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박 준 (朴峻)
1559년(명종 14) ~ 1625년(인조 3),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자첨(子瞻), 호는 귀전(歸田), 조부는 선교랑(宣敎郞) 계인(繼仁)이고, 부친은 삭주부사(朔州府使)를 역임한 희성(希聖)이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청계군(淸溪君) 이채(李彩)의 딸이다.
공은 임진왜란 때 학질을 앓는 계모 민씨를 업고 피난하느라 처자를 돌보지 못해 부인 박씨를 잃었다. 1604년(선조 37) 풍병을 앓는 아버지를 위해 당시 어의(御醫) 허준(許浚)을 모시려 하였으나, 얼굴도 볼 수 없었는데, 매일 새벽 집으로 찾아가 애원을 하자, 그 효성에 감복한 허준이 약을 지어 주었다.
이후에 다시 병이 나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흘려 넣어 낫게 하였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져 1604년(선조 37) 헌릉 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다.
1606년(선조 39) 부친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데, 어느 날 산불이 나 묘까지 번지려 하자, 몸을 던져 불을 끄면서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니 갑자기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불이 번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은 『동국신속삼강행실(東國新續三綱行實)』에 실려 있으며, 유림의 추천으로 정려(旌閭)가 되고 1610년(광해군 2)에 귀후서 별제(歸厚署別提)가 되었다. 1611년(광해군 3)에 청백리 후손이라 하여 동부 주부(東部主簿)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1613년(광해 5) 신령현감(新寧縣監)에 부임했으나, 관찰사(觀察使)의 모함으로 파직되고, 1623년(인조 1) 비안현감(比安縣監)에 제수되었으나, 재임 중 1625년(인조 3) 질환으로 졸(卒)했다.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감악산에 효행을 적은 팔각비(八角碑)와 묘가 있다. 1653년(효종 4) 10월에 세워진 비는 이조 판서(吏曹判書) 이명한(李明漢)이 짓고, 이조 정랑(吏曹正郎) 이정영(李正英)이 쓰고, 이조 참판(吏曹參判) 여이징(呂爾徵)이 전(篆) 하였다.
孝子通訓大夫行比安縣監朴公墓碣銘
昔先府君每與家子弟論人行誼。必稱朴公爲孝子。明漢時幼少。固已習聞而心敬之。及癸亥反正初。聞南中人士皆稱公治縣爲一道最。至臺使者上聞以褒。余於是益知朴公行誼不但孝於家也。今其孤宗岳,震岳。狀公平生。徵余言銘其墓。噫。余公洞人也。世義有不可辭者。且余待罪太史。記忠臣孝子之行。職也。按狀。慶州朴池上之後。四代而曰瑀。封屛山君。屛山卽比安。子孫仍居焉。曰宗柱,曰允甫,曰漸。代有衣冠。曰瑞生。受業冶隱門。入我朝。登文科。位吏曹參判。選淸白吏。喜直諫。退老善山。以詞翰名。曰瑔。參奉。曰信元。郡守。與其弟孝元。筆法齊名。實撰海東名跡。生諱綱。慶基殿參奉。生諱繼仁。宣敎郞。亦工文筆。是公曾祖考祖考也。生諱希聖。朔州府使。贈左承旨。公之考也。操身有法。友愛天至。夫人李氏。宗室靑海君彩之女。亦賢有婦德。先府君嘗記府使公墓以表之。以嘉靖已未十二月十四日。生公。諱某。字子瞻。十四。遭李夫人喪。是年冬。府使公得風病。公扶服侍藥。日夜籲天。御醫許浚亢甚。問藥者塡門不見面。公每日。必鷄鳴往叩。號泣哀懇。浚感公誠孝。誡其僕曰。朴某孝子也。寒節久立門外。恐傷損。必先處溫房。卽報我母滯。遂終始往來看護。府使公病得瘳。聞者莫不感歎。繼母閔氏初不察公誠孝。後乃感而化之。愛公如己出。壬辰亂。府使公在朔州任所。公奉閔氏向西。閔氏路得瘧。公負而行之。公前配朴氏當暑抱子女。亦徒行。公不暇顧。閔氏瘧遂愈。而朴氏病暑痢以歿。丁酉。奉閔氏還楊州舊莊。躬販賣供旨瀡。壬寅。府使公病復作。甲辰轉甚。公斷指和藥以進。病又得瘳。是年。朝廷錄公孝行。除獻陵參奉。丙午。換孝慶殿。以親病辭。冬府使公竟卒。葬祭一以禮。三年啜粥不脫衰。廬于墓側。朝夕省拜。雨雪不廢。一日野火乘風猝至。將及墓。公獨身哭擗。仰天而號之。忽風反火止。鄕人異之。公事繼母,庶母。愛敬俱至。事有不可。必和顏以諫。諫不入則勉強行之。京外鄕里交薦公孝行。賜旌閭事載三綱行實。庚戌。又以孝廉薦。拜歸厚別提。辛亥。以淸白吏子孫。超授東部主簿。俄拜司憲府監察。癸丑。始遷拜新寧縣監。按使聽權臣言。謀奪土民臧獲。又使其昵者防納縣貢物。公皆持不從。按使怒。置下考。遂寓居忠州。見時事日非。杜門屛跡。無意於世。人有勸公爲親強仕者。公笑不答。癸亥。上改玉。卽除比安縣監。爲政簡易。流民盡還。御史褒以約己平民。上賜表裏嘉之。鄭公經世自尙州還朝。上問道內守令誰最賢。經世獨擧公以對。乙丑。病卒于官。年六十七。縣老幼號哭。盡境以送祭奠。至塞路。十月二十七日。葬積城慶新洞午向原。先塋側也。前配錦城朴氏。左議政訔七代孫元男之女。葬于楊州治北鵲洞艮向原。西距公墓二里許。後配晉州鄭氏。承旨誠謹三代孫賢慶之女。忠孝名門也。事公無違志。朝夕供饋。必賣衣裳。求異味以進。朴氏生一女。適生員鄭溭。溭生一男一女。男進士鄭慶演。女縣令李長英。慶演生四男二女。長英生五男一女。鄭氏生二男。卽宗岳,震岳。宗岳娶主簿洪𩅿女。生一男峸。震岳娶尹祥元女。生一男二女。男嶸。側室子曰次岳。生四男六女。男曰嶙,峋,崦,嵫。公至行根於天性。承家孝友。體行益篤。寡妹有一女。公館而畜之。能別而恩。自府使公至公二世。兄弟同居。未嘗折產。閨門無退言。少時屢中科試。歷試二邑。皆有聲績。決獄明愼。滯訟皆歸。簿牒之暇。輒往鄕校會諸生。勸以孝悌學問。終始不怠。縣人至今稱頌之不衰。噫。公眞孝子也。眞賢守令也。公之行誼可書如此。而其子亦能孝思顯其親乃如此。此又可書也。銘曰。孝公天得。人式其閭。移孝而官。國有褒書。乃如之人兮。不愧乎名。公名之不愧兮。我銘之貞
<白洲集卷之十七/ 吏曹判書 李明漢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