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한 (安翰)
1513(중종 8) ~ 1596년(선조 29), 본관은 순흥(順興), 자(字)는 계형(癸亨)이고 호(號)는 죽계(竹溪) 또는 경력(經歷)이라 하였다. 1546년 병오(丙午)에 진사(進士)하였다. 안침(安琛) 공평공(恭平公, 1파 12세)과 똑같은 죽계(竹溪)라는 아호를 쓰고 대사헌공인 휘 숭효(諱 崇孝)는 증조부(曾祖父)이다.
글씨체가 촉체(蜀體)로 명필(名筆)로 이름 높고 내직(內職)으로 충훈경력(忠勳經歷)과 군기판관첨정(軍器判官僉正)이며 외직(外職)으로 의성현령(義城縣令)을 지내고 노직(老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하여 사왕조(四王朝)를 섬김에 사리(事理)에 통달(通達)하였다. 1596년(선조 29) 병신(丙申) 10월 20일에 졸(卒)하니 향년(享年) 84세이다.
83세에 쓴 적벽부(赤壁賦)가 가보(家寶)로 전해오며, 정숙옹주의 남편인 동양위(東陽尉)인 신익성(申翊聖)과 유대장(柳大將)인 혁연(赫然)이 촉체(蜀體 : 중국 촉나라 조맹부의 글씨체)로 유명했는데, 일찌기 공(公)의 이 글씨를 보고 나로서는 도저히 따르지 못하겠다며 감탄(感嘆)했다고 한다.
견한잡록에 기록되어 있는 공(公)의 시로 견한잡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청천당(聽天堂) 심수경(沈守慶)이 다년간 연대에 따라 문신들과 교우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그 중 안한(安翰)과 송서교(宋西郊 송찬)와 주고받은 시의 내용이다.
갑오년(1594) 겨울에 주고 받은 시
심청천(沈聽天 심수경)-77세
吾鄕耆老會多年(오향기로회다년) 우리 마을 노인들 다년간 모임 갖더니
一散東西事幾遷(일산동서사기천) 한번 동서로 흩어진 후 세상사 몇 번이나 변했는고
今日生存只三箇(금일생존지삼개) 지금 살아 있는 이는 단지 세 사람
回思舊興却茫然(회사구흥각망연) 옛일 회상하노라면 그저 멍해지네
안죽계(安竹溪 안한)-80세
四隣知姓不知年(사린지성불지년) 이웃에서 성은 알아도 나이는 몰랐으니
自少交情老豈遷(자소교정로기천) 젊어 사귄 정 늙은들 변할까
今日三人成鼎坐(금일삼인성정좌) 오늘 셋이 솥발처럼 앉으니
這間肝膽照皤然(저간간담조파연) 그 동안의 마음이 흰 머리에 비춰지네
송서교(宋西郊, 송찬)-82세
城西爭鵠屬殘年(성서쟁곡속잔년) 성 서쪽에서 활이나 쏘며 여생을 보내노라니
成癖難爲他技遷(성벽난위타기천) 습관이 되어 다른 일은 하기 어려웠네
今日漂零思射?(금일표령사사?) 오늘 쓸쓸히 활쏘던 옛일을 생각하노라니
不禁哀涕自潸然(불금애체자산연) : 슬픔을 금치 못하여 눈물이 흐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