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콩나물
박은자 (예은교회 사모, 동화작가)
실밥을 뽑기 전에 퇴원을 하고 보니 좀 퇴원을 서둘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퇴원을 하고 나니 당장 아이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가르치고 나니 금세 지쳐서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쓰러지듯 누워 그만 깊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남편도 아내의 병간호에 지쳤나 봅니다. 남편 역시 곤하게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참 맛있게 숙면을 취하고 나서 일어나 보니 오후 5시경이었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콩나물이 한 상자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얼른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콩나물을 가지고 온 분은 이미 천안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에 다시 오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콩나물 상자를 열었습니다. 서른 봉지나 빽빽이 들어 있습니다. 방금 막 뽑아서 가져 온 것인지 참 싱싱합니다. 아니 콩나물이 너무 예쁩니다. 봉지를 열어 얼른 냄새를 맡아봅니다. 그리고 콩나물 몇 가닥을 집어 씹어봅니다. 콩나물 냄새가 참 달콤합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콩나물국이었습니다. 얼른 콩나물 한 봉지를 모두 쏟아 국을 끓입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콩나물을 가지고 왔던 이희숙 장로님입니다.
“사모님, 콩나물 또 나누어 먹을 거지요?”
“나누어 먹으라고 그렇게 많이 주고 가신 거 아니에요?”
“서너 봉지 드리면 잡숫지도 못하고 다 나누어주고 마니까 아예 많이 드리는 거지요.”
아삭아삭한 콩나물, 사실 그 콩나물은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깝습니다. 누구든지 그 맛을 본 사람이면 또 먹고 싶어 합니다. 저희 예은교회 교우들은 이희숙 장로님이 기른 콩나물을 좋아합니다. 제가 콩나물 한 봉지를 드리면 쇠고기 한 근보다 더 좋아합니다. 더러는 콩나물 장로님 언제 오시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전화를 막 끊으려고 하는데 이희숙 장로님이 서둘러 말합니다.
“사모님, 콩나물 몇 봉지만 꺼내고 박스까지 다 주시면 안되어요. 콩나물 밑에 좀 보세요. 사골이라도 해 잡수시라고 조금 넣었어요.”
“아, 장로님! 이젠 제발 그러지 마세요. 이제는 제가 장로님께 힘이 되어 드려야 하는데 왜 그러셨어요? 콩나물만으로도 충분히 좋은데 사골은 무슨.... 그리고 저는 사골을 좋아하지도 않아요.”
“좋아하지 않아도 꼭 해 드세요. 수술하시고 나면 정말 잘 드셔야 해요. 몸조리 잘하세요.”
이희숙 장로님과 전화통화가 끝나고 콩나물을 모두 쏟았습니다. 그러자 하얀 봉투가 나왔습니다. 봉투 속에는 장로님의 따듯한 마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봉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정말 많은 일들이 생각납니다.
이희숙 장로님은 남편이 목사안수를 받기 전 부교역자로 일하던 교회의 집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그 교회를 떠난 후에 그 분은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부교역자 시절, 저희 가정은 경제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장로님이 저희 집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날 따라 기름이 떨어져 집안이 냉방이었습니다. 기름 값을 몰래 놓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때때로 보일러의 기름과 먹을 것을 챙겨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입니다. 박사과정에 있던 남편의 마지막 등록금을 내지 못해 몹시 애가 탔습니다. 몇 번이나 연기하고도 내지 못했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제적처리 된다는 날이었습니다. 200만 원은 간신히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50만 원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농협에 앉아서 애를 태웠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어느 덧 시간이 4시가 넘었습니다. 초조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결국 이희숙 장로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이희숙 장로님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나를 농협에 이렇게 붙들어 놓고 계셨군요. 지금 바로 보낼게요.”
그런데 이희숙 장로님이 보내준 돈은 50만 원이 아니라 100만 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50만 원을 더 보내셨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장로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모님, 잘못 보낸 거 아니에요. 사모님이 생활비를 남겨놓고 등록금 모자란다고 전화하신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 당장 생활비가 없을 거 아니에요.”
등록금을 내러 학교로 달려가면서 그 날 저는 장로님이 좋아서 자꾸 웃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희숙 장로님은 넉넉한 분이 아닙니다. 사업을 하는데 너무 정직하게 하다보니 많은 이익을 내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200미터 지하의 암반수와 산소로만 콩나물을 기릅니다. 그리고 순수한 우리 콩만을 사용하여 콩나물을 침수시켜서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콩나물을 기릅니다. 콩나물이 상하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게 하는 약을 쓰라고 제약회사 직원들이 수시로 찾아오지만 그 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다 보니 재배기간이 다른 콩나물 공장보다 이틀이나 더 길고, 콩나물 모양 또한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장로님이 사용하는 단 하나의 약은 ‘기도’ 입니다. 콩을 담그며, 콩나물이 눈뜨는 것을 보며, 콩나물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업장의 콩나물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세요”
얼른 팔리지 않아 더러 반품되는 콩나물이 있으면 장로님은 몇 날이고 콩나물밥을 해 먹습니다. 하지만 그 콩나물은 정말 맛이 있습니다. 아삭아삭하고 고소하며 국물 맛이 개운하고 시원합니다.
깨끗한 물과 기도로 자란 콩나물을 많이 먹은 때문일까요? 장로님은 마음까지 참 건강합니다. 콩나물을 판돈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열심이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장로님의 선행은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답게 사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장로님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사업이 안정된 것도 아닌데 교회의 건축이나 목사님을 섬기는 일, 혹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어쩌면 그렇게 마음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장로님은 나에게 풀들을 보라고 했습니다. 풀들 하나하나는 한없이 약하지만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서로 기대고 또 서로 잡아주며 살지 않느냐고. 자신은 정말 아무 힘이 없지만 풀들처럼 서로 잡아주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는 풀들을 보면 콩나물 장로님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나도 풀들처럼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주며 살리라는 꿈을 꾸게 됩니다.
저희 가족이 이희숙 장로님이 섬기고 있는 성환 목양교회를 떠나 온 지도 어느 덧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늘 잊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시는 분, 그리고 오늘 또 이렇게 저에게 힘을 줍니다. 콩나물 봉지마다 장로님의 사랑이 가득합니다. 수요일 저녁 예배가 끝나고 저는 성도님들과 신이 나서 콩나물을 나누었습니다. 좋은 물과 기도만 먹고 자란 콩나물이라고 제가 큰소리로 말합니다. 콩나물을 들여다보던 오숙자 집사님이 말합니다.
“그냥 먹어버리기에는 너무 예쁘네.”
제가 또 한 마디 합니다.
“예쁜 콩나물 드시고 더 예뻐지세요.”
아, 그렇습니다. 이희숙 장로님이 기른 콩나물을 먹으면 마음까지 건강해지고 예뻐질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이 콩나물을 들고 가신 뒤에 저는 조용히 손을 모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희숙 장로님을 알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 장로님이 하시는 사업장 ‘주이레 복모아식품 아삭아삭한 콩나물’ 위에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어려운 일이 없게 해 주세요.”
(크리스챤신문. 2004. 8. 23)
http://www.cwmonitor.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