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과 생성의 수수께끼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슬퍼진다. 외롭거나 불쌍한 노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도 늙어가고 있고 곧 노인 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걸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자주 의식하게 되고부터인 것 같다.
행복한 노인도 슬프긴 마찬가지이다. 관광 여행이나 장수 무대 등에 나와 활짝 웃는 노인들을 보면 더욱 슬퍼진다. 노인들이 너무 천진해서, 그리고 그분들의 행복이 일시적이고 어딘지 내보이기 위해 과장된 것처럼 보이는 게 슬프다.
텔레비전 화면 같은 데 그런 노인들이 나와 웃고 춤출 때마다 나는 외면하거나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보기 싫어, 꺼버려.”
나는 아이들에게 악을 쓴다. 슬프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웃을 것 같다. 아니 못 알아들을 것 같다. 문자 그대로 세계 정상의 권세와 지위를 가진 노인도 보기 싫도록 슬프긴 마찬가지다. 그가 연설할 때도 나는 외친다.
“그 노인 보기 싫어, 꺼버려.”
세계적인 권세도 부귀도 뺨에서 목으로 흐르는 칠십노인다운 처량한 선을 지울 수 없음이 슬프다. 노인을 보면 슬퍼지고부터는 사진 찍기가 싫다. 공개되어야 할 사진을 찍기는 더욱 싫다. 두렵기조차 하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지금 사진 찍는 일이 아니라, 어느 날, 정말로 늙고 망령들어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어디든지 나서고 싶어하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아이들에게 그러면 한사코 말려야 한다고 일러둔다.
나이보다 젊게 사는 노인들을 보는 것도 슬프다. 우리 동네엔 아주 잘 지은 노인정이 있다. 정자같이 생긴 이층 누각이고 둘레엔 계절 따라 꽃이 피고 진다. 남 보이기 위해 지어놓은 노인정만은 아닌 듯 늘 노인들이 드나들고 어떤 때는 그 속에서 장구 소리가 날 때도 있다.
어느 날, 나는 꽃밭을 헤치고 그 안에까지 들어가보았다.
마침 어디로 단체 나들이라도 떠나시려는지 여자 노인들이 여러분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여자 노인이라면 마땅히 노파라고 불러야 옳으리라. 그러나 웬걸. 입은 옷들이 최신식의 양장에 울긋불긋 화려하기가 젊은 여자들의 명동 거리 계모임과 흡사했고, 머리는 한결같이 염색한 커트였고, 입술은 꽃잎처럼 붉었고, 향수 냄새가 현기증이 나게 짙었다.
카세트로 최신 유행곡을 들으며 어떤 노인은 하이힐 굽으로 콩콩 양회바닥을 구르며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젊게 사는 노인들 역시 슬퍼 보였다. 나는 너무 슬퍼서 숨도 크게 못 쉬고 가만가만히 그곳을 도망쳐나왔다.
양로원엘 딱 한 번 가본 일이 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한 번도 안 입으신 새 옷이 꽤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분에게 철철이 옷을 많이 해드린 건 아니었다. 말년에 외출을 못하고 들어앉아 계신 후부턴 거의 새 옷을 안 해드렸다.
그분은 낡은 헌옷만 입으셨고, 그나마 잘 안 갈아입으셨다. 남부끄러운 마음에 내가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리려면 나들이 갈 때 입어야지 집에서 그 좋은 옷을 뭣 하러 입느냐고 펄쩍 뛰셨다.
나들이할 가망이 없는 오랜 병석에서도 나들이 할 때 입을 옷을 아끼느라 헌옷만 입으셨다. 나는 그분이 마치 며느리를 망신주기 위해 헌옷만 입으시는 것 같아 그분이 싫었다. 그분의 초라하던 헌옷 때문에 속도 많이 썩었고 분노를 걷잡을 수 없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분은 그 아끼던 새 옷을 입고 다시 나들이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친척들과 함께 그분의 유품을 정리할 때, 친척들은 아직 진솔인 채인 그분의 많은 비단옷에 놀란 것 같았다. 친척들은 새삼스럽게 나를 효부로 추켜세웠다.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그분이 마지막 먼 나들이에 그 새 비단옷들을 한꺼번에 입고 가셨음을. 그분이 마지막으로 껴입은 그 비단옷은 며느리를 빛내기 위함이었음을.
돌아가신 그분은 키가 작았다. 옛날 노인 중에도 작은 키에 속했다. 요새 성숙한 국민학교 4, 5학년 아이들이 입으면 맞을 것 같은 회색, 옥색, 밤색, 흰색 등의 양단 뉴똥 치마저고리를 무엇에 쓸까?
친척 중의 한 분이 한 번만이라도 입으시던 것은 태우든지 넝마장수를 주되 진솔은 양로원에다 갖다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가려놓았던 것을 그해 겨울 마침 양로원을 단골로 찾는 분과 동행할 기회가 생겨서 갖고 가게 되었다.
나는 내 선물을 매우 수줍어했고, 그쪽에서도 그것을 대수롭게 아는 것 같지도, 우습게 아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그것이 의례적인 감사의 말과 함께 받아들여진 것만 고마웠다.
그때 양로원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밝았고, 어딘지 침착치 못하게 들떠 있었다. 궁상맞고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지 않아 훨씬 다행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양로원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복도의 크리스마스트리에선 오색 전구가 깜박이고 있었고, 어떤 노인은 버선 속에 하나 가득 알사탕을 감추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일매일 크리스마스만 같았으면 좋겠어.”
망령기가 있는지 유아 같은 표정의 노인이 유아처럼 분홍빛 잇몸만으로 활짝 웃으며 귓전에 속삭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8월 한가위만 하여라’라는 우리의 옛 속담은 8월 한가위의 풍요를 말해주기보다는 8월 한가위를 뺀 날들의 고독을 더 실감나게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뜻하지 않게 양로원의 문전성시에 끼어든 걸 알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외의 계절에 양로원을 따로 다시 찾을 용기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1년 중 가장 행복한 계절의 양로원도 보기 슬프거늘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쓸쓸한 날의 양로원을 어찌 견디랴. 미리 주눅부터 드니 어쩌랴.
양로원 노인보다 더 슬픈 노인은 나의 어머니다. 하필이면 꼭 내가 전화드려야지 마음먹고 있는 날 아침에 먼저 걸려오는 내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절절하게 슬픈 게 또 있을까? 몸 성하냐, 밥 잘 먹냐, 아이들 학교 잘 다니냐, 이런 세세한 안부 때문에 내가 문안드릴 겨를도 안 주는 어머니의 자상한 목소리처럼 듣기 싫은 게 또 있을까.
그러나 나는,
“듣기 싫어, 꺼버려”
라고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으니 어쩌랴.
어머니가 내 집에 오셔서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계신 걸 보는 것은 슬프다. 어머니가 보고 계신 건 창 밖의 풍경일까? 당신의 지난날 일일까? 창 밖의 풍경도 지난날도 하염없이 흐르고 차디찬 죽음의 예감이 우울하게 서린 어머니의 노안은 크나큰 비애다.
나의 어머니가 보기 좋을 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행복해보일 적의 어머니가 제일 보기 좋다. 어머니가 참으로 행복해보일 적은 입지도 않으실 비단옷을 해갔을 적도 아니고, 용돈을 드렸을 적도 아니고, 고기를 사갔을 적도 아니다. 그런 효도는 평상시의 무관심에 대한 일시적인 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어머니는 잘 알고 계시다. 양로원 노인들이 크리스마스가 1년이 한 번밖에 안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듯이.
그래서 그런 일시적이고도 물량적인 효도를 받으실 때의 어머니는 차라리 더 쓸쓸하다. 어머니가 정말 행복해보일 적은 무릎으로 엉겨드는 증손자를 어루만지실 때다. 그 어린놈은 그 노인의 얼굴이 늙어서 보기 싫다는 것도 그 노인의 위치가 무력하다는 것도 아직 모른다. 따습고 말랑하고 정이 흐르는 손길이 본능적으로 좋아 따르고 있을 뿐이다. 내 어머니뿐 아니라 어떤 노인도 어린 손자와 함께 있을 때 슬프지 않다.
생명이 소멸돼갈 때일수록 막 움튼 생명과 아름답게 어울린다는 건 무슨 조화일까? 생명은 덧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이어진다고 믿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이번 겨울엔 내 어머니를 증손자가 무릎으로 엉겨붙는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 계시게 해야겠다.