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계약서
이미자
최근 한 달 동안에 계약서를 두 건이나 썼다. 한 건은 우리가 세를 놓았던 집이었고 다른 한 건은 우리가 세를 살게 될 집이었다. 우리가 세놓았던 집은 살던 사람이 빨리 이사를 하려는데 기간 내에 세가 안나갈까봐 독촉을 하였다. 새로운 임자가 나타나지 않자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그런 참에 신혼부부가
찾아와 집이 마음에 꼭 든다고 했다. 그런데 빚을 내야 되니 전세를 내려 달라고 흥정을 하였다. 우린
시세보다도 싸게 내놨는데 더 내려서 계약을 했다. 그렇게라도 계약 기일을 어기지 않고 살던 사람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채 한숨도 돌리기전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을 비우라고 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으니 전세금을 올려주고 살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편이 나았을 텐데...... 며칠 동안 다리품을 팔아 새로 들어갈 집을 찾았고 또 계약을 하였다. 계약서에 사인까지 하면서 새삼스럽게 약속의 신중함을 통감하였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크고 작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꼭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지 않더라도 우린 날마다 언어로 또는 행동으로 약속을 하며 산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할 때도 고개를 까딱하면 약속이 이루어져 내가 양보를 했고 그는 앉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하여 상세한 계약서를 써야만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계약서를 살세하게 쓸수록 시비나 분쟁을 예방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이혼율이 엄청나게 높다는데......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도 사랑의 계약서를 써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할 때는 밤을 지새우며 속삭이고 인터넷에 쪽지를 보낸다.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리도 많은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하늘만큼 믿음직한 사랑도 어느 날 갑자기 겨울바람보다 더 차갑게 식어 버린다. 그 상처에 아파서 죽을까 살까 몸살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리석은 짓은 안한다고 하는데 어떤 사랑을 할까?
실제로 어떤 남성은 자기의 불같은 사랑의 열정을 글로 썼다. '나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며, 만일 내 사랑이 변하면 본인은 결코 천벌을 받아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날짜와 멋들어진 사인까지 곁들였다. 여인은 너무 감동했다. 하늘을 나는 듯 온 땅의 충만한 큰 행복감으로 결혼을 하였다. 그토록 확신했던 사랑 이었건만, 그 행복도 허공에 메아리로 사라져버렸다. 얼마가지 못해 약속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그 남자는 여비서와 사랑에 빠져 조강지처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 여인은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와야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남편의 글이 이삿짐 속에서 발견 되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날의 약속을 읽고 또 읽었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이혼한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비보였다. 그녀가 병원에 당도했을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 버렸다.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는 그의 글이 거짓말처럼 이루어졌다. 정말 한 편의 드라마같은 사연이었다. 모든 지인의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간담을 서늘케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글은 사실 그대로 되어지는 것 같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지켜야 할 약속이 무엇인지 일일이 명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알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심을 만들어 놓으셨다. 아무리 아니라고 외면하고 싶지만 양심을 속일 수가 없다. 언제나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 양심계약서를 쓰자.
[약력]
문예사조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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