 안 당하면 다행'이란 예상, 매일 두려웠어요" [엠스플 인터뷰]
이근승 기자 입력 2021. 08. 06. 11:54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주장 김정은, 생애 두 번째 올림픽 마무리
-“발목 부상으로 매일 태극마크 반납 고민했어요”
-“코로나19로 연습경기를 치르지 못하면서 우리 경기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지 못했죠”
-“박지수의 가치, 수비에서 20~30실점 줄여줍니다”
-“코칭스태프의 땀과 희생 없었다면 올림픽에서의 선전 어려웠을 거예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주장 김정은(사진=대한민국농구협회)
[엠스플뉴스]
“졌지만 잘 싸웠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을 향한 농구계 격려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2020 도쿄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았다. 한국이 올림픽 본선에 나선 건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처음이다.
전망은 밝지 않았다. 세계랭킹 19위 한국은 스페인(3위), 캐나다(4위), 세르비아(8위) 등과 A조에 속했다. 농구 대표팀 주장 김정은(33) “‘20점 차로 패하지 않으면 다행’이란 얘길 많이 들었다”며 “망신당하면 어쩌나 하루하루가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농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은 스페인(69-73), 캐나다(53-74), 세르비아(61-65)와의 경기에서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다. 19점 차로 패한 캐나다전도 3쿼터까진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김정은이 많은 시간을 뛴 건 아니다. 발목이 온전치 않아 벤치를 지킨 시간이 길었다.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할 땐 태극마크를 반납할 고민까지 했다. 하지만, 전주원 감독과 선수들의 만류로 팀에 남았다. 그는 팀 내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경험한 유일한 선수였다.
김정은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선 주장으로 팀이 하나로 똘똘 뭉치는 데 앞장섰다. 엠스플뉴스가 생애 두 번째 올림픽을 마친 김정은의 얘기를 들어봤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주장 김정은 “매일 태극마크 반납을 고민했어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포워드 김정은(사진=대한민국농구협회)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2020 도쿄 올림픽을 마쳤습니다.
주변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한국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스페인, 캐나다, 세르비아 등 객관적인 전력에서 두 수 위인 상대와 대결했습니다. 3경기 모두 패했죠. 하지만, 철저히 준비하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얻은 게 많은 대회예요.
실제로 농구계는 “한국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가능성을 보였다”고 평가합니다.
5월 11일 진천선수촌에서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2020-2021시즌을 마치자마자 대표팀에 합류한 거예요. 다들 지친 상태였죠. 저는 몸 상태까지 온전치 않았습니다. 매일 고민했어요. 태극마크를 반납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김정은은 대표팀 주장이었습니다.
2020-2021시즌 오른쪽 발목을 다쳤습니다. 수술을 받았죠. 일찌감치 시즌을 마쳤어요. 그리고 대표팀에 합류한 겁니다.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어요.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게 옳은 건가 싶었죠.
대표팀과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대표팀 주전 포워드이자 베테랑인 김한별 선수가 부상으로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30대 선수가 저를 포함해 셋뿐이었어요. 특히나 올림픽을 경험한 선수는 저 하나였죠. 전주원 감독님과 선수들이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얘길 했어요. 오랜 고민 끝 대표팀에 남았습니다. 코트 안팎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했어요.
한국이 올림픽에 도전한 건 2008 베이징 대회 이후 처음입니다. 김정은은 13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 대표팀 막내로 참여했습니다.
걱정이 없었죠(웃음). 정선민, 변연하 등 쟁쟁한 선배가 중심을 잡았습니다. 훌륭한 선배들과 함께해 8강에 올랐죠. 2020 도쿄 올림픽은 많은 게 달랐어요.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코로나19로 훈련만 했습니다. 연습경기를 치르지 못했어요. 경기력이 얼마만큼 올라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죠. 올림픽엔 한국보다 약한 팀이 없어요. 상대 선수들은 높이, 힘 등 모든 면에서 우릴 앞섭니다. 주변에선 “20점 차로 지면 잘한 것”이란 얘길 많이 했어요. 망신당하는 건 아닐지 매일 걱정했습니다.
“스페인전 마친 뒤 자신감 붙었죠”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온 힘을 다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불안감을 이겨내는 방법은 훈련뿐이었습니다. 모든 선수가 땀을 아끼지 않았어요. 실전보다 더 진지하게 훈련했죠. 성과가 있었습니다. 2020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 1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접전을 벌였어요. 69-73으로 아깝게 졌죠. 경기를 마치고 선수들이 같은 말을 했어요. 후배들이 제게 “언니, 할만한 것 같아요”라고 했죠.
한국은 2020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 스페인과의 대결에서 46-83으로 대패한 바 있습니다.
2020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에선 수비, 리바운드 등 모든 부분에서 밀렸습니다. 상대보다 한 발 더 뛰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죠. 무기력했습니다. 하지만, 2020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에선 다를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어요. 철저히 훈련했습니다. 실전 감각만 빠르게 찾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믿었죠.
그런 스페인을 잡을 뻔했습니다.
자신감이 붙었어요. 조금 더 집중하면 1승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훈련을 이어갔습니다.
캐나다전에선 53-74로 크게 졌습니다.
캐나다가 A조에 속한 4개 팀 가운데 몸싸움이 가장 강했어요. 3쿼터까진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하지만, 4쿼터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점수 차가 벌어졌죠. 스페인전과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한 경기였습니다. 경기 후 선수들과 “이제 딱 1경기 남았다. 세르비아전에 모든 걸 쏟아붓자”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세르비아전에선 61-65로 졌습니다. 스페인전과 마찬가지로 4점 차였습니다.
딱 1골 싸움이었습니다.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1골이 아쉬웠죠. 하지만, 대회를 마친 선수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어떤 팀을 상대하든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농구에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후배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한 단계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표팀 주장으로 고충이 많았을 듯합니다.
올림픽에서 주장으로 뛴다는 건 아주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어요. 코트 위에서 후배들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죠. 미안했습니다. 늘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런 저를 믿고 따라준 후배들에게 고마웠고요. 참 많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고마웠습니까.
대표팀 중심인 강이슬, 김단비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 둘은 싫은 내색하지 않고 제 말을 들어줬죠. 코트 위에선 온 힘을 다해 뛰었고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좋은 후배들 덕분에 생애 두 번째 올림픽을 잘 마쳤어요.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마지막 올림픽 도전이었습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벤치에 머물고 싶은 선수는 없습니다. 많이 뛰고 싶었어요. 특히나 상대 코트를 휘저을 선수가 부족했습니다. 김단비, 박지현의 부담이 컸죠. 마지막 올림픽에서 후회 없이 뛰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코트 안팎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2020-2021시즌 중 발목을 다친 게 아쉽습니다.
“코칭스태프의 땀과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전주원 감독(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농구계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센터 박지수가 조금 더 일찍 합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아쉬운 부분 중 하나죠. (박)지수는 미국 프로농구 WNBA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에서 뛰고 있어요. 2020-2021시즌 WKBL 일정을 마친 뒤 곧장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대표팀 훈련엔 도쿄 출국 4일 전 합류했죠. 4일 손발 맞추고 좋은 경기력을 보이긴 했지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에요.
박지수는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농구 예선 리바운드, 블록슛 1위에 올랐습니다.
대표팀에서 지수를 처음 봤어요. 지수가 중학생일 때였죠. 만날 때마다 느껴요. 차원이 다른 선수구나(웃음). 지수의 맹활약으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였어요. 지수의 활약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지수의 진짜 힘은 수비에 있어요.
수비요?
가만 서 있는 것만으로 상대팀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요. WKBL에서 상대해봐서 잘 알죠(웃음). 리바운드, 블록슛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투지까지 넘칩니다. 어떤 선수를 만나든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대단해요. 기술은 어떨지 모르지만, 수비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합니다. 또 칭찬하고 싶은 선수가 있어요.
누굽니까.
가드 박지현입니다. 세르비아전에서 17득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했어요. 공격에서 다재다능한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을 상대로 주눅 들지 않았죠. 대표팀 에이스이자 슈터인 강이슬 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가드 윤예빈도 앞으로의 활약이 아주 기대됩니다. 후배들이 3년 뒤 파리에선 더 멋진 경기력을 보였으면 해요.
앞으로 한국 농구를 이끌어갈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습니까.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느꼈습니다. 확실히 올림픽이란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달라요. 큰 책임감을 느끼죠. 딱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어떤?
대표팀 막내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대표팀만의 문화가 있었어요. 언니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대표팀이 어떤 곳인지 보여줬죠.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코트에 나가면 오늘이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뛰고 또 뛰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해서 뛰는 선수들이에요. 능력이 출중하고요. 올림픽도 한 번 경험했습니다. 잘할 거예요. 그리고 이 얘길 꼭 하고 싶습니다.
네.
전주원 감독님, 이미선 코치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솔직히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말하지 못할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감독, 코치님은 자기 영역이 아닌 부분까지 나서서 선수들을 챙겼어요. 올림픽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었지만 선수들 앞에선 절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신경 썼죠. 두 분께 아주 감사해요.
전주원 감독이 “2년 같은 2달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을 이끌고 올림픽에 나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부담감과 책임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꼭 이야기하고 싶은 건 감독님이 정말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거예요. 소속팀 아산 우리은행 위비에서도 감독님의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에선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죠. 전주원 감독님은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하지 않아요.
작은 것 하나 소홀하지 않는다?
대충할 수 있는 것도 온 힘을 다하세요. 감독님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없을 땐 타고난 천재인 줄만 알았습니다.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포인트 가드였으니까. 한국에 전주원만큼 노력을 기울인 선수가 있었을까 싶어요. 옆에서 보면 ‘저렇게 하니 성공하는구나’라면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3전 전패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특히나 언제 어디서나 여자농구를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골수팬’이라고 하죠. 그런 분들의 변함없는 사랑에 한국 여자농구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당장 2021-2022시즌 좋은 경기력 보일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재활 철저히 해서 팬들에게 재미난 경기 보이겠습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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